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76)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376화
막간–뱀의 주인(2)
“어이, 오진 동생! 어딜 그렇게 다녀온 겐가?!”
병원으로 돌아오니 환자복 차림의 사카키가 병원 앞 정원에 나와 있었다.
호탕한 웃음을 흘리며 손을 흔드는 사카키 뒤에 안절부절못하는 코시로의 모습이 보였다.
“오, 오야붕! 함부로 병실 밖으로 나오시면 안 된다니까요!”
“하하핫! 사나이라면 기합으로 버티는 거다 코시로!”
“앗… 그, 그런 겁니까 오야붕?”
동그랗게 눈을 뜨며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 부르르 몸을 떠는 코시로.
“그런 겁니까는 또 무슨 그런 겁니까예요 오라버니.”
뒤따라 나온 요코가 도끼눈을 뜨며 코시로의 귀를 잡아당겼다.
“아, 아파!”
“오라버니는 좀 아프셔도 괜찮아요!”
요코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사카키를 쏘아봤다.
“사카키 님도 얼른 병실로 돌아가세요. 아직 몸도 다 안 나으셨잖아요?”
“하하! 사나이라면 이 정도 상처쯤은 기합으로….”
“…안주인님에게 이를 거예요?”
“헉.”
사카키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그, 그것만큼은….”
알데바란의 선택을 받은 황소조차 부인 앞에서는 송아지가 되는 걸까.
말을 더듬으며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던 사카키가 도망치듯 오진을 향해 다가왔다.
“으음?”
오진의 안색을 살피던 사카키가 눈을 찌푸렸다.
“무슨 일 있었나 동생?”
“…아뇨.”
“아니긴 뭐가 아닌가!”
핼쑥해진 뺨과 창백하게 질린 얼굴.
장거리 마라톤을 끝낸 육상 선수처럼 후들거리는 다리가 지금 오진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걸 알려줬다.
“혹시 해마의 독이 아직 몸 안에 남아 있거나 그런 겐가?”
아뇨.
정확히는 몸 안에 남아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문제죠.
“그게 아니라면 내상이 아직 다 낫지 않은 게군!”
다 낫지 않은 건 맞는데.
그것 때문은 아니에요.
“뭐라 대답 좀 해보게나!”
이게.
그… 말하기 좀 그렇고 그런 이유거든요.
“제수씨는 오진 동생 상태가 왜 이런지 알고 있나?!”
“으, 응? 나?”
“방금 전까지 같이 나갔다 돌아온 거 아닌가?”
“그, 그렇긴 한데. 그게 말이지….”
어색한 휘파람을 불며 슬쩍 시선을 피하는 하은.
고개를 돌린 하은의 뺨이 불에 달군 듯 붉게 달아올랐다.
오진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내상이 다 나은 줄 알고 잠깐 바람이나 쐴까 하고 나갔는데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더라고요.”
“어허. 아직 다 낫지도 않은 환자가 함부로 밖을 쏘다니면 어떻게 하나?”
“…….”
당신이 할 소리야 그게?
“일단 지금 바로 의사를 부르겠네! 여기 앉아서 좀 기다리게나!”
“아, 아뇨! 괜찮습니다!”
밖에서 하은과 은밀한… 아니, 공개된?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쨌든 둘만의 뜨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이유로 응급실에 실려 간다면 평생에 길이 남을 흑역사가 생기게 되리라.
“…진짜 집중 치료실에 안 가도 되겠나?”
“예! 잠깐 머리가 어지러워서 그랬던 거지 저 팔팔합니다 형님!”
오진은 사카키처럼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주먹을 쥔 손으로 가슴을 쿵쿵 쳤다.
사실 내상이 완전히 낫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한 운동(?)을 하느라 몸 상태가 좋은 건 아니었지만.
‘절대 안 돼.’
진짜 그딴 이유로 집중 치료실에 들어가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오, 오지니도 괜찮다잖아! 내가 병실로 바래다줄 테니까 걱정 마, 아저씨!”
하은 또한 오진과 같은 생각인지 어색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지으며 오진을 부축했다.
사카키는 팔짱을 낀 채 흠, 침음을 삼켰다.
“뭐, 제수씨까지 그렇게 말한다면야 어쩔 수 없군.”
“하하. 그럼 저는 이만… 아.”
“음? 무슨 일이라도 있나?”
“한가지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오진은 품속에서 종이를 한 장 꺼내 사카키에게 내밀었다.
종이 위에는 마치 사진으로 찍은 것처럼 선명한 백발의 사내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 사람을 조사해 주셨으면 합니다.”
솔직히 사카키가 백발의 사내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지만.
아주 작은 단서라도 얻을 수 있다면… 아니, 설사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한다고 해도 일단 부탁 정도는 해두는 게 좋으리라.
적어도 일본 내에서 쿠로우시의 정보력을 따라올 수 있는 조직은 없었으니까.
“이자는 누군가?”
“저도 외모 말고는 다른 정보는 모릅니다.”
“으음.”
사카키는 무거움 침음을 삼키며 살며시 눈을 찌푸렸다.
아무리 쿠로우시의 정보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달랑 사진 한 장으로 사람을 찾는 건 무리가 있었다.
“일단 노력은 해보겠네만… 솔직히 이것만으로 찾기는 어려울 것 같네.”
“알고 있습니다. 저도 혹시나 해서 부탁드리는 거니까요. 너무 신경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하핫! 그래도 자랑스러운 동생의 부탁인데 애들 좀 풀어보긴 해야지.”
사카키는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종이에 그려진 백발의 사내를 살폈다.
“그나저나 이거 동생이 직접 그린 건가?”
“예.”
“오오, 그림에도 재주가 있었구만! 누가 보면 그림이 아니라 사진이라 착각할 것 같네.”
사실 이신혁의 기억 속에서 봤던 백발의 사내의 외모를 환영 스킬을 응용해서 종이 위에 옮긴 거라 그림이라기보단 인쇄된 사진에 가까웠지만.
굳이 그런 것까지 하나하나 설명할 필요는 없으리라.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참, 오늘 아침에 피해 현황과 남은 잔당에 대해 애들이 보고를 올린 거라네. 별 내용은 없지만 한 번 봐보게나.”
사카키가 품속에서 꺼낸 서류를 몇 장 내밀었다.
별 내용이 없다는 말답게 종이가 많아 보이진 않았다.
“감사합니다.”
오진은 사카키한테 서류를 받아든 후 병실로 향했다.
뒤따라오던 하은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에 찬 숨을 내쉬었다.
“워우 씨. 아저씨가 의사 부른다길래 식겁하는 줄 알았네.”
“그러니까 하지 말자고 했잖아.”
“헹, 중간부터는 지가 더 열을 냈으면서.”
“그건….”
끄응.
오진은 변명할 말이 없다는 듯 침음을 삼켰다.
달칵.
병실 안으로 돌아온 오진은 바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흐으. 역시 침대가 최고야.”
마치 뜨거운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은 듯한 편안함.
몸을 짓누르고 있던 피로가 스르륵 녹아가는 게 느껴졌다.
“뭔 야근에 쩔은 아저씨 같은 소리냐.”
“시끄러.”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누나가 사과 깎아줄까?”
“심만 남은 사과는 먹고 싶지 않은데.”
“이, 이젠 잘 깎거든?!”
하은이 씩씩거리며 과도를 집어 들었다.
“어, 어라? 이게 왜 이렇게….”
예상했던 대로 껍질과 함께 무참히 썰려 나가는 과육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오진은 백발의 사내를 떠올렸다.
‘누굴까.’
새하얀 설원을 옮겨놓은 듯한 사내.
섬뜩한 빛으로 빛나고 있던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떠올리며 눈을 찌푸린다.
“쯧.”
계속 이렇게 머리를 싸매고 있어봤자 사내의 정체를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진은 가볍게 혀를 차며 사카키에게 받아들였던 서류를 펼쳤다.
이번 전투로 인한 피해 규모에 대해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서류를 살펴보고 있을 때, 입가에 삐뚤빼뚤 심만 남은 사과가 다가왔다.
“자, 아앙~”
“…사과가 좀 많이 홀쭉해졌네?”
피티라도 받은 건가?
“닥치고 먹어.”
“옙.”
“아까 아저씨가 준 거야?”
“엉.”
“줘봐, 나도 한 번 보게.”
하은이 서류를 가져가 팔락팔락 종이를 넘겼다.
피해 상황을 확인한 하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그 난장판을 만들며 싸웠는데 인명 피해가 없어서 다행이네.”
“미리 대피시켰으니까.”
전투의 여파가 워낙 컸던 터라 그들의 생활의 터전이라고 할 수 있는 바닷가는 초토화돼버리긴 했지만.
어쨌든 미리 마을 사람들을 대피시켰기 때문에 다행히 인명 피해까지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나마 인명 피해라고 할만한 건….’
처음 안셀라두스가 현신하는 모습을 촬영했던 쿠로우시 조직원과 실종됐던 트럭 운전사 정도일까.
숫자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검은 별의 성좌가 직접 지구에 현신한 것치고는 거의 피해가 없다고 할 수 있….
“…어?”
그때.
등골을 타고 섬뜩한 전율이 퍼졌다.
오진은 낚아채듯 하은이 읽고 있던 서류를 가져가 다시 한번 자세히 살폈다.
“뭐야? 왜 그래?”
“…없어.”
“뭐가 없는데?”
“트럭.”
안셀라두스의 기습으로 인해 전혀 신경 못 쓰고 있었지만.
“실종됐다는 트럭… 그거 어디 있는 거야?”
어째서일까.
끈적한 타르처럼 불길한 예감이 전신에 퍼졌다.
* * *
“재해, 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둠이 내려앉은 숲속.
설원처럼 새하얀 사내가 바위 위에 걸터앉은 채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수풀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사내의 혼잣말이 나긋하게 이어졌다.
“예상할 수도, 대처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것… 마치 운명과 닮지 않았나요?”
에메랄드빛 눈빛이 수풀 어딘가로 향했다.
그곳에는 거대한 발톱에 찢겨 나간 듯 갈기갈기 찢어져 있는 트럭 하나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러니까 그가 저를 만난 것도… 만나게 돼버린 것도, 어쩌면 정해진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거죠.”
사내는 온화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나지막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카시아.”
사라라락.
수풀이 흔들리며 마치 뱀이 바닥을 기어 다니는 듯한 음산한 소리가 숲속에 울려 퍼졌다.
짙게 내리깔린 그림자 속에서 한 여인이 걸어 나왔다.
얼핏 보면 소녀라고 착각할 만큼 가냘픈 체형의 여인.
하지만 소녀처럼 가냘픈 체형과는 달리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에는 소녀라고 할 수 없는 요염한 색기가 맴돌고 있었다.
검은 드레스를 바닥에 끌며 사내에게 다가온 카시아가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뱀주인자리의 성좌, 뫼비우스 님을 뵙습니다.”
“하하. 그렇게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어요.”
뫼비우스라 불린 백발의 사내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 성흔을 주기는 했지만, 카시아는 제 ‘아이’가 아니니까요.”
“…….”
날카로운 칼날로 베어낸 것처럼 단호한 말.
카시아는 어딘가 초조한 표정으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에 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요.”
“그래요? 이거 참 우연이네요. 아, 어쩌면 이것도 운명일 수도 있겠네요.”
뫼비우스는 나지막한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돌렸다.
섬뜩하게 반짝이는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카시아를 향했다.
“저도 카시아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