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17)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117화
M이 없는 남자 (1)
파주 교도소에서 일어난 사건은 다시 한 번 한국을 뒤집었다.
2천 명이 넘는 흑성회원들이 한순간에 폐인이 되어버린 충격적인 사건.
교도관들의 증언에 따라 해당 사건의 주범으로 찍힌 건 정재철 소장이었지만, 당시 정재철 소장은 외근을 나가 있었다는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기 때문에 사건은 다시 미궁 속에 빠져버리게 됐다.
━누군가 정재철 소장으로 변장하고 들어와 범죄자들을 심판했다.
CCTV나 보안 마법들에도 잡히지 않았고, 무슨 이유에선지 습격당한 흑성회원들이 하나 같이 입을 열지 않았기에 범인의 정체는 오리무중이 되어버렸다.
이 사건으로 인해 붙잡힌 범죄자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길드 연합에 대해 큰 비난이 쏟아졌고, 가만히 있던 협회에 대한 여론이 뜬금없이 좋아지는 등 헤프닝이 있었지만.
길드 연합 입장에선 불행 중 다행이라 해야 할까.
처음에 큰 이슈가 됐던 이 사건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관심이 사그라들었다.
‘그럴 만도 하지.’
애초에 습격을 당한 흑성회원들이 다들 철원 교도소 출신의 악질 범죄자였던 탓인지 오히려 이번 사건을 두고 통쾌하다는 여론이 대부분이었기 때문.
길드 연합 쪽에서도 최대한 빨리 사건이 잊혀지길 원했는지 범인을 잡기 위해 수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딱 생각한 대로 됐네.”
오진은 뉴스를 바라보며 씩 입꼬리를 올렸다.
막대한 마력을 손에 넣었고, 흑천의 오성개화에 도달했으며 덤으로 살짝이지만 협회에 대한 여론도 좋게 만들었다.
‘고생한 보람이 있구만.’
흑성회의 본부에 혈혈단신으로 잠입한다는 도박 수를 던질만한 가치가 있었다.
“마력은… 막상 써보니 좀 아쉽긴 했지만.”
이번에 무려 2천 명이 넘는 각성자의 마력을 흡수하게 되면서 앞으로 마력 부족은 걱정할 필요도 없다 생각했지만.
‘마력의 질이 떨어지는 게 이런 문제도 있었구나.’
일반적인 기술을 사용할 땐 별문제 없었지만.
뇌염이나 익시드, 충전과 같은 상위 스킬을 사용할 땐 질이 낮은 마력의 경우 그 소모 속도가 10배, 20배 가까이 차이 났다.
‘게임으로 치면 방마저 없이 피통만 많은 상황이라 해야 하나.’
양이 많긴 한데.
쓰는 양도 그만큼 터무니없이 불어나다 보니 만능이라 부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앞으로 질 낮은 마력을 대량으로 흡수하는 건 큰 의미가 없겠네.’
흑천의 개화 단계와 거문고자리 성흔의 성(星)이 높아질 걸 생각하면 질이 낮은 마력의 경우 효율이 지나치게 떨어진다.
없는 것보단 낫지만, 굳이 찾아 먹을 필요는 없는 정도랄까.
“뭐, 이걸로 일단 굵직한 일들은 다 처리했고.”
백두산에 묻혀 있다는 성유물을 찾으러 가기 전에 잠시 휴식 기간을 갖고 수련에 집중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오성개화를 하면서 뭐가 달라졌는지도 알고 싶고.’
특히 ‘개천’이라는 정체불명의 특성에 대해 알아볼 시간이 필요했다.
‘어디 그럼 수련하기 전에… 우리 여신님이나 오랜만에 불러볼까?’
최근 흑성회의 본부에 잠입하거나 붙잡힌 올빼미들의 성흔을 흡수하는 등.
도저히 베가의 앞에서는 보여줄 수 없는 일들만 하느라 펜던트를 벗어두고 활동한 탓에 한동안 베가의 얼굴을 거의 보지 못했다.
“베가.”
오진은 펜던트에 마력을 흘려 넣으며 베가를 불렀다.
우우우웅!
곧 은빛 빛무리가 일렁이며 30cm 되는 크기의 인영이 허공에 두둥 떠올랐다.
“베가?”
[…….]오진의 부름을 받고 현신한 베가는 팔짱을 낀 자세로 가늘게 눈을 뜬 채로 지그시 오진을 노려봤다.
“왜 그래 베가?”
[…흥.]베가는 콧방귀를 끼며 아예 홱 몸을 돌려버렸다.
‘뭐야.’
오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설마 그녀가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차리기라도 한 걸까.
‘실수한 건 없었을 텐데…?’
오진은 초조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저기… 베가?”
“…뭐가?”
[그대와 말을 섞기 싫다고 했느니라.]“엉?”
우리 여신님이 갑자기 왜 이러지?
[…진정 모르는 게냐?]“어, 음.”
[진정! 모르겠느냐!]베가가 날카롭게 눈을 뜨며 오진을 노려봤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뭔가 실수를 하긴 한 것 같은데.
골똘히 생각해봐도 딱히 짐작 가는 부분이 없었다.
[이게 대체 얼마 만에 본녀를 부르는 게냐! 최근 며칠 간은 펜던트도 멋대로 두고 가고…!]“아.”
그러니까.
지금 너무 오랜만에 불렀다고 삐졌던 건가?
‘난 또 뭐라고.’
오진은 철렁한 가슴을 쓸어내리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웃을 일이 아니니라!]“푸흐흐. 미안해 베가. 내가 하도 연락이 없어서 외로웠구나?”
[외, 외로웠던 건 아니니라. 그… 그러니까.]베가가 얼굴을 붉히더니 검지를 맞대고 베베 몸을 꽜다.
[본녀 혼자 지내긴 신전이 좀 적적하더구나.]외로웠던 거 맞구만.
‘아니 우리 여신님 왜 이렇게 귀여워졌냐.’
처음 만났을 때 근엄하고 신비로웠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최근 그녀는 여신이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솔직하고 귀여운 모습을 자주 보여주게 됐다.
‘뭐, 생각해보면 이게 베가의 본 모습이었던 거지.’
북극성의 성좌라는 가면 속에 숨겨진.
베가라는 한 여인의 진짜 얼굴.
‘그런 모습을 보여줄 정도로… 날 믿게 됐다는 걸까.’
오진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뺨을 부풀린 채 단단히 삐져 있는 그녀를 향해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리아크는 어쩌고 혼자 있었어?”
[리아크는… 으음.]베가는 망설이는 표정으로 머리칼을 베베 꼬았다.
[그대에겐 비밀로 해달라 했지만… 최근 ‘벽’을 넘기 위해 수련에 집중하고 있느니라.]“벽?”
그러고 보니 몇 번 들은 적 있었다.
‘수백 년 동안 경지의 벽에 막혀 있다 했던가.’
처음 그를 만났을 당시.
리아크는 경지의 벽을 넘는 것에 절망하고 있었다.
아니, 절망을 넘어 포기하고 있었다.
‘어떤 감정인지 아직 느껴본 적은 없지만.’
아직 ‘벽’이라고 느낄 정도로 정체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롭다는 건… 알겠네.’
물건을 어디에다 뒀는지 기억나지 않아 한 시간을 찾아 헤매는 것만 해도 고역인데.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깨달음을 찾아 묵묵히 수련을 이어나가는 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리아크는 그 아득한 고통을.
일 년을.
십 년을.
백 년을 넘도록 반복한 것이다.
“…쯧.”
오진은 나지막이 혀를 찼다.
신경이 좀 쓰이긴 했지만, 이건 리아크 스스로가 극복해야 할 일이다.
“리아크까지 없었다면 많이 적적하긴 했겠네.”
텅 비어있던 그녀의 신전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게 아니니라.]“아니라니?”
[예전에도 본녀 혼자 신전을 지키고 있던 적은 많았느니라. 하지만 그때는… 이토록 외롭지도, 적적하지도 않았다.]“…….”
[그대와 만나면서부터이니라.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된 건.]흔들리는 눈빛이 오진을 향했다.
베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상냥한 손길이 오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후훗. 혹시 어떤 기적이라도 일어나서 전생의 기억 일부가 본녀에게 전해졌을지도 모르겠구나.]“…….”
아니.
그럴 일은 없다.
전생에 있었다는 그녀와의 추억은 자신의 세 치 혓바닥으로 만들어낸 거짓이었으니까.
[어쨌든! 앞으론 조금 더 자주 본녀를 부르거라!]“아, 응. 알았어.”
복잡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오진이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베가가 티비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대가 말했던 전쟁이 이것이었더냐?]흑성회와 길드 연합 간의 싸움.
‘전쟁’이라고 부르기엔 민망할 정도로 일방적이긴 했지만.
규모만 놓고 보면 분명 전쟁이라 부를 만큼 큰 사건이었다.
“원래는 이렇게 쉽게 끝나지 않았어. 피해자도 훨씬 더 많았고.”
[뭘 했기에 이리 쉽게 전쟁이 끝나게 된 게냐?]“정보를 좀 풀었지.”
[아… 그렇다면 흑성회의 본부와 지부의 위치를 뿌렸다는 익명의 제보자가 그대로구나!]“응.”
베가가 눈을 반짝이며 손뼉을 쳤다.
[그런데 저 정보를 어떻게 알아낸 게냐? 흑성회에 대한 건 그대도 잘 모른다 하지 않았더냐?]“나도 원래 정확한 위치까지는 몰랐었는데 이번에 단서를 찾아서 알아낼 수 있었어.”
[흐흠. 하긴 그대라면 미래에 벌어질 일을 모두 알고 있으니 어렵지 않았겠구나.]베가는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러면 저 2천 명을 폐인으로 만들었다는 것도 그대가 한 일이느냐?]어딘가 불안에 찬 눈빛.
“아니. 저건 내가 한 일이 아니야.”
자연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자신을 ‘영웅’이라 생각하고 있는 이상.
아무리 천인공노할 범죄자라 해도 무려 2천 명이 넘는 사람을 폐인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모르겠어.”
[모르겠다니?]“1회차에선 없었던 일이야.”
[…….]베가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대가 흑성회에 대한 정보를 풀면서 미래가 바뀐 게로구나.]“그렇지.”
오진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누가 저놈들을 폐인으로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전쟁을 막는 데는 성공했어.”
[이제 그럼 다음 계획은 무엇이냐?]“백두산에 숨겨진 성유물이 하나 있어.”
이신혁에게 얻은 기억을 떠올렸다.
[오, 이번에도 그 성유물을 미리 선점할 계획이느냐?]“그렇긴 한데. 이게 어디에 숨겨져 있는 지까지는 나도 몰라서.”
[흐음. 찾는 데 시간이 좀 필요하겠구나.]“뭐, 당장 급한 건 아니니까. 천천히 시간 내서 찾아보려고.”
[후훗. 역시 믿음직스럽구나.]베가가 기특하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대라면 뭐가 됐든 잘 할 수 있을 것이니라.]여신님의 무한한 신뢰가 느껴졌다.
[이번 일만 해도 그대 덕분에 원래라면 죽었을 많은 생명이 구원받지 않았느냐?]“뭐, 알아주는 사람은 없겠지만.”
[본녀가 있느니라.]베가가 뽀르르 날아올랐다.
[미래를 바꾸기 위해 그대가 얼마나 필사적으로 노력하는지, 그대의 노력 덕분에 얼마나 많은 생명이 구원받았는지.]찬란한 빛무리가 그녀의 몸을 휘감으며 베가가 본모습으로 돌아왔다.
[본녀가 쭉━ 그대의 옆에서 지켜봐주겠느니라.]베가가 손을 뻗어 오진의 머리를 상냥하게 끌어안았다.
“…….”
뺨을 압박하는 부드러운 감촉.
그녀가 자신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 피부에 맞닿은 온기를 통해 절절히 전해졌다.
‘좀 죄책감이 들긴 하네.’
이 정도로 자신을 믿어주고 있는데 정작 자신은 그녀를 속이고 있다니.
‘뭐, 어쩔 수 없지.’
이미 돌이키기엔 너무 먼 길을 걸어왔다.
이렇게 된 이상.
끝까지 회귀자를 연기할 수밖에.
“고마워 베가.”
[흐응! 조금 더 고마워하거라!]“고마워어어어!!! 베가아아아악!!”
두 팔로 베가를 허리를 끌어안으며 그녀의 가슴에 뺨을 비볐다.
[후훗. 이러니 진짜 아이가 된 것 같구나.]베가는 오진의 어리광을 받아주며 배시시 미소 지었다.
[흐음….]한동안 오진을 꼭 품속에 끌어안아 주고 있던 베가가 고민에 잠긴 표정으로 침음을 흘렸다.
“왜?”
[…하, 한 가지 제안이 있느니라.]“무슨 제안?”
[그… 본녀를 하, 한 번 ‘마마’라 불러보겠느냐?]예?
그게 무슨 정신 나간 소리세요 여신님?
[그, 그대가 잘못한 것이니라! 자꾸 어리광을 부리면서 본녀의 마음을 뒤흔들지 않았더냐!]“아니. 내가 언제….”
[에에에잇!! 시끄러우니라! 한동안 본녀를 신전에 홀로 놔둔 벌이니라!]베가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되레 화를 냈다.
“…….”
오진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그녀를 올려다보다가.
“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콰아앙!
그때.
현관이 거칠게 열리며.
“가만히 들어주려고 했더니 지랄을 하네 아주!! 마마는 무슨 마마?!!”
씩씩 거친 숨을 내쉬고 하은이 성큼 거실로 들어왔다.
오진의 팔을 거칠게 잡아끌며 외쳤다.
“우리 오지니는 엄마 같은 거 없거든?!!”
“…….”
어… 음.
맞는 말이긴 한데.
‘맞… 나?’
뭐지, 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찝찝한 기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