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with an S-class constellation RAW novel - Chapter 130
130화. 전진 (2)
S급 성좌 ‘순백의 영웅’ 아르주나.
그가 던진 말에 반응하지 않고, 나는 다시 고개를 화면으로 향했다.
그리고 관계없는 말을 입에 담았다.
“관측기 화면이 엄청나게 크군요.”
아르주나의 옥좌에 설치되어 있는 관측기는 내가 쓰는 갤럭티카 S8처럼 허공에 화면을 투영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갤럭티카 S8처럼 여러 화면을 동시에 띄우는 게 아니라 커다란 화면 하나를 띄우는 타입이었는데, 화면 크기가 상상을 초월했다.
쉽게 말해서 영화관 스크린 사이즈…… 그것도 아이맥스 수준의 크기였다.
‘옛날에 어떤 부자들은 자기 집에 영화관 수준의 홈시어터를 만들어 놓았다고 하던데.’
이렇게 시야를 가득 채우는 화면으로 강유진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예전에 영화관에서 헐리우드 액션 영화를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라바 6세라는 기종입니다. 얼마 전에 사도의 추천을 받아 구입했지요.”
아르주나가 싱긋 웃으면서 대답했다.
“기능이 좋습니까?”
“글쎄요, 사실 저는 관측기의 기능은 잘 모릅니다. 화면 크기를 보고 구입한 것이라서요.”
“……얼마쯤 하죠?”
“글쎄요, 10억 포인트 정도 했었던 것 같습니다.”
10억!
그건 정말 놀라운 가격이었다. 내 갤럭티카 S8도 꽤 비싼 기종인데 4500만밖에 되지 않는다.
내가 성좌 생활을 시작할 때 갖고 있던 근원력은 1억 5천만이었고, 벨레로폰은 백작한테 2억 3천만을 갚지 못해서 소멸해야 했다.
그런데 이 성좌는 그저 큰 화면으로 지상을 내려다보기 위해 10억이나 되는 막대한 근원력을 쓴 것이다.
‘돈지랄, 아니 근원력지랄이라 해야 하나?’
하지만 나는 딱히 반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오히려 취미 생활에 10억 정도는 선뜻 지를 수 있는 그 위용에 매력을 느꼈다.
내가 저 정도 영역에 도달하려면 얼마나 걸릴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고 보니 여기도 내 옥좌보다 훨씬 넓어. 확장도 가능한 건가?’
성령대계에 마련된 성좌들의 공간, 옥좌.
아르주나의 옥좌는 내 옥좌하고는 비교도 안 되게 넓었다. 내 옥좌가 조금 넓은 원룸 정도라면 이곳은 학교 강당 수준이다.
‘이 남자…… 확실히 보통 존재가 아니야.’
아르주나.
백색 혹은 은색을 뜻하는 이름을 지닌 그는 인도의 『마하바라타』에 등장하는 영웅 중의 영웅이다.
신들의 왕인 인드라의 자식으로, 신의 활인 간디바를 들고 다양한 아스트라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수많은 전투에서 큰 공적을 세웠다.
이야기 속에서 그는 성실하고 원만한 성격을 지닌 인격자이며, 자기 의무를 지키는 것을 중요시하는 모범적인 인간상으로 묘사된다.
그가 친구였던 크리슈나와 나눈 대화를 기록한 『바가바드 기타』는 힌두교의 성전(聖典)으로 인도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영향을 끼쳤다.
‘지금까지 내가 만나 온 성좌 중에서…… 가장 높은 위상을 지닌 인물이라 할 수 있어.’
그런 위대한 영웅인 아르주나가…… 사이온지 케이토와 계약한 성좌다.
그리고 그 아르주나가, 강유진의 성좌인 나를 자기 옥좌에 초대했다.
“…….”
나는 고개를 돌려, 이 자리에 있는 제3의 인물에게 시선을 향했다.
지금 나는 원형의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아르주나와 마주 보고 앉아 있었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 다리를 꼬고 앉아 지켜보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나를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무명.”
S급 성좌 ‘복수자의 왕’.
몬테크리스토 백작 또한 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너를 이곳에 안내해 준 시점에서 내 역할은 끝났다. 지금은 한낱 방관자에 불과하지.”
“백작…….”
“물론 이 회합에서 부당한 일이 발생한다면 그때는 내가 나서겠지만 말이다.”
그동안 나는 이아손 등과 함께 사이온지 케이토와의 결전에 대비해 여러 가지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준비가 대략 마무리되었을 때, 백작이 불쑥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지난번 시나리오에서 진 빚을 갚으라면서 아르주나와 만나 줄 것을 요청했다.
“다시 한번 확인하겠습니다, 무명의 왕.”
아르주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이 이 싸움에 더 이상 개입하지 않는다면, 저 또한 사이온지 케이토에게 개입하지 않겠습니다.”
“…….”
“당신도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같은 S급 성좌라고 해도 저와 당신 사이에는 할 수 있는 일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조건은 사이온지 케이토보다 강유진에게 더 유리합니다.”
차분한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며, 아르주나가 말했다.
“저는 사이온지 케이토와 강유진이 성좌의 개입 없이 순수하게 승부를 내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아르주나가 나를 부른 이유.
그는 강유진과 사이온지 케이토가 순수한 실력대결을 펼치길 바랐다.
양측 성좌의 개입 없이, 그저 자기들의 힘만으로.
* * *
“…….”
영화관처럼 커다란 화면에서는, 여전히 강유진의 싸움이 중계되고 있었다.
이현제와 신민유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도 강유진을 따라오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뒤처지는 사람이 늘어났다.
지금 강유진을 쫓아오고 있는 건 고작 대여섯 명뿐이다.
아마 종국에는 강유진 혼자서 케이토와 대치하게 될 것이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순백의 영웅.”
가만히 강유진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아르주나에게 다시 시선을 향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물어보시죠, 무명의 왕.”
“당신은 정의롭고 선량한 영웅이라 알고 있습니다.”
“네, 그렇지요.”
아르주나는 겸손해하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당신이…… 사이온지 케이토를 그냥 내버려 두는 겁니까?”
“…….”
옆에서 듣고 있는 백작 때문에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아마 아르주나는 이해했을 것이다.
‘아르주나도 케이토가 루시퍼의 소체라는 걸 알고 있겠지. 그뿐만 아니라 케이토는 동맹 관계였던 팔부중들을 배신하고 한국을 침략하려 하고 있어.’
아르주나는 굳이 말하자면 절대선을 추구하는 성좌일 것이다.
그런 아르주나가 케이토를 아끼며 비호하는 건 어색하게 느껴졌다.
‘성좌무구인 간디바를 계속 사용하는 걸 보면, 케이토는 성좌무구의 최대구현이 가능해. 즉, 아르주나가 가장 아끼는 계약자라는 거지.’
아르주나는 고향인 인도를 비롯해 세계 각지에 계약자가 있을 것이다.
많고 많은 계약자 중에서 하필이면 케이토에게 이렇게 신경 쓰는 이유가 뭘까.
“사고방식의 차이인 것 같군요, 무명의 왕.”
“사고방식의 차이?”
“네.”
아르주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이온지 케이토는 선악을 나누자면 확실히 악에 해당되는 인물입니다. 한국 관점에서 볼 때 그렇다는 얘기가 아니라, 세계적인 관점에서도 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면서, 어째서 사이온지 케이토를 비호하는 겁니까?”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것일까요?”
“……네?”
“저는 사이온지 케이토를 전사(戰士)로서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아르주나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사이온지 케이토는 어떤 사상이나 권력욕 때문에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사로서의 자기 정체성에 충실할 뿐입니다.”
“…….”
“그가 일본을 지배하게 된 건 어디까지나 전사로서 계속 싸워 온 결과입니다. 지금 한국의 계약자들을 쓰러뜨리려 하는 것도 그 연장선상이죠.”
아르주나는 차분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말했다.
“그는 특별한 동기도 없으며, 결과에 집착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전사로서 자신의 의무를 다할 뿐이죠. ……그런 존재를 부정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
그 말을 듣고, 나는 아르주나가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 카르마 요가 사상인가……!’
『바가바드 기타』에서 아르주나는 적군과의 결전을 앞두고 고뇌에 빠진다.
적군에는 아르주나의 혈족이나 지인 등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전쟁에서 이겨 봤자 결국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다는 것 때문에 아르주나는 죄책감과 회의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 아르주나에게 크리슈나가 내려 준 가르침 중의 하나가, 전쟁의 결과를 신경 쓰지 말고 전사 계급으로서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것만 생각하라는 것이다.
승리하고 싶으니까 싸운다든가,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싶지 않으니까 싸우지 않는다든가,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욕망을 버린 채 자신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것…… 그것이 바로 『바가바드 기타』에서 나오는 구원론 ‘카르마 요가’다.
‘원래 바가바드 기타에서 말하던 카르마 요가는 카스트 제도와도 관련 있는 거지만…… 지금 아르주나의 사고방식은 현대적으로 발전한 것 같고,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겠지.’
현대적인 의미에서 카르마 요가의 의의를 요약하자면, 결과가 아니라 행위 자체가 중요하니 집착을 버리고 자기가 할 일을 하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르주나는 전사로서 계속 싸워 나가는 케이토를 비호한다.
‘그런 측면에서 생각하면, 강유진과 친목질을 하면서 본격적인 대결을 뒤로 미루고 있던 게 아르주나 입장에서는 더 마음에 안 들었을 거야.’
강유진에게 호감을 느끼면서 사생결단을 내는 걸 미루던 케이토는, 친척이나 지인들의 희생을 두려워해 싸움을 주저하던 아르주나다.
한편 그런 감정에서 벗어나 강유진과의 사생결단에 임하는 건 고민을 떨쳐 버리고 숭고한 싸움에 나서는 아르주나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결과에 초연하니까…… 케이토가 승리하든 패배하든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아르주나는 강유진과 케이토가 순수하게 전사로서 대결하는 것 자체를 바란다. 누구 하나를 이기게 만들려고 자기들 같은 존재가 개입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렇기에 나를 불러들여 서로 지상에 간섭하지 말자고 제안한 것이다.
‘이제야 이해가 돼.’
아르주나 같은 성좌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나는 아르주나의 제안을 받아들여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 나는 모든 준비를 마쳐 놓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실시간으로 특대 가호 같은 걸 내릴 수 없긴 하지만, 그건 아르주나도 마찬가지고…….’
아르주나에게 내가 모르는 지원 스킬 같은 게 있을지도 모른다.
이곳의 위용만 봐도 아르주나가 나보다 더 큰 힘을 지니고 있는 건 확실해 보이고, 아르주나의 개입을 차단하는 편이 더 메리트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르주나가 날 속이고 허튼 짓을 하지 않겠지. 백작이 감시중이기도 하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슬쩍 백작 쪽을 쳐다봤다.
그리고 백작의 눈빛을 확인한 순간…… 나는 숨을 삼켰다.
‘이건……!’
단순히 구경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내 표정 변화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얼음처럼 냉정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 남자……!’
나는 그동안의 교류를 통해 백작을 어느 정도 파악한 상태다. 그렇기 때문에 그 눈빛에 담긴 뜻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백작은 그냥 자기 지인인 아르주나의 부탁 때문에 나를 부른 게 아니다.
그 진정한 의도는 다른 곳에 있었다.
‘이건…… 시험이야!’
백작은 내가 위대한 성좌인 ‘순백의 영웅’을 상대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관찰하고 있다.
그리고 그걸로 모종의 평가를 내리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백작은 내가 여기서 그냥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걸 바라고 있지 않아! 아르주나의 말을 내가 어떻게 받아칠지 관찰하려는 거야!’
백작은 지상에서 벌어지는 강유진과 케이토와는 별개로, 이 성령대계에서 나와 아르주나의 대결을 진행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체 어떤 수로?’
여기서 그냥 ‘나한테 불리할 것 같으니까 제안을 거부하겠습니다.’라고 물러서는 건 하책(下策)이다. 백작은 그런 모습을 보려고 나를 부른 게 아닐 것이다.
‘백작은 인간의 정신성을 중요시해. 그렇다면…….’
아르주나는 깨달음을 얻은 위대한 영웅이다. 그의 사상은 세계적인 경전 『바가바드 기타』의 내용에 기반을 두고 있고, 쉽사리 흔들릴 것이 아니다.
‘그런 아르주나의 생각을 부정하라는 건가? 설전(舌戰)으로 쓰러뜨리라고?’
나는 비로소 백작이 원하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내가 지금까지 만나 온 그 어떤 성좌보다도 격이 높은 아르주나를 상대로, 나는 어떤 무력도 쓰지 않은 채 ‘승리’를 거둬야 하는 것이다.
‘대체 나한테 뭘 선물해 주려고 이런 시험을 치르게 하는 거지?’
내 생각을 꿰뚫어 본 건지, 백작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 * *
케이토가 있는 위치로 가까이 갈수록 불길은 더욱 심해졌다.
하지만 강유진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호신강기로 몸을 보호하고 있는 데다가, 제갈금의 도복에 화염 내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꽤 많은 숫자가 탈락했다.
지금 뒤를 따라오고 있는 건 대여섯 명뿐이었다.
“이봐, 강유진!”
바로 뒤에서 따라오던 이죽헌이 목소리를 높였다.
“케이토란 놈, 정말로 이길 수 있겠어? 육체 능력은 너하고 호각인데, 무시무시한 원거리 공격 능력까지 있잖아!”
“이길 수 있냐 없느냐가 아니야.”
강유진은 냉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겨야지.”
“이 자식 참…….”
이죽헌이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지만, 곧바로 한숨을 내쉬고 다시 말을 걸어왔다.
“그래도 뭐, 네가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바로 그때.
강유진은 언젠가 경험해 본 듯한 기척을 느꼈다.
“다들 조심해!”
그렇게 외친 순간, 사방에서 수리검이 날아왔다.
“마츠시타 소이치로다!”
천화 사천왕의 닌자, 마츠시타가 은신술과 분신술을 사용하여 기습한 것이다.
다들 사방으로 흩어지던 그 순간, 강유진은 새로운 기운을 느꼈다.
‘케이토……!’
정면에서 브라흐마스트라가 날아왔다.
이번에는 그냥 날린 게 아니다. 정확히 강유진을 조준해서 날린 것이다.
하지만 소용없다.
주먹을 쥐고, 내공을 끌어올린다.
콰앙!
발동된 스킬 [화천대뢰]가 브라흐마스트라를 정확히 요격하였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눈부신 빛 너머로, 강유진은 마침내 숙적을 포착했다.
“케이토!”
상대의 이름을 부르며 주저 없이 몸을 움직인다.
마츠시타의 분신 중 하나가 달려들었지만 주먹으로 바로 분쇄했다.
어차피 마츠시타는 그냥 동료들에게 맡기면 된다.
지금 강유진이 싸워야 할 대상은 단 하나.
저기서 냉정한 눈빛으로 활을 치켜들고 있는 사이온지 케이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