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198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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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사꾼 같은 화가로 또는 조각가로 살지 않았다.❞
–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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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구와 고두한이 지켜보는 가운데.
강석은 물을 채우기 시작했다. 분수대에 물이 조금씩 차올랐다. 분수대 수질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설치한 정화장치들도 꼼꼼히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여과장치 돌아가는 거 확인하려면 물을 한 번 채우긴 했어야 했네.’
원래는 접수장에 들어가서 심사 자리 배치를 받으면 그때 물을 채워도 된다고 말할 참이었다. 선생님들이나 조사장님이 미술대전 접수장에 안 나타날 리도 없었고, 분수대에 물이 채워진 다음 장면은 그때 보아도 된다고 생각했었다.
안 그러면 분수대를 다시 옮길 때 너무 번거롭게 만들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분수대를 다시 옮기려면 물도 다 빼야 하고, 조각상에 달라붙은 물이나 분수대에 남아있는 물도 다 말리고 가야하니. 부탁하는 입장에서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양선구 선생님이나 조동범 사장님은 물론이고, 고두한 선생님도 이렇게 순수하게 분수대를 보고 좋아하시니.
분수대가 가장 완벽한 순간은 조금 더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게 해드리고 싶었다. 강석은 그래서 조금 염치 없어지기로 했다.
물을 채우는 걸 옆에서 지켜보던 고두한에게 슬쩍 강석이 마음 한 켠을 비추었다.
“선생님. 신세 좀 지겠습니다.”
“무얼?”
“분수대 나중에 물 빼고 옮겼다가 다시 물 넣으면 번거롭잖아요.”
“아아.”
고두한이 고개를 내렸다. 분수대의 물이 채워지고 있었다. 넘실거리는 물빛에 연꽃잎 유리 위로 겹쳐진 모자이크 판조각들이 반사되어 분홍색 너울이 일렁이고 있었다.
이런 풍경을 독점하게 해주면서 괜한 말은. 하여튼 신세지는 건 더럽게 싫어하는 놈이다. 소묘실에서 강석과 많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진 않았지만 그거 하나는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
누구한테 신세지는 모습을 못 봤지. 고두한이 풍선 입이 떨리는 것 같은 웃음을 흘렸다.
“즉석으로 통영에서 날밤 까고 온 사이에 이런 걸로 무슨 신세까지야.”
“아, 그때는···감사했습니다.”
“오야.”
고두한이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이며 모자를 고쳐 썼다. 이렇게 멋진 풍경을 혼자만 볼 수 없지. 독점하고 싶긴 하나, 집에 흔쾌히 발을 들이게 해준 양선구 선생님에게도 지금 이 너울을 보여줘야 했다.
고두한이 고개를 돌렸다.
“선생님! 이리 오세요! 여기 좋은 풍경이 있습니다!”
“···물도 다 차지 않았는데?”
“와보세요, 죽입니다!”
“······으음.”
양선구가 복수아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걸 바라보던 고두한이 고개를 바로했다. 그리고는 퉁명스레 중얼거렸다.
“난 일곱 번도 할 수 있다.”
“······예?”
강석의 고개가 돌아갔다. 물이 차오르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고두한은 분수대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비죽였다.
“분수대 말이다. 분수대. 난 일곱 번도 뺐다 채웠다 할 수 있다고.”
“·········”
“풍경 죽인다, 야. 이거 보여주려고 채운다고 한 거냐?”
서툰 말이 어색했는지 고두한이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고두한을 바라보던 강석이 힘빠진 웃음을 흘렸다.
“아뇨.”
목소리에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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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구와 고두한은 물멍이라는 걸 즐기고 있었다. 물멍. 물을 보며 멍하게 시간을 흘리는 걸 말하는 신조어였다. 이래서 사람들이 수족관과 어항을 꾸미나. 그런 생각을 하며 그들은 투명한 물이 차오르는 걸 지켜봤다.
물 하나 채웠다고 색다르게 사람을 홀려대니 여기에 인어도 한 마리 감춰놓았나, 양선구가 진지하게 의심을 해보았다.
그때였다.
아주 천천히 차오르던 물이 더더욱 속도를 늦추고 있는 게 보였다.
‘이제 반절 채워가는 중인데 이렇게 느려지는 걸 보아하니···’
양선구의 눈이 가늘어졌다.
“다 채우는 게 아닌감?”
“예. 물에 잠긴 연잎 조각이랑 안 잠긴 연잎 조각의 차이를 즐기게 하고 싶어서요.”
강석의 대답에 양선구가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그것대로 운치가 있었다. 빛이 유영하는 그림자는 물이 잠겨있는 것과 잠겨있지 않은 것에 따라 또 달랐다. 동굴 깊숙한 곳에 있는 바다로 이어지는 물 웅덩이나, 호수가 그러지 않나.
물에서 솟아난 빛이 동굴 벽을 채우는 그림자와 물 표면에 맺힌 물결의 그림자가 다른 것처럼.
분수대에 펼쳐진 것 또한 그러했다.
바다처럼 윤슬이 맺힌 분수대를 바라보며 양선구가 감탄을 흘렸다. 햇빛이 유리를 뚫고 분수대에 내려앉은 풍경은 지나치게 아름다웠다.
마치 분홍색 물그림자가 핑크빛 비닐을 가진 물고기가 분수대 안을 비밀스럽게 돌아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퐁퐁 차오르는 물도 그랬다. 물이 솨아아 하고 들어오는 소리를 멍하니 들으며 양선구와 고두한은 분수대에 빠져들어갔다. 마치 작은 숲을 들여다보는 거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거 좋네.”
“이 분수대가 석이 네 집 정원에 놓일 거라고?”
“예.”
강석이 기분 좋게 웃었다. 연녹색으로 뒤덮인 정원에 이거 하나만 놓아도 분위기가 확 달라질 거였다.
깜짝 선물로 가져다드리면 좋아하겠지. 강채영도 아닌 척 좋아할 거다. 이사한 다음부터 집 특히 정원이 보이는 거실에 붙어있는 걸 보면 확실했다.
“이끼는 안 끼려남?”
“예. 계산대로라면 여과기랑 설치된 정화장치로 충분히 감당 가능할 겁니다. 물도 어차피 다 채울 것도 아니라서요.”
“그러냐?”
양선구와 고두한이 생물 하나 없이 녹조나 이끼가 안 생길 수 있나 걱정하듯 바라보았다.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분수대다보니 사람 많은 곳에선 관리가 어려울 텐데 차라리 집에서 관리한다니까 안심이 되는 것도 같고···석이 네 어머니께서 워낙 부지런하시잖냐.”
고두한이 강석의 어머니 백명희를 떠올렸다. 어머니는 위대하다고, 그 큰 저택을 사람 하나 고용하지 않고 깨끗하게 유지하시는데다 잡초도 나지 않게 관리하는 것을 보면 대단하다 싶었다.
강석 역시 고두한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옛날부터 제 어머니와 아버지 만큼 부지런하고 성실하신 분들을 보지 못했다.
저를 두고 사람들이 부지런하고 성실하다고 말을 많이 하는데···부전자전 모전자전이었다.
“좋아하실 거예요.”
정원을 관리해보고 싶다고 하지 않으셨나. 강석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이 정도면 채워진 것 같네. 강석이 분수대 5분의 3 정도를 채운 물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팔을 뻗었다.
그러자 정화장치 외에 또 다른 장치가 천천히 돌아갔다.
분수 장치였다.
작동하기 시작한 소형 분수 장치는 설치된 조도센서와 기상센서로 햇빛의 양과 비의 유무, 바람의 세기 등을 감지하는가 싶더니 천천히 노즐부를 통해 물을 분출시키기 시작했다.
안개를 뿌리듯 미세한 물입자 형태가 노즐부에서 뿜어지자 유리가 입자들을 반사했다. CD가 높은 하늘에 매달린 것처럼 햇빛에 비추어 입자들이 반짝거렸다.
아주 미세한 반짝이 가루가 하늘에 흩날리는 것 같은 연출이 시작되었다. 또 그것이 너무 강하지 않아 비와 함께 별이 내리는 것 같았다. 이상향. 진짜 아름다운 작은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쉴 세 없이 분수대 안으로 흘러내리고, 다시 급수배관을 통해 또 펌프로 흘러들어가고 연이어 급수배관에선 새로운 물입자 후보들이 빨려들어갔다.
그리고 그게 반복되면서 천천히 무언가가 만들어졌다.
“이건···”
“·········허어!”
무지개였다.
그것도 작은 쌍무지개가 떠있었다.
하얀색 돌 옆에 피어난 쌍무지개라 그 색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둘은 본인들도 모르게 허리와 고개를 숙였다. 그 세계에 빠져든 것처럼 눈이 흐려져 있었다.
‘이것 참 절묘하다.’
무지개 하나가 손바닥 4개 정도를 이어붙인 것 정도의 크기였다. 분수대에 쌍으로 뜬 무지개가 의 마지막 경관을 완성시켰다.
거대한 연꽃의 끝은 하얀 구름이요.
연꽃 봉오리가 품은 것은 새로운 세상과 땅이요.
연꽃 봉오리 밑으로 갈수록 맺힌 것은 노을과 하늘이로다.
세상을 받드는 나무 밑동 아래 피어난 연잎 구름 사이로 솟구친 쌍무지개 보아라.
밀빛의 대리석은 다시 또 세상과 땅이요.
그곳에는 새로운 연꽃을 피울 꽃봉오리를 들고 동자들이 뛰어다니고, 새생명 복숭아가 연잎 사이에 흘러내리고, 열매가 가득 맺힌 복숭아 나무가 무수한 꽃을 피우고 흔들거리네.
연분홍 빛이 꽃잎처럼 비와 함께 물에 빠지는 구나.
빛으로 된 유리 비닐이 물고기 꼬리마냥 넓은 물 속을 헤엄치는구나.
다시 또 보아라.
“걸작이로다!”
양선구가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이런 걸작을 만들어놓고 아무에게도 팔지 않고, 자신만 볼 수 있는 세상으로 가져간다니 그것 또한 걸작이었다. 이게 예술가지.
양선구가 진심으로 즐겁다는 듯 웃음을 빵빵 터트렸다.
“마음에 드십니까?”
“마음에 들다마다! 잘 컸어! 아주 잘 컸어! 으잉? 우리 대한민국 미술계가 앞날이 밝아!”
이미 보았다.
대한민국 미술대전 구상부문에 나올 모든 작품 중. 최고의 작품은 이거다. 묻고 따지고 잴 것도 없었다. 여기에 담긴 모든 것은 직설적이고 직관적이며 그걸 또 아름답게 포장해냈다.
솔직히 제 마음에 들고 말고 할 게 어딨나. 이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제 눈에 문제가 생겼다는 건데. 양선구가 신이 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미술이다.
아름답게 갈고닦아진 최고의 기술.
양선구가 웃었다. 무의식중에 양선구의 고개가 돌아갔다. 자연스럽게 양선구의 시선이 고두한의 그늘 아래 감춰진 눈동자와 마주쳤다. 둘은 그 순간 알아챘다. 서로가 생각하고 있는 바가 같았다. 둘이 눈을 맞춘 채,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강석이 마이애미로 간 뒤에 둘이서 합을 맞출 것이 굉장히 많아보였다.
* * * *
분수대에 물을 채운 다음날, 그러니까 8월 9일.
강석은 미련없이 마이애미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마중을 나왔던 양선구와 조동범, 그리고 고두한은 강석이 걱정없는 얼굴로 비행기를 타러 가는 걸 보며 묘한 감동을 느꼈다. 저 무뚝뚝이에 남 의지할 줄 모르는 강석이 자신들을 믿고 미련없이 비행기를 타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해서였다.
“···조각을 제출해야 하는 방문접수일자가 언제였지?”
“미술대전 일정이 딱 한 달 밀렸으니 8월 30일이겠죠.”
“금요일임돠.”
양선구와 고두한, 조동범이 일정을 체크했다.
그때였다. 일정을 체크하던 조동범의 얼굴이 묘해졌다. 핸드폰에 찍힌 낯선 문자 때문이었다. 봉은사의 주지스님인 법경스님으로부터 온 문자였다.
스승님하고는 연락이 자주 안 될 때가 많아 조동범의 연락처를 받아가신 분들이 몇 있는데 법경스님도 그 중 하나였다.
문자를 읽던 조동범이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양선구와 고두한은 바쁘게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었다.
“접수마감일정은 8월 31일인가?”
“네. 그렇긴 한데 1차 통과하고 2차해서 결과 발표되는 날이 9월 13일로 추석 전이니까···”
“아마 그 전부터 심사가 시작되고 있겠지.”
양선구가 흰 수염을 쓸었다.
1세대 조각가인 만큼 그는 이 바닥 생리를 잘 알았다.
“차광손 그 아이가 그 넓은 두꺼비 배때지를 채우고도 남았겠구나.”
“우선 그 영감이 누구한테 돈을 받았는지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네?”
“구상부문은 무조건 받았겠지. 비구상부문도 받았을 거야. 좋아. 고선생. 자네 친구 박지엽이하고는 아직 연락하남?”
“······연락합니다.”
고두한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 인체변태하고 고두한은 질긴 인연이었다.
“박지엽이한테 연락 좀 넣지. 그 친구가 미술입시랑 아트 앤 아티스트 기자들하고는 연이 깊잖나.”
미술 관련 월간잡지에 몇 번이나 표지도 장식하고 몇페이지 짜리 인터뷰도 차지하는 대한민국 미술계 저널리스트들의 단골안주. 한양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인체변태 박지엽이라면 이 판의 기초를 쌓아줄 기자들을 많이도 알려줄 터였다.
“넣어보겠습니다. 선생님은요?”
“나야 오랜만에 내 친구들을 만나야지.”
대한민국 미술대전은 가끔 신예작가가 등판하지만 원래 연령대가 높은 작가들의 놀이터였다. 그리고 양선구는 1982년, 대한민국 미술대전이라는 놀이터가 만들어졌을 때부터 현역이었다.
“놀이터의 모래가 더러워진 사정까지 신경쓰고 싶진 않았지만···”
새롭게 놀이터에 놀러올 어린 아이들을 위해서는 모래 한 번 못 갈아주겠남. 양선구가 선량한 웃음을 지으며 뒷짐을 졌다. 그의 그림자가 날아오르는 비행기의 날개처럼 길게 늘어지고 있었다.
여름이 끝나가는 오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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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강석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SUK!”
여름 밤하늘. 하늘을 닮은 바다를 품은 동네.
낮에는 토파즈를 닮은 해변이, 오후에는 호박을 닮은 노을 진 하늘이, 밤에는 아메트린을 닮은 간판들의 거리가 아름다운 마이애미에 도착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얀 신전.
바다 앞에 세워진 마레 갤러리의 관장이 된 시모레 카사니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에 바다 짠내 나는 바람이 코끝을 찔러오고 있었다.
강석이 시모레 카사니가 손을 흔드는 쪽으로 걸어갔다.
와 가 잠들어있는 마레 갤러리 오픈이 바짝 다가오고 있었다.
199. 나는 스스로의 운명이 되기를 원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