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199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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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스로의 운명이 되기를 원하네
–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작성한 소네트에서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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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이 마이애미에서 시모레 카사니와 해후를 나누는 그 시각.
서울 남산.
산처럼 우뚝 솟은 21층짜리 백산 호텔 부지 안쪽.
하얀 입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곳을 내려다보며 박선우가 버번 위스키가 담긴 잔을 기울였다. 안에 담긴 위스키 스톤이 그 안에서 묵직하게 부딪혔다.
여름인데 이열치열도 아니고 사람들이 백산호텔 온천을 작은 피규어를 한 바구니 뿌려놓은 듯 많이도 걸어다니고 있었다.
낮은 온도의 누루유(ぬる湯) 마냥 저온탕으로 물온도를 낮춘 게 통해서일까. 박선우의 목울대가 움직였다. 화끈하게 데울 땐 언제고 혀끝에 남는 카라멜리티한 단맛과 바닐라향을 남기고 사라진 위스키 맛을 더듬으며 박선우가 웃었다.
그럴 리가.
그것뿐이면 이렇게 모일 수가 없지. 이열치열에 대명사인 삼계탕 놔두고 온천에 그것도 서울 한복판 호텔에 비싼 값 주고 올 일이 없다.
박선우는 김이 자욱한 곳 끝자락에서 살짝 모습을 드러내는 을 바라보았다. 우리 강석 작가님이 진짜 복덩이라니까. 박선우의 불어오는 여름 바람과 함께 보기 좋게 휘어졌다. 청량한 웃음이 입꼬리 끝에 맺혔다.
“류형.”
“네, 대표님.”
“정말 신기하지 않아요?”
한 달보다 조금 더 전.
손익분기점을 넘겼다는 확신이 드는 순간, 회장님은 박선우가 예견했던 대로 꽤 묵직한 용돈을 쥐어주셨다.
요근래 빠져있는 예술가 작품 사는데 보태라고 하셨지. 박선우가 그때를 생각하며 위스키 잔을 굴렸다.
“···뭘 말씀하시는 겁니까.”
“너무 많았나? 하긴. 요근래 신기한 일이 워낙 많이 일어났어야지.”
박선우가 웃으며 류정형을 돌아보았다.
“1월 19일이었나. 그때 얘기했던 대로 다 굴러가는게요. 진짜 우리 가족들은 반전이란 게 없어. 아. 우리 장여사가 호텔 개업 날짜를 너무 잘 잡아서 그랬나.”
건설 책임자인 박선우가 호텔 대표라도 되는 것처럼 한사코 그날 해야 한다고 장은숙이 박선우에게 신신당부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박선우가 시원하게 웃으며 위스키를 입에 머금었다. 그런 박선우를 바라보며 류정형이 눈동자를 살짝 내리깔았다. 기억을 더듬기 위해서였다.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 않습니까?”
류정형의 기억대로라면 박선우가 예견한 것은 세 가지였다.
일.
손익분기점을 넘길락말락 할 때. 회장님께서는 박선우에게 용돈을 안겨주시며 반강제로 대표직을 벗길 거고, 형제들과 형제들의 자식들이 비어있는 백산 호텔에 대한 탐심을 드러낼 거다.
이.
형제들은 대표직을 차지하기 위해 어떻게든 아득바득 손익분기점을 넘겨보이고 싶어할 거고, 그걸 위해서 가장 돈이 많이 나가는 에 대한 이용 추가 금액과 스페셜 온천 입장권 조건을 조정하여 이득을 노리려고 할 거다.
삼.
강석은 새롭게 대표직에 앉은 사람들이 추가 정산 계약에 대한 내용을 바꾸려고 하면 을 부수거나, 반쯤 가지고 있는 소유권을 발휘해서라도 을 백산 호텔에서 치우려고 할 거고···결국 백산 호텔은 황금거위를 잃고 추락하고 백산 호텔은 공중에 뜬다.
‘첫번째부터 틀렸다.’
류정형이 침묵하고 있는 박선우의 등을 바라보았다.
박선우가 아예 몸을 돌렸다. 그리고 난간에 팔을 걸치며 웃었다.
“에이. 이 정도면 우리 회장님이랑 형제들은 죄다 예견한대로 움직여줬지.”
내 예상보다 우리 강석 작가님이 더욱 더 뛰어났을 뿐. 박선우가 뒷말을 삼켰다. 강석을 결코 얕잡아 평가한 적은 없다.
그럼에도 강석은 박선우가 예상했던 시기보다 더 빠르게 순이익을 끌어냈고, 회장님이 파악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손익분기점을 뚫어버리는 데 성공했다.
거기까지는 문제가 없었지만 사건은 그 뒤에 일어났다. 갑자기 스페셜 온천 명당에서 의 받침대를 만졌다는 여인들이 오랜 고생 끝에 임신하는데 성공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거다.
그런 민속신앙 민간요법 뺨치는 소문은 예상도 못했던 터라 단속하지 못하는 사이. 여름 한복판에서 사람들이 너도 나도 온천으로 찾아왔다. 덕분에 온천은 여름 한정 물놀이장을 개장도 못하고 저온탕이라는 새로운 이벤트성 온천을 오픈해야만 했다.
그리고 진짜 영험한 기라도 깃들었는지 백산이라고 해서 진짜 산기운이라도 있는 건지 약수터에 약숫물 떠놓고 기도하듯 하나둘 너도 나도 성공했다는 말들이 흘러나왔다. 사람이 많이 오면 사례가 많아진다. 그러면 비슷한 케이스로 성공하는 사람도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절박한 사람들은 그것에 또 움직이고, 사례가 다시 늘어나고, 성공하는 사람들도 늘어난다.
반복이었다.
백산호텔은 허위 광고나 과대 광고로 포장될 것을 두려워하여 침묵하는데 SNS가 그들 사이에서 요동치기 시작했다.
회장님이 용돈을 쥐어주실 때 그 을 만든 조각가는 신내림이라도 받은 거냐고 물어볼 때 류정형은 기침을 참지 못하고 쿨럭거렸다. 어쨌든 그렇게 백산호텔의 상징은 이 되었다. 제주도 돌하르방 코 닳는 속도로 온천 문지방이 닳게 생겼다.
제주도까지 안 가고 서울에서 그런 영험한 기적이 일어난다니 그들만 아주 신났다. 게다가 편안하게 호캉스도 즐길 수 있는 데다 그게 또 하필 산강그룹이 만든 21층짜리 리조트 호텔이다.
거기에 한 번 더 비엔날레 교황 잭팟이 터지고 1,600만 파운드 사나이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쥐면서 강석 작품 순례자들까지 생겨났다. 백산 호텔은 기세 등등하게 그 순례행에 올라탔다.
“우리 강작가님이 내 예상보다 더 화제성이 짙어서 판이 뒤집어진 거지.”
“······생각해보니 그러네요.”
뭐. 덕분에 백산호텔 대표직은 박선우가 그대로 손에 쥐고 있게 되었고, 산강문화재단 이사직에도 무혈로 입성했다.
“류형. 가만 보면 우리 강작가님이 나에게 참 복덩이야. 그렇지 않아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은 게 아니라 그렇다니까. 아. 류형. 그래서 내가 알아보라고 하던 건 알아봤어요?”
박선우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상체도 기대감으로 살짝 앞으로 다가온 채였다.
류정형이 천천히 서류를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대표님께서 회장님 서재 들어갔었을 때 가장 발빠르게 움직인 분들이 가지고 있는 토지 매매 정보입니다.”
“역시 류형은 일처리가 빨라. 고마워요.”
박선우가 웃으며 서류를 받아들었다. 팔락, 팔락, 박선우가 장난감이라도 보는 얼굴로 신이 나서 넘겨댔다.
“차명으로 되어있거나 작정하고 숨긴 정보들은 찾아오지 못했습니다. 필요하시면···”
“그건 필요 없어요. 우리 강작가님이 구린 땅 받고 싶어할 사람도 아니고. 깨끗하고 맑고 자신있게 앞에 걸어놓은 땅이면 됩니다.”
그렇게 말하던 박선우의 얼굴도 얼마 가지 않아서 찌푸려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이거 참 땅거지들이네.”
우리 형제자매들이 이렇게 돈이 없었나. 지분만 사들이나? 뭘 믿고 이럴까. 박선우가 현실감각 없는 형제들을 향해 혀를 차며 서류를 넘겼다. 술을 마신 탓에 말이 조금 더 거칠게 나오는 모양이었으나, 류정형은 신경쓰지 않았다.
그 속을 알기에는 바람마냥 변덕스럽고 자유로운 것이 박선우였으니까. 류정형은 불만족스럽다는 듯 서류를 가만히 내려다보는 박선우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굳이 형제분이나 조카들 땅을 노리십니까? 아무래도 박가에서 현재 서울 땅을 가장 많이 쥐고 있는 건 사모님 아니십니까?”
“누구? 아아. 우리 장여사님? 에이. 내가 우리 장여사 옆구리 찔러서 금싸라기 땅을 빼와서 작가님한테 드려 봐. 우리 장여사 일주일은 울걸요.”
싫다. 싫어. 한량이 되더라도 효자이고 싶단 말이죠. 박선우가 웃을 때마다 위스키 잔향이 류정형에게 닿았다. 그런 류정형의 눈빛을 읽은 박선우가 서류를 툭툭 손등으로 튕기며 말했다.
“뭐 내 땅 줘도 되는데 그러면 우리 회장 아니, 할아버지께서 우리 강작가님한테 관심을 가질 것 같고. 그럼 안 되거든요. 내가 느낀 게 있어. 저번 카라라 때부터 런던에서까지 이리저리 돈 많은 사람들에게 치어보니 더 큰 물고기는 안 끼는 게 좋겠더라고요. 내가 줄 순번이 너무 밀리잖아.”
박선우가 콧잔등을 찡그렸다. 그와중에도 얼굴엔 웃음기가 가득했다. 바늘 수십개를 찔러도 웃음은 유지할 것처럼 얼굴에 미소가 진득하니 달라붙어 있었다.
그때였다. 서류를 다 읽은 박선우가 손등으로 서류를 한 번 더 튕기며 말했다.
“그래도 역시 이건 안되겠다. 나랑 같은 줄번에 있는 사람들은 사이즈가 너무 작네.”
“······그러면?”
“류형. 부탁 하나만 더 할게요. 고모나 백부들 땅 좀 알아봐주실래요?”
부탁이었으나 부탁이 아니라는 건 지나가는 개도 알 소리였다.
술만 마시면 조금 더 본심이 나오는 편인 박선우는 눈빛이 조금 더 번들거렸다. 하여튼 저렇게 매사에 웃는 사람이 제일 무섭지. 서류를 받아들며 류정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땅 정보 넘겨주려고 무슨 짓을 벌이시려는 건지.’
류정형이 서류를 받아든 다음, 먼저 들어가보겠다고 말했다. 박선우가 위스키를 다시 들이키며 손을 흔들었다. 놀이공원 인사같은 해맑은 인사였다.
뭐. 상관없다. 류정형이 안경을 검지로 추켜올렸다. 그림자 속으로 걸어들어가며 류정형은 단언했다.
박선우는 원하는 걸 얻을 거다.
항상 그랬듯이.
* * * *
“(뭘 어떻게 하자고?)”
시모레 카사니가 돌아봤다. 강석이 덤덤한 낯으로 제 생각을 읊조렸다. 물론 그의 시선은 시모레 카사니가 아니라 블룸 미술관에서 파견나온 사람들을 향해 가 있었다.
“(상품 공급 물량이 지금보다 많아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시선을 받은 블룸미술관 진유미 큐레이터가 움찔거리다 의기소침하게 말했다.
“(······이게 진짜 적은 물량이 아니거든요.)”
강석을 무시한 게 아니었다. 거의 이 정도 상품이면 팝업스토어 수준이다. 아니. 팝업스토어도 상품 매진 되는 것을 고려하여 최대한 많이 뽑았다. 한정수량 판매가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한정수량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공급되는 것을 고려했을 때 일반적인 팝업스토어 오픈 공급치 2.5배면 충분히 많았다. 하루 2천명 이상이 몰려서 물건 하나씩을 산다고 하더라도 수량이 남을 터였다.
게임이나 유명 캐릭터 또는 아이돌이나 프로게이머팀 관련 팝업스토어도 아니고, 작품 두개 걸린 갤러리에, 그 작가 본인이 만들지도 않은 상품을 판매하는 상황.
진유미 큐레이터는 상품 판매가 실패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진 않았지만 첫날 초동 물량 공급 속도를 조절 못하게 되는 것보다는 매일 꾸준히 상품을 공급하는 게 더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국내에서 발주해 해외로 가지고 오는 만큼 상품 공급을 무작정 많이 하다보면 재고 보관 비용과 운송비용, 그리고 발주비용으로 인해서 손익분기점이 느리게 넘어설거다.
강석에게 손해가 될 터였다.
진유미가 긴장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나 강석은 담담한 낯으로 다시 말했다.
“(알아요. 적은 물량 아닌거.)”
하지만 내 작품이 그렇게 적은 물량으로 감당될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서. 뒷말은 속으로만 생각한 강석이 지극히 현실적인 감각으로 재차 말했다.
“(하지만 더 필요합니다.)”
이벤트를 하나 할 예정이라.
마레 갤러리는 자주 찾아올 수 없는 만큼 이번 기회에 잊지 못할 기억을 하나 남겨줄 작정이었다.
적갈색 눈동자가 빛이 났다.
시모레 카사니가 강석의 눈빛을 읽었다. 어째서인지 강석을 미카엘로 착각했을 때의 그 느낌이 났다.
“(석. 무슨 계획이라도 있는 거야?)”
시모레 카사니가 영어로 물었다.
강석의 입꼬리 끝이 씰룩였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탈리아어가 강석의 입매 끝에서 굴러나왔다.
“(노인과 아이 모두 동화 같은 이야기는 좋아하는 법이라네. 그리고 마이애미는 파란색을 좋아하지.)”
수수께끼 같은 말이었다.
200. 나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며 살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