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212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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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르네상스는 피렌체를 지배하는 메디치 가문이 아주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본래 상업으로 돈을 모았던 집안답게 그들은 상권, 은행가, 그리고 나아가 예술과 문화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했고 그들은 나아가 교황을 배출할 정도로 종교나 정치적인 부분에서도 그 힘을 여과없이 드러내었다.
그들이 손을 뻗지 않은 분야가 없었다.
길드들은 메디치라면 껌뻑 죽었고, 메디치는 많은 것을 이끌었고 주도했다. 그리고 그 수많은 분야 속에는 조경(造景)도 있었다.
아무렴. 봉건제도와 종교적인 색채에서 벗어나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 시대에 개성 넘치는 조경을 꾸미고 싶었을 거다.
15세기 이전부터 고대의 빌라, 그리고 정원의 모습이 담긴 책과 문헌들이 종종 발간되고 있는 상황. 누구보다 권위로웠던 메디치 가문이 그 새로운 유행에 탑승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메디치는 조경과 어울릴 저택의 구조부터 새롭게 제시했다. 그게 바로 성관(城館), 그러니까 성벽으로 둘러싸인 큰 별장 형태의 빌라식 저택이었다. 토스카나 지방 최초의 빌라가 그렇게 지어졌다.
메디치 가문의 귀족들은 넓은 구릉지 위에다 12채의 빌라를 지었다. 전원식물로 풍부하게 꾸며질 곳을 내려다볼 수 있게 위에서 평화롭게 내려다볼 수 있는 구조였다.
그리고 그걸 성벽으로 둘러싸고 그 빌라의 눈이 닿는 곳에 정원이라 부를만한 공간을 2곳을 지정했다.
구릉지마다 차례로 지어진 고급 빌라들.
그리고 가장 바닥에 위치한 정원.
인간이 신처럼 높은 곳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며 조망(眺望)하고 즐기는 방식.
이게 이탈리아에서 토스카나 지방을 중심으로 유행하게 된 노단식 정원의 기본적인 형태였다.
그리고 미켈란젤로는 젊을 적, 조금 더 정확하게는 어릴 적.
그 12채 빌라들 어디에서 보든 즐거울 수 있게 정원을 꾸몄었다.
정원에는 수풀 사이로 조각들이 늘어져있고, 고부조 저부조가 화려하게 벽을 장식하고 작고 큰 분수들이 늘어져 있는 형태의 정원. 미켈란젤로는 그곳에 새벽마다 나가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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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나의 친구. 넌 전생에도 예술가였을 거야.)”
아슈라 왕자가 바닥을 바라보며 말했다. 누가 보면 바닥에 강석이 누워있는 줄 알았을 정도로 정중한 태도였다.
강석은 가위로 나뭇잎을 조심스럽게 자르며 몸을 뒤로 물렸다.
그 짧은 사이에도 아주 작은 나뭇잎 조각 서너개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곳에 있다간 옷에 나뭇잎 물이 들겁니다.)”
나뭇잎이 계속 떨어지니 조금 뒤로 가서 보라는 뜻이었다. 그와 동시에 나무 너머 드높은 하늘에 구름이 유유히 흘러내려와 강석과 아슈라 왕자 위에 섰다.
가만히 바닥을 바라보던 아슈라 왕자가 완전히 그늘에 잠긴 나무 아래에서 고개를 들어올렸다.
“(상관없어.)”
옷이야 또 사면 되지.
그래도 친구가 내 옷 걱정을 해주니까 기분이 좋네! 아슈라 왕자가 입꼬리를 광대아래까지 끌어올리며 개구쟁이 같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강석은 아슈라 왕자를 힐긋 바라보는가 싶더니 다시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왜 물이 들었는지 알게 되면 곤란합니다.)”
강석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재차 덧붙였다. 제가 아슈라 왕자의 저만 들어올 수 있는 정원에서 무엇을 했는지 다른 사람이 아는 게 꺼려진다는 뜻이었다.
옷 걱정이 아니라 작품 걱정이었다는 소리였다. 아슈라 왕자가 잠깐 강석을 바라보는가 싶더니 갑자기 바닥에 풀썩 앉았다. 잔디를 깔아뭉갠 채였다.
“(석이가 작업하는 동안 잔디밭에서 낮잠이라도 잤다고 하면 되는 거 아니겠어? 그리고 내가 파고들어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에는 귀신같이 눈치채는 사람들이니까 그렇게 경계할 필요 없어.)”
아슈라 왕자가 한쪽 손은 땅에 짚어 자신을 지탱하고 나머지 남는 손으로 손사래를 쳤다.
“(············.)”
강석은 대답없이 나뭇잎들만 살폈다.
가위를 들고 나뭇잎을 이리저리 살펴보는 모습이 아슈라 왕자의 시야에 잡혔다.
누가 멀리서 본다면 영락없이 정원사로 보일 것 같았다. 강석이 병충해로 고생하는 나뭇가지를 살피는 줄 알거나 죽은 나뭇잎을 자르는 줄 알거다. 아슈라 왕자가 강석이 바라보는 나뭇잎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고요 속에서 서걱서걱 익숙한 소리만 들려왔다.
아슈라 왕자가 자신과 강석, 그리고 나무까지 뒤덮은 구름을 올려보는가 싶더니 중얼거렸다.
“(그래도 불안하다면 내가 해결해줄 수는 있지.)”
그렇게 말하면서 아슈라 왕자가 등을 땅에 대며 누웠다. 그리고 잔디밭에 머리카락과 어깨를 문대듯 몇 번 뒹굴었다.
“(갑자기 뭐하시는 겁니까?)”
“(잔디밭에 뒹굴어서 물 들이면 어깨 위로 나뭇잎이 내려와서 물을 들였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거야.)”
그러면서 아슈라 왕자가 급하게 몇 번 더 땅바닥에 문대더니 몸을 대충 일으켰다. 뭐 그리고 멍청하게 제가 허락한 일에 토를 달거나, 깊이 파고들려고 할 사람들이 아니기도 했다.
하지만 아슈라 왕자는 강석이 작업하는 중에 조금이라도 제 걱정을 하는 일이 없게끔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강석이 그 행동에 묵묵히 가위만 움직이다가 짧게 한숨 같은 웃음을 내쉬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너 알아서 하란 뜻이었다. 아슈라 왕자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정말 강석은 걱정도 많아. 내가 걱정을 덜어줘야지, 어쩌겠어. 그렇게 생각한 아슈라 왕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앉았다. 아슈라 왕자는 잠시 앉은 상태에서 강석이 가위질을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흐음···’
얼마가지 않아 아슈라 왕자의 시선이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방금까지 보고 있던 곳과는 다른 곳이었다.
나무 밑동 쪽.
강석이 어젯밤에 해가 지고 빗질을 해 쓸어내렸던 곳에 아슈라 왕자의 시선이 머물렀다.
그렇게 깔끔하게 쓸어내렸는데 다시 또 나뭇잎 너부렁이들이 쌓이고 있었다. 쌓인 나뭇잎 수를 보니 강석은 꽤 이른 아침부터 나와있었던 게 분명했다.
청귤 껍질을 벗긴 것처럼 또는 그곳만 무성한 잡초가 뒤덮인 것처럼 높게 솟아오른 구릉지를 바라보던 아슈라 왕자의 시선이 천천히 들렸다.
‘참 신기하지.’
아슈라 왕자의 갈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살짝 흔들렸다.
그리고 강석 너머에 있는 나무를 바라보았다. 일주일 내내 강석이 수많은 나뭇잎을 잘랐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풍성했다. 풍성 정도가 아니라 빼곡해보였다.
처음 아슈라 왕자가 이곳에 가져왔을 때처럼 햇볕이 뚫고 들어올 부분도 없어보였고, 그저 나뭇잎이 꽉 차서 손을 넣을 틈도 없어보이기만 했다. 나뭇잎 끝자락 역시 감쪽같이 다듬어져 초록의 경계가 잘 구별되지가 않았다.
마치 초록색 페인트로 구분없이 쭉 선을 그은 것마냥 하나의 거대한 구름마냥 나뭇잎들이 경계없이 얽혀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보이긴 그렇게 보이지.’
그래서 더더욱 신기했다. 그때였다. 아슈라 왕자와 강석을, 정확하게는 나무를 가리고 있던 구름이 천천히 나무를 지나쳐가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어서 그런지 더 구름이 앞으로 잘 나가는 것 같았다.
아슈라 왕자가 흔하지 않은 커다란 구름을 바라보았다. 구름이 지나가면서 그 너머로 가려져 있던 태양이 점차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막혀있던 벽이 사라지는 것처럼 구름이 완전히 떠나간 자리에 하나둘씩 햇볕이 들어왔다. 성당 스테인글라스 창문에 빛이 서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새푸른 하늘이 싱그러운 햇볕을 되찾았다. 그리고 햇볕은 정확하게 위에서 아래로, 대각선으로 떨어졌다. 마치 성당 정면에서 빛이 떨어지듯 나무에게로 아주 느리고 평화로운 벼락 같은 햇볕이 내려왔다.
그리고 햇볕이 나뭇잎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청귤빛 연두색에서 초록색 사이. 쨍한 색감을 자랑하던 나뭇잎이 점차 햇살을 머금으며 변화하기 시작했다.
햇빛에 하얀색 불투명한 비닐봉투를 비추어보면 그 안에 담겨있는 것들의 그림자가 잡혀 어떤 물건이 들어있는지 알 수 있다. 비닐봉투를 햇빛이 통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과할 수 있는 것과 통과할 수 없는 것의 차이가 생겨나면서 그렇게 되는 거다.
그리고 지금 강석에게 선물한 나무는 그와 같은 상태였다.
겉으로는 완벽해보였지만 빽빽하게 들어찬 나뭇잎들 일부분들이 잘려나가 햇볕이 통과하지 못하던 나무는 일주일 전과 달리 투명한 유리처럼 빛을 통과시켰다.
겉으로 보기에는 청귤빛이었던 것이 아무것도 잘려나가지 않아 햇볕을 몇겹으로 가로막고 서있는 것은 그림자가 져 짙고 어두운 녹색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햇볕을 가로막을 정도가 되지 않는 군데군데는 내리쬐는 빛에 의해 청귤보다도 더 밝아져갔다. 마치 라임의 속살같은 것에서 레몬의 겉껍질 같은 색으로 점차 점차 빛이라는 물감으로 나뭇잎이 칠해졌다.
편지에 양초를 그을려 글씨가 드러나게 하듯 햇볕에 의해 그림자와 빛으로 된 그림이 나뭇잎을 캔버스 삼아 튀어나왔다.
마치 추상화 같았다.
어떤 그림인지는 모르지만 섬세한 붓터치가 아름다운···그냥 자연이 선물한 예술 같은 느낌. 형상화 되어있지 않은 불규칙하고 비정형적인 형태를 갖추지 못한 야수파와 인상파 같은 회화가 드러났다.
섬세한 붓터치는 마치 빛의 흐름을 인상파 화가가 나뭇잎 위에 그려놓은 것 같았다. 붓 한 번 휘두르지 않고, 물감 한 번 사용하지 않고 만들어낸 회화.
그러나 형태는 없어 그것을 그림이라 생각하고 보지 않으면 그림이나 미술이라곤 떠올릴 수 없는···말로 설명하기 힘든 빛의 잔상을 쫓던 아슈라 왕자가 천천히 다시 고개를 내렸다.
이 정원에 와서 바닥으로 시선을 내리꽂았을 때처럼.
홀린 듯 아슈라 왕자가 바닥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곳에 마치 스테인글라스의 빛이 투명하게 투과되어 요정이 내려앉은 것 같은 모습이 보였다. 잔디밭이라는 연못을 헤엄치는 물고기 떼 같았다. 반딧불이라는 생물 같기도 했다.
빛의 무도회.
아름다웠다.
자연이 선물한 예술.
그러나 진짜는 이게 아니지.
아슈라 왕자가 아예 드러누웠다. 땅바닥에 냅다 누운 아슈라 왕자가 꼬물꼬물 몸을 움직여 나무밑동 쪽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곳에 진짜 예술이 있었다.
나뭇잎과 빛을 이용한 점묘화와 스테인글라스 모자이크 기법이 섞인 것 같은 거친 필압의 섬세한 표현력이 일품인 작품이 나타났다.
새의 날개를 단 아기들이 빛 속을 날아다니는 것 같은 형상이 드러났다.
어떤 아기는 장미로 보이는 제 얼굴만한 꽃을 들고 입을 맞추고 있었고, 어떤 아기 천사는 본인 머리 세 배는 넘을 것 같은 목욕탕 바구니 같은 것에 과일을 가득 담고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또 어떤 아기 천사는 턱을 괴고 다른 천사들을 바라보고 또 어떤 아기천사는 피리를 불고 있었다. 나팔과 낫을 든 아기 천사와 그리고 화관을 들고 하늘로 올라가는 아기 천사. 아슈라 왕자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나무 몸통을 중심 삼아서 모빌처럼 늘어진 아기 천사들과 그 뒤를 장식하는 빛의 흐름을 그린 섬세한 붓터치. 마치 빛의 소용돌이 속에서 천국의 문 근처에서 노니는 아기 천사들을 엿보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놀라운 것은 이것이 그림이 아니란 거였다.
아슈라 왕자가 고개를 옆으로 틀었다.
그러자 아기 천사들의 몸이 틀어지며 정면이었던 아기 천사들은 측면으로, 측면이었던 아기 천사들은 정면으로, 뒤통수를 보이고 있던 아기천사들은 얼굴 측면을 내놓는 형상으로 바뀌었다.
조각가.
강석은 화가가 아니고 조각가였다.
그는 나뭇잎과 빛을 이용해 나무에다가 눕지 않고는 볼 수 없는 비밀스러운 조각들을 만들어내었다. 작지만 작은 것이 합쳐져 어른들을 몇몇이 오더라도 다 잡아챌 수 없는 거대한 조각상이 여기에 존재했다.
그 어떤 천장화보다 고급스럽고 신비스러웠다.
이걸 저 사다리에 의지해 나뭇잎만 들여다보고 가위로 만들어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는 정면에 서서 완전히 반대쪽으로 어떻게 형상이 보일지를 알면서 나뭇잎을 잘라냈다는 것이고, 그걸 다 머릿속에 넣어 열 명이 넘는 아기천사 형상들을 만들어냈다는 것이었다.
나뭇잎이라는 초록 구름을 노닐며 빛의 파도속에서 뛰어노는 아기 천사들의 아름다움이 고작 가위로 만들어졌다니.
아슈라 왕자는 햇볕으로 만들어진 군상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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