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137
137
* * * *
시모레 카사니가 눈을 끔뻑였다.
큰 눈이 끔뻑끔뻑거릴 때마다 밤하늘에 뜬 달이 시야에 잡혔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한적해진 바다에 나와 잔잔한 파도위에 흐르는 달빛을 바라보던 카사니는 방금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 ‘(자네. 내 직원이 되지 않겠나?)’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먼 이국 땅의 친구, 강석의 제안이었다.
강석은 마레의 기념품샵에서 자신의 직원으로 일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는 느긋하게 말을 끊어가며 설명했다.
시모레 카사니는 그 모든 게 막연해서 그가 몇 번이나 말해주고서야 완전하게 받아들였다.
– ‘(···그러니까 석 정리하자면 나보고 마레의 시설 총책임자가 되어줬으면 한단거지? 평소에는 마레의 기념품샵 카운터에 서서 공급되는 상품들 계산도 좀 해주고, 직원들 몇 명 뽑아서 같이 운영도 하고, 입장료 결제도 겸사겸사 하고, 직원들 로테이션 돌리면서 바다도 나갔다 들어오고···)’
– ‘(해수는 프레스코에 닿을 일 없게 잘 씻고.)’
– ‘(잘 씻기만 하면 서핑보드도······보드도···)’
– ‘(그래. 원하면 같이 팔아도 좋네.)’
가 있는 방이 기념품샵이 될테니 보드들이 걸려있으면 꽤 어울리겠어. 서핑보드 같은 개인적인 판매상품을 가져오겠다면 그에 대한 마진도 괜찮게 떼워주지.
– ‘(···월급도 주고?)’
– ‘(당연히 월급을 주겠지.)’
난 돈을 안 주고 부려먹는 악마같은 게 아니니까.
기본 주고, 기념품을 많이 팔면 성과금도 챙겨주겠네. 강석의 뒷말을 곱씹던 시모레 카사니가 참았던 숨을 뱉듯 웃음을 터트렸다.
강석이 나른한 투로 내뱉는 말들은 흐르는 바닷물처럼 겉으로는 고요하고 잔잔해보였을지언정, 실제로는 바다 아래를 흐르는 물살의 속도마냥 흔들리게 만들었다.
제 속에서 폭풍이 일고 있었다.
– ‘(한동안 바다에서 서핑만 즐길 거라지 않았나?)’
서핑타면서 남은 시간엔 내 가게나 돌봐주게. 그렇게 말하는 강석은 정말 사람을 바다로 홀리는 세이렌 그 자체였다.
악마의 속삭임 같이 달았다.
어떻게 제 마음에 드는 제안만 하는가.
너무 달아서 오히려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시모레 카사니가 너무 달아서 두통이 올 것 같은 표정으로 눈을 끔뻑거리며 정면을 응시했다.
시모레 카사니는···아버지와 어머니의 손을 잡고 바다를 돌아다녔을 때부터 바다가 좋았다.
바다 위에 보드를 얹고 물살을 가로질러 파도를 쫓아갈 때의 그 치열함이 좋았다. 파도를 올라타 보드 위에서 걷고 있노라면 물 위를 걷는 자가 된 것 같은 짜릿함이 좋았다. 파도의 물결 너머로 세상이 보일 때의 그 산란하는 빛이 눈부셔서 좋았다.
‘솔직히 석이 건물을 사줘서 돈이 갑자기 많아져 버렸지.’
딱히 할 것도 없었다.
서핑으로 세상을 제패하겠다는 야망도 없었다.
시모레 카사니는 그저 바다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는 유유자적한 삶이 좋았다.
돈도 있겠다.
바다도 있겠다.
서핑보드랑 함께할 수 있다니.
이번 생에 다시는 발견하기 힘든 최고의 직장일지도 모른다. 시모레 카사니는 그런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마레는 우리 부모님이 내게 물려주신 유산이기도 하고······’
마레는 그 하얀 건물은 애당초 부모님의 청춘이었다.
저 하나를 이끌고 이탈리아에서 건너와 휴양도시나 다름 없는 마이애미 파도에 인생을 내걸으셨지.
제 부모님은 자신과 다르게 야망과 꿈이 있었다. 건물을 세웠고, 서핑샵과 서핑강습교실을 운영했다. 보드대여 장사도 하셨던 탓에 항상 건물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어릴 때 나는 그 틈에서 내 몸보다 커다란 보드를 들고 사람들을 바라봤다.
저 하얀 건물이 부모님에겐 청춘이라면, 시모레 카사니에겐 어린 시절이었다. 추억이란 소리였다.
이제 곧 마레는 다시 그때처럼 사람이 바글바글 들끓을 터였다.
한적했던 하얀 건물 입구에 홀로 걸터앉아 누군가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제 모습이 떠올랐다. 이제 그런 때도 끝난 건가.
바다로 나올 때 홀린 듯 가져왔던 제 보드를 쓰다듬었다.
‘······나쁘지 않네.’
흉포함을 감춘 밤바다를 바라보니 가 떠올랐다. 그건 바다 그 자체였다. 시모레 카사니가 보드에 몸을 기댄 채, 바다를 바라보았다.
시모레 카사니는 바다에 그저 몸을 맡기고 살고 싶었다. 바다를 응시하던 시모레 카사니가 중얼거렸다.
“(그 바다에 몸을 맡기고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어디로든 결국은 통하는 바다와 달리, 그곳은 유일하게 마레의 문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 바다였다. 그런 특별한 바다에 몸을 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시모레 카사니는 조용히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강석에게 직원으로 일해보겠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
.
.
짙은 남색에 젖은 밤.
초여름 특유의 염분이 많은 밤공기를 느끼며 강석이 핸드폰을 내려다봤다. 시모레 카사나리부터의 연락이었다. 바지사장이나 다름없는 총책임자가 되겠다는 소리였다.
강석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리고는 곧장 전화버튼을 눌러 시모레 카사니에게 연락했다.
본론 위주로 짧고도 빠르게 이어진 대화의 마무리 타이밍은 언제나와 그렇듯이 강석이 잡아챘다.
“(···그럼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 마레에서 만나서 하지.)”
ㅡ ············
“(카사니?)”
듣고 있는 건가?
묵직한 침묵에 강석이 한쪽 눈썹을 들어올렸다.
그렇게 생각함과 동시에 핸드폰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ㅡ (어어, 내일 마레에서 보는 거 좋은데 내일부턴 나는 존댓말을 써야 할 까? 까요?
“(아아.)”
그런건 아무렇게나 하게. 뜻만 통한다면 이런저러한 자질구레한 것들은 쓸모없으니까.
그렇게 말한 강석은, 익일 약속시간에 대해서 간략하게 전달한 뒤 전화를 끊었다. 강석의 눈 앞으로 저 멀리 일렁이는 파도와 만개한 듯 빛을 뿜어내는 만월이 잡혔다.
당장 열 수는 없을 거다.
앞서 카사니에게 설명했듯이 보수 작업도 해야 하고, 블룸 미술관과의 협업도 맺어야 할 테고, 기념품 샵 등등 공간을 채울 만한 것들을 마이애미로 데려오면 직원들도 뽑아야 할 거고, 운영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입장료는 얼마로 해야 할지 등등을 정해야 할 터였다.
해야할 것이 산더미였지만 우선, 마이애미에서 가장 급하게 했어야 할 일들은 끝을 냈다.
내일 카사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카터의 보존 작업 공사와 관련한 일을 상의하고 인수인계를 끝내면···거기까지 생각한 강석의 눈동자가 밤중에서도 이채를 발했다.
타이밍 좋게 어딘가로 연결되던 통화음이 멈추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ㅡ 석이인감?
양선구였다.
오랜만에 들려오는 한국말에 강석이 슬쩍 입가 끝을 끌어올렸다. 어째서인지 들려오는 한국말이 정겨웠다. 강석은 낮보다는 시원해진 바람을 뺨으로 맞으며 말했다.
“예. 접니다. 이제 곧 이탈리아로 넘어갈 것 같아서요.”
ㅡ 그래? 작업장은 구했고?
“아뇨. 그것보다·········혹시 사흘 내로 이탈리아로 넘어갈 것 같은데 아푸안 알프스 산맥이 일반인에게도 지금 열려있습니까?”
ㅡ 아푸안 알프스···카라라?
아푸안 알프스 산맥.
그곳에 카라라 대리석 채석장이 있었다.
ㅡ 투어야 열려있지. 왜, 가보고 싶은감?
밤중에 들려오는 양선구의 목소리에 강석이 고개를 숙였다. 지나가는 기억 속에서 부채를 선선히 흔들던 양선구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쯤 은근하게 얄미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을 기다리고 있을 게 눈에 선했다.
그런데도 얄밉지가 않았다.
제가 양선구 선생님을 어떻게 얄밉다 생각하겠나. 강석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가보고 싶네요.”
대답하는 강석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실려 있었다. 양선구는 기분 좋아보이는 강석의 목소리에 말을 멈췄다가 대답했다.
ㅡ 라이브 스트리밍은 봤었는데 이번 가 꽤 즐거운 작업이었나보군. 기분이 좋아보여.
“좋습니다.”
그리고 카라라를 다시 몇백년에 시간을 뛰어넘어 방문할 생각을 하니 더더욱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가볼 수 있는 걸까.
강석이 즐겁게 대답을 기다리는 그때.
양선구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넘어왔다.
ㅡ 뭐···궁금하다면야, 걱정 마라. 내가 있지 않남. 투어 정도가 아니라 채굴장 안에도 들어가볼 수 있을 거야. 기대되남. 으잉?
나와 간다면 가능하다는 목소리에는 조각용 석재만 수십년을 수집해온 사람으로서의 자부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충분히 그럴만했다.
양선구 선생님은 자신이 구해달라는 그 어떤 석재도 어렵지 않게 구해다주셨다.
대한민국에서 직접 돌을 조각하는 사람들 중 중국시장 쪽을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다 양선구 선생님을 거쳐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발이 넓어보이셨지.
ㅡ 으음. 그래. 선글라스랑 자외선 차단제를 챙기는 게 좋을 거야. 있긴 한감? 그곳은 지나치게 하얗고 눈이 부시거든.
“챙겨갈게요.”
ㅡ 선크림이야 안 챙겨와도 상관없지만, 선글라스는 꼭 챙겨와야 해. 거기는 안경점도 없고 내거는 석이 네 녀석 머리크기가 워낙 작아 안 맞을 테니···으잉?
“알겠어요.”
ㅡ 그래. 석이 네 녀석의 눈이 망가졌다가는 미술계에 희대의 악랄한 사람으로 내 이름이 박힐 테고, 외모가 망가졌다가는 이제 8만 명이 넘어가는 석이 네녀석 팬클럽에 몰매를 맞을 테니···으으.
양선구 선생님의 걱정 아닌 걱정을 들으며 강석이 슬쩍 웃음을 흘렸다.
카라라 채석장.
그곳은 눈으로 뒤덮인 설산보다 희고 하얗다보니 엄청난 햇빛 반사를 일으켰다. 대리석 특유의 광질에 의해 알갱이들이 진주마냥 빛을 반사하던 모습을 떠올린 강석으로서도 선글라스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강석이 수면 깊은 곳, 전생의 기억을 끄집어내며 그곳의 풍경을 떠올렸다. 전생을 떠올린 후로 일부러 과거와 연관된 것은 찾아보지를 않았다.
그렇다보니 세월에 의해 깎여나갔을 카라라 채석장이 궁금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였다.
양선구가 은근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ㅡ 그러고 보니 이번에는 루나 대리석을 채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루나 대리석.
흰색 또는 청회색 대리석이 주된 유형인 루나 대리석은 로마 시대부터 조각이나 건물 장식에 사용되던 석재였다.
그 루나 대리석 중에 달과 같이 빛난다하는 순백색의 루나 대리석은 그 중에서도 최고였다.
그 강도와 광택.
강석이 루나 대리석을 잊을 수 없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망치와 끌로 아무리 내리쳐도 받쳐주는 단단함은 강석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묘사를 파고 또 파고 들어도 버텨주는 돌이란···강석도 조각을 할 때면 루나 대리석에 대해서 찾아봤었다.
하지만 루나 대리석은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 소진을 거의 다해 채굴은 이제 하지 않는다고 들었었는데 루나 대리석을 채굴한다고?
“루나 대리석을 채굴해도 되는 겁니까?”
ㅡ 으잉? 아아, 역시 아는 모양이지? 카라라 채석장에 있는 루나 대리석은 거의 소진이 다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 카라라가 아닌감.
“···아직 남아있단 말이군요.”
ㅡ 그렇지. 그 아름다운 광택은 조각가들에겐 유혹이지. 항상 공급은 수요가 있기에 이뤄지는 거 아니겠남.
강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루나 대리석을 채굴한다니 관심이 안 갈래야 안 갈수가 없었다. 이번 작품이 꼭 루나 대리석이야 하는 건 아니었지만, 갖고 싶었다.
“선생님. 루나 대리석의 주인이 정해져 있답니까?”
ㅡ 으음.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어떻게 할까남. 알아봐 주랴?
“예.”
주인이 있다면 모를까, 주인이 없다면 가지고 싶었다.
강석은 솔직하게 욕망에 따른 대답을 내놓았다.
알겠다는 대답을 들으며 바다 위에 떠있는 달을 바라봤다.
* * * *
그리고 사흘 뒤.
강석은 선언했던대로, 이탈리아 친퀴테레에 도착했다.
카라라 채석장과 불과 1시간 거리에 있는 곳이었다.
138. 4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