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tem RAW novel - Chapter 125
00125 #6 – 일하면 지는 거다 =========================================================================
#6 – 일하면 지는 거다(12)
셀레나와 발드 마이저는 단단히 으름장을 놓았다.
“정식주인으로서 말해두건대, 켄이치나 후요라면 몰라도 다른 여자와 관계를 갖는 건 허락할 수 없네!”
“관계 이전에 손대는 것도 용납할 수 없어! 모처럼 컨셉을 알아주는 동지를… 어라? 나도 관계 못 맺는 거야?”
“당연하지 않은가!”
왠지 모르게 불똥이 엉뚱한 방향으로 튀었다.
“지팡이는 본녀의 것이네! 힘든 시기를 함께 넘긴 전우가 아니라면 절대로 허락할 수 없어!”
거기에 후요가 끼어있는 건 어째서냐.
전우도 아니고 애잖아.
누굴 멋대로 소아성애자로 만드는 건데.
“너무해! 일주일 남짓 지팡이 지키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우선순위를 따지고 보면 그대가 지팡이를 들고 외출해서 사건이 터지지 않았는가!”
“지팡이! 저런 억지를 들어줄 거야?”
“그대여! 본녀의 심기를 거스르려는 건 아니겠지?”
““대답해!!””
……도망가고 싶다.
‘괜찮지 않아? 발드 마이저도 제대로 우리를 위해 협력해주고 있고. 우리에게 해가 되는 일은 안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 여자는 마왕군 중간간부..라는 컨셉을 지닌 중2병이지 않은가!”
이 와중에 컨셉까지 신경써주는 거냐.
딴에는 사려 깊은 발언이겠다만 듣는 입장에서는 안쓰러울 지경이다.
게다가 수상하다는 점에서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어.
‘셀레나가 저렇게까지 싫어한다면 어쩔 수 없지.’
“그런! 너무해!”
‘걱정 마. 나중에 기회를 봐서 적당히 설득할 테니까.’
개별전음을 받은 발드 마이저는 못마땅한 투로 입을 다물었다.
불만이 있어도 어쩔 수 없겠지.
일단은 다이스 게임에서의 정식주인은 셀레나이니까.
나중에 알파고가 들어오면…
어.
그땐 어쩌지.
그건 진짜 답이 없는데.
-알파고 : 흐음.
심지어 감시당하고 있었다!
-알파고 : 나중에 따로. 진지한 대화를 나눕시다.
-쓰레기 : 몸의 대화냐!?
-위원장 : 현실 본처 vs 가상 본처 캣파이트!
두렵다.
두려워서 살 수가 없다!
“모쪼록 지팡이에게 몸으로 봉사하는 건 불가능하니라.”
“그래도 저분, 바위도 달려있고 무겁잖아요? 전용 짐꾼 한 명 정도는 구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의견 자체는 동감이네. 그런데 그대의 근력으로 제대로 지팡이를 들 수는 있는가?”
마녀는 대체로 힘이 약하니까 불가능할거란 말이지.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도 번쩍 들렸다.
뭐야.
너 뭔데.
지능캐가 힘 왜 이렇게 쌘 건데.
“실은.. 제가 악신을 잘못 골라서 이상한 권능을 익혀서요.”
‘대체 무슨 악신을 모시는데?’
“학살과 파괴의 신이요..”
‘대체 어디가 마녀인 거냐!? 완전 여전사잖아! 마법이랑 하나도 관계없는데!?’
“제, 제대로 마법도 쓰거든요! 공격속도를 높여주는 [순간가속]이라거나! 피를 뒤집어쓰면 공격력이 상승하는 [피의 고양]이라거나!”
아무리 생각해도 마녀가 아닌데…?
“그만하면 유사시에는 지팡이를 지킬 정도는 되겠구나. 급할 때는 지팡이를 둔기처럼 휘둘려서 공격할 수도 있겠어.”
“음음. 피를 뒤집어쓴다는 점도 마음에 들어. 맛있는 간식 같은 느낌?”
뭔가 호감을 보이는 방향이 잘못되지 않았어?
영문은 모르겠지만 두 사람도 좋다는 모양이고.
나도 매번 바쁜 애들을 추려가며 돌아다니기도 번거로운지라, 마녀 레이첼의 합류는 만족스럽다.
그렇게 세 번째 마녀의 종속계약까지 마치고는…
‘자. 이제 네 차례다.’
“엑? 저도요!?”
‘너도 마녀잖아.’
역병의 마녀, 루시의 차례가 되었다.
“저, 질병으로 몬스터를 쓸어버릴게요!”
‘안 돼. 아니, 불가능해.’
“왜요!?”
‘북방의 몬스터는 공국의 주된 자원이라고. 고기는 식량으로, 가죽은 방어구와 의복으로, 뼈나 발톱은 무기로, 그 외 각종 부산물은 장신구나 여러 물품의 재료로 쓰인다고. 전염병으로 죽어버린 몬스터는 제품으로 써먹질 못하잖아.’
“힝..”
우는 소리를 내던 루시가 이내 방실방실 웃어보였다.
“그럼 이건 어때요? 공국의 적. 카이브스탄 제국의 병사들을 역병으로 해치울게요!”
‘응. 그것도 안 돼. 돼도 하지 마.’
“어째서죠!?”
‘저주는 은밀하게 지휘관 암살용으로라도 써먹을 수 있지. 역병은 대량학살에 특화됐잖아. 병 걸린 애들을 그대로 이쪽으로 보내면 여기도 옮아버리고. 선신교단에서 카이브스탄 제국과 연계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어.’
“히잉…”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참 괜찮은 능력이기는 한데.
역병의 마녀는 지금 상황에는 적합하지 않다.
오히려 뭐만 하면 민폐밖에 안 된다고.
차라리 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이 정도로 쓸모가 없다니 곤란하구나.”
“용서해주세요.. 노예가 되기는 싫어요…”
“그럼 죽어야겠지.”
냉담한 셀레나의 말에 발드 마이저가 화색을 띠었다.
단숨에 목덜미에 이부터 박고 빨아먹으려나본데.
안타깝게도 얘만은 흡혈도 해서는 안 된다.
‘먹지 마. 지지야, 지지.’
“설마… 못 먹는 거야?”
‘역병이잖아. 걔 먹으면 몸에 담긴 역병이 너한테 고스란히 전부 옮아져. 즉사를 면해도 전 능력치 90% 저하는 가볍게 걸릴 걸? 자칫 유전인자에 새겨진 문둥병이라도 걸리면…’
“아, 안 먹어! 더러워!”
“흐끅.. 루시는 더럽지 않아요..!”
접촉만으로 감염이 될까봐 멀찍이 거리도 벌리네.
근데 어디까지 가는 거냐.
향상된 동체시력으로도 안 보일 정도면 5km 넘었잖아.
애초에 망토 안에 넣기까지 한 놈이 뭔 짓인지.
신체접촉으로 감염됐으면 진즉에 걸리고도 남았다.
“그럼 발드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곱게 죽여야겠구나.”
‘아. 그것도 안 돼.’
“설마…?”
‘죽으면 주변에 역병이 퍼져. 이거 정화하는 것도 일이지. 불의 교단 소속 바크 노덤 정도가 아니면 얘 시체 정화하는 것도 한없이 어려워.’
“하아. 생각하면 할수록 괜한 소동에 휘말렸구나, 그대도.”
전적으로 동감이다.
당장은 적대관계가 돼서 어쩔 수 없이 죽였다지만.
막상 죽이고 나니 루시의 처분이 어렵다.
‘그나마 쓸모가 있다면 노예인데…’
“성노예만은 봐주세요! 정말 싫어요, 엉엉!”
‘…좆이 썩어문드러지는 병을 감수하면서까지 덤벼드는 바보가 있을 것 같냐. 넌 시키고 싶어도 성노예 못 시켜.’
삽입 없이도 성노예로 굴릴 수는 있기야 하겠지.
그래도 역시 내키지는 않는다.
말은 험악하게 했어도 셀레나의 얘기를 들은 직후이고.
이왕이면 서로가 만족할만한 형태로 포섭하는 게 좋겠지.
‘역병의 저주 말고 다른 능력은 없는가?’
“있어요!”
‘뭐든 좋아. 말해봐.’
“빨래! 청소! 설거지! 요리!”
‘…무리. 절대로 무리다.’
역병의 마녀한테 그런 걸 시키다니, 제정신으로 할 짓이 아니잖아.
까딱 잘못했다만 궁궐 사람들이 떼죽음 당한다고.
대체 이 녀석한테 그런 짓을 시켜왔던 놈들은 얼마나 강심장인거냐.
‘그 외에는?’
“수영 잘해요!”
글러먹었군.
널 수영시키는 건 이 행성에 대한 모독이다.
수질오염으로 물고기들이 몰살당한다.
‘진짜 뭐 시켜먹을 수가 없네.’
“곤란하구나. 죽일 수도, 일을 시킬 수도 없다니.”
‘이거 완전 핵폭탄을 가진 기분이야…….’
오죽 난감한 상황인지 갤러리들도 답을 내지 못했다.
-졸라 : 생매장하면 역병 걱정 없잖아.
-퐁삽 : 토질오염 어쩌려고
-알파고 : 데스필드(Death Field) 생성됨.
-쓰레기 : 이거 완전 인간쓰레기네 ㅉㅉ
-폐급페도 : 발언자의 상태가…?
일침을 찌르는 닉네임의 상태가…?
한참 고민하던 도중.
문득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뭘 해도 역병이 걸린다면.
그냥 얜 아무 일도 안하게 하면 되는 거 아닐까.
‘…어라?’
가만 보면 일 안 시켜서 딱히 손해 보는 점도 없다.
뭔가를 시키면 100% 민폐가 되지만.
아무것도 안 시키면 애초에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다.
‘얘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낫겠는데?’
“으음… 놀랍게도 그게 가장 쓸모가 있구나.”
‘그렇지? 발드. 넌 어떻게 생각해?’
5km 밖에서 가느다란 점으로 보이는 형체가 움직였다.
뭐라는지 모르겠는데.
귀찮으니까 대충 동의한다고 생각하지 뭐.
“좋다. 마녀 루시여. 그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 아니,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마라!”
“네…?”
“그대는 존재 자체가 민폐이니만큼 어떤 일도 시킬 수가 없노라. 대신 일생을 평온하고 안락하게 살 수 있도록 주거지를 수배하고 식량과 식수, 의복을 보급해주겠노라.”
“그거 확보 격리 보호가 아닌가요…?”
“아니다. 좀 더 자신에게 자신감을 가져도 좋다.”
셀레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뒷걸음질 치며 격려해주었다.
“이는 세계평화를 위한 환경보호이니라.”
자세도 발언도 전부 상처를 주려고 작정한 것 같은데.
사려 깊음의 대명사는 어디 갔냐.
루시 울먹이면서 눈의 초점을 어디다 둘지 몰라 하고 있잖아.
마녀들도 괜히 엮일까봐 흠칫하며 고개 돌리고 있다고.
어지간하면 그러려니 할 내가 불쌍함을 느끼고 있어!
‘근데 쟤가 격리지역에서 나오면 어쩌려고?’
“감시원을 보내두어야겠구나.”
‘역병 걸릴까봐 남들 없는 곳에 격리시키는 거잖아. 누가 감시를 하겠어?’
“그거야 역병에 걸려도 죽지 않는 감시원을 보내야겠지.”
‘누가 있는데?’
셀레나는 환히 웃으며 지팡이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대.”
…네?
어째서 날 보면서 손을 흔들고 있는 거죠?
어째서 갑자기 주변에 대지마법으로 집을 빙자한 감옥 같은 걸 짓고 있는 거죠?
어째서 루시랑 교신용 수정구 하나랑 식량과 식수, 옷가지만 남겨두고 다 떠나버리는 거죠?
“흐으윽… 싫어… 혼자는 이제 싫어…”
우와, 방구석에서 완전 불쌍하게 흐느껴 울고 있어.
아니,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나까지 여기에 가둬버리면 어쩌자는 건데!?
팟.
교신용 수정구가 켜지며 셀레나의 모습이 비추었다.
“걱정 말거라. 정식으로 거주할 주거지를 건축하기 전까지만 그곳에 머무르면 되니까. 식량과 식수, 의복을 자동화 생산할 수 있는 마법진을 켄이치에게 의뢰해두었으니 곧 루시를 봉인진에 올려놓고 외부와의 접촉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완전밀폐공간을 완성할 것이니라.”
왠지 얘 성격 달라지지 않았어!?
어딘가의 재단이 떠오르는 엄중한 특수 결리 절차잖아.
역병의 마녀니까 납득이야 할 수 있지만.
-묵제 : 캬 루시 가여운 것 봐라
-다스 : 선 성향 어디 가셨어요? 가출하셨나요?
-형 : 와 형 너무하시네요. 어떻게 저런 연약한 여자를 봉인할 수가 있죠.
다른 건 몰라도 루시가 연약하다는 건 인정할 수 없다.
바위 딸린 지팡이를 번쩍 드는 여자의 어디가 연약하다는 거냐!
“저.. 평생 동안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살다 죽겠죠?”
‘아니. 그래도 친구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아무도 없잖아요.”
‘왜, 그런 말 몰라? 친구는 공기친구가 있어요.’
“…흐끄으윽.”
아, 울려버렸다.
‘너무 그렇게 울지 마. 뭣하면 배구공이라도 넣어줄게.’
“흐끅.. 배구공…이요?”
‘맞다. 다이스 게임에서는 배구공이 없었지. 우선 배구를 설명해주지. 두 팀이 각각 여섯 명씩 네트를 중심으로 볼을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고 쳐서 적팀 코트에 떨어뜨리는 경기야.’
“저는.. 훌쩍.. 혼자잖아요..”
‘응. 배구랑은 상관없지. 배구공에 이름 붙이고 같이 놀라고 넣어주는 거니까.’
루시는 목이 매여서 말문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러더니 나라 잃은 피난민마냥 서럽게 울음을 터트렸다.
역시 농담으로 기분을 풀어주는 건 무리였나 보다.
하긴 이것도 못할 짓이지.
세무사한테도 탈세개그 치면 보통은 화내니까.
물론 실제로 게임 내에서 저 짓 했다가 잘못된 개그를 쳤다는 이유로 살해당한 적도 있다.
“흐아앙! 아아앙! 으아앙!”
‘어… 루시야?’
“으아아앙! 흐아아앙!”
이름을 부르자 울음소리가 한층 더 커졌다.
왠지 모르게 에로한 울음소리처럼 들리는데.
이것도 개그랍시고 쳤다간 정말로 살해당할 것 같은 직감에 필사적으로 참았다.
못된 소리만 골라서 하니 더는 듣고 싶지 않다는 건가.
그래도 이대로 대화를 멈추기는 찝찝하단 말이지.
‘마지막으로 갖고 싶은 게 있으면 하나 사줄까 하는데. 필요한 건 없어?’
“보내주세요!”
‘엘릭서 같은 것만 아니면 정말로 뭐든지 살 수 있는데.’
“내보내주세요!”
‘종류불문 전설급 이하 아이템은 뭐든지 가능하다?’
“으아아아앙!”
틀렸어.
루시와는 조금도 대화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대로는 템 하나 떠안겨주고 훌훌하게 그래도 난 착한 녀석이야, 라고 안심할 수 없게 되어버리잖아!
============================ 작품 후기 ============================
차회 예고>
125화만에 드러나는 주인공의 본색!
선 성향의 탈을 쓴 가증스러운 악당 주인공은 과연 다이스 게임에서의 SCP재단과 SCP-001을 탄생시키는가!
세 줄 만에 멘트가 떨어져버린 작가는 다음 화에도 차회 예고란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네 줄 만에 격하게 귀찮아진 차회 예고는 여기까지!
오늘도 선추코 및 쿠폰, 많은 성원과 애정에 감사드리며
후기는 이만 줄이고자 합니다.
즐거운 하루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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