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169
52 잘못된 정류장 (3)
“큭!”
황급히 팔을 들어 올려 가슴이 꿰뚫리는 건 막았지만 팔뚝에 단검이 그대로 박혀 들었다.
팔이 불타는 듯한 고통이 뇌를 마비시켰다. 내 팔뚝에서 흐른 피가 바닥에 떨어졌다.
누가, 누가 나를 공격했지? 그 의문은 금세 풀렸다.
내 팔뚝에 꽂혀 있는 건 내게 너무나도 익숙한 물건이었다. 익숙하다마다, 내가 이걸 직접 찍어 냈는데.
김재호?
고개를 돌린 내 시선에 잡힌 건, 나를 향해 손을 내뻗고 있는 김재호의 모습이었다.
━정신 차려라!
레이의 목소리가 경고처럼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내 팔뚝에 꽂힌 단검은 두 개뿐. 그리고 내가 김재호에게 선물했던 단검은 여섯 개였다.
내 목덜미를 노리고 날아드는 단검을 보는 순간 나는 곧바로 옆으로 몸을 던졌다.
도대체 왜? 그런 질문은 단검이 날아드는 동안에는 사치였다.
겨우 단검을 피해 낸 나는 곧바로 마력을 끌어 올렸다.
단검이 꽂힌 오른쪽 팔에는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끔찍한 고통이 나를 덮쳤지만, 단검을 빼내기에도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김재호!”
연달아 내게 날아드는 단검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내며 김재호의 이름을 불렀지만,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녀석에게서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대신, 녀석은 내게 검을 꾹 쥔 오른손을 휘둘렀다.
나는 황급히 몸을 뒤로 뺐다.
“하아, 하아.”
후드득, 내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피가 떨어졌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저 애 상태가 이상하다.
레이의 말에 나는 김재호를 살폈다.
레이의 말대로 김재호의 상태는 확실히 이상했다. 동공이 평소의 세 배는 될 만큼 확장되어 있었고, 그 동공 안쪽에서는 보랏빛 불꽃이 수명을 다한 조명처럼 불길하게 깜빡거렸다.
“젠장, 재호야. 정신 좀 차려 봐.”
다시 한번 김재호를 간절하게 불러 보았지만, 대답으로 돌아온 건 단검뿐이다. 내 말 따위는 완전히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한 태도다.
━저 녀석 완전히 정신을 놓았군!
‘그러게 말입니다.’
이 게이트에 정신을 조종할 수 있는 몬스터라도 있는 걸까? 아니면 환영? 무슨 종류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왜 내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는지도 설명이 된다.
나에게는 그 어떤 정신계 스킬도 통하지 않으니까.
그나저나 김재호가 저 상태라면…….
나는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한서현과 차송진의 상태를 살피기도 전에 김재호가 나에게 달려들었다.
“젠장.”
한서현을 확인하는 걸 포기하고 나는 재빨리 왼손으로 허벅지에 꽂혀 있던 단검을 꺼내 들었다. 내 목덜미를 노리고 날아드는 김재호의 단검을 아슬아슬하게 쳐낸 뒤 나는 발끝에 마력을 모아 뒤로 거리를 벌렸다. 김재호는 나에게 따라붙는 대신 손을 들어 올렸다. 김재호가 손을 뻗는 순간 내 팔뚝에 박혀 있던 단검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런.”
김재호의 마력에 의해 내 팔뚝에 박혀 있던 단검이 뽑혀 나갔다.
“끄으윽.”
엄청난 고통에 절로 무릎이 꿇렸다. 단검은 완전히 내 팔을 관통했다. 뼈가 드러날 정도로 상처가 컸다. 순간적으로 정신을 완전히 놓고 눈물을 질질 흘릴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정신을 놓고 있을 순 없다. 김재호의 공격이 바로 이어졌으니까.
목, 명치, 다리를 노리고 날아드는 단검에 나는 황급히 눈앞에 마력을 쏘아 보냈다.
“큿!”
어떤 형태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마력 덩어리였지만, 다행히도 내 급소를 노리고 날아든 단검의 궤도를 틀어 내는 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내게 날아든 건 단검만이 아니었다. 단검을 쳐내자마자 보이는 건 김재호와 그가 쥐고 있는 검이었다. 나는 움직여지지 않는 오른팔을 들어 단검을 막았다.
“하앗.”
이미 너덜너덜해질 대로 너절해진 오른팔을 방패 삼아 나는 김재호를 밀쳐 냈다.
이걸로 내 오른팔은 곧 떨어져 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가 됐다.
전투 시작과 동시에 사지 중 하나를 잃다니, 참 잘된 일이다. 게다가 더 불행한 건?
내가 오른손잡이라는 거지.
그나저나 김재호가 저 상태라는 건…….
‘다른 애들은요?’
━지금 그걸 걱정할 때냐! 눈앞에 있는 적에 집중해라.
‘어디로 갔습니까?’
레이는 내 말에 잠자코 CCTV 역할을 해 주었다.
━없다.
‘없다뇨.’
━모르겠어! 어디론가 가 버렸다고!
‘보고 있었어야죠!’
━네 몸이 구멍이 나고 있는데, 뒤에서 일어나는 일에 눈이 갔겠냐!
이렇게 레이와 말을 나누는 동안에도 나는 쉴 새 없이 김재호가 던지는 단검을 피해 내야 했다.
이러다가 내가 선물한 단검에 온몸이 꿰뚫리게 생겼다.
“김재호! 정신 차려!”
나는 여러 번 김재호를 불렀지만, 김재호는 듣는 기색도 없었다.
저 녀석을 공격하는 건 끔찍이도 싫었지만, 이대로 가다간 내 몸을 정수기 필터로 써도 될 만큼 구멍이 송송 뚫릴 거다.
나는 바닥에 손을 얹어 땅을 움직였다. 김재호의 발 근처에 흙으로 된 손을 만들어 김재호를 붙잡았다. 하지만 등 뒤에 메어 둔 장검을 뽑아 든 김재호는 곧바로 제 발을 붙잡는 흙을 잘라 냈다.
통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이래서야 마력을 낭비한 꼴밖엔 되지 않는다.
흙덩어리를 잘라 낸 뒤, 김재호는 다시 재빨리 장검을 등 뒤에 있는 검집에 집어넣었다.
바닥에 던져두었던 단검을 발등으로 차올린 김재호는 다시 단검을 쥔 채로 나를 노려보았다.
‘차라리 장검을 들었으면 좋겠는데요.’
그렇다면 내 등 뒤를 노리는 단검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됐을 텐데.
━시간을 더 끌면 안 될 것 같다. 저 녀석의 손끝을 봐.
레이의 말에 나는 김재호의 손끝으로 시선을 옮겼다.
“젠장.”
김재호의 손끝은 검게 물들어 있었다. 마치 그림자가 일렁거리듯이. 김재호의 몸을 지배한 것이 무엇이든, 점차 김재호의 몸을 다루는 게 익숙해지고 있었다. 지금은 재능을 쓰지 못하고 있지만, 시간을 더 보내면 그림자까지 이용하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시간을 더 끌어서는 안 된다.
━정신 차려라. 봐주면서 싸울 상대가 아니야.
“큿.”
나는 볼을 향해 날아드는 김재호의 검을 피해 오른쪽으로 몸을 던졌다. 레이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언제까지 피하기만 할 셈이냐! 무엇 때문에 망설이는지는 알겠지만 이대로 가면, 당하는 건 네가 될 거다.
레이의 말대로 김재호는 여태까지 상대했던 놈들과는 달랐다.
여러 번 신체 강화를 거친 김재호의 몸은 인체의 한계를 크게 뛰어넘었다. 순간적인 힘과 유연성은 마수의 것과 비슷한 정도다.
마력을 사용해서 신체를 강화해도, 나는 김재호보다 느리고 약했다.
물론 저렇게 몸을 움직이고 나면 김재호도 무사할 수는 없다.
후폭풍을 생각하지 않고 온몸의 에너지를 끌어다 쓰는 거라 이 전투가 끝난 다음에는 며칠간 꼼짝도 못 하겠지.
나 또한 훈련 때에 김재호를 이렇게까지 몰아세운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성을 잃고 내게 달려드는 김재호에게는 저 뒤에 찾아올 후폭풍에 대한 걱정이 전혀 없었다.
제 몸을 깎아 가면서까지 나 하나를 잡아 죽이려고 달려드는 거다.
김재호의 다리가 내 얼굴로 날아들었다. 왼팔을 들어 방어했지만, 몸이 크게 뒤로 떴다.
“젠장.”
나는 마력을 끌어 올렸다. 내 급소를 노리고 들어오는 단검을 실드로 막았지만, 실드는 오래 버티지 못할 거다. 내 얼굴 코앞에서 부들부들 떨리는 단검을 본 나는 단검을 쥔 왼손을 들어 올렸다.
실드가 깨지는 동시에 내 단검과 김재호의 단검이 맞부딪쳤다.
“큭.”
단검 너머로 번득거리는 김재호의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텅 빈 듯 풀려 있는 동공이 섬뜩했다.
━뒤를 조심해라!
레이의 경고에 나는 재빨리 등 뒤에 마력을 보냈다. 다행히 내 등을 노리고 날아들던 단검은 실드에 막혀 바닥으로 떨어졌다. 문제는 저 바닥으로 떨어진 단검이 언제 다시 나를 노리고 날아들지 모른다는 거지.
‘누가 만들었는지, 굉장히 상대하기에 뭣 같은 단검인데요.’
물리법칙을 무시하고 공중을 돌아다니는 단검이라. 멀리에서 볼 땐 그럴싸했는데, 이걸 직접 상대해야 하는 입장이 되니 죽을 지경이었다.
아무렇게나 날아드는 단검은 나에게도 위협적이었지만, 이걸 다루는 김재호에게도 위협적이었다. 제게 날아드는 단검에 김재호는 뒤로 걸음을 물렸다.
그 뒤로도 여러 번, 김재호와 나는 부딪쳤다. 몸과 몸이, 때로는 단검과 단검이.
김재호와 부딪칠 때마다 내 몸에는 상처가 늘어 갔다. 아무래도 오른쪽 팔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게 컸다.
왼팔로 커버할 수 있는 부위에는 한계가 있었고 짧은 시간을 짜내 만든 실드의 내구도는 형편없었으니, 결국 몸으로 받아 내는 공격이 많아졌다.
뚝, 뚝.
출혈 때문인지, 시야가 자꾸 흐려졌다.
‘초재생이라면서 출혈도 못 막습니까?’
━초재생이 있으니까 이 정도인 거다! 네놈, 팔을 지나는 굵직한 혈관이 죄다 잘렸다고!
흠, 어쩐지. 아까부터 피가 너무 줄줄 흐르더라.
━이대로 가다간 네놈이 먼저 기절하고 말 거다. 지금까지 깨어 있는 것만 해도 기적이라고!
레이의 잔소리는 하나의 결론으로 연결되었다.
그러니까 시간 그만 끌고, 김재호를 끝장내라는 거다.
나는 마력을 짜내 얼음 창을 공중에 만들었다. 김재호의 몸뚱이만 한 얼음 창이 위협적으로 빛났다.
막 김재호에게 얼음 창을 쏘아 보내려는 순간, 저 얼음 창으로 꿰뚫어 버린 라이언 헤드가 생각났다.
“젠장.”
쿵, 쿵. 내가 만든 얼음 창은 김재호가 아닌, 그 근처 땅에 박혔다.
━저 녀석을 노리라니까!
“저걸 맞으면, 아무리 재호라고 해도 죽습니다!”
━봐주면 네가 죽어! 여기서 죽을 생각이냐?
방심한 사이 얻어맞은 볼에, 입술이 터졌다.
“퉤.”
피가 섞인 침을 내뱉은 내게 레이가 말했다.
━제발, 정신 좀 차려라! 네가 죽는 꼴은 보기 싫다고!
간절하게까지 느껴지는 말이다.
‘하, 절절하네요.’
━농담하는 게 아니라고! 너, 너는 내 주인이잖냐! 네가 죽으면 나도 죽고! 그런 건 싫다고.
‘알겠어요, 아저씨. 죽지 않을 테니까, 조용히 좀 하시죠. 그쪽 때문에 머리가 다 울립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대로 시간을 끌다가 김재호에게 죽어 줄 수는 없다.
“하아.”
나는 손끝에 번개를 모았다. 출력 20퍼센트 정도면 되려나. 내게 달려드는 김재호에게 나는 그대로 번개를 날렸다.
순간 눈앞이 번쩍거렸다. 번개를 정통으로 맞은 김재호의 몸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났다. 연기가 사라지고 나타난 김재호의 얼굴은 열기에 붉게 익어 있었다. 중간중간 물집이 잡힐 만큼 심하게 화상을 입은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그뿐.
김재호는 여전히 두 발로 똑바로 서 있었고, 기절하기는커녕 열이 잔뜩 받은 듯 흉흉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우리 재호가, 많이 튼튼하구나.”
내 말에 곧바로 단검이 날아들었다. 나는 나를 죽일 듯이 날아드는 단검을 피해 공중을 날았다.
20퍼센트 정도로는 턱도 없다 이거냐. 그렇다고 더 큰 출력을 쏴 댔다간…….
‘화상으로 몸이 짓무를 겁니다.’
그거 엄청 아프다. 내가 당해 봐서 안다. 초재생이라는 방법으로 몸을 되살렸던 나와 달리, 김재호는 그 부상에서 회복할 수 없을 거다.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잖습니까. 머리털이 다 빠진다든가.’
━태연하게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아무래도 번개는 안 되겠습니다.”
━빌어먹을, 네놈은 정말……. -.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다.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다. 내 몸엔 수없이 많은 마나 회로가 깔려 있지 않은가.
어떻게든 김재호가 다치지 않게, 김재호를 기절시킬 수 있는 방법.
━그런 방법이 있겠냐!
‘생각해 봐야죠.’
제17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