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with an S-class constellation RAW novel - Chapter 297
297화. 후일담 (2)
태공망의 소멸 이후, 성령대계는 한동안 혼란스러웠다.
성령대계 최대의 조직인 성령기사단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번에 성령기사단은 군주였던 ‘무명의 왕’뿐만 아니라 ‘순백의 영웅’ 아르주나 등 많은 핵심 간부들을 잃었다.
이미 ‘예언의 마법사’ 멀린과 ‘최고의 영웅’ 헤라클레스가 소멸하면서 타격을 받은 상태였는데, 여기서 더 많은 간부들이 사라진 것이다.
남아 있는 간부들 중 서열이 가장 높은 ‘현명한 귀환자’ 오디세우스가 조직을 수습하려고 해 봤지만, 그의 수완으로도 역부족이었다.
여기서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이 바로 ‘기사들의 왕’ 아서 펜드래곤이었다.
‘이상향의 여인’ 모건 르 페이의 헌신적인 치료로 부상에서 회복한 그는, 새롭게 성령기사단에 가입하여 혼란을 수습하는 데 힘썼다.
그 옆에는 자식인 ‘파멸의 기사’ 모드레드가 언제나 함께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빛나는 수호자’ 헥토르도 비슷한 시기에 성령기사단에 가입하였다.
많은 유럽 계열 성좌들의 존경을 받는 헥토르의 가입은 성령기사단이 안정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밖에 아르주나의 빈자리를 채우겠다며 그 형제이자 라이벌인 ‘황금의 영웅’ 카르나가 성령기사단에 들어왔으며, ‘꽃 문신의 승려’ 노지심 등 양산박 계열의 성좌들도 ‘두 자루 도끼의 살인귀’ 이규의 죽음을 계기로 성령기사단에 속속 가입했다.
또한 ‘괴물을 죽이는 영웅’ 페르세우스가 전면에 나서 그리스 신화 계열 성좌들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헤라클레스와 아킬레우스 등의 대표적인 영웅들이 사라지면서 그리스 성좌들은 많이 동요하고 있었는데, 많은 영웅들의 선조인 페르세우스가 나서서 그들을 다독이고 성령기사단에 힘을 모아 줄 것을 요청했다.
이런 식으로 여러 성좌들이 노력해 준 덕분에 성령기사단은 빠르게 안정화되어 갔다.
비록 아직도 대표 자리는 공석이나, 성령대계 최대의 세력으로서의 위상은 금방 회복할 수 있었다.
한편 산해연합은 해체되었다.
산해연합의 수장인 ‘금편의 태사’ 문중의 의지였다.
산해연합은 문중을 비롯해 적지 않은 숫자의 성좌들이 태공망의 명령을 받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조직을 유지하는 건 어렵다는 것이 문중의 판단이었다.
문중이 성령기사단에 가입할 거라는 소문도 들렸으나, 결국 그는 산해연합을 해체한 뒤 칩거에 들어갔다.
태공망의 명령을 받던 성좌들 중에서 다른 성좌들을 과도하게 핍박한 자들은 심한 보복을 당했다.
소멸당한 성좌는 없었으나, 근원력을 빼앗기는 등 상당히 심한 페널티를 받게 되었다.
성령대계에서 근원력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다시 복구하는 게 매우 힘들다. 그들은 사실상 자기 옥좌에서 관측기를 들여다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어쨌든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혼란도 수습되고 성령대계는 안정화되었다.
지상으로 내려가는 게이트는 여전히 폐쇄된 상태였기 때문에, 한때 ‘무명의 왕’이 주도했던 것처럼 지상에 내려가서 활개 치는 성좌들도 없어졌다.
안정화된 건 좋은데, 이래서는 너무 재미없는 거 아닌가…… 이런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 * *
“이런 게 요즘 성령대계의 분위기예요.”
“그렇구나.”
49호의 설명을 들으면서, 나는 빨대로 아이스커피를 빨아먹었다.
“큰일이네.”
“저기요, 왜 그리 시큰둥한 반응이시죠?”
49호가 내 맞은편 자리에서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 우리는 한국 강남의 야외 카페에 앉아 있는 중이었다.
물론 음료를 마시고 있는 건 나뿐이고, 49호는 그냥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거지만 말이다.
“무명 님, 뭔가 지혜 좀 내 주세요. 안정된 건 좋은데 여러모로 침체된 분위기라고요.”
“그걸 왜 내가 지혜를 내냐. 나는 이제 성좌가 아니라고.”
“다들 무명 님이 만들어 내던 자극적인 콘텐츠에 익숙해져 있었다고요. 그래서 다들 심심해하고 있단 말이에요.”
“뭐…… 그건 그렇겠지.”
“성좌 튜브의 무명 님 채널이 아직도 남아 있는 거 아시죠? 거기에 아직도 댓글 달려요. 복귀하면 좋겠다고 말이죠.”
“그래?”
“게다가 무명 님 다음으로 반응이 좋았던 이아손 님 채널까지 갱신이 멈춘 상태잖아요.”
“그건 뭐…… 어쩔 수 없지.”
물론 이아손은 성좌 자격을 유지하고 있다. 나처럼 태공망한테 성좌 자격을 박탈당하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아손은 지금 지상에 있기 때문에 성좌로서 활동하는 게 불가능하다.
성령대계와 연결된 게이트가 모조리 폐쇄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천시대계가 사라지기 전에 게이트만이라도 고쳐 놓을 걸 그랬어요.”
“어쩔 수 없었잖아. 조작 방법 같은 것도 알 수 없었고.”
태공망이 소멸한 뒤, 천시대계와의 통로도 서서히 닫히기 시작했다.
게이트가 폐쇄된 건 태공망이 성령대계를 관리하는 ‘위대한 의지’ 시스템에 명령을 내렸기 때문인데, 태공망이 죽고 나니 그걸 원상 복구할 수 없었다.
천시대계와의 통로가 사라지는 걸 최대한 늦추면서 방법을 찾아볼 수도 있었지만, 누군가가 악용할 우려도 있고 애초에 소멸을 늦추는 방법도 알 수 없었기에 결국 포기했다.
“결국 이아손 님, 용길공주 님, 아킬레우스 님, 손오공 님 다 지상에 남을 수밖에 없었네요.”
“그렇지.”
천시대계에 잠입했던 성좌들은 목숨을 잃은 이규와 아르주나를 제외하면 전부 지상에 남게 되었다.
현재 아킬레우스는 그리스에 가 있고, 손오공은 중국에 가 있는 중이다. 각자 고향에서 성령대계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보고 있는 듯했다.
“엉? 내 얘기 하고 있었어?”
그때 이아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보니, 청바지 차림의 이아손이 건들건들한 태도로 걸어오고 있었다.
“이아손 님…… 현지에 완전히 적응하셨네요. 옷차림도 그렇고.”
“그래? 이번에 새로 구한 옷이 잘 어울리나 보지?”
“내가 보기에는 그냥 양아치인데.”
이아손은 원래부터 지상에 자주 들락날락하고 있어 현지 적응이 빠른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이아손 님, 계약자들이 좀 불만스러워하는 것 같던데요.”
“그래? 어쩔 수 없지.”
원래 이아손은 상당히 많은 숫자의 계약자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성령대계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으니, 제대로 관리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가호 같은 건 상황에 따라 자동적으로 부여되게 프로그램이 짜여 있지만, 그래도 부족한 부분은 나올 수밖에 없다.
“한국의 금양단 애들이야 내가 현지에서 지도해 주는 걸로 퉁치면 되지만…… 다른 나라 계약자들은 그게 안 된단 말이지. 다른 성좌 찾으라고 해야겠어.”
“괜찮은 건가요?”
“그래, 어차피 나는 여기 생활을 즐기느라 다른 나라 계약자들까지 챙길 여유가 없어.”
“진짜로 지상 생활을 만끽하고 계시는군요.”
49호가 살짝 비꼬듯이 말했다.
“이아손.”
“왜?”
“너 영상이나 찍으면 어때?”
“영상?”
“지상 생활 영상 말이야.”
“……뭐?”
내가 갑자기 꺼낸 말에, 이아손도 49호도 눈을 크게 떴다.
“네가 지상에서 어떻게 사는지 영상을 찍어서 올리는 거야.”
“어디다가?”
“성좌 튜브에.”
“아…….”
“자, 잠깐만요!”
49호가 다급히 목소리를 높였다.
“이, 이아손 님의 지상 생활을 찍은 영상을 성좌 튜브에 올리라고요?”
“재밌지 않겠어? 이아손 입담이면 호응 괜찮을 것 같은데.”
“아니, 근데, 그런 걸 성좌 튜브에 올리면…….”
“문제 될 거 있어? 원래 성좌 튜브는 시시콜콜한 성좌들 취미 생활 같은 것도 올라오는 곳이었잖아.”
“아…….”
내가 49호와 팀을 짜서 전략적으로 영상을 올리기 전까지만 해도, 성좌 튜브에는 정말로 제대로 된 콘텐츠가 없었다.
“여기 지상에서 찍은 영상도 너를 통하면 성좌 튜브에 올릴 수 있지?”
“네, 이아손 님 채널도 아직 살아 있으니까…….”
“어때,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이아손 채널이면 구독자 수도 많으니까 바로 호응이 나올 거야.”
“으으음…….”
49호가 고민하고 있자, 이아손이 턱을 매만지면서 중얼거렸다.
“이거 꽤 괜찮을 것 같은데?”
“그렇지?”
“성좌의 지상 생활이라, 확실히 좋은 콘텐츠야. 너는 어떻게 그런 아이디어가 샘솟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냥 소재 하나 툭 던졌을 뿐이야.”
“아니, 정말로 좋아. 안 그래도 나도 이대로 성령대계 쪽하고 인연이 끊기는 건가 좀 신경 쓰였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이아손이 49호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야, 그럼 우리 바로 기획 회의하자. 이걸 한국 속담으로 뭐라고 하더라? 미노타우로스 뿔도 단김에 뺀다?”
“미노타우로스 뿔이 뭐예요! 쇠뿔이겠죠! 이, 이것 좀 놓고 얘기하세요!”
“됐으니까 빨리 따라오기나 해. 아, 무명, 아이디어 제공 고마워. 다음에 밥 살게.”
“그래, 잘 가.”
“무명 님! 저 좀 살려 주세요! 에잇, 이거 놓으라고요, 납치범!”
49호가 이아손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아이디어는 하나 던져 줬으니까…… 49호가 알아서 잘하겠지.’
지금 시점에서 내가 성령대계에 관여할 수 있는 건 이 정도가 한계다.
이 이상으로 간섭하는 건 지나친 월권행위다.
‘무엇보다…… 내가 자꾸 성령대계에 간섭하면 그 녀석이 영향을 받게 될 테니까.’
성령대계에 새롭게 등장한 S급 성좌 ‘무명의 계승자’.
내 입장에서는 좀 낯간지러운 성좌명을 지닌 그 녀석을 생각하면…… 성령대계에 영향을 끼치는 건 피하고 싶었다.
그 녀석이 나를 의식하지 않고 성령대계에서 자기 뜻대로 팍팍 나아가길 바라니까.
“복잡한 표정을 짓고 계시네요.”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아름다운 흑발을 길게 늘어뜨린, 청순한 분위기의 절세 미녀…… 용길공주가 우아한 스타일의 현대 패션으로 몸을 감싼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던 건가요?”
“별거 아닙니다.”
“뭔데요?”
용길공주가 맞은편에 앉으면서 계속 물었기에, 나는 할 수 없이 대답했다.
“강유진 생각을 좀 했습니다.”
“…….”
갑자기 용길공주가 입을 다문 채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건 정말로…… 진짜군요…… 진짜야…….”
“앞으로는 반응 안 할 테니까, 마음껏 망상하세요.”
한숨을 내쉰 뒤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근데 오늘은 무슨 일로 보자고 한 겁니까?”
“……딱히 데이트 신청은 아니었으니까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아니, 전혀 오해 안 했거든요.”
“……그렇게 반응하니 좀 기분이 나쁘네요.”
“어쩌라는 건지.”
“어쨌든.”
용길공주가 헛기침을 했다.
“사실은 조금 상담을 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어떤 것 말이죠?”
“이아손은 지상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지만…… 저는 아무래도 익숙해지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아…….”
그건 좀 이해가 됐다.
이아손은 워낙 낙천적이고 사교적인 성격인 데다가 예전부터 지상에 자주 내려왔기 때문에 금방 적응을 했다.
하지만 용길공주는 딱히 그런 것도 아니고, 적응에 좀 어려움을 느낄 것이다.
“무엇보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저것 책을 구해서 읽고 있으신 것 같던데. 구체적인 장르는 언급하지 않겠지만.”
“그, 그건 그거고요.”
용길공주가 살짝 얼굴을 붉혔다.
“이대로 계속 그냥 노닥거리고 있는 건…… 너무 나태한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런가요? 이아손도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면서 놀고 있는데요.”
“이아손은 금양단의 계약자들을 돌봐 주는 일을 하고 있죠. 그런데 저는…… 사실상 백수입니다.”
“백수…….”
아주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원래 성령대계에서 성좌들은 대부분 백수처럼 방구석에서 관측기만 붙잡고 지내지 않나.
“정 그게 마음에 걸리신다면…….”
나는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
“저랑 같이 어디 좀 가죠.”
“네?”
“아, 데이트 신청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고요.”
“오, 오해 안 했어요!”
용길공주가 얼굴을 붉혔다.
“그런데 대체 어디로 간다는 거죠?”
“협회입니다.”
“협회?”
“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일어섰다.
“계약자 협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