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173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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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영롱한 색과 함께 찬란한 별
내가 자라난 곳은 과분하게 빛난 곳
1564, 미켈란젤로가 [신곡]을 집필한 단테에게 바친 소네트에서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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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시, 시시신이시여.”
“·········시시신?”
신이 되물었다.
그와 동시에 조동범의 눈이 크게 뜨였다. 신이 아니었다. 수백수천개의 빛에 꿰뚫리고 있는 인영은 신이 아니라 강석이었다. 허억. 조동범이 이 엄청난 작품과 같은 장면을 바라보며 숨을 참았다 내쉬었다가 다시 참았다.
예술가로서의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이건 남겨야 한다.
조동범의 입술이 감동으로 물든 상황에서도 고집스레 움찔거리며 열렸다.
“카, 카메라.”
“······음?”
뭐라고요?
강석이 고개를 기울였다.
고개가 기울이자 그림자의 궤적이 달라졌다. 허어억! 조동범이 다시 숨을 참았다. 조동범은 험상궂은 제 얼굴과 반대되는 것. 한 마디로 미(美)적인 것에 취약했다.
저 신이 강림한 것 같은 영험하고 경이로운 광경을 보아라. 성스럽고 성스럽도다. 찬란한 빛이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를 꿰뚫어 그림자가 어둠을 집어삼키고 자라나 있었다.
연예인들도 화보를 찍을 때는 조명을 비추어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준다던데 저 빛들이 딱 그것이었다.
남성스러운데도 아름다웠다.
가느다란 실이 햇살처럼 쏟아져내려오는 그걸 가능하게 만들었다. 강석이 일전에 했던 말마따나 빛은 최고의 연출가였다.
꼭 인간이 아닌 것만 같았다. 당장 사라져버릴 것처럼···조동범이 그렇게 생각하며 눈에 힘을 꽉 쥐었다.
이게 작품이지.
이게 예술이다.
조동범이 생각했다.
‘아주 그냥 예술영화 포스터처럼···포스터? 포스터!’
조동범이 눈을 흡떴다.
대체 왜 그러냐는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강석은, 지금 이 순간 빛에 감싸여 있었다. 꼭 찬란한 밤을 닮아 있었다. 낮이 아니고 밤이었다. 찬란한 밤. 우주였다. 푸르고 하얀 빛. 아. 어디서 봤는지 알 것 같았다. 이 빛은 자료사진으로나마 접해보았던 백색왜성을 닮아 있었다.
청백색의 별이 혜성처럼 꼬리를 달고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그것이 하나도 아니고 수백 수천개였다.
조동범은 다시 중얼거렸다.
“카, 카메라로 사진을···”
남겨야해. 이건 남겨야 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손에 쥐어져 있지 않았다. 스승님은 왜 그러냐며 천천히 손을 내렸다. 내리지마! 안 돼! 소리 없는 아우성이 목에서 터져나오는데 손톱칠이 된 섬섬옥수가 제 손에 무언가를 내려놓았다. 카메라였다. 그것도 보통 작가들이 전시회 도록에 실을 작품을 찍을 때 쓰는 그 카메라였다.
전시회로 밥 먹고 사는 작가들은 웬만하면 다룰 줄 아는 카메라였다. 카메라의 기종은 몰라도 사용법은 안다는 그 카메라. 조동범이 천천히 카메라를 들어 올렸다.
조동범의 입이 작게 움직였다.
“사, 사진을 한 방 찍어도 되겠습니까?”
“사진요?”
강석이 되물었다. 그리고는 잠깐 생각을 하듯 눈꼬리가 왼쪽으로 향하더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고민은 짧았다. 강석은 덤덤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찍으세요.”
강석 특유의 무감정한 표정과 쏟아져내려오는 백청빛 햇살이 강석이 우주에서 땅을 딛고 서 있는 것 같은 장면을 완성시켰다.
조동범은 떨리는 손가락으로 셔터를 겨우겨우 꾸욱, 눌렀다. 찰칵. 플래시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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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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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칵찰칵찰칵.
씨엘로 갤러리 한 구석을 가득 채우는 카메라 셔터 소리에 강석이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조동범에게 카메라를 건넨 구미령 관장은 만족스러운 눈으로 이 광경을 멀찍이 서 바라보았다.
가끔씩 고개를 숙이고 머리 위로 박수를 치는 게 굉장히 만족스러워 보였다.
‘언제까지 찍는 거지?’
조동범은 거의 기계처럼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강석이 고개를 더 기울이자 조동범이 연신 감탄을 터트렸다.
“좋습니다! 좋아요! 선생님!”
셔터를 누르는 소리가 빨라졌다. 강석은 잠깐 고민하다가 그냥 두었다. 다 쓸모가 있는 법이었다. 어차피 이 가루들을 다 치워버리면 이런 연출은 다시 할 수 없을 테니까 찍을 수 있을 때 자료라고 생각하고 찍어두는 게 좋을 터였다.
강석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 * * *
그렇게 조동범의 폭주는 30분 가량 지속된 끝에 구미령이 만류하며 끝을 맺었다.
“대표님께서는 지금까지 밤새도록 작업만 하셨습니다. 오랫동안 한 자리에 서 있으시면 건강이 우려되니 이쯤하시죠.”
“아! 그럽죠. 그러고 말고요.”
구미령의 말에 조동범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근데 이 카메라는 어디서 난 거요? 제가 카메라를 원하긴 했는데 아니 이게 누가 준 카메라···”
“접니다. 저에게 주시면 됩니다.”
구미령은 조동범에게서 카메라를 받아들었다.
강석은 세번째 작업을 녹화하고 있던 다섯 대의 카메라를 끈 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구미령에게 걸어갔다.
“구관장님. 카메라 좀 봐도 되겠습니까?”
“네. 대표님 사진인데요, 뭐. 밥은 어떻게 하실 예정이신지···주문해드릴까요?”
강석은 구미령에게서 카메라를 받아들며 고개를 내저었다. 조동범은 아직도 아까의 장면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는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강석은 조동범을 잠깐 바라본 뒤 다시 카메라로 시선을 내렸다.
“아뇨. 어차피 이제 조사장님네 공방으로 가려고 했던 참이라, 가는 길에 조사장님이랑 같이 먹을게요.”
분명 밥도 안 먹고 뛰어왔으리라.
강석은 카메라에 찍힌 사진들을 확인했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검은색 공간은 하얗고 푸른 밤이라도 맞이한 것처럼 청백색으로 찬란하게 물들여져 있었다. 검고 푸른 그림자가 검게 칠해진 벽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진회색 땅에 푸르스름한 반사광이 번진 것까지 바라보던 강석이 카메라를 다시 구미령에게 넘겼다.
“결과물 괜찮네요. 구관장님. 여기에 있는 사진으로 씨엘로 갤러리 오픈 포스터 좀 만들어주시겠어요?”
“네. 그럴게요.”
구미령은 애초에 그럴 생각이었다는 것처럼 차분하게 대답했다. 강석이 감사하다고 대답하며 몸을 돌리려 할 때였다.
구미령이 강석을 불렀다.
“저, 대표님.”
“예?”
“······저, 괜찮으시다면 제가 대표님 종소세 신고를 도와드려도 될까요? 자료를 정리해보려고 하는데요.”
서울 소재지의 경우엔 청년창업 소득공제도 50%만 적용을 받을 터고, 소득세 감면일 뿐 건강보험 등에는 반영이 되지 않으니 경비처리 비용에 대한 부분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는 등 구미령이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다른 세금 부분도···”
애초에 건물주에 주택보유자 등 종소세만이 문제가 아니었던 터라 강석이 살짝 놀란 눈으로 구미령을 응시했다.
국제 갤러리 관장.
그런 대규모 갤러리를 운영하던 사람이 세금에 대해서 무지할 리가 없었다. 적어도 저보다는 해당 방면에서 얻은 노하우들이 많을 터.
“도와주시면 감사하죠.”
“네. 그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구미령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눈가 아래가 살짝 거뭇했다. 피곤해보이는 낯. 저 멀리 보이는 책상에 쌓여있는 종이뭉치들. 변동된 세무법에 대한 서적 몇 권. 강석이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감사합니다.”
구미령은 강석의 감사에 담담히 웃을 뿐이었다.
강석은 그 웃는 얼굴이 고두한과 꽤나 닮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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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 저도 그 포스터 나오면 하나 주시깁니다.”
“예. 뭐···”
“으아싸!”
조동범이 자기도 모르게 신이 나서 외쳤다. 산적 같은 풍채가 농구선수처럼 허공을 찍었다가 바닥으로 내려왔다.
난데 없는 파이팅 포즈에 강석이 바람빠진 웃음소리를 흘렸다.
넘쳐나는 게 포스터일 텐데 그거 하나쯤이야.
강석은 가끔 조동범의 바람이 참으로 소박하다 생각하며 다시 앞을 바라봤다.
길은 넓다랗고, 지나가는 사람은 적었다.
조동범의 공방으로 가는 길이었다.
배송중인 제품이 도착하진 않았지만 이렇게 공방으로 가는 이유는 조동범이 일부 소지하고 있는 게 있다고 해서였다.
– ‘봉규산 유리에 금가루와 은가루, 가스까지···알만 하네요. 우주 유리 공예 말씀하시는 거 아닙니까?’
천체 유리 또는 우주 유리라고도 불리우는 장르.
유리 공예 중 하나였다.
일본과 미국에 있는 몇몇 작가들은 아예 이와 관련한 공예품들만 작업하는 걸로도 유명하기도 했다. 주먹보다 작은 유리 구슬 하나가 못해도 이십여만원이 훌쩍 넘어가니까.
– ‘우주 유리 구슬이라고 해당 작업만 하는 작가도 있고···일부 마니아들한텐 꽤 인기 있는 공예 방법이니까요. 저도 예전에 한창 빠져서 연구를 했었던 적이 있습니다.’
조동범은 작가이면서도 생계형 공방을 운영하는 사람이었다. 지금에야 성공을 거두었지만 성공을 거두기까지 조동범 역시 많은 연구를 거쳐가야만 했었다. 우주 유리 공예도 그 중 하나였다.
– ‘재료는 넘쳐나니까 마음대로 쓰세요.’
공방에 있는 모든 것이 스승님 것이나 마찬가지다. 조동범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젠 진짜로 스승님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스승님의 유리성형과 조형을 옆에서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가 충분했다.
세계에서 주목 받고 있는 거장의 작업이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기회였다.
그리하여 이렇게 강석과 둘이서 조동범의 공방으로 걸어가는 길이었다.
조동범은 걸어가며 생각했다.
‘그나저나 재료도 재료고, 난도가 높은 편이라 바로 하시기에는···아니지. 스승님이시지.’
조동범이 걱정 비스무리한 것이 고개를 들려는 찰나,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강석은 부정을 부정하는 자였다. 그라는 사람에게서 불가능이란 단어만 삭제시킨 것처럼 무엇이든 능하니 이번에도 그럴 게 분명했다.
조동범은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조동범은 앞서 걷는 강석을 바라보았다. 환한 햇볕이 강석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우거진 나무 아래를 걷는 강석의 어깨에 하얀 빛무리가 흔들거리며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강석이 가로수 아래를 걸으며 생기는 현상이었다.
조동범은 그런 강석의 어깨를 바라보며 아까 보았던 장면이 생각나 멍하니 입을 벌렸다. 아니지. 조동범이 멍해지는 정신을 바짝 부여잡았다.
아까는 정신이 없어서 밥 먹으러 가자는 스승님 말에 홀린듯 따라 움직였었지. 그래서 확인도 제대로 못했었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아까 보았던 청백색 빛이 매우 신경쓰였다.
그런 수백수천개의 찬란한 궤적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수가 없었다. 적어도 조동범의 상식선에선 그랬다.
“···그런데 스승님.”
“예?”
이제 스승님이라고 불러도 딱히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는 강석을 바라보며 조동범이 입을 열었다.
“아까 그 푸르고 하얀 빛줄기들은 죄다 뭡니까?
“작품이요.”
“···작품이요?”
“ 연작의 세번째 작품입니다. ”
강석의 나지막한 말에 조동범이 기억을 더듬었다.
일전에 밤하늘 연작에 대해서 물어보자 강석은 그렇게 대답했었다.
– ‘···혹시 도대체 뭘 만드시려는 겁니까? 연작은 대체 어떤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는 겁니까?’
– ‘···기사와 왕. 그 뒤에 흐르는 밤, 그 끝에 여신이요.’
조동범이 깨달았다.
기사는 .
왕은 .
흐르는 밤은 .
아까 보았던 그 푸르른 하얀 빛줄기들이 별이 흐르는 밤이었던 게 분명하다. 문을 열었을 때. 스승님은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 작품이 있는 거다. 조동범이 돌아가서 그 작품을 구경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앞을 응시했다.
“······완성하신 겁니까?”
“예. 은 완성했습니다.”
강석의 말에 조동범이 또 하나를 깨달았다.
그럼 지금 공방으로 가서 만드는 것은···나머지 하나겠구나.
달은 기사가 되어 맨 앞을 지키고 서있고, 왕은 하늘에 떠서 사람들을 비추고 있고 흐르는 밤은 공간을 꿰뚫는 별이 되었으니 완성되지 않은 것은 하나.
여신이었다.
174. 아름다움이 나로 하여금 하늘을 향하게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