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419)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419화
별들의 전쟁 (10)
쿠르르르륵!
뫼비우스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먹구름이 사납게 솟구쳐 올랐다.
가루가 되어 흩어지던 뫼비우스의 몸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며 녹색으로 빛나던 눈동자에 섬뜩한 푸른 귀화가 타올랐다.
“…뭐, 라고?”
오진은 두 눈을 부릅뜬 채 검은 먹구름에 휩싸인 뫼비우스를 바라봤다.
너무나도 익숙한 모습.
하지만 동시에, 너무나도 낯선 광경이었다.
“개천을… 어떻게?”
흑천을 지닌 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어떻게 뫼비우스가 사용하고 있단 말인가.
[나의 아이야!]베가가 다급히 오진을 잡아당겼다.
쿠르르륵!
오진이 서 있던 자리를 검은 먹구름이 휩쓸었다.
단단한 대지가 푸딩을 스푼으로 푼 것처럼 말끔하게 ‘뜯어 먹혔’다.
“미친…!”
저 뜯어먹힌 듯한 자국은 개천을 사용했을 때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흔적이었다.
‘진짜 개천이라고?’
어떻게 흑천도 지니고 있지 않은 뫼비우스가 개천을 사용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천마에게 흑천의 힘 일부를 받았다고 해도 개천을 사용하는 건….
“아.”
오진의 입술 사이로 나지막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거친 숨을 헐떡이며 몸을 일으키는 뫼비우스.
검은 먹구름을 망토처럼 몸에 두르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뭔가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래, 그렇게 된 거였군.’
오진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나의 아이야. 어, 어찌 저자가 개천을….]“아니야.”
[아니라니?]“저건… 개천이 아니야.”
개천은 몸 안에 자리 잡은 흑천의 힘을 폭주시키는 기술.
개천을 사용하면 필연적으로 나타나야 할 현상이 뫼비우스에게선 보이지 않았다.
‘신체 일부가 흑천의 구름으로 바뀌지 않았어.’
뫼비우스는 어디까지나 흑천의 구름을 망토처럼 몸에 두르고 있을 뿐.
육체 자체가 흑천의 구름으로 바뀌지는 않았다.
“천마에게 받은 흑천을 폭주시켜서… 개천을 흉내 내고 있는 거야.”
물론 말처럼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그를 위해서는 일단 ‘폭주’가 가능할 정도로 많은 양의 흑천을 지니고 있어야 하고, 그 힘에 대한 제어권이 있어야 했다.
즉.
‘천마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해.’
천마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반대로 말하면, 천마의 도움만 있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게 의미하는 건 한 가지.
“…이 빌어먹을 새끼가.”
애초에 이 상황 자체를 천마가 의도했다고 보는 게 맞으리라.
“하, 하하. 이게 천마가 말한 힘이로군요.”
뫼비우스는 그의 몸을 뒤덮고 있는 흑천의 구름을 내려다보며 입가를 비틀어 올렸다.
“과연, 성좌의 멸망을 가져올 정도의 힘… 크흑, 커억!”
말을 하던 도중 가슴을 부여잡으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토해내는 뫼비우스.
그의 왼쪽 가슴에 새겨진 뱀주인자리의 성흔이 점차 빛을 잃으며 사라져가는 게 보였다.
[저건….]“개천의 대가겠지.”
카시아와 이사벨라가 그러했듯.
천마가 준 흑천의 힘은 암세포처럼 대상의 성흔 내부에 잠식해 뒤섞이게 된다.
그런 흑천을 폭주시킨다는 건.
‘성흔의 소멸을 의미하지.’
그리고 성좌에게 있어 성흔의 소멸은 존재 자체의 소멸을 의미했다.
“하아, 하아!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더, 괴롭군요.”
뫼비우스도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는지 거친 숨을 헐떡이면서도 피식 실소를 흘렸다.
“자, 그럼… 다시 시작해 볼까요?”
쿠르르륵!
장막처럼 펼쳐진 검은 먹구름이 해일처럼 오진을 덮쳐왔다.
다급히 성역을 펼쳐 흑천의 구름을 막으려고 했지만.
“크윽!”
콰드드득!
은빛 성역이 종잇장처럼 찢겨나가며 흑천의 구름이 오진 앞에 당도했다.
타앙!
오진은 근처 폐건물 잔해에 와이어를 발사해 가까스로 흑천의 구름을 피했다.
“크으… 쿨럭! 쿨럭!”
성역 전개의 후유증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또 성역을 펼치니 전신의 마력이 비명을 지르며 끓어오르고 있었다.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비릿한 핏물.
혈관에 피 대신 날카로운 쇳조각이 흐르는 듯한 끔찍한 격통이 전신을 난자했다.
‘이대로는….’
오진이 초조한 표정으로 입술을 짓씹고 있을 때.
“크윽!”
“꺄아아아!”
다른 쪽에서 또 비명이 들려왔다.
비명이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다른 성좌들을 상대하고 있던 각성자들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하아, 하아!”
“으… 오, 오지나. 이 새끼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하은이 피가 흐르는 어깨를 부여잡은 채 오진을 돌아봤다.
그녀와 싸우고 있던 올빼미자리의 성좌, 녹투아를 바라보니 검은 먹구름이 녹투아의 몸을 뒤덮고 있는 게 보였다.
“…설마.”
뫼비우스만이 아닌, 다른 성좌들도 성흔에 깃든 흑천의 힘을 폭주시킨 건가.
다급히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보니 예상대로 검은 별의 성좌들의 몸 주위에 흑천의 구름이 떠다니는 게 보였다.
물론 뫼비우스의 몸을 뒤덮은 흑천의 구름에 비해서 그 양도, 질도 한참 떨어졌지만.
콰드드드득!
“크으으윽!”
[아, 알레에에에엔!]섬뜩한 파골음과 함께 알렌의 팔이 검은 먹구름에 뜯겨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데네브의 절규가 황폐해진 전장에 메아리쳤다.
상황이 좋지 않은 건 다른 쪽도 마찬가지였다.
“읏… 오, 오진 씨! 갑자기 성좌들의 상태가 이상해요!”
거머리자리의 성좌, 히루도와 싸우고 있던 이사벨라도.
“오진 님 어, 어째서 성좌들이 흑천의 힘을…?!”
고양이자리의 성좌, 펠리스와 두꺼비자리의 성좌, 부테닌을 동시에 상대하고 있던 카시아도 갑작스러운 성좌들의 변화에 당황한 표정으로 물러났다.
‘제기랄.’
오진은 피 묻은 입술을 짓씹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아무리 성좌들의 축복이 있다고 한들, ‘소멸’을 각오하고 흑천을 폭주시킨 성좌들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초조하신 표정이군요.”
뫼비우스는 오진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저 멀리 허공에 떠올라 전장을 내려다보고 있는 성좌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성좌들의 축복만으로는 이 상황을 해결하실 수 없을 겁니다.”
“…….”
그 정도는 이미 알고 있다.
급격히 불리해지는 전황을 뒤집기 위한 방법은 한 가지.
‘개천.’
바로 오진 자신도 흑천을 폭주시켜 개천을 사용하는 것.
전에 이사벨라와 카시아에게도 사용했던 것처럼 그가 지닌 흑천은 천마의 흑천보다 ‘높은’ 격을 지니고 있으니 검은 별의 성좌들이 폭주시킨 흑천을 흡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개천을 사용하기는….’
허공에 떠오른 채 전장을 내려다보고 있는 수십 명의 성좌.
베가야 그가 흑천의 주인이라는 걸 알고 있다 쳐도 다른 성좌들은 그가 흑천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런데 그들 앞에서 ‘개천’을 사용하기라도 한다면.
‘들키겠지.’
아무리 오진이 거짓말에 능하다고 해도 흑천을 폭주시키는 기술까지 사용하고 그 정체를 숨길 수는 없었다.
‘정체가 들키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야.’
선뜻 개천을 사용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지금 그의 몸 상태였다.
거문고자리 성흔의 성역을 전개한 후유증으로 인해 전신의 마력 회로가 칼로 난도질당한 듯 너덜너덜해진 상태에서 ‘개천’을 사용했다가는.
‘모든… 기억을 잃을 수도 있어.’
멀쩡한 몸 상태로도 감당하기 힘든 게 개천인데 이런 최악에 가까운 몸 상태로 사용했다가는 흑천의 폭주를 견디지 못하고 완전히 의식이 잡아먹힐 수도 있었다.
‘제길… 어떻게… 어떻게 해야….’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고민만이 이어지고 있을 때.
[걱정하지 말거라, 나의 아이야.]어깨에 닿는 부드러운 손길.
찬란한 은빛과 함께 의체 상태였던 베가의 모습의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베가?”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는 그대의 표정만 봐도 다 알겠구나.]베가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오진의 머리를 상냥히 쓰다듬었다.
[모든 것을 그대 혼자 짊어질 필요는 없느니라.]개천을 사용한다는 것이 그에게 무슨 의미인지.
그가 얼마나 소중한 것을 희생해야 하는지는 그녀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이제까지 그대에게 보살핌만을 받아왔구나.]원래라면 자신의 아이를 지켜야 할 성좌가.
오히려 그 아이의 보호를 받으며 위기를 넘어왔다.
하지만.
[이제는 본녀가 그대를 지킬 차례이니라.]우우우웅!
은빛 해일이 주변을 뒤덮으며 흑천의 구름을 몰아냈다.
베가의 황금빛 안광이 뫼비우스를 향했다.
뫼비우스는 주변을 물들이는 찬란한 은빛 물결을 바라보며 흥미롭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흐응. ‘밖’에서 성역을 사용하시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잘 알고 계시죠?”
[물론이니라.]“하하. 자신의 아이를 위해 ‘소멸’까지 각오하시겠다는 겁니까?”
[그것이 성좌의 의무이니라.]“성좌의 의무라….”
뫼비우스가 낄낄 어깨를 들썩였다.
“베가 님 말고 그 ‘성좌의 의무’라는 걸 지키려 하는 성좌가 있을까요?”
아무리 베가가 북극성의 성좌라고 한들.
그녀 혼자의 힘으로 지금 상황을 뒤집는 건 불가능했다.
저 멀리서 전장을 내려다보고 있는 성좌들.
그들의 ‘희생’ 없이는 결국 흑천의 힘을 폭주시킨 흑성의 성좌들을 막을 수 없었다.
[물론이니라.]베가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자신의 아이를 소중히 여기는 건 본녀만이 아니니라.]다른 성좌들에게도 성흔을 내려준 인간은 자식처럼 소중한 존재였다.
그러니까 분명.
[그들 또한 자신의 ‘의무’를 지킬 것이니라.]베가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뒤에 선 채 전장을 지켜보고 있던 성좌들.
그들은….
[…….]굳게 입술을 다문 채.
애써 베가의 시선을 외면하며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다들 왜… 고개를 돌리는 게냐?]베가는 생각과는 다른 성좌의 반응에 당황한 표정으로 외쳤다.
베가의 호통을 들은 성좌들은 고개를 숙인 채 갈등에 찬 눈빛으로 입술을 짓씹었다.
“푸흡, 푸하하하하하하!”
뫼비우스가 배를 움켜쥔 채 폭소를 터트렸다.
“거봐요.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새하얀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푸른 귀화가 타오르는 눈동자로 성좌들을 노려봤다.
“너희는 애초에… 아무런 희생도 할 생각 없다고.”
황폐해진 전장에 뱀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딘가 흐느끼는 것처럼 들리는.
슬픈 웃음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