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370
370화
【연말의 밤】
“오늘 80 다신 분들, 축하드려요.”
그간 오랫동안 79레벨에 머물러 있던 플레이어들이 차례대로 웃었다.
라피아 화산 필드 파티에 속해있는 오디오스를 시작으로 네오, 도도, 맥스비, 플루, 백검까지. 사냥 이틀 차에 무려 여섯 명이 80을 달성한 것이다.
니플헤임의 비정상적인 경험치가 이대로만 유지된다면 앞으로 80레벨은 더 늘어난다. 뜻하지 않은 행운에 벼르고 있는 79레벨들도 한 무더기였다.
“어차피 신규 장비 제한도 80레벨이겠다. 80레벨 작업에 몰두해서 전체 레벨 상향평준화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데요?”
“신스펠, 스킬 공급이 문제예요. 아무리 레이드 첫클리어에 와르르 나온다고 해도, 원하는 것들만 나올 리 없고… 특히 특정 직업일수록 수요가 더 높을 텐데. 잘 쌓아온 관계가 아이템으로 기분 상하지 않을지…….”
“흠. 뭐, 아이템 가지고 다툴 만큼 속 좁은 사람이 따거 말고 또 있겠어요? 그리고 80이면 레벨 보정 때문에 신스펠, 스킬 없어도 나름 해볼 만하던데요.”
하이 랭커들이 곧 바뀔 풍경에 다가올 문제를 걱정하는 동안, 간부들은 그간 창고에 방치되어 있던 신스킬 여분을 처리했다.
지난번, 전투 길드 연합으로 간 지하도시 레이드. 그때 드롭됐지만 적임자가 없었던 신스킬, ‘암살’.
그 스킬이 드디어 주인을 찾았다.
하지만 암울하게도 로그의 하이 랭커 비율이 낮아, 적임자가 습득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듯했다.
애석하게도 가장 높은 로그가 79레벨의 ‘프루츠맨’이었던지라. 다음 순위이자, 어제 79를 달성한 태양 길드의 아빌린이 차지하게 됐다.
물론 이 상태로라면 아빌린의 80레벨 달성도 먼 얘기는 아니었다.
어제의 빠른 사냥을 떠올린 리디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누군가는 너무 쉽게 성장하는 기분이라 무섭다고도 했다.
또, 훗날 헤임달을 다시 찾아가서도 다시금 물에 빠진 개미 떼처럼 휩쓸려 나가면 어쩌냐고도.
죽으면 허탈할 것 같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도전하는 것 자체가 큰 의미인 것은 분명했다. 더욱이 그렇게 해야 헤임달과의 격차도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다. 그랬기에 리디안은 가능한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헤임달과 파프니르 앞에서 버틸 수만 있다면, 90레벨이든, 100레벨이든. 한계까지 올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 * *
작업 5일 차인 12월 31일.
지옥 훈련과도 같은 열정적인 사냥 기간이었다. 정오가 지나서야 기존 80레벨이었던 플레이어들이 비로소 81레벨을 달성했다.
80레벨부터 경험치 올라가는 속도가 더뎌, 핼쑥했던 마제스티의 얼굴에 드디어 꽃이 폈다.
“81 축하요!”
“또 80된 분들도 축하!”
“79도.”
“78도, 77도. 모두 모두 축하, 축하.”
“후. 용한테 뒈져서 깎인 HP랑 MP. 복구 완료.”
축하는 짧고 심드렁했다. 이쯤에서 멈출 생각 따윈 하지 않았으므로.
리디안은 77레벨 중반에 가까워지는 정보창을 바라보며 더 열정을 불태웠다.
하이 랭커들에 비하면 레벨 막내지만, 날로 변해가는 레벨과 경험치는 보는 건 참 뿌듯한 일이었다.
[플레이어 정보이름 : 리디안 / 길드 : 레기온
레벨 : 77 / 직업 : 세인트 / 보조직업 : 재단사
HP : 3167 / MP : 6274]
리디안의 레벨이 급속도로 올라간 만큼. 함께한 파티원들의 레벨도 대부분 엇비슷하게 올랐다. 이제 80위 아래로는 78, 77레벨이 즐비했다.
심지어 80레벨은 총 서른일곱 명이 됐다. 니플헤임과 라피아 화산 필드의 비정상적으로 높은 경험치 덕분이었다.
또 80에 가까워질수록 들어오는 경험치 비율이 높아지는 점. 그리고 80레벨이 많아진 시점부터 화력이 세진 것도 빠른 성장에 크게 이바지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신사는 다음 난이도인 B 구역으로 이동하는 것도 진지하게 염두하고 있었다.
니플헤임의 경험치 이슈는 그간 애매한 레벨 대에서 머물던 플레이어들의 의욕을 자극했다. 리디안도 그 사이 어딘가였고, 근래 들어 가장 불타오르고 있었다.
니플헤임은 불철주야 활발했다.
대다수가 잠도 마다하고 달린 탓에 낮은 고정 파티, 밤은 자유 파티로 돌아갔다.
휴식을 취하러 간 사람들이 빠진 밤에는 화산 파티와 나스 평야 파티가 섞여 사냥을 이어갔다.
특히, 크라이그는 어떻게든 레온과 버베나 남매를 제쳐보려고 온몸을 불태웠다. 그리하여 결국 버베나를 꺾고 2위를 차지하는 영광을 얻을 수 있었다.
다음날인 1일이 되어야 확실해지는 거지만, 현재의 경험치 퍼센트로 따지자면 그랬다. 크라이그는 양보해준 버베나에게 씩 웃어 보였다.
“누나, 고마워요.”
“고맙긴. 난 힘들어서 이제 못 하겠다.”
2위의 자리는 랭킹에 의의를 두지 않게 된 버베나의 휴식 덕분에 얻은 영광이기도 했다. 반면 레온은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레온은 흔들림 없이 충혈된 눈으로 밤새 사냥에 몰두했다. 그 탓에 크라이그는 끝끝내 레온과의 격차를 뛰어넘지 못했다.
크라이그는 조금 아쉬워할 뿐, 더 집착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라이벌을 정해두고 사냥에 몰두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5일 차에 접어드니 사람들의 열정과 체력도 서서히 꺾여갔다.
“진짜 힘드네요.”
해가 질 때쯤. 사냥 시작 후 처음으로 크라이그가 무심하게 앓는 소리를 냈다.
아니, 어쩌면 게임 시작 이래 처음일 수도 있다.
그 소리에 리디안이 입을 쩍 벌렸다. 크라이그를 잘 아는 사람들이라면 알 수 있었다. 저건 정말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라는 걸.
“힘들다는 소릴 하는 거 보니, 너도 사람은 사람이다. 근데 그래도 템은 쏠쏠하게 나오잖아.”
백검은 인벤토리에 모인 신규 장비를 보며 헤벌쭉 웃었다. 사람들의 걱정과는 달리, 장비 아이템은 드문드문 드롭됐다. 전부 방어구였고 등급은 중급 혹은 하급으로 고정된 게 문제지만 말이다.
그래도 강화와 옵션을 조작할 수 있으니, 중급이라 해도 현재의 유니크 종결보다 훨씬 나은 존재였다.
“원래 종결 장비는 레이드에서 나와야 맞는 건데. 적당히 맛보기용으로 임시 적용됐던 거, 헤임달이 그대로 쓴 거겠죠? 근데 무기는 왜 안 나오지?”
“무기 포함해서 레전더리 상급 이상 템은 보스한테 나올 거예요. 무기는 등급 관계없이 강화 영향이 크잖아요. 그래서 맛보기에 포함 안 시킨 듯.”
“근데 전에 나온 신스펠, 스킬도 그랬고. 이 게임… 어째 밸런스 테스트 얼렁뚱땅하다가 중간에 다 튀고 방치된 것 같지 않아요?”
“루머 중에 그것도 있었어요. 레스티어가 다른 게임 개발 목적으로 투자를 받았는데, 그거 개발한다고 인력 거의 다 빼돌려서 노르드 월드 방치된 거라고. 근데 그 최소한의 인력마저도 탈주했다는 소문이…….”
“하긴. 그간 없뎃에 공지나 이벤트 하나 없었으니.”
다음 루트로 이동 중. 신규 아이템을 두고 이런저런 말이 나왔다. 제법 그럴듯한 정보를 들으며 리디안은 자신의 인벤토리에 들어온 아이템을 확인했다.
잡동사니와 여러 아이템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세 개나 쌓인 ‘안드바리의 황금 망치’가 참 흐뭇했지만… 신규 아이템의 존재도 눈부시게 빛났다.
[위대한 용사의 지식 – 목걸이] [위대한 용사의 희생 – 신발]생각보다 잦은 드롭에 신규 장비의 정체도 얼추 밝혀졌다. 투지, 지식, 희생. 그리고 수호까지 합해 신규 장비는 총 네 가지 세트였다.
투지는 물리 딜러, 지식은 마법 딜러, 희생은 바드와 세인트, 수호는 탱커의 전용 아이템이었다. 드롭 된 파츠가 제각각이라 아직 완성된 세트는 없었지만, 대강의 주인은 정해졌다.
파티원들은 짧은 회의를 통해 신규 장비를 공동 재산으로 분류했다.
그러곤 직업과 레벨에서 우선순위를 정해 세트별로 한 사람씩 밀어주는 것을 선택했다.
리디안이 먹은 아이템도 사냥이 끝나면 적임자에게 향할 예정이다. 머지않아 도전할 신규 보스 레이드에서 드롭될 것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고생하셨어요. 저녁에는 리조트에서 푹 쉬죠.”
마지막까지 힘찬 레벨 업 후, 나름의 연말을 기념하는 뜻에서 저녁에는 다 같이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사실 이 노르드 월드가 다른 세계라는 게 밝혀진 시점에서 현실과 시간이 똑같을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말이다.
어쨌든 플레이어들은 작은 의미 부여를 하곤, 홀가분하게 리조트로 향했다.
“와. 리조트는 길드 성 내실처럼 숙박도 단체로 할 수 있네요?”
“식당가도 단체 룸 따로 가능하대요.”
대충 둘러보고 갔던 지난번과는 달리, 작정하고 숙박을 하러 온 레기온 길드원들은 리조트의 새 시스템에 감탄을 연발했다.
진작부터 리조트에 머물고 있던 ONE 길드원들은 신난 얼굴로 이것저것 설명했다.
“단체 패키지가 따로 있더라고요. 숙박은 10인, 식당은 100명 제한. 근데 웨딩 홀에서 결혼식을 하지 않아도 연회 룸을 아무 때나 빌릴 수 있다는 게 대박이죠. 거기도 길드 성 내실 대여하는 것처럼 대인원 수용 가능해요.”
“아. 그래서 지금 가는 곳이 연회 룸이에요? 리조트 물가 비싸다던데, 괜찮나?”
“저희 돈 아닌데요, 뭘.”
대관료는 길드 마스터들의 지갑에서 빠져나갔다. 피눈물을 흘리는 길드 마스터의 모습에도, 각 길드원은 사악하게 웃으며 모임 장소로 향했다.
아예 날을 잡고 온 만큼, 작정하고 숙박을 끊는 플레이어도 꽤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열에 아홉은 지긋지긋한 전투복을 입고 휴양 온 기분을 냈다.
리디안도 정말 오랜만에 전투복인 프레이야 세트를 벗고 평상복을 입었다. 연두색 케이프가 달린 블라우스 형태의 수수한 원피스였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평상복을 입는 건 지극히 오랜만이라, 리디안은 한동안 자신의 모습이 낯설어 어쩔 줄 몰라 했다.
하지만 그런 기분도 잠깐이었다. 리디안은 다양한 아바타의 행렬에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와. 뭐야. 정장? 어디 면접 감?”
“그러는 넌. 수영복 안 쪽팔림?”
“호드라 님, 앞치마 귀엽다.”
“오. 시우 님. 그거 트레이닝 패키지. 얼마 주고 샀어요? 검은색은 구하기 힘들던데.”
평상복의 기준이 모호해지는 순간이었으나 구경하는 재미는 쏠쏠했다.
누군가는 무도회장에 온 것처럼 화려하게, 누군가는 동네 마실 가는 것처럼 후줄근하게, 어그로를 끌기 위해선지 특수한 스타일을 자랑하는 이도 종종 보였다.
“와. 평소에 전투복 입은 거만 보다가. 저렇게 하찮은 모습 보니까 사람이 막 달라 보이네.”
그간 헬하임 사냥 파티에 섞여 얼굴을 보지 못했던 헤른이 실소했다. 하지만 헤른도 비치웨어 아바타를 입은 상태라 평소와는 이미지가 사뭇 달랐다.
심지어 우래귀는 리조트 내에 있는 쇼핑몰에서 현대식 옷을 사, 현실의 향수를 느끼고 있었다.
퍽 웃겼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왜 리조트에 몰려드는지 알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정말로 현실 어딘가에 평범히 존재한다는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실컷 놀고 푹 쉬세요. 내일부터 또 빡업 해야 하니까요.”
비싼 대관료를 지불한 연회 룸에서 대략 두세 시간이 지났을 무렵, 신사는 강렬한 한마디를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에 악마라고 중얼거리던 자토가 허공을 두들기다 번쩍 손 들었다.
“우리 펍에 가요! 소소 언니네도 펍에 간대요! 가서 술인지 뭔지. 그거 한 번 먹어봐요!”
헬하임 사냥 파티에서 소소와 친해진 자토가 해맑게 제안했다. 그러나 이노센트는 심드렁했다.
“그거 알코올 하나도 없다니까?”
“맛도 이상하다던데?”
행복도 한 마디 얹었다. 그러나 자토의 호기심은 꺼질 줄 몰랐다.
“그래도 먹어보고 싶어요!”
“완전 개 똥맛이라는데 너도 참 특이하다.”
그러면서도 똑같이 호기심이 생기는지, 이노센트가 슬쩍 리디안을 쳐다봤다.
어떠냐는 무언의 물음에 리디안의 눈이 반짝였다.
사실 리디안도 소문의 ‘그것’이 무슨 맛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는데, 기다렸다는 듯 주변에서 손을 들기 시작했다.
헤른과 페이지, 우래귀, 파파, 노네임. 뒤이어 백검이 이노센트의 옆에 붙었고 마제스티와 크라이그도 슬쩍 발붙였다.
레기온의 간부들이 한꺼번에 움직이니, 타 길드원들의 시선이 쏠렸다.
“갑자기 어디 가요? 펍? 어, 나도 갈래.”
“나도.”
결국, 대인원이 파라디스 신규 음료를 마시기 위해 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