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190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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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es endet, was entstehet.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 미켈란젤로 시에 의한 3개의 가곡 중, 제 2곡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Alles endet, was entsteh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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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흙을 퍼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뒤. 강석은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머릿속이 팽이처럼 빠르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강석은 머릿속에서 설계도를 그렸다.
필요한 재료들 또한 한 두 종류가 아니었다.
우선 첫 번째.
“선생님.”
“음.”
양선구가 말해보라는 듯 시선을 강석에게 주었다. 그의 뒤로 돌 무더기가 보였다. 아주 가지런히 정리되어 언뜻 보면 높은 벽이라고 할만큼 잘 관리된 돌들이었다.
돌 수집가.
양선구는 조각가이면서 돌 수집가였다. 그리고 양선구가 돌로 취급하는 것은 그 종류가 매우 다양했다.
“혹시 장미석영도 취급하십니까?“
장미석영. 장미수정이나 홍수정이라고도 불리우는 천연석. 철, 망간, 타이타늄이 들어있어 장미빛을 띠는 석영 종류를 일컫는 말이었다.
양선구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질문에 질문으로 답했다.
“투명한 걸 찾는 건감?”
“예.“
석영이 장미빛을 띠는 일은 드물며 그 중에서도 자연에서 만들어진 투명한 장미석영은 더욱 찾기 어려운 법이었다.
그것이 수가 많지 않은 것일수록 더욱 귀해지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꼭 투명한 것만 필요한 건감?”
“불투명한 것도 필요하긴 한데 투명한 건 구매하려면 시간이 꽤 걸리니까요.”
“시간이 꽤 길어진다라···빨리 구해야 하는 거구만.”
양선구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가공 전이고 기왕이면 크고, 색깔이 선명할수록 좋습니다. 가격은 흥정없이 부르시는대로 드리겠습니다.”
이제야 알겠다. 양선구가 수염을 휙, 쓸었다. 평소에 어머니가 싸준 도시락을 먹거나 같은 국밥을 삼시세끼 막게 되어도 군말이 없고, 편의점에서 파는 포도음료를 좋아할 정도로 검소한 녀석이 돈을 쓸 데는 딱 세 군데였다.
가족. 땅. 작품.
지금 이 순간에 빨리 구해야하고 말이 길어지는 것을 보아하니 작품이었다.
‘가족에게 선물할 때 저렇게 깐깐히 따지는 녀석이 아니지.’
강석이 동생에게 물감을 선물해줄 때부터 알아보았다. 양선구가 궁금증을 해결해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어보였다.
“장미석영에 투명도와 색까지 따지는 것을 보아하니 유리 배합용으로 쓸 생각인가 보구만?“
“전부는 아니어도 일부는요.”
강석이 긍정했다. 판유리는 배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장미석영 역시 그 배합 종류 중에 하나였다.
“불투명한 것도 있는데 그것도 줄감?”
“그것도 살게요.”
양선구는 그 외 들어갈 재료들이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배합은 그 작가의 시그니처였다.
유리에 금가루를 섞으면 핑크빛 도는 보라색이 된다거나, 망간을 섞으면 올리브그린빛을 띤다거나, 납을 섞으면 광택이 높아진다는 등은 기초적이고 널리 퍼진 상식과는 비교도 안 되게 귀한 기밀이었다.
어떤 물감은 발색이 뛰어나고 어떤 물감은 발림이 뛰어나듯 시그니처 컬러는 화가에게든 조각가에게든 공예가에게든 귀한 정보였다.
그것도 프레스코 안료까지 직접 만드는 정도의 강석이 가지고 있는 지식들은 하나같이 뛰어났다. 그런 정보를 친하다는 이유로 질문한 권리는 양선구에게 없었다. 적어도 양선구는 그렇게 생각했다.
“좋아. 얼마나 큰걸 만들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가지고 있는 걸로 될지 보자고.”
양선구가 웃음을 흘리며 문쪽으로 걸어갔다. 처치 곤란일 정도로 모아버린 돌덩이 속에서 강석이 이번에는 어떤 영혼을 끄집어낼 것인가. 기대가 되었다.
* * * *
“뭐하는 거래?”
강채영이 식탁에서 노트북을 두들기다 고개를 들었다. 웬일로 집에 붙어있는가 했더니 하루종일 정원에 있는 강석 때문이었다.
백명희는 국자로 국을 휘저으며 말했다.
“흙이 좀 필요하다던데?”
“흙?”
“응. 흙을 좀 퍼가도 되냐고 물어보더라.”
강채영이 백명희에게서 다시 강석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흙을 퍼갈 거면 퍼가면 되지, 저게 뭐하는 거래?”
“필요한 일인가보지. 네 오빠가 엄한 일 할 사람이니?”
강석이 보였다.
흙을 진주라도 되는 것처럼 한 알 한 알 고르고 있었다. 신발 옆에는 분갈이용 모종삽이 놓여 있었고, 그 옆에 놓인 투명한 유리볼에는 다 긁어모아도 주먹보다 작아보이는 흙이 쌓여있었다.
엄한 일 할 사람이냐고. 그럴 리가.
강석은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단순하고 단조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작업하기. 밥. 잠. 작업하기. 밥. 잠. 작업하기. 로봇 돌아가듯 반복하는 강석은 취미도 드로잉이요, 일상 속에 상념도 작업과 관련한 것으로 가득 채워서 살아가는 인물이었다.
돌과 작업에 미친놈.
속된 말로 딱 그렇게 표현될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정원에 있는 땅을 라텍스 장갑 끼고 흙모래 한알 한알 고르고 있다면, 그 역시 작업에 필요한 일일 것이 분명했다.
“그거야 그렇지만···”
“됐고. 밥 다 됐다. 밥 먹고 하라 그래.”
백명희의 목소리가 묘하게 들떠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낌새가 보이더니 고삼부터는 작업하느라 바깥에서 자는 걸 반복하던 오빠가 요며칠 집에 붙어있다고 신이 나신 모양이었다.
“네에.”
강채영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강석은 강채영이 오는 줄도 모르고 흙을 열심히 고르고 있었다. 누가 보면 보석을 감별하는 줄 알 정도로 매우 진중한 얼굴이었다.
대체 이번 작품은 뭘 만들길래 저렇게 신중하게 흙을 고르나. 강채영이 거실로 걸음을 옮겼다. 뭐, 모르는 게 속이 편할 것 같았다. 알아봤자 지인들이 물어보기만 더하지.
정원으로 나가는 거실 유리문을 연 강채영이 소리쳤다.
“밥 먹고 하래!”
모름지기 한국인이라면 아무리 바빠도 밥은 잘 먹어야 하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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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이른 아침 5시 40분.
강석은 결국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흙을 확보하는 것에 성공했다. 강채영과 백명희, 그리고 강현도까지 그렇게 해서 완성된 화분을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셋 다 이제 막 방에서 나온 터라 잠옷 차림이었다.
그들은 안쪽에 분무기로 물을 분사해놓은 커다란 비닐로 화분을 감싼 채 걸어오는 강석을 보며 눈을 비볐다.
그렇게 흙을 고르고 고르길래 저걸로 뭘 만드려고 그러는 건가 싶었는데 분갈이용이었던가?
이제 막 일어나 눈에 붙은 눈꼽을 떼어내며 셋이 화분을 살폈다. 반투명한 비닐이 아니라 투명한 비닐이라 물을 뿌려놓았는데도 그 속이 막 닦아놓은 거울처럼 훤했다.
일단, 흙 위에는 꽃집에서 사온 깨끗한 세잎클로버가 화초처럼 길게 늘어져 있었다. 풍성했다.
세잎클로버 그거 하나 사는데 어찌나 꼼꼼히 따져샀는지 펼쳐진 클로버 어디에도 벌레가 파먹은 흔적 하나 없고, 옮길 때는 또 얼마나 조심히 옮겼길래 그 흔한 흙먼지 하나가 안 묻어 있었다.
지렁이 한 마리, 벌레 하나도 용납 안 할 것 같은 자태였다.
셋은 위에 연두색 물감을 바른 것 같은 선명한 색감을 뽐내는 세잎클로버와 곱디 고운 흙더미를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작품과 건물을 바꿔먹은 손으로 채워넣은 화분은 달라도 뭔가 달랐다.
달칵. 셋이서 넋이 나간 채로 화분을 바라보는 사이. 강석은 화분을 들고 2층 제 방으로 들어가며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셋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어머. 어머. 방으로 가지고 들어가는 것 좀 봐. 아무래도 작품 관련으로 필요한 게 아니었나 봐요.”
백명희가 내뱉는 소리에 강현도가 고개를 기울였다.
마이애미에 있는 마레 갤러리가 오픈 예정인데다 병역특례가 달렸다는 미술대전 출품을 앞둔 이 시기에? 예고 다닐때도 공부랑 수행평가, 그리고 소묘랑 조각 연습에만 매진하던 아들이었다. 그럴 리가.
강채영 역시도 강현도 옆에서 회의적인 표정을 지었다.
그때였다. 문이 다시 열리며 편한 작업복 차림을 한 강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면 그렇지. 강현도와 강채영의 표정이 편안해졌다.
이제야 제가 아는 사람 같아서였다.
백명희가 걱정스럽다는 듯 계단 쪽으로 달라붙었다.
“벌써 나가려고? 아침밥도 안 먹고? 너 주려고 LA갈비도 양념 진한 거에 담아놓았는데···”
“다녀와서 먹을게요.”
강석이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만 먹고 갈 수는 없었다.
여름철 유리를 작업할 때는 태양이 다 뜨기 전인 새벽이나 아침에 작업을 해야만 더위를 피할 수 있었다. 이제 곧 6시가 다 되가니 자전거를 타고 가도 작업 시간이 아슬아슬 했다. 돌도 오늘 오후면 옮겨질테니 지금 가야만 했다.
강석이 백명희에게 한 번 더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현관문을 나섰다.
“다녀오겠습니다.”
“차 조심하고!”
“사람들 많은 곳으로 다니고!”
“올때 아이스크림!”
쾅. 문이 꽤 강하게 닫혔다.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강채영이 눈을 깜빡였다.
아까까지 화분을 들고 있던 강석의 몸은 빈 손이었다. 즉, 화분을 두고 나갔다는 소리였다. 강채영이 입을 살짝 벌렸다. 그럼 뭐야. 설마 진짜 작업 때문에 화분을 만든 게 아닌 거야?
강채영이 닫힌 문을 바라봤다.
궁금증을 해결해줄 사람은 이미 나간 뒤였다.
* * * *
“저 왔어요.”
강석이 이마에 난 잔땀을 닦으며 공방 안으로 들어섰다.
“스승님!”
조동범이 반가운 기색으로 뛰어왔다.
“스승님! 요청하신대로 모래랑 배합재료들 다 준비해놓았습니다. 그리고 스승님이 말씀하셨던 롤러도 꺼내놓았는데요. 이게 가마랑 너무 가까우면 안될 것 같아서 살짝 떨어트려 놓았는데 괜찮을까요, 스승님?”
사람들 있는 곳에서 스승을 스승님이라 부르지 못하고, 선생님이라고 부르던 것이 여간 신경쓰였던 모양이네. 말끝마다 스승님이 있을 곳을 찾아서 던져놓는 조동범의 말을 들으며 강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좋네요.”
유리를 끼고 돌릴 롤러가 가마랑 너무 가까우면 롤러가 달궈지거나 유리를 놓을 판이 뜨거워질 수 있다. 적당한 거리가 있으면 오히려 좋았다.
‘공방이 넓으니까 이런 게 편하네.’
강석이 그렇게 생각하며 앞으로 걸어갔다.
가마의 온도가 평소보다 뜨거웠다.
이것 역시도 강석이 주문한 일이었다.
평소 1,500도로 유지해서 오렌지빛을 품고 있던 가마가 거의 태양처럼 이글이글 자글거렸다.
“지금 온도는요?”
“······2,500도입니다.”
2,500도. 모래가 녹는 1,700도를 아득히 초월한 온도였다. 조동범이 여기에 뼈를 묻겠다는 각오로 공방이사 때 최고급 초대형 가마를 제작한 게 아니었다면 작은 가마는 품지도 못했을 온도였다.
선글라스를 쓰고 가마 속을 앞에서 들여다보던 강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리고 이거 스승님이 요청하셨던 건데······이 정도면 적당할까요?”
강석은 작업용 장갑을 끼며 조동범이 건네온 밀대를 잡았다. 밀대 끝에는 넓고 깊은 바가지 하나가 붙어 있었다. 대인원 요리에나 쓰일법한 커다란 국자처럼 생긴 밀대를 이리저리 살피던 강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선글라스를 살짝 벗어 밀대를 살피는 강석의 적갈색 눈동자에 가마불이 닿아 밝게 빛났다.
“그럼 시작하죠.”
“네! 도와드리겠습니다!”
조동범이 롤러와 국자 등 대형작업용에 쓰이는 도구들이 꺼내진 공방을 둘러보다가 신이 난다는 듯 강석을 따라붙었다.
강석이 걷고, 조동범이 뒤를 쫓았다.
얼마가지 않아 작업대 앞에 도착한 강석은 모래산 앞에 섰다. 유리를 만드는 규소가 가득 담긴 모래였다.
장갑을 살짝 벗어 모래를 만져보니 방앗간에서 갈아낸 쌀가루처럼 입자가 고운 게 느껴졌다. 딱 강석이 요청한 대로였다.
규소 옆에는 양선구에게서 사들인 투명한 장미석영과 불투명한 장미석영, 그리고 분쇄기 및 금가루와 여러 금속물질들과 함께 공업용 마스크가 놓여있었다.
‘이걸 준비하랬다고 이 이른아침에 다 준비해놓다니···’
강석이 만족스러움을 삼키며 모래를 털었다. 손가락 끝에 묻어있던 모래가 바람을 타고 옆으로 날아갔다. 바람. 강석의 고개가 옆으로 향했다.
열린 공방 문 사이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살짝 내려간 선글라스 위로 새파란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로 올라간 물을 머금어 하늘을 뒤덮은 뭉게구름 떼가 함께 보였다.
거, 작업하기 딱 좋은 날씨네.
강석이 검지를 밀어 선글라스를 원위치 시키고, 장갑을 꼈다. 그리고 두손으로 창을 들어올리듯 국자로 모래를 가득 펐다.
새로운 작품을 위해 다시 또 달릴 시간이었다.
191. Fuehlt meine Seele das ersehnte Lic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