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129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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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나긴 인생의 여정은 폭풍 치는 바다를 지나
금방 부서질 것 같은 배에 의지해
지난날의 모든 행적을 기록한 장부를 건네야 하는
모든 사람이 거쳐 가는 항구에 도달했다네
–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말년에 쓴 소네트에서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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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은 직접 만든 푸른 안료 가루에 물을 살짝 개어 냈다. 안료 가루는 물과 함께 서로 뒤섞여가며 덩어리를 지게 뭉치었다.
강석은 대충 붓의 끄트머리로 되직해진 덩어리를 이리저리 으깨고 휘저었다. 그의 손길은 느렸다. 채팅이 안달을 하건 말건, 강석은 천천히 움직였다.
물론 조금이라도 빨리 작업하고 싶은 것은 강석도 마찬가지였으나 프레스코란 급하면 오히려 망치는 작업이었다.
‘빨리 말라라···’
안료가 물과 젤리 그 사이 어딘가의 시럽처럼 될 때까지 휘저으며 강석이 정면을 응시했다. 방금 바른 회반죽에는 아직 물기가 남아 있었다.
붓으로 섣부르게 손을 대었다간 석고 표면의 얇고 연한 막이 찢어지고 말리라.
프레스코란 회반죽을 겹쳐 발라 만들어진 얇고 연약한 막에다가 물감을 그려넣어 벽과 같이 굳히는 방식이었기에 저 막이 찢어져버리면 소용이 없었다.
강석은 제 모든 인내를 끌어다가 수양하듯 먹을 가는 선비처럼 안료를 휘저었다.
안료가 완성되면 그 다음 안료를, 그 다음 안료가 완성되면 또 그 다음 안료를···그렇게 강석이 섞고 휘젓고 으깨고 푸는 과정을 일곱번째 반복했을 무렵.
강석의 눈동자에 얇고 연한 막이 기름처럼 하얗게 굳은 것이 보였다. 정확하게는 물기가 사라져 건조해진 것이었다.
‘되었다.’
준비가 되었다는 듯 자신을 반겨오는 그 질감은 전생에도 많이 보던 것이었다.
제 인내의 고삐를 푸는 하얀 회반죽을 바라보며 강석이 거세당한 수퇘지의 억센 털만 골라 만든 붓을 꺼내들었다.
‘이거 구하느라 힘들었지.’
석회 성분 때문에 다람쥐털이나 흰 담비 털들은 쉽게 망가지고, 유화에 쓰이는 돼지털이나 일반적인 인조모들은 강석의 입맛에 맞지가 않았다.
강석이 슬쩍 붓들을 늘어놓은 판자를 바라보았다.
붓들이 한 다스 이상 크기와 모형별로 늘어져 있었다. 저기 늘어진 모든 붓이 구하기가 이제는 하늘에 별 따기라는 거세당한 수퇘지의 억센 털붓들이었다.
마이애미로 오기 전에 청화예고 서양화 담당이자 벽화동아리 담당 선생님인 주사랑의 도움이 없었다면 시간 맞춰서 구하지 못했으리라.
– ‘······난 네 팬이니까.’
팬.
지지자.
청화예고 선생님들과는 상상도 못하던 관계였다.
강석은 꼬물거리며 붓을 손가락을 퉁퉁 튕겼다.
주사랑 선생님이 시선을 피하며 연필로 관자놀이를 긁적거리던 모습이 기억 속을 스쳐지나갔다.
– ‘청화예고 만능실력주의인 건 알았지만 졸업생한테도 해당되는 겁니까?’
– ‘그럴리가 있나.’
희망이라곤 한 점 없어보이는 죽은 안광이 강석을 바라보았다.
정과 낭만이라고 한톨도 없어 보이는 검은 눈동자. 사랑스러운 이름과 달리 굉장히 차가운 주사랑 선생님 특유의 눈동자가 강석을 비추었다.
– ‘그럼 왜 이렇게 도와주십니까?’
서양화 전공도 아니었고,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도 졸업하고 끝났는데. 강석은 뒷말을 삼켰다.
– ‘뭐···그렇게 보지 말아줄래.’
– ‘······.’
– ‘그래. 보는 건 네 마음이지. 내가 뭐라하겠니. 마음 껏 보렴.’
– ‘············.’
– ‘아아 정말. 그래 왜 도와주냐고? 뭐 별 거 있겠니. 회화 수업에 한 번도 들어오지 않았다지만 벽화 동아리였던 너를 방치했던 게 부끄럽기도 하고······음 이건 너무 포장이 과한가? 뭐 사실 내가 그런 거 신경 쓸 인물은 아니지. 난 돈 받고 일하는 교사지, 다른 선생님들처럼 사명감 넘치는 선생님은 아니거든.’
– ‘······예?’
– ‘뭐 됐어 됐어. 대충 넘어가. 그냥 요약하자면, 반해서야.’
– ‘예?’
주사랑 선생님이 시선을 피했다.
슬쩍 탈색한 머리 사이로 연필을 꼽아낸 주사랑 선생님은 관자놀이를 연필 뒤 지우개로 긁적거리며 중얼거렸다.
– ‘네 그림 말이야. 그림. 그림에 반했다고. 네 그림 멋있잖아.’
– ‘아.’
– ‘정말···실례야. 내가 너한테 반했다가 쇠고랑 찰 일 있니.’
– ‘·········.’
– ‘아아, 농담이 안 통해. 어쨌든 네 그림에 반했다는 건 진짜야. 혹시 그 말 아니?’
– ‘무슨 말이요?’
– ‘모든 화가는 결국 자신을 그려낸다.’
주사랑 선생님이 슬쩍 자신을 바라보았다. 강석은 그때만큼은 표정을 숨기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해야만 했다.
모든 화가는 결국 자신을 그려낸다.
그 말을 했던 이는, 자신을 후원했던 로렌초 데 메디치의 조부. 코시모 데 메디치였으니까.
– ‘네 그림과 조각을 보고 있으면 얼핏 보기엔 위대한 신과 자연을 표현한 것 같지만 그 안에는 인간이 보여. 끝없이 인내하고, 노력하고, 결국은 자신이 원하는 걸 이뤄낸 위대한 예술가 한 명이 말이지.’
주사랑이 그 속을 알 수 없는 검은 눈동자로 강석을 바라봤다. 마치 위대한 예술가가 눈앞에 있다는 듯이. 그러나 그것도 잠깐. 주사랑은 곧 머리를 벅벅 긁었다.
통 크게 입은 스카잔이 그녀의 어깨를 타고 흘러내렸다.
– ‘내가 꼬마를 두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람.’
– ‘·········.’
– ‘모든 화가는 결국 자신을 그려낸다더니···그렇지 않니. 학교에서 모든 사람들이 무시하고 깔봤지만 계속해서 열심히 노력하던 사람이 결국은 모두가 놀랄만한 작품을 그려낸 예술가의 작품을 보고 안 반하는 화가가 어디있겠어.’
화가라면 말이야.
교사 이전에 자신은 화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강석이 뭐라고 대답해야하지 고민하는 그 순간. 주사랑이 낯부끄럽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 ‘아아. 난 오늘치 부끄러움은 다 써버렸어. 내가 열살 넘게 차이나는 꼬마를 두고···아아. 정말 어디가서 내가 이런 소리 했다고 하지 말아라. 부끄러우니까.’
연필을 비녀 대신 꽂아 흘러내리던 탈색모를 대충 고정한 주사랑이 천천히 등을 돌렸다.
– ‘난 수업이 있어서 먼저 갈게. 그럼, 다음에 보자. 석아.’
석아.
······주사랑 선생님치고는 말도 안되게 부드러운 부름이었지.
강석이 손가락으로 털을 퉁퉁 튕겨내었다. 뭔가 억센 털이 지문을 쓸 때마다 간지러워지는 것 같았다.
강석이 카메라가 안 보이는 곳에서 한참을 입꼬리를 삐죽대었따. 그러는 사이 점점 마음이 가라앉았다.
마음은 점차 가라앉다가 모든 것이 평평해지고 고요함만이 남았다.
평정심.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프레스코를 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필수였다. 강석은 붓에서 빠져나오는 털이 없는지 점검이 끝난 붓과 안료그릇들을 들고 다시 프레스코 앞에 섰다.
사다리 하나에는 도넛쿠션, 나머지 사다리 하나에는 판자를 올려놓고 판자 위에는 물감 팔레트를 놓듯이 안료들을 하나둘씩 얹어놓았다.
그리고 작은 물통도 사다리에 대충 걸어놓은 강석이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처음으로 작업해야 하는 것은 배경이었다.
강석은 붓에 안료를 가득 묻혔다. 물기가 배인 안료가 붓에 가득 묻다 못해 뚝뚝 떨어졌다. 강석은 엄지와 검지를 붓 쪽으로 가져갔다.
본래 프레스코 화가들은 여분의 물기를 꽉 제거를 해야 한다고 배운다. 그래야 유화같이 바짝 마른 색감이 나오는 법이었다. 그러나 강석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강석은 엄지와 검지로 안료를 덜어내다가 멈췄다.
살짝 물기가 배어있는 붓이 느껴졌다.
강석은 전생에서 미켈란젤로일 적 그랬듯, 이번에도 안료를 물에 코팅한 것이 묽게 하여 붓에 잔뜩 묻혀 칠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렇게 하면 프레스코가 말랐을 때.
수채화 같은 투명한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선명한 색감도 중요하지만, 인위적인 색감은 이 푸른 프레스코에 옳지 않았다.
강석은 화가이기 전에 조각가였고, 조각가는 입체미를 포기하지 않는다.
– ‘모든 화가는 결국 자신을 그려낸다.’
진정한 자신은 조각가다.
강석은 그걸 잊지 않고 있었다.
3차원의 예술을 이 평면에 표현해내리라.
그렇게 다짐하며 강석이 붓을 휘둘렀다.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경이로운 속도가 강석의 손끝에서 다시 한 번 발휘되었다.
수정이 불가능한 부온 프레스코 방식으로 절대 망설이는 법이 없고, 결코 늦춰지는 법이 없는 강석의 프레스코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강석은 바다를 가로질러 올라오는 파도처럼 멈추지 않고 물의 그림자, 그라데이션, 하이라이트 순으로 손을 뻗어나갔다.
손가락 사이사이에는 붓들이 꽂혀 있었고 안료와 물기가 잔뜩 밴 붓을 여러개 들고 하면서도 그 신기와 같은 균형감각은 안료 한 방울도 실수로 벽에 떨어트리는 법이 없었다.
강석은 춤을 추듯 붓들을 놀렸다.
살짝 살짝 찍어내고 벽에서 실시간으로 색을 배합하고, 오로지 붓만으로 경이롭게 완성되어가는 프레스코는 회반죽 아래에서 배합되어갔다.
잠자리의 투명한 날개가 떠오르듯 한가지 색으로 정의할 수 없는 비늘같은 물줄기를 타고 투영되는 것은 빛과 바다였다.
빛이라도 뿌린 것 같은 눈부신 색깔들이 하얀 회반죽 위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저 바다와 근육만이 있을 뿐인데 그 안에서 폭풍이 몰아치고 큰 파도가 솟구치는 강렬한 시원함이 덮쳐오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시간의 흐름도 잊고 카메라를 통해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확신했다. 이 카메라를 통해서 보는 풍경보다 실제로 보는 저 바다는 훨씬 아름다울 것이라고.
세상 단 한 곳에서만 볼 수 있는 전설 속의 바다의 편린을 보는 기분이었다.
조용한 침묵 속에서 강석은 파도를 그렸다.
깊은 바다로부터 올라오는 혈기왕성한 파도가 하얀 벽을 타고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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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하루가 꼬박 지나, 하얀 건물 창문 너머에서 쏟아지던 햇빛이 사라지고 샹들리에의 빛과 램프에 의지하여 작업을 이어가던 강석이 천천히 숨을 고르며 벽에서 떨어졌다.
거의 벽과 한 몸이 되어가는 느낌으로 달라붙어있었다는 걸 그제야 인식한 강석이 몰려오는 저려옴에 입꼬리를 씰룩였다.
아직 회반죽은 완전히 마르기 전이었다.
그리고 농구선수 네 명이 누워도 공간이 남을 정도로 큰 공간은 오로지 푸른색과 하얀색에 가까운 살구빛으로 덮여진지 오래였다.
푸른 프레스코의 하루치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강석이 램프를 들고 천천히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다. 도넛 쿠션이 상당히 성능이 좋은지, 엉덩이 뼈에서 느껴지는 뻐근함은 없었다.
압박이 느껴지는 복대를 풀며 강석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푸름이 그곳에 있었다.
시원하지만, 맛보면 강렬한 갈증에 휘말리게 하는 바다가 자신을 덮쳐오고 있었다.
[(₩100,000) 이게 그림이라고···?] [(₩100,000) 당장 벽에서 튀어나올 것 같게 생긴 게···?] [(₩100,000) 이게 진짜 그림이라면, 난 그렇다면 여태까지 제대로 된 그림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강석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얼핏 보면 당장이라도 쏟아져내릴 것 같은 파도와 움직일 것 같은 근육은 평면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입체적인 맛이 있었다.
공간감.
입체감.
현실감.
그 무엇하나 빠지는 데가 없는 채색본이었다.
강석은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회반죽을 벽에 발라, 저 허벅지와 이어지는 하체 부분도 작업하고 싶었다.
하지만 강석은 천천히 미련이 남는 발걸음을 숙소로 돌렸다.
[오빠 몸 조심하면서 작업해.] [엄마아빠가 걱정하니까!]작업 중간에 도착해있던 문자를 확인한 강석이 카메라를 켜놓은 채, 하얀 건물을 단속하고 밤하늘 아래를 걸어갔다.
내일이 기다려지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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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 후.
시모레 카사니는 하얀 건물 앞에서 쭈그려 앉아 있었다. 강석이 회반죽을 다 떨어져서 강제로 휴식을 취하게 된 차에, 마이애미 맛집을 데려가주겠다고 약속해서였다.
‘맛있어 하겠지?’
서핑을 끝내고 온 지 얼마되지 않아 뚝뚝 물기가 떨어지는 머리를 대충 털어내며 시모레 카사니가 오늘의 계획표를 점검했다.
시모레 카사니 머릿속에 강석은 이미 신과도 같은 위대한 예술가였다. 그런 강석을 모시게 되었으니 실수는 없어야 할 터.
만일 계획이 어그러졌을 때를 대비하여, 플랜B는 물론 플랜C와 D까지 짜놓은 시모레 카사니가 천천히 계획표를 읽어내려갔다. 오늘 하루 동안의 계획을 10분 단위로 짜놓았기에 점검할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시모레 카사니가 집중해서 계획표를 읽는 사이.
강석이 천천히 초여름과 같은 날씨가 적응이 안된다는 얼굴로 저 멀리서 걸어왔다.
그것도 모르고 시모레 카사니는 계획표의 한 대목을 읽고 있었다.
‘···플랜C 17-3. 루카스 가르시아의 라이브 드로잉쇼.’
130. 선명한 하늘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