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80
79화. 가죽 모으기 (5)
숲의 안쪽으로 향하며 유리는 늑대의 제약을 유추해 보았다.
토끼 역은 실력에 상관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나 절대로 공격을 못 한다는 제약이.
사슴은 반격이라는 조건하에 공격이 가능하지만, 비공인 1급만 참여할 수 있다는 제약이 있었다.
‘그럼 늑대는 공인 1단 정도일 가능성이 크겠네.’
정말 제한의 폭을 넓게 잡아도 공인 1단에서 2단 정도의 실력자만 참가가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하여 늑대의 영역으로 넘어가기 직전.
유리는 자신의 현재 실력에 대해 고찰을 시작했다.
과연 현재 자신의 실력으로 늑대 구역을 활보해도 될지를 말이다.
‘테레시아는 자신의 실력이 공인 2단을 앞두고 있다고 했었어.’
그리고 자신은 그런 테레시아와 대등하게 싸웠다.
아니, 마음만 먹는다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거란 확신도 들었다.
그럼 자신은 공인 2단인 걸까? 아니면 3단?
이에 유리는 고개를 살짝 내저었다.
‘그건 절대 아냐.’
테레시아에게 강검을 배운 날, 유리는 자신의 거처로 돌아와 연검을 시도해 봤다.
그리고 보기 좋게 실패하고 말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연검을 펼치기엔 마나와 마력이 너무 딸려.’
무기와 마나 핵의 파장을 단번에 찾아내 일치율을 끌어올린 건 유리의 타고난 감각적 재능이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마류를 익히며 진보한 감각적 재능은 첫 시도 만에 바로 강검을 발현케 했다.
하지만 유리는 지닌 재능에 비해 오히려 기초라 할 수 있는 마나와 마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 무가의 자손들은 어린 시절부터 갖가지 영약으로 마나를 쌓고, 마체술을 익혀 마나의 순도를 높여 간다.
그렇게 높아진 마나의 순도는 다시 높은 마력으로 이어진다.
반면 유리는 어떤가.
마체술을 익힌 지 아직 1년조차 되지 않았다.
비록 얼마 전에 하급 마나 증강의 비약을 먹었다고는 하지만, 그래 봤자 이제 고작 하나다.
가뜩이나 요람에서 제공하는 비약은 순도가 높은 대신 마나 함유량이 적은데.
고작 그거 하나 먹은 걸로 다른 무가의 자손들이 수년간 쌓아 온 마나량을 어찌 따라갈 수 있겠는가.
‘정말 마나가 딸려도 너무 딸린단 말이지…….’
얼마나 마나와 마력이 딸렸으면, 고작 강검을 30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마나가 동이 났다.
그것만 봤을 때, 유리는 공인 1단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영감은 그랬지, 자신 같은, 혹은 나 같은 이들은 세상이 정한 규격에서 벗어난 존재라고.’
그 말이 무엇인지 이제 유리도 잘 알고 있었다.
고작 비공인 1급 정도의 실력으로.
강검조차 펼치지 못한 자신이 공인 2단을 바라보고 있는 테레시아를 제압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들었으니까.
나아가 준비만 할 수 있다면 그 이상의 일도 해낼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것으로 유리는 자신의 현재 위치를 어렴풋이 정할 수 있었다.
‘좋아, 일단 내 예상대로 늑대가 공인 1, 2단 수준이면 그냥 사냥을 계속하고… 그 이상이라면 후퇴한다.’
이제 열흘의 기간 중 첫날이다.
앞으로 벌어야 할 포인트가 산더미인데 첫날부터 다칠 수는 없지 않은가.
괜히 무리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 여긴 유리는 조심스럽게 늑대의 영역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그러기 무섭게 저 멀리서 금속성과 폭음이 들려왔다.
챙- 쾅!
‘벌써 누가 한바탕하고 있나 보네?’
이에 유리는 잘됐다 싶어 소리가 나는 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만약 이게 누군가 늑대를 사냥하는 소리라면 적어도 늑대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리는 볼 수 있었다.
한 소녀와 한 소년.
바로 늑대 귀 머리띠를 한 테레시아와.
‘어, 그러니까… 쟤 이름이 뭐더라?’
이름은 모르지만, 흑선에서 자신과 말다툼을 한 소년.
그들이 치고받고 싸우고 있는 모습을.
* * *
챙-!
빠르게 날아드는 창을 받아 내며 군터는 연신 뒷걸음질 쳤다.
‘이대로는 안 된다!’
싸움의 흐름이, 그리고 주도권이 완전히 상대에게 넘어가 있었다.
그걸 되찾아 와야 했다.
군터는 사방에서 찔러 오는 창을 매서운 눈으로 확인했다.
‘전부 받아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눈을 빛낸 군터가 이를 악물었다.
푸슉-.
테레시아의 창이 왼쪽 어깨를 얇게 스친 순간.
‘지금!’
쿵-.
대지를 강하게 내디딘 군터가 반보 앞으로 향하며 크게 검을 휘둘렀다.
밑에서 위로.
사선으로 휘둘러진 검은 일반인은 눈으로 좇기도 힘들 정도로 빨랐다.
하지만 그걸 상대하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테레시아였다.
유리와 속도전을 펼칠 정도의 실력자.
훙-.
테레시아는 창을 쥔 손을 느슨하게 풀어 준 뒤, 옆으로 몸을 틀어 검을 피해 냈다.
그건 상당히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테레시아 스스로도 상대의 공격을 여유 있게 피해 냈다고 여겼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그극-.
위로 솟구쳤던 검이 끝까지 검로가 이어지기도 전에 허공에서 무언가에라도 붙잡힌 양 꿈틀거렸다.
동시에 갑자기 방향을 틀어 테레시아의 가슴을 노리고 찔러 들어오는 게 아닌가.
‘……?!’
놀란 테레시아는 핑그르르 몸을 회전시켜 그대로 뒤로 훌쩍 물러났다.
그런 그녀의 어깨로 상대의 검이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슥-.
테레시아와 군터.
둘은 각자의 어깨에 작은 상처를 입히고 조금 떨어져 서로를 응시했다.
그러다 테레시아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아, 누군가 했더니 걔구나. 유리 홀랜드를 뒤쫓던 아이.’
50기 중에 유리 다음으로 백보 의식 성적이 좋았던 후배였다.
‘여섯 보였던가?’
원래 여섯 보라면 어떤 기수든 주목받을 만한 성적이었다.
그러나 이번 50기에 열다섯 보를 걸어 낸 괴물이 있었다.
하여 상대적으로 여섯 보를 걸어 낸 이들의 주목도가 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확실히 실력은 있네.’
조금 전의 검격.
그건 ‘올려치기’란 운동이 채 끝나기 전에 힘으로 급제동을 걸어 버린 거였다.
그것도 모자라 ‘베기’가 이어지는 힘을 무시하고 ‘찌르기’로 변화시켰다.
어지간한 힘과 숙련도가 아니라면 시도하기 힘든 변칙 공격이었다.
‘흠…….’
테레시아는 상대방의 무장을 살폈다.
투박해 보이는 양손 검.
중병기에 속하는 무기였으며, 주로 기사들이 사용하는 병기였다.
그리고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군터가 검을 검면이 보이게 세웠다.
기사들이 자주 사용하는 예식이었다.
“아이언스가의 장자 군터입니다. 선배님의 이름을 알려 주시겠습니까?”
테레시아의 눈에 약간의 감동이 깃들었다.
‘그래… 이게 후배인 거지.’
저 예의 바름을 봐라.
자신을 툭툭 치면 포인트를 뱉어 내는 주머니로 여기는 그 몹쓸 녀석과 너무도 대비되지 않는가.
처음으로 받은 선배 대접에 테레시아는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가 살짝 창을 내리며 답했다.
“테레시아 윈체스터.”
“테레시아… 윈체스터?!”
군터의 눈에 놀라움이 깃들었다.
브리웰의 윈체스터라면 그도 잘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가문이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군터를 놀라게 한 건 ‘테레시아’란 이름이었다.
그 같은 반응에 테레시아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를 본 군터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괜찮아, 익숙한 반응이라.”
“하지만 소문이 잘못된 모양이군요. 이런 분이…….”
군터는 끝말을 잇지 못했다.
이에 테레시아의 씁쓸한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래, 이게 평범한 반응인 거지.’
동기를 비롯해 선배 기수들은 이제 별로 놀라지 않지만, 밖에서 ‘윈체스터의 기형아’로 살아온 테레시아에게 이 같은 반응은 너무도 익숙했다.
오히려 처음부터 아무것도 모르는 듯 행동하는 유리 홀랜드가 이상한 것일 뿐.
“아…….”
입을 다문 테레시아의 모습에 군터는 자신이 연달아 실수했음을 깨닫고 동공이 흔들렸다.
무언가 분위기가 좀 어색해지려는 찰나, 테레시아가 창을 들어 군터를 겨눴다.
“지금 네가 남을 신경 쓸 상황은 아닌 거 같은데?”
“아…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인 군터가 검을 내리고 자세를 잡았다.
어색했던 분위기가 단번에 사라지고 다시 전운이 감돌았다.
테레시아가 군터에게 물었다.
“기사인 거 같은데, 맞지?”
“맞습니다.”
“네가 불리한 상황인 거는 아는데 봐줄 생각은 없어.”
그건 군터의 무장에 관한 이야기였다.
무사로 분류되는 이들과는 달리 기사에게는 검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전신 갑주였다.
전신 갑주가 없는 기사는 진짜 기사가 아니라는 말이 있을 정도며, 실제로 기사는 전신 갑주가 없으며 온전한 실력을 내지 못한다.
이를 알고 있기에 군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의 모자람을 무장 탓으로 돌릴 생각은 없습니다. 가르침을 주십쇼.”
“역시 잘 배웠네. 누구랑은 다르게.”
“예?”
“…아니야.”
짧게 얼버무린 테레시아가 창을 뒤로 당겼다.
그리고 이를 본 군터도 검을 허리 뒤로 보냈다.
고오오-.
둘 사이에 짙은 긴장이 맴돌고.
먼저 움직인 건 군터였다.
쾅-!
그의 다리가 대지를 찍으며 육신을 포탄처럼 앞으로 쏘아 보냈고.
마나 핵이 고유의 마체술을 발동시켰다.
아이언스가(家) 비전 마체술.
뇌천왕의 발톱.
뇌전을 부리는 그리핀의 제왕을 흉내 내기 위해 만들었다는 마체술과 검술.
그중에서도 발톱을 형상화한 이 공격은 증명 시험을 치를 당시, 군터가 흑검병을 상대로 꺼냈던 절기였다.
그때 군터가 만들어 낸 발톱은 고작 3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 군터가 만들어 낸 뇌전의 발톱은 무려 총 4개.
이는 군터가 쉬지 않고 꾸준히 정진해 왔다는 증거였다.
츠즉-.
그렇게 군터의 발톱이 정면으로 치닫는 순간.
테레시아는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단순해 보이지?’
분명 군터의 공격은 꽤 수준 높았다.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위협적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수준 높은 공격임에도 ‘조악하다’라는 느낌이 든 거다.
테레시아는 그 원인을 금세 깨달았다.
‘아… 그 녀석 때문이구나.’
적재적소에 파고들던 유리의 공격.
그 녀석은 단 한 수도 허투루 낭비하는 공격이 없었다.
마치 자신의 속을 읽고 있는 것처럼.
그런 유리의 수를 받아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테레시아의 보는 눈이 높아진 거였다.
비록 엄청난 수준으로 진보를 이룬 건 아니지만, 수를 읽는 시야가 넓어졌다는 것만으로도 테레시아에게는 큰 성취였다.
그리고 이는 곧 그녀의 공격에 고스란히 묻어 났다.
윈체스터가(家) 비전 마체술.
탄영(彈影).
그림자가 된 테레시아는 마치 예상하기라도 했다는 듯 군터가 만들어 낸 4개의 발톱 사이를 유유히 파고들었다.
‘이런?!’
당황한 군터.
하지만 이를 입 밖으로 표출하기도 전에 검은 그림자가 그를 뒤덮었다.
그리고 잠시 뒤, 군터의 뒤편에 치솟은 그림자가 테레시아로 바뀐 순간.
풀썩-.
군터의 신형이 허물어졌다.
기절해 버린 군터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테레시아의 눈에 옅은 기쁨이 깃들었다.
‘유리와의 대련이 효과가 있었어.’
그것도 제법 효과가 좋았다.
‘대련을 한 지 고작 십여 일 만에 이룬 성취가 이 정도일 줄이야.’
이토록 급격한 성취가 있는 건 그녀의 생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때문일까?
테레시아의 가슴속에 유리를 향한 고마움의 싹이 살짝 틔워 올랐다.
‘생각해 보니 내가 기절했을 때, 거처로 옮겨 준 것도 그 녀석이고.’
비록 포인트를 노린다는 목적이 있었다고는 해도 유리가 이것저것 챙겨 주었기에 자신의 생활 수준이 확 올라갔다.
그 덕에 하루하루 몸 상태가 좋아졌고 수련에 집중하기 편해진 것도 명백한 사실이었다.
어쩌면 자신은 지불하고 있는 포인트 이상으로 혜택을 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이건 고마워해야겠네.’
그렇게 테레시아가 피워 올린 고마움의 싹이 조금 더 자라나려는 찰나.
푸스럭-.
한쪽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이에 테레시아는 혹여 동료 늑대일지 모를 이와의 분쟁을 피하고자 정해진 구호를 댔다.
“멍멍, 나는 늑대…….”
아니, 대려고 했었다.
인기척의 주인과 눈이 맞지 않았다면.
“…….”
“…….”
기절한 군터를 사이에 두고, 테레시아와 유리의 시선이 정면으로 딱- 마주쳤다.
약간의 정적이 감도는 가운데, 유리의 양 볼이 서서히 부풀어 올랐다.
이에 그는 손으로 황급히 제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나 결국 더는 막지 못하고 침과 함께 웃음이 터져 나왔다.
“푸흡, 푸흐흐!”
“…….”
“멍? 멍멍? 머엉머엉? 푸흐흐흐흐흐흐흐흣!”
테레시아를 흉내 내는 유리의 두 눈은 초승달처럼 휘어 도무지 펴질 줄을 몰랐다.
그에 따라 점점 테레시아의 고개가 지면으로 향했다.
부들부들 어깨를 떠는 테레시아의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한마디.
“…재수 없어.”
쟤는 그냥 나가 죽었으면.
바스락-.
테레시아의 가슴속에 피어오른 고마움의 싹은 채 자라기도 전에 말라비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