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420)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420화
별들의 전쟁 (11)
-아무래도 직접 가봐야겠습니다.
이브가 떠나가고 며칠이 지났을까.
신전에서 노심초사 승전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나는 결국 ‘밖’으로 나갈 결심을 세웠다.
성소 밖으로 나가는 것은 성좌에게 있어 큰 부담이 되는 일이었지만, 의체 상태로 나간다면 그래도 어느 정도 율법의 제약에서 버틸 수 있었다.
-같이 갈 성좌님들 있으십니까?
성소를 떠나기 전, 이브와 함께 전장으로 향했다는 각성자들의 성좌들을 찾아갔다.
그들 또한 전장으로 향한 자신의 아이들이 걱정됐는지 흔쾌히 성소 밖으로 나가는 걸 동의했다.
그렇게 성좌들과 함께 찾아간 전장.
-아, 아아.
지옥을 형상화한 듯 피와 시체로 뒤덮여 있는 마을을 바라보며 나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브를 찾아 미친 듯이 전장을 돌아다녔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얼마 지나지 않아 쓰러져 있는 이브를 찾을 수 있었다.
-뫼비우스… 님?
나는 다급히 다가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의체 상태로는 저 작은 소녀 하나조차 품에 안을 수 없다는 사실이, 끔찍한 자괴감을 불러일으켰다.
* * *
-여기… 위험, 해요.
소녀는 상처투성이가 되어 제대로 일어서지조차 못하는 몸으로도 내게 어서 도망치라 말했다.
소녀의 목소리를 듣기라도 한 걸까.
어마어마한 숫자의 마수 무리가 순식간에 주변을 포위했다.
나는 다가오는 마수 무리를 바라보며 다급히 ‘성역’을 전개했다.
-안 돼요… 뫼비우스 님.
내가 무얼 하려는지 알고 다급히 옷깃을 붙잡는 소녀.
-성좌 님들은… 성소 밖에서 힘을 쓰면 안 되잖아요.
아아.
분명 소녀에게 말한 적 있었다.
성좌는 성소 밖에서 함부로 힘을 써서는 안 된다고.
그게 성좌를 만들어낸 위대한 창조주께서 정하신 ‘율법’이라고.
하지만.
그깟 율법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눈앞에서 죽어가는 아이조차 지키지 못할 율법 따위 몇 번이고 어겨줄 수 있었다.
-걱정하지 말렴.
불안에 떠는 소녀를 뒤로하고 함께 온 성좌들을 돌아봤다.
-성역을 사용해야 합니다.
아무리 ‘소멸’을 각오한다고 한들 율법의 제약 탓에 성좌는 성소 밖에서 본신의 힘의 반의반도 낼 수 없었다.
해일처럼 밀려드는 마수 무리에게서 소녀를 지키기 위해서는 다른 성좌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들 중에 아이들을 위해 손을 내밀어주는 성좌는 없었다.
-우리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울부짖고.
-아이들의 목숨보다 그깟 규율이 중요하단 말입니까?!
아무리 절규하고.
-제발… 제발 도와주십시오. 저 혼자 힘으로는… 아이들을 지킬 수 없습니다.
아무리 애원해도.
그들은 침묵했다.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아이들의 죽음에서 눈을 돌렸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춥지 않도록… 꼬옥, 안아주세요?
소녀는 죽었다.
비참하고, 처참하게.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믿었던 신들에게조차 등이 돌려진 채.
그렇게.
그 아이는 고요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나는….
-뱀주인자리 성좌, 뫼비우스를 성소에서 추방한다.
율법을 어긴 죄로 위성이 되었다.
짓누르는 듯한 침묵.
공기조차 굳어버릴 것 같은 무거운 긴장감 속에서 성좌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성소 ‘밖’에서 성역을 전개하는 것.
그 대가가 무엇인지는 그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밖에서 성역을 전개하는 건….] [율법을 어기는 일 아닙니까?]그들이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비단 ‘대가’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인간들에게도 법과 질서가 있듯.
성좌들에게도 어겨서는 안 될 규율이 있었다.
별을 탄생시킨 창조주가 직접 만들어낸 ‘율법’.
그게 바로 성좌들의 질서를 유지하는 규율이었다.
물론, 과거와 달리 성좌들 사이에서도 반드시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많이 줄어들었다.
사실 각성자들에게 ‘축복’을 내려주는 것만 해도 엄밀하게 말하면 율법을 어기는 행위였으니까.
하지만 같은 불법이라고 해도 무단횡단과 살인의 죗값이 다르듯.
똑같이 율법을 어기는 행위라고 해도 각성자에게 축복을 내려주는 것과 성소 밖에서 성역을 전개하는 건 의미 자체가 달랐다.
[성소 밖에서 성역을 사용해서 안 된다고 말씀하신 건 북극성의 성좌 님들이었지 않습니까?]정확히는 폴라리스가 한 말이었다.
베가나 데네브는 폴라리스의 의견에 그저 동의했을 뿐.
그 당시에는 폴라리스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변치 않는 진리라 생각했다.
오진을 만나기 전까지.
그녀는 창조신이 정해준 ‘율법’을 따르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맞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어긴 성좌를 성소에서 내쫓으신 거 아닙니까?] […….]베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오진을 만나기 전, 신전 안에 두문불출한 채 다른 성좌와의 소통을 거절하던 시절의 그녀조차 들었던 소식이 하나 있었다.
율법을 어기고 성소 밖에서 ‘성역’을 사용한 죄로 성소에서 추방당한 성좌가 있다고.
그 성좌가 바로 뱀주인자리의 성좌, 뫼비우스라고.
[아아.]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나지막한 탄식.
이제야 그녀는 왜 이토록 뫼비우스가 성좌들에 대해 증오를 품게 됐는지, 어째서 폴라리스가 소멸하기 전 뫼비우스에게 ‘미안하다’라는 말을 전해달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된 거였구나.]베가는 뫼비우스를 돌아보며 슬픈 미소를 지었다.
[그대는… 우리의 ‘업’이었구나.]오진을 만나지 않았던 시절.
자신의 아이를 소중히 여긴다는 감정조차 알지 못했던 어리석은 성좌는 그저 주어진 규율을 진리라 여기며 따랐다.
율법을 따르지 않는 이들을 배척하고, 비난했다.
그 어리석고 우매했던 시절의 ‘업’이 지금 날카로운 송곳이 되어 그녀에게 되돌아왔다.
[모두 본녀의 잘못이니라.]자신은 그저 폴라리스의 의견에 동의한 것뿐이라는 비겁한 변명을 입에 담을 생각은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방관했던 것에도 책임은 따르기 마련이니까.
[미안하구나.]베가는 뫼비우스를 향해 깊게 머리를 숙였다.
뫼비우스는 머리를 숙인 베가를 바라보며 피식 실소를 흘렸다.
“인제 와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죠?”
이브는 죽었고.
그는 천마와 손을 잡았다.
고작 머리를 숙이는 것으로 해결되기에는… 이미 너무 먼 곳에 와 있었다.
“그때와 달라진 건 하나도 없을 겁니다.”
뫼비우스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흑천의 구름을 넓게 펼쳤다.
“여기 있는 각성자는 이 자리에서 모두 죽을 겁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당신들은 그저 지켜만 보고 있겠죠.”
율법이라는 족쇄에 묶인 채.
스스로 만들어낸 감옥 속에서 비열하게 몸을 웅크리겠지.
“그게 당신들이 말하는 ‘성좌의 의무’니까.”
[…….]베가는 굳게 입을 다문 채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찬란한 은빛 물결이 넓게 펼쳐졌다.
앞으로 걸어가던 베가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더니 성좌들을 돌아봤다.
[그대들은 자신의 아이를 사랑하느냐?]서로 눈빛을 주고받던 성좌들이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사랑합니다.]]인간들에 대해 제대로 모르던 시절.
성좌들은 그저 인간이라는 종족을 성흔이 뿌리내릴 수 있는 토양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과 가까워지면서, 인간에 대해 알아가면서.
서로 다투고, 화해하며, 눈물 흘리고, 환하게 미소 짓는 그들을 바라보며.
성좌들로서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감정이 가슴 속에 싹을 틔웠다.
자신의 성흔을 이어받은 아이를… 더 나아가 인간이라는 종족 자체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누가 강요한 게 아니다.
누가 명령한 것도 아니다.
물이 스며들 듯 자연스럽게.
성좌는 인간과 가까워졌다.
[본녀 또한 본녀의 아이를 사랑하느니라. 성좌로서가 아닌… 한 명의 여인으로서.]베가의 폭탄 발언에 성좌들 사이에 경악이 퍼졌다.
[베… 베가 님이 말씀입니까?] [이, 인간이랑?] [요즘 인간과 사귀는 성좌가 많다고 들었지만 설마 베가님이….]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두 눈을 부릅뜨는 성좌들.
[이 중에도 자신의 아이와 연인이 된 성좌가 있느냐?]그녀의 물음에 눈치를 살피던 몇몇 성좌들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올렸다.
[기억하느냐?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성좌와 인간이 연인이 된다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던 것을.]스피카에게 인간의 아이와 사귄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경악했던가.
성좌와 인간이 연인이 되다니.
얼토당토않은 일이라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 지금에 와서는 낯설지 않은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다.
성역을 펼치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율법의 제약.
창조신이 만들어낸 족쇄가 조금씩 그녀의 숨통을 조여왔다.
베가는 숨통을 조여오는 고통을 억누르며 말을 이었다.
[본녀는 한때, 이 율법이야말로 반드시 따라야 하는 진리라 생각했느니라.]율법을 따르는 건 성좌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니라.]오진을 만나고.
스스로 놀랄 정도로 그녀는 바뀌었다.
[그대들에게 더 이상 성좌로서의 의무를 강요하지 않으마.]이곳에 있는 모든 성좌가 등을 돌리더라도.
그녀에게 그들을 비난할 수 있는 자격 따위는 없었다.
[허나.]한 걸음.
다시 앞으로 내디딘다.
[바뀐 것이 본녀만이 아니라면.]다른 성좌에게도 그녀와 같은 만남이 있었다면.
[성좌로서의 의무가 아닌… 한 명의 친우로서, 연인으로서, 부모로서의 아이들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면.]그들 또한.
자신처럼 바뀌게 됐다면.
[부디 아이들을 위해 나서다오.]상처 입은 채 쓰러진 각성자들을 바라보며 베가는 천천히 힘을 끌어올렸다.
파직, 파지지직!
은빛 해일 사이로 푸른 전하가 튀어 올랐다.
성역을 전개할수록 점차 거세진 율법의 제약이 베가를 압박했다.
어쩌면 존재의 소멸로까지도 이어질 수 있는.
절대적인 창조신의 율법.
한때 누구보다 충실히 율법을 따랐던 여신은 창조신을 향해 반기를 들었다.
“하하! 그런다고 저들이 율법을 어기고 당신을 도와줄 것 같습니까?”
[그건 본녀도 모르겠구나.]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었다.
[그대가 그러했듯, 본녀 또한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칠 것이니라.]설사 그 대가가 존재의 소멸이라 할지라도.
[성역 전개, ‘은하(銀河)’.]찬란히 반짝이는 은빛 물결이 주변 가득 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