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143
142화. 납치된 공주님 (2)
‘내기’라고 말한 유리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반짝이고 있었다.
이를 마주한 세경의 이맛살이 살짝 구겨졌다.
“…내기?”
“응. 내기.”
“무슨 내기 말이냐.”
“내가 꽁술 영감이 알려 주는 야금술의 반절도 익히지 못할지, 아니면 전부 익혀 낼지.”
“하! 내가 한 말을 똥구멍으로 들은 게야? 네놈은 평생 노력해도 내가 알려 주는 거의 반도 못 익힌다니까? 그럼 지금 나보고 네놈 옆에 평생을 붙어서 야금술을 알려 주라는 소리냐?”
“물론 그건 아니지.”
“그럼 헛소리 말고…….”
“다섯 개.”
“……?”
“영감이 알려 주는 야금술 다섯 가지 중 절반 이상, 즉, 세 가지를 이상을 내가 익혀 내면 이 내기는 나의 승리. 그렇게 되면 꽁술 영감은 앞으로 불평불만 없이 야금술과 연금술에 관해서 알려 줄 것.”
세경의 얼굴이 굳어졌다.
잠시 말없이 유리를 노려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만약 네놈이 실패하면?”
“그야 당연히 꽁술 영감의 승리지.”
“아니, 내 말은 네놈이 실패하면 나는 무얼 얻냐는 거다.”
“그건 그쪽이 정해야지. 자기가 이겼을 때 얻고 싶은 걸.”
“내가 얻고 싶은 거?”
작게 읊조리는 세경의 동공이 흔들렸다.
동시에 온갖 감정이 그의 얼굴에 언뜻언뜻 스쳐 지나갔다.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는 것일까.
한참의 고민 끝에 그는 짙은 열망을 담아 말했다.
“…내 죄의 사면.”
“죄의 사면?”
“아주 오래전, 레드너 가문의 초대 가주에게 골족이 은혜를 입은 적이 있었다. 그 해, 골족은 레드너 가주에게 인장을 만들어 주며 그 인장이 되돌아올 때 무슨 부탁이든 한 가지를 들어준다고 하였지.”
“그래서?”
“레드너의 인장을 사용해서 골족에게 부탁해라. 세경 워커의 죄를 사면하길 원한다고. 그의 추방을 없던 일로 되돌려 달라고!”
“추방? 당신… 단순한 10년 파견이 아니었던 거야?”
아무래도 파랑새의 정보가 전부 옳았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대체 무슨 죄를 지었으면 추방까지 당한 걸까?
그런 유리의 놀람에 세경은 답하지 않았다.
대신 묵묵히 시선을 마주할 뿐.
마치 내가 원하는 것은 이것뿐이라는 듯한 그의 눈빛 공세에 유리는 볼을 긁적였다.
“흠… 그러니까 그 부탁을 하기 위해서는 레드너 가문의 인장이 있어야 한다는 거네?”
“그래.”
“만약 이미 그 인장의 부탁이 쓰였다면?”
“최소 내가 떠나오기 전까지는 그런 일은 없었다. 애초에 가주의 인장을 반납하며 하는 부탁이다. 가문의 명운이 절체절명의 고비에 놓인 게 아니라면 절대 할 리 없다.”
“좋아. 그건 그렇다 쳐도… 아까 말했다시피 난 요한 영감의 제자가 아닌데? 레드너 가문의 사람 역시 더더욱 아니고. 그런 내가 한 가문의 인장을 어떻게 손에 넣어?”
“그건 내 알 바 아니지. 그걸 어떻게 손에 넣을지는 네놈이 알아서 할 일이고.”
“…….”
“다른 것도 아니고, 골족의 야금술과 연금술이다. 그것도 이 세경 워커가 평생에 걸쳐 완성한 정화를 얻고 싶다면 그에 걸맞은 조건을 걸어야 하는 게 아니냐?”
“…뭐, 틀린 말은 아니네.”
유리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레드너 가문의 인장이라…….’
한 가문의 인장, 그것도 가주에게 전해지는 인장이라면 필시 중요한 물건일 터.
그걸 어떻게 손에 넣을 수 있을지 유리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는 건 한 가지뿐.
‘레드너 가문의 인장이든 뭐든, 내기에서 이기면 되는 거잖아?’
굳이 내기에서 졌을 때를 생각할 필요가 있나?
유리는 태어나 살아오면서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는 데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하여 그는 이번에도 자신을 믿었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의 재능을 믿는 거였다.
‘골족의 야금술이 뛰어날까, 아니면 내 재능이 뛰어날까?’
유리는 당연히 후자를 믿었다.
아무리 골족의 야금술이라고 하여도 자신이라면 5개 중 3개는 충분히 익힐 수 있을 거라고.
가르쳐만 준다면 충분히 배울 수 있을 거라고.
그런 자신감이 있었기에 당당하게 세경에게 이런 내기를 제안한 거였다.
유리는 순순히 세경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좋아. 내가 진다면 그 레드너 가문의 인장이란 걸 어떻게 해서든 마련해 보지. 그쪽은?”
이에 질세라 세경도 유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좋다! 나 역시도 내가 패배한다면 내가 알고 있는 야금술과 연금술의 지식을 아낌없이 전수해 주마!”
턱-.
그렇게 두 개의 손이 가볍게 맞잡으며 내기가 성립된 순간.
유리와 세경, 두 사람의 시선 사이에 불똥이 튀었다.
‘이건, 내가 이길 수밖에 없다!’
‘이 내기… 내가 반드시 이긴다!’
그렇게 짧지만 강렬한 신경전은 둘의 손이 떨어지며 끝나는 듯싶었다.
세경이 다음 말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아, 그런데 말이다. 기본조차 준비되지 않은 네놈이… 과연 내가 야금술을 알려 준들 그걸 우에 익힐꼬?”
“뭔 소리야? 이제 와서 말을 바꾸겠다고?”
“말을 바꾸긴 무슨. 그럼 최소한의 준비물도 없이 야금술을 배우겠다는 거냐?”
“영감이 준비해 주면 안 돼?”
“내가 왜?”
“쳇. 야박하긴.”
“네놈은 양심이 없고? 하여튼,이 몸에게 야금술을 배우고 싶다면, 한 달 안에 내가 말한 세 가지를 준비해 와라. 못 한다면 이 내기는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내 승리가 되겠구나.”
세경의 이죽거림에 유리가 인상을 썼다.
“말해, 그 세 가지가 뭔지.”
이에 세경은 손가락 세 개를 펼쳐 보이며 3개의 단어를 말해 주었다.
그러고는 의기양양하게 유리를 바라보았다.
“어찌, 한 달 안에 준비할 수 있겠냐?”
마치 네가 이걸 준비할 수 없다는 걸 안다는 듯한 세경의 눈빛.
이에 유리는 환한 미소로 답했다.
“에이, 난 또 뭐라고. 그거면 되는 거야?”
“…엉?”
“좋아, 한 달 뒤에 와 봐. 내가 싹 다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
유리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에 세경의 입매가 떨떠름하게 변했다.
하지만 이내 그런 표정은 사라졌다.
‘이놈이 허세는!’
유리의 어깨에 있는 빨간색의 완장.
이는 그가 이제 막 요람에 들어온 1년 차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하여 세경은 확신했다.
자신이 말한 것을 유리가 준비하지 못하리라고.
‘이건 1년 차가 아니라 4, 5년 차라도 쉬이 준비하지 못할 거다.’
다른 거는 몰라도 자신이 말한 세 가지 중 하나는 구할 수 있는 물건의 개념이 아니었으니까.
“어디 잘해 봐라. 난 한 달 뒤에 오마.”
“그러든가.”
“오냐!”
해 볼 테면 해 보라는 듯 손을 휘휘 내저은 세경은 총총걸음으로 떠나갔다.
그렇게 세경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테레시아를 비롯한 이들이 유리의 곁으로 다가갔다.
“어떻게 된 거야?”
“둘이서 무슨 얘기 했어?”
“배고프다?”
너도 나도 던진 질문에 유리는 아린과 뽀삐 앞으로 대뜸 손을 내밀었다.
그러고는 짧게 요구했다.
“야, 니들 것도 줘 봐.”
“…응?”
“배고프다?”
뜬금없는 강탈 시도에 두 사람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올랐다.
* * *
이제 막 봄이 시작된 터라, 약간의 쌀쌀함이 남아 있을 시기.
그러나 요람의 한 장소만큼은 늘 뜨거운 열기를 품고 있었으니.
그곳은 다름 아닌 요람 내에 존재하는 초대형 공방이었다.
사시사철 꺼지지 않는 대형 용광로와 땀을 흘리는 수많은 대장장이.
마찬가지로 커다란 가마와 유리 및 도기를 만들어 내는 도공들.
그 외에도 가죽, 보석 세공, 그림 등등.
각 분야의 뛰어난 기술자가 모인 곳이 바로 요람의 초대형 공방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바쁘게 돌아가는 곳은 단연코 대장간이었다.
땅-! 땅-!
망치를 내리칠 때마다 시원하게 울리는 경쾌한 소리.
사방으로 튀기는 불똥.
치이익-.
허연 수증기와 함께 뜨거운 쇳덩이가 조금씩 형체를 갖춰 가며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었다.
그 생산 물품 대다수는 무구(武具)류.
요람은 물론 흑검병단의 보급까지 책임지고 있는 곳이다 보니 가장 많이 소모되는 비품이 무구류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그날도 어김없이 흑검병단으로 보낼 보급품을 확인하고 있던 대장간의 최고 책임자에게 한 흑검병이 찾아와 1장의 종이를 건넸다.
그리고 그것을 펼쳐 확인한 순간, 대장간 최고 책임자는 그대로 굳을 수밖에 없었다.
“……?!”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여전히 현업에 종사하며 대장간을 이끌어 가고 있는 장인.
또한, 요람의 대장간에 들어와 수습부터 시작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십 평생을 이곳에서 보낸 그였지만, 그런 그도 이런 얼토당토않은 일은 처음이었다.
“허…….”
그의 손에 들린 1장의 종이.
그건 다름 아닌 무구 제작 요청서였다.
정확히는 각 연차별로 무구 제작권을 받은 흑검병이 이를 취합해 넣는 발주서.
거기에는 수십 개의 품목이 적혀 있었다.
그중 대다수는 별로 이상할 게 없었다.
늘 언제나 들어오는 발주 품목이었으니까.
다만 발주서의 끄트머리.
난데없이 등장한 3개의 품목이 문제였다.
-현직 대장장이가 강력하게 추천하는 튼튼한 야금술용 망치.
-현직 대장장이도 가지고 싶어 할 튼튼한 모루.
그래도 그나마 두 개는 괜찮았다.
가장 문제가 되는 품목은 맨 마지막에 적혀 있었으니.
-현직 대장장이도 애정하는 화끈한 용광로(지정 장소에 설치 요망.)
수십 평생 처음 받아 본 품목에 그는 기어코 헛웃음을 흘렸다.
“허… 허허허! 이건 진짜 뭐 하는 미친놈이야?”
그렇게 어이없는 수준을 넘어 기괴하기 짝이 없는 무구 제작 요청이 들어 온 날로부터 한 달이란 시간이 흘러갔다.
* * *
때는 바야흐로 꽃피는 4월.
세경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봄 내음이 가득한 북쪽 숲을 걸어 나갔다.
그가 향하는 곳은 유리와의 내기가 성립된 장소.
마치 산책을 즐기는 듯한 세경의 걸음걸이에는 일말의 걱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찌, 그 녀석이 잘 준비했는지 확인이나 해 볼까?”
입으로는 그리 말하기는 했지만, 그의 진정한 속내는 ‘어림도 없지’였다.
지금 확인을 하러 간다는 것도 울상을 짓고 있을 유리를 구경하러 간다는 쪽에 가까웠다.
그도 그럴 것이 세경이 유리에게 요구한 3가지.
망치.
모루.
용광로.
야금술을 익히는 데 있어 꼭 필요한 그 3가지는 1년 차 기수가 쉬이 구할 것이 아니었다.
아니, 망치와 모루는 구할 수 있을지 몰라도, 용광로를 어찌 구하겠는가.
‘그걸 구해 오면 인정해 줘야지! 아암!’
그리고 세경은 그 생각대로 곧 인정할 수밖에 없는 광경을 직면하고 말았다.
“이, 이게… 어, 어찌……?!”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허허벌판에 가까웠던 장소에 떡하니 열기를 뿜어 대는 시설이 자리 잡고 있었으니.
그건 누가 봐도 용광로가 확실했다.
심지어 그냥저냥 대충 흉내 내어 만든 것이 아닌 진짜 실용성을 갖춘, 제대로 된 용광로였다.
구조와 만듦새가 당장이라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해 보였고 실제로 용광로는 뜨거운 열기를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용광로 앞에 모여 있는 네 사람.
“야, 아린. 정신 안 차리지? 늦었잖아! 내가 바로 뒤집으라고 했어, 안 했어? 자꾸 딴생각할 래?”
“…별로 안 늦었잖아. 타지도 않았는데?”
“0.1초만 늦어도 고기의 맛이 달라진다는 거 몰라? 고기 굽기의 생명은 바로 뒤집는 시간이야! 맛있는 걸 먹고 싶으면 내가 뒤집으라고 할 때 바로바로 뒤집으라고.”
“넵.”
옹기종기 모여 신성한 용광로에 고기를 굽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 유리와 친구들.
“지금! 뒤집어!”
유리의 지시에 테레시아와 아린, 뽀삐가 일사불란하게 고기를 뒤집었다.
그렇게 세 사람을 수족처럼 부리던 유리는 뒤쪽으로 다가온 세경을 발견하고 왼손을 흔들었다.
“어, 꽁술 영감 왔어?”
반가움이 가득한 인사였지만, 지금 세경에게 그런 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미칠 듯한 궁금증의 해소가 먼저일 뿐.
그가 빠르게 유리에게 다가가 다그치듯 물었다.
“어, 어떻게 된 거냐?”
“뭐가.”
“저 용광로… 어디서 난 게야?”
“아, 이거? 만들어 달라고 했지.”
“누구한테?”
“요람한테.”
“그, 그랬더니 이걸 만들어 줬다고?”
“응.”
“요람이 미친 게야? 이걸 만들어 줬다고? 왜?!”
“나야 모르지. 만들어 달라고 했더니 만들어 줬는걸?”
“마, 말도 안 되는…….”
넋 나간 세경을 보고 유리는 어깨를 으쓱였다.
솔직히 이번 일은 운이 좋았다는 걸 유리 본인도 인정했다.
때마침 그의 수중에 무구 제작권이 있었고.
때마침 세경이 요구한 게 3가지였고.
또 때마침 자신의 주변에 무구 제작권을 뜯어낼 친구들이 둘이나 있지 않았던가.
그렇게 모루와 망치는 무구 제작권으로 해결을 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던 유리.
그런 그도 확신하지 못했던 게 바로 용광로였다.
그래도 일단은 요청하고, 안 된다 하면 용광로 제작 방법이라도 알아내어 자신이 만들 계획이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요람에서 그 요청을 들어준 게 아닌가.
게다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네놈이렷다? 이 해괴한 발주를 넣은 자식이?]심지어 요람에서 운영하는 대장간의 최고 장인이 직접 망치와 모루를 들고 나타나 손수 용광로를 설치해 주기까지 했다.
그가 놓고 간 망치와 모루를 가리키며 유리가 말했다.
“어때? 이 정도면 기본 준비는 마친 건가?”
그 말에 정신을 차린 세경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하구나.”
유리가 준비한 망치와 모루, 그리고 용광로는 그저 그런 수준이 아닌 현직 대장장이가 사용할 법한 훌륭한 물건들이었다.
이를 준비해 왔으니 자신도 더는 트집을 잡을 수 없었다.
이제 진짜로 야금술을 알려 주어도 될 터.
다만 그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팔은 어쩌다 그런 거냐?”
그리 질문을 던진 세경의 시선이 향한 곳.
그곳에는 새하얀 천 지지대에 감싸인 유리의 오른팔이 있었다.
천 너머로 부목에 덧댄 것이 어렴풋이 보이니, 이는 분명 부러졌다는 뜻이었다.
세경의 질문에 부러진 팔을 슬쩍 들어 올린 유리.
“아, 이거?”
그의 기억이 며칠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 * *
그날은 용광로가 설치된 지 이틀째가 되는 날이었다.
그리고 테레시아가 자신에게 흥미로운 부탁을 한 날이기도 했다.
이에 유리가 눈을 끔뻑이며 되물었다.
“그러니까 나보고… 퀘스트를 도와 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