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tem RAW novel - Chapter 308
00308 #13 – 빅 웨이브(Big Wave) =========================================================================
#13 – 빅 웨이브(Big Wave)(19)
해저의 대협곡 [옛 신의 상흔]과 연계적으로 자리한 던전 [혹한의 옥좌].
두 개의 관문을 무사히 통과한 우리들은 마침내 진정한 적인 머맨들과 구 마왕군 잔당을 상대할 수 있게 되었다.
실로 험난한 여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희생자는 기적적으로 단 한 명에 불과했으니.
물론.
그 희생자는 못지나간다였다.
“…난 추남이다. 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
우와…
이 녀석, 진짜 제대로 고장나버렸네.
이 정도면 거의 트라우마(Trauma, 정신적 외상)급이 아닌지 걱정될 지경이다.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내가 남자를 걱정하는 일은 흔치 않지만, 특별히 넌 걱정해주고 있으니까!’
“죽어줘. 아니, 죽여줘…”
‘…….’
이 녀석을 놀리는 건 최대한 자제해야겠다.
“그래서. 머맨들의 소굴은 어디에 있는가?”
“거기까지는 알지 못한다네. 여의 기억대로라면 분명 던전의 탈출구인 이곳 어딘가에 있겠지.”
“그럼 머메이드들을 풀어서 수색에 나설 수밖에 없겠군.”
머메이드들이 수색에 나서는 사이, 우리는 짧게나마 휴식의 시간을 지닐 수 있었다.
험난한 여정이었다고는 해도 딱히 큰 전투는 없었고.
사실상 못지나간다의 멘탈 힐링(Mental Healing, 정신치료)을 위해서 할애한 시간이었다.
“어이. 괜찮냐?”
과묵한 란도멜마저도 그의 상태가 신경 쓰였는지 조심스레 곁에 다가가 물었다.
축 늘어져있는 모습이 꼭 익사한 시체 같네.
못지나간다는 몸을 움직일 기력조차도 없는지 힘겹게 눈을 깜빡거리며 중얼거렸다.
“너가 보기에도… 내가 못생겨 보이냐?”
“어.”
“…….”
란도멜은 확인사살을 가했다!
위력은 대단했다.
돌연 못지나간다의 몸이 경련을 일으키더니 완전히 움직임을 멈춰버린 것이다.
NPC들이 보기에는 그저 기절한 것처럼 보였겠지만…
게이머이자 그를 가신으로 두고 있는 내게만은 진실이 보였다.
『게이머 못지나간다님이 극도의 정신오염으로 인해 강제로 접속이 종료되었습니다.』
마르지 않는 정신력을 지닌 트롤계의 최강자, 못지나간다가 멘탈 붕괴로 접속이 끊겨버린 것이다!
-도화원 : 와ㅋㅋㅋㅋㅋ 나 쟤 접속 끊기는 거 처음 봐
-이지 : 딜은 막타가 제격이─지!
-라인하르트 : 하! 넌 여기까지다!
-쓰레기 : ㅋㅋㅋㅋㅋ
-낭자아이 : 더블 막타 미쵸ㅋㅋㅋㅋㅋ
평소에 악행을 있는 대로 저지르더니, 동정하는 갤러리가 단 한 명조차도 없군.
가엾은 녀석.
너무 불쌍하니까 병간호는 인어족 공주에게 맡겨야겠다.
과연 못지나간다는 눈을 뜨면 보이는 공주를 보면서 무슨 심정을 느낄까.
불쌍한 것과는 별개로 기대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애초에 내 플레이에 훼방 놓으려고 온 녀석이었고.’
선인에게는 선하게.
악인에게는 악하게.
어디까지나 나 스스로가 정한 규칙을 위배하지 않는 선에서 그를 괴롭히는 것이다.
남의 눈에서 눈물 흘리게 하려고 했으면 제 눈에서는 피눈물이 흐를 각오는 했어야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피눈물 흘릴 때까지만 괴롭혀야겠다.
‘아무래도 이 녀석, 당분간은 일어나지 못할 것 같다. 이제까지의 활약만으로도 이놈은 능히 10만인분은 했지. 그만 편히 쉬도록 해줘라.’
파티원들은 물론이거니와 머메이드들조차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동의를 표했다.
이 녀석이 없었다면 정말로 죽을지도 모를 위기였었지.
괜히 무리시켜서 죽게 하느니 얌전히 후방에 보급대와 함께 남겨두는 게 낫다.
솔직히 게임 접속 종료하고 갈궈서 다시 끌고 오고 싶은 마음도 없잖아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했다간 정말로 정신병에 걸려서 애가 미쳐버릴 것 같다.
돌아가는 길에서도 써먹어야 하니까 병간호를 공주에게 맡겨두는 정도로 참아야겠다.
“그러면 더 이상 정비시간을 지닐 필요는 없겠구나.”
셀레나의 말 대로 못지나간다 외에는 딱히 지친 사람도 없으니, 정비시간을 지닐 필요는 없었다.
마력 충전은 하루 이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셀레나의 마나셔틀이 되어준 다섯 실력자들은 반절의 마력만 지닌 채로 전장에 투입되어도 충분했다.
“머맨들의 소굴을 포착했네. 여의 정찰대의 보고에 따르면 초거대 거북이의 등껍질 사이에서 머무르고 있더군.”
“…하필이면 그런 애매한 곳에서 머무를 이유는 또 뭔가.”
“해저에서는 난방이 안 되니까. 특히나 심해에서는 추위의 정도가 더하다네. 수압으로부터 몸을 지키는데 적잖은 마나가 소모되니, 다른 거대생물에게 기생하는 편이 체온을 유지하는 데에 추가적으로 소모되는 마나를 아낄 수 있어 좋지 않겠는가.”
용왕의 말은 딱히 흠잡을 구석도 없었다.
‘그러면… 슬슬 작전을 시작하자고.’
준비는 만전.
사기는 최상.
다들 못지나간다의 분투에 힘입어 기필코 1인분은 해내겠다며 의기탱천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머메이드 본대(위험도 ★★★★☆)
총병력 7000/7000
사기 120/100
머메이드 별동대A(위험도 ★★★☆)
총병력 800/800
사기 120/100
머메이드 별동대B(위험도 ★★★)
총병력 800/800
사기 120/100
머메이드 별동대C(위험도 ★★★)
총병력 800/800
사기 120/100
머메이드 보급대(위험도 ★★)
총병력 601/601
사기 120/100
이보다 적절한 인원분배도, 사기진작도 해낼 수는 없다.
머맨들은 한겨울 추위를 피해 전기장판 위에 모인 아이들 마냥 초거대 거북이 등껍질에 모조리 숨어있는 상황.
혹시나 싶어서 [전쟁관리]상태창과 관찰스킬의 연동으로 살펴본 적의 수준도 그리 우려될 정도는 아니었다.
머맨 군단(위험도 ★★★★★)
총병력 37535/?????
사기 45/100
수가 많다고 해도 사기가 저렇게나 낮아서야 온갖 디버프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머메이드와 머맨의 전투력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목표를 이루기까지 시간은 충분하다.
어차피 머메이드들의 목표는 머맨들을 해치우는 것이 아닌 해저도시로 다시금 끌어들이는 것.
쌓이고 쌓인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과제는 남아있지만, 그간 여정을 함께 해온 용왕이라면 충분히 교섭에 성공하리라고 확신하고 있다.
까놓고 말해서 남 걱정할 때도 아니지.
본격적으로 머맨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사이, 구 마왕군 잔당이 숨어있는 곳을 특정지어서 단숨에 드래곤의 새끼가 자라나고 있을 알을 탈환해야만 한다.
“여의 군세여! 어리석은 머맨들에게 여왕의 군세의 매서움을 보여주어라!!”
“와아아아아!!”
세계의 멸망을 막기 위한 교두보.
혹은 트루엔딩을 맞이하기 위한 여정.
그 두 번째 단추를 꿰맬 심해전이 시작되었다.
“뭐, 뭐야!! 저 여편네들이 왜 여기에 있어!?”
“보초는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자고 있는 놈들 다 깨워!!”
머맨들은 부리나케 창을 움켜쥐며 진열을 갖추었지만, 사기가 최고조에 이르는 용왕의 군세는 거침없이 머맨들의 선진을 박살내었다.
마치 거센 파도에 모래성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광경.
초전은 머메이드들의 압도적인 우세로 시작되었다.
“지팡이여. 적의 수상한 움직임은 포착되었는가?”
‘아직 멀었어. 전쟁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라고.’
기세에서 밀린 머맨들이 왕창 밀려나고는 있지만, 거의 네 배에 달하는 병력 차이는 어쩔 수가 없다.
머메이드와 머맨의 전투력 차이는 10배.
저조한 사기로 인한 전투력 하락 및 머메이드들의 높은 사기로 인한 전투력 상승을 모두 고려해도 2배의 차이가 성립한다.
당장에 포착된 머맨들만 몇이나 되던가.
37535명에 달하는 수를 두 배로 곱하면 75070명.
고작 7000에 달하는 머메이드 본대와는 무려 10배 차이가 나는 전투력이다.
‘그렇기에 이 초전에서 최대한의 전과를 이뤄야만 한다.’
적이 자신들의 압도적인 우세를 깨닫지 못하도록.
한 순간의 여유조차 주지 않고.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몰아붙여야만 한다.
“좆도 없는 사내새끼들답게 한 주먹 거리도 안 되는구나!”
저 정도의 호쾌하다 못해 터프하기까지 한 면모만 계속 이어나간다면 다행이겠지만…
“마누라 뺨 때릴 때는 그렇게나 호전적이더니, 외지생활 하니까 밥심도 떨어졌냐!?”
“이런 미친놈을 봤나! 마누라랑 결별했다고 남자랑 붙어먹고 있어!?”
“죽어, 이 웬수같은 놈아! 자식새끼 보기도 부끄럽지 않냐!”
…머메이드와 머맨 간의 갈등을 고려하면 이런 엽기적인 휴먼드라마가 펼쳐져도 이상할 게 없다.
속수무책으로 밀려나기도 잠시.
잘못된 가장의 전형적인 예시를 보여주는 머맨들이 어깨와 목에 핏대를 세우며 거세게 저항에 나서기 시작했다.
“내 좆 떨어지는데 보태준 거 있냐!”
“밤일도 못한다고 구박하던 건 네년이잖아!”
“밥심은 없지만 빡심은 있다 이년아!”
“난 원래 여자가 없는 게이였다고! 게이가 뭐가 나빠!!”
“너야말로 아버지 성묘에 따라 나오지도 않았잖아! 부모님 뵙기 부끄럽지도 않냐!!”
창질 한 번에 고함 한 번.
분노로 고양된 의지는 바닥을 기던 사기마저 드높였다.
한 번 전선이 고착화되기 시작하자 가세하는 머맨들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급기야 팽팽한 접전이 이뤄지며 초전의 기세가 한풀 꺾여버리고 말았다.
나는 전장을 바라보며 냉철하게 패배요인을 분석했다.
‘게이의 커밍아웃 발언이 제일 치명타였던 것 같군.’
“이런 긴박한 사태에 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가!”
셀레나는 엄히 불호령을 내지르며 나를 꾸짖었다.
“하이라이트는 밤심은 없지만 빡심은 있는 이율배반적인 남성의 폭력성에 있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역시나 그 주인에 그 도구라고,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분석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묵제 : 전쟁에 집중해 멍충이들아ㅋㅋㅋㅋㅋ
-살인전차 : 빡심은 뭐냐
-쓰레기 : 빡친 마음. 이 새끼 22세기 사람 맞냐?
-살인전차 : 로켓포 좋아하냐? 느그 집에 한 발 쏴준다
-쓰레기 : 22세기 사람 맞네…
집중력이 파탄 나는 건 너희들도 마찬가지잖아…!
“한심한 녀석들…”
불쾌한 오물을 쳐다보는 눈으로 란도멜이 우리를 흘겨보았다. 팔짱을 낀 채 거리를 두는 행동만으로도 얼마나 바보 취급을 하는지 알 것 같다.
그래, 인정한다.
나는 바보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지.
하지만 나를 바보라고 무시하는 건 참을 수 없다!
‘란도멜! 네 젠더감수성에 입거하면 가장 치명적인 패배요인은 뭐로 보이냐!’
“네놈이 목적을 상실하고 머메이드들을 헛되이 사지로 몰아넣어 전멸시키게 만들 행동이다.”
‘…이건 딜이 너무 아프잖아 나쁜 새끼야.’
팽팽하게 유지되던 접전은 등껍질 안쪽에 거주하던 머맨들이 가세함에 따라 급격히 추가 기울기 시작했다.
“여의 군세를 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커다란 오산임을 증명해주마! 여기 머메이드 일족의 최고지배자, 용왕이 있노라!!”
머맨의 대군을 앞두고도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용왕.
그녀의 기백에 압도당한 머맨들은 십여 걸음이나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는 잇달아 투창을 던지기 시작했다.
“저 년이 찢어죽일 년이다!”
“망할 년들의 우두머리를 조져라!”
“마왕한테 붙어먹기나 하던 천한 년!”
용왕이 일기당천 만부부당의 무력을 지닌 것도 아니었으니, 강맹한 기세로 날아드는 투창을 사색이 되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쯧. 상황이 꼬였구나.”
셀레나는 전장을 향해 한 손으로 빠르게 수인을 맺었다.
키이이이잉!
두터운 역장 방패가 생성되자 투창들은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잇달아 허공에 틀어박혔다.
이쯤 하면 정신 좀 차리겠지.
용왕의 기세도 다소 누그러지리라 생각한 것은, 실로 안타깝게도 지나친 오산이었다.
“보아라! 성기가 없는 남성은 결코 여를 해할 수 없다! 이것이 여의 저력이니라!”
전장에 널리 울리는 외침을 들으며 셀레나는 기가 막혀했다.
“본녀의 공적을 가로채다니, 참으로 뻔뻔한 여자로구나.”
‘일족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이용한다. 왕의 자질에는 역시 걸맞지 않지만, 가정을 지닌 여자의 사투로서는 충분하지 않겠어?’
“…알고 있다. 본녀라고 어찌 모르겠는가. 그저 방금 전의 마법시전으로 이쪽의 위치를 눈치 챈 자들이 더러 보여서 하는 말이다.”
과연 우리를 발견하자마자 흠칫 놀라는 머맨들이 보인다.
그런데 뭐지.
어째 달려들 생각은 안하고 어디론가 달려가기에 바쁘다.
‘전장에서 널 보고 도망칠 이유가 뭐가 있을까.’
“그야 본녀가 마왕임을 눈치 챈 것이겠지.”
‘그럼 쟤들이 어디로 도망치지?’
“그야 뻔하지 않은가.”
셀레나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맺혔다.
“구 마왕군의 잔당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가겠지.”
그러나 그녀의 눈은 결코 웃고 있지 않았다.
침전된 살기만이 위협적으로 번뜩일 뿐.
그녀 역시 마침내 깨달은 것이다.
우리들의 진정한 적.
반드시 해치워야 마땅한.
이 모든 사태를 초래한 원흉의 위치가 확정되었음을 말이다.
============================ 작품 후기 ============================
7연참입니다.(5/7)
다이스갓에게 영혼을 팔아 연참을 쏟아낸 작가에게 추천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