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132
131화. 통수 (2)
슐레만이 속한 3소대가 임무를 마치고 교대를 위해 주둔지로 돌아왔다.
그들을 반겨 준 건 주둔지 내에 감도는 이상한 기류였다.
‘뭐지?’
임무 교대를 나서기 전과는 확연하게 다른 분위기.
어딘가 부산스럽고, 또 어딘가는 묘하게 날 선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3소대가 막 주둔지로 들어선 찰나.
“됐고, 우린 이 동맹에서 빠지겠어!”
어디선가 들려온 잔뜩 성난 목소리에 슐레만의 발걸음이 우뚝 멈추어 섰다.
‘이게 무슨 소리야?’
당황한 표정을 지은 슐레만이 목소리가 난 방향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 뒤로 3소대의 다른 분대장들이 차례로 따랐고, 곧 대치 중인 몇몇 인물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슐레만이 그들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지?”
갑자기 다가온 일단의 무리.
그리고 말을 건 목소리의 주인이 슐레만이란 것을 안 다수가 흠칫 어깨를 흠칫 떨었다.
무언가 눈치를 보는 듯한 모양새였다.
그러다가 한 분대원이 성난 얼굴로 소리쳤다.
“이게 다 너 때문이지 않냐!”
“뭐?”
슐레만으로서는 어이가 없는 소리였다.
배정된 임무를 끝마치고 왔더니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하지만 그가 더 어이없을 소리는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네가 유리 홀랜드와 내통하고 있는 이상, 우린 이 동맹에서 나가겠다.”
“……?”
슐레만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올랐다.
‘뭔 통? 내통?’
굳어 버린 슐레만을 보고 몇몇은 결국 경솔한 놈이 기어코 일을 저질렀다는 얼굴을 해 보였다.
‘멍청한! 그걸 슐레만에게 말하다니!’
하지만 반대로 몇몇은 오히려 속이 시원하다는 얼굴을 했다.
유리 홀랜드와 내통하는 자가 있다는 정보.
그리고 그 유력한 후보로 슐레만이 거론되고 있다는 것까지.
이는 원래 분대장들 사이에서만 오가던 이야기였다.
하지만 분대장 중 몇몇은 혼란을 막기 위해 이 사실을 자신들끼리만 알아야 한다고 말했고.
어떤 이들은 그것을 분대원들에게도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약 지금 만들어진 스쿼드가 완벽한 상명하복에 따르는 진짜 부대 개념의 스쿼드였다면 굳이 이 사실을 분대원들에게 알릴 필요는 없었을 터.
하지만 현재 50기들로 구성된 스쿼드는 그 개념이 달랐다.
분대장들이라고 해 봤자 그들이 진짜 상급자는 아니다.
그저 분대원들을 대표하는 처지일 뿐.
하여 몇몇 분대장이 그 이야기를 분대원들에게 알렸고, 그것이 삽시간에 모든 이들에게 펴져 나갔다.
그로 인해 여기저기서 이 문제에 관해 열띤 논쟁이 오갔으며 지금에 와서는 전체 분대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해진 거였다.
이미 신뢰가 깨진 마당에 이 동맹을 유지하는 의미가 있냐느니.
슐레만이 아닌 다른 내통자가 더 있을지도 모른다느니.
그리고 정확하지 않은 정보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까지.
삽시간에 많은 논쟁이 일어났고, 분대원들의 의견이 불신 쪽으로 기운 스쿼드는 아예 동맹을 파기하고 이탈하겠다는 말까지 나온 상태였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상황에 슐레만과 3소대가 돌아온 것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수십 쌍의 시선에 어찌 된 상황인지 모르는 슐레만은 굳은 얼굴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그 물음에 상황을 지켜보자는 쪽으로 의견을 내놓던 이들이 설명해 주었다.
2소대의 길버트가 임무에 나갔다가 들어 온 이야기를 말이다.
상황을 전해 들은 3소대 소속 분대장들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해 갔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빠른 표정 변화를 보여 주는 건 역시나 슐레만이었다.
“그러니까 그 새끼… 아니, 유리 홀랜드와 내통하고 있을지도 모를 사람으로 내가 지목됐다.”
“…꼭 너만 지목됐다기보다는 네가 내통자라는 쪽으로 많은 의견이 나왔다는 거지.”
“하?”
슐레만의 입에서 어이없다는 듯 맥 빠지는 듯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단호히 답했다.
“난 아니다.”
이에 곧장 반박이 튀어나왔다.
“네가 내통하지 않았다는 증명이 필요하다.”
“무슨 증명!”
슐레만으로서는 어이없고 답답할 뿐이었다.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을 자신이 어찌 해명해야 하냔 말이다.
치미는 답답함에 그가 소리쳤다.
“내가 무슨 이득이 있다고 유리 홀랜드와 내통을 할까!”
그 말에 누군가가 또 반박을 했다.
분대장들 사이에서 나왔던 말 그대로.
“하지만 이 동맹을 만든 것도 딱히 너에게 이득이 되는 상황은 아니지.”
“…….”
“이참에 속 시원하게 이야기나 들어 보자. 이 동맹을 만든 이유가 뭐냐?”
“그건 유리 홀랜드를 상대하기 위해서…….”
“그럼 이 동맹은 오로지 유리 홀랜드만 상대하고 해체할 거였나?”
“당연하다.”
“유리 홀랜드만 상대하고 해체할 동맹을 만드는 데 이 정도로 공을 들였다고?”
“…그게 문제가 되나?”
자신의 해명에도 여전히 의심의 눈길을 보내 오는 이들을 보며 그는 깨달았다.
‘하… 이미 내가 해명할 시기를 넘어섰구나.’
아무리 열심히 해명을 한다 해도 이들은 자신을 믿지 않을 것이다.
이미 저들에게는 불신이 뿌리 깊이 박혀 버렸으니 말이다.
‘내가 자리를 비운 건 고작 몇 시간… 그동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유리가 던진 불씨는 뒤늦게 도착한 슐레만이 진화하기에는 이미… 너무 큰불로 번져 있었다.
그렇게 그날.
결국 13개의 스쿼드의 동맹 중 처음으로 이탈자 무리가 생겨났다.
* * *
저벅저벅-.
한때 1소대에 속해 있던 14스쿼드.
그들은 주둔지를 떠나 숲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얼마나 숲을 돌아다녔을까.
분대원 중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우리 거기서 나오길 잘한 거… 맞겠지?”
처음에야 흘러가는 분위기에 휩쓸려 동맹을 탈퇴하자고 했지만, 막상 떨어져 나오니 불안감이 든 것이다.
비록 임시라고는 해도 수십 명의 동료가 있던 것과 고작 7명 남짓의 동료가 있는 건 심리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으니 말이다.
불안감이 가득한 목소리에 14분대장이 코웃음을 쳤다.
“그래서 뭐? 이제 와서 다시 돌아가자고? 난 분명 중립적인 입장으로 상황을 지켜보자고 했지만, 탈퇴를 하자고 의견을 모은 건 너희였다.”
“아, 알아.”
“우리도 꼭 다시 돌아가자는 소리는 아니고.”
우물쭈물하는 분대원들의 모습에 14분대장은 속으로 혀를 찼다.
‘쯧, 그냥 거기 남자고 강하게 주장할 걸 그랬나?’
하지만 아마 자신이 아무리 주장을 해 봤자, 분위기에 휩쓸린 분대원들이 동맹을 나가자고 재촉했을 거다.
그리고 그들의 그런 충동적인 선택으로 인해 지금의 상황이 된 것이고.
“하아…….”
크게 한숨을 쉰 분대장이 멈춰 서서 분대원을들 향해 물었다.
“앞으로 어쩔지 의견 있는 사람?”
향후 거취에 관한 문제.
지금은 그것을 정하는 게 급선무였다.
막상 나오기는 했지만, 유리 홀랜드를 잡는다는 뚜렷한 목적이 있던 전과는 달리 지금은 딱히 계획이 없었다.
이에 분대원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뿐, 쉽사리 어떤 의견을 내지 못했다.
그때였다.
“나나! 나, 의견 있어!”
분대원들 사이에서 쾌활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대로 유리 홀랜드 쪽에 붙는 건 어때?”
14분대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리 홀랜드한테?”
“자, 생각을 해 봐. 일단 저쪽에는 아직 많은 사람이 남아 있고, 유리 홀랜드 타도라는 목적으로 움직이고 있단 말이지.”
“그렇지.”
“그런데 앞으로도 그럴까?”
“…그게 무슨 소리야?”
14분대장의 의문에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저들한테는 유리 홀랜드 타도라는 목적 말고도 하나의 목표가 또 생겼다는 거지.”
“또 하나의 목표?”
“새로운 적.”
“……?!”
그 새로운 적이 누군지 깨달은 14분대장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 새로운 적이 설마 우리인가?”
“당연하지. 네 편 아니면 내 편인 상황에서 동맹에서 떨어져 나온 스쿼드가 적이지 뭐겠어?”
“그, 그렇기는 하지.”
“이제 저들이 취할 행동은 두 가지야. 유리 홀랜드를 처리하고도 동맹을 유지해 이탈자를 마저 처리하거나, 혹은 이탈자들을 먼저 처리하고 유리 홀랜드를 상대하거나.”
“아……!”
그건 일어날 가능성이 큰 가정이었다.
이에 14분대장과 분대원들의 얼굴이 굳어진 순간.
다시금 이어진 목소리.
“그래서 유리 홀랜드 쪽에 붙자는 거야.”
“적의 적은… 친구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래, 그거지! 이거 참, 말 잘 통하는 친구였잖아?”
기쁨이 가득한 목소리에 14분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미소를 보냈다.
“좋은 의견이었다.”
그런 칭찬을 보낸 순간, 분대장의 미소가 사라졌다.
‘그런데… 이 목소리 누구지?’
그제야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분대장은 분대원들의 머릿수를 세어 보았다.
‘하나, 둘, 셋… 일곱?’
14스쿼드는 자신을 포함해서 일곱이었다.
한데, 지금 눈앞에 보이는 분대원들의 머리통만 일곱이지 않은가?
놀란 분대장이 다급히 분대원들의 면면을 확인하다 이질감이 드는 머리를 발견했다.
바로 검디검은 머리카락을 말이다.
‘가만… 검은 머리?’
상황을 빠르게 판단한 14분대장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그가 다급히 무기를 뽑아 들고 검은 머리를 향해 소리쳤다.
“유, 유리 홀랜드!”
그 외침에 검은 머리의 주변에 서 있던 분대원들이 화들짝 놀라 흩어졌다.
그러자 검은 머리 유리의 모습이 훤히 드러났다.
그가 싱긋 웃으며 손을 짤랑짤랑 흔들었다.
“안녕, 친구들. 타도 유리 홀랜드의 주인공 유리입니다.”
그의 인사에 경악하는 시선 일곱 쌍이 따라붙었다.
‘대체 언제?!’
‘바로 뒤에 있음에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니?!’
‘유리 홀랜드가 작정하고 기습하려 했다면…….’
만약 그랬다면 이미 자신들은 진즉에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을 것이다.
그제야 여러 스쿼드를 전멸시켰다는 유리의 실력이 그저 허황된 것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은 14스쿼드.
그들은 오스스 소름이 돋아 올랐다.
그들을 보며 유리는 짤랑짤랑 흔들던 손을 거둬들였다.
덩달아 그의 입가에 걸려 있던 싱그러운 미소도 사라졌고.
대신 서늘한 목소리가 14스쿼드를 향했다.
“그래서 나랑 친구 할래, 말래?”
언제 쾌활하고 밝았냐는 듯, 묵직한 존재감을 풍기는 그 목소리에 14스쿼드는 마른침을 삼켰다.
“아, 안 하면?”
“안 하면? 그것도 질문이라고 하는 거냐? 친구가 아니면 당연히…….”
유리가 조소를 머금고 검을 뽑아 들었다.
“적이지.”
새하얀 검광에 깃든 살기가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하는지 여실히 알려 주었다.
14스쿼드의 모두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 하자, 친구!”
“친구 좋지!”
“저, 적의 적은 친구지!”
그렇게 칼로 협박을 당한 이들은 새롭게 만들어진 ‘유리 연합’에 강제 가입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게 시작이었다.
이후로도 저쪽에서 떨어져 나온 스쿼드에게 유리의 협박과 회유는 계속되었고.
그의 유려한 언변과 서늘한 살기에 넘어간 이들이 ‘유리 연합’에 합류했다.
그렇게 유리 연합에 새로이 합류한 이들 중에는 9분대장 클라리스도 있었으니.
그는 삼삼오오 모여 또 하나의 세력이 된 이들을 보며 전날 군터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 * *
클라리스는 떠나가는 스쿼드를 지켜보고 있었다.
‘벌써 3개 스쿼드가 이탈한 건가?’
불과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13스쿼드 중 3개 스쿼드가 동맹에서 빠져나갔다.
꽤 큰 전력이 날아간 셈이었다.
거기다 남은 이들의 분위기도 썩 좋지 못했다.
떠나간 이들처럼 서로를 불신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전처럼 완전히 지금의 동맹을 믿는 것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렇게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분위기가 계속될 때.
군터가 클라리스를 찾아왔다.
“의외로군.”
난데없이 찾아온 군터는 클라리스를 보고 그리 말했다.
이에 클라리스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뭐가.”
“애초에 가장 먼저 슐레만을 의심했던 게 바로 너인데… 정작 너는 이탈하지 않고 있어서 하는 소리다.”
고요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군터의 시선에 클라리스는 침묵으로 응했다.
잠시 이어진 침묵 속.
군터가 질문을 던졌다.
“슐레만에 대한 의심은 거둬들인 거냐?”
그 물음에 클라리스가 침묵을 깨고 짧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난 아직도 슐레만을 의심하고 있다.”
“그런데 왜 이탈하지 않고 남아 있는 거지?”
“멍청한 질문이네.”
“멍청하다?”
“가장 위험한 적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봐야 하는 거 아닌가?”
“아아…….”
클라리스의 이야기에 군터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내가 너무도 간단한 걸 물어봤군.”
클라리스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슐레만이 의심스럽다면 그 옆에서 지켜보는 것 역시 현명한 선택일 테니 말이다.
그렇게 짧은 대화가 끝나고.
둘 사이에 또다시 침묵이 흘렀다.
이번에도 역시 군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반 가문에 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척박한 땅을 일궈 낸 타불 행정구의 명문가.
또한,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타불 행정구를 먹여 살렸기에 명문가를 넘어 영웅가라 불리는 가문.
그들을 향한 타불 행정구 사람들의 지지는 절대적이었다.
오죽했으면 타불 행정구를 반 왕국이라 부르겠는가.
그 위명은 대륙의 최북단에까지 들려와 군터 역시 익히 잘 알고 있었다.
수많은 기사 가문 중에서도 그 위명이 남다른 명가.
클라리스가 그 이름 높은 기사 가문의 후손이었기에.
또한, 그에게 기사로서의 명예가 있다고 믿기에.
군터는 클라리스에게 어려운 부탁을 해 볼 생각이었다.
“혹시…….”
잠시 뜸을 들인 군터가 힘들게 입술을 떼었다.
“…이 동맹에서 이탈해 볼 생각은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