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sorry I went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341
테르게스티 전투 (2)
아서는 전혀 졸음기 없는 눈으로 일어나 부츠를 꿰어 신고 문을 열었다.
더 시끄럽게 굴었다가는 오랜만에 주어진 여유를 즐기며 2층에서 쉬는 친구들도 내려올 테니 빨리 나가는 게 좋았다.
“내 가지. 앞장서.”
“알겠습니다.”
정보 장교가 딱딱하게 예의 차린 태도로 아서를 교회로 이끌었다. 정보부서는 교회의 수도사 숙소가 근거지였다.
작은 담화실에 설치된 전화는 암호 입력을 기다리고 있었다. 연대장의 암호가 들어가야 통화가 연결되는 보안 통신이었다.
아서는 순서대로 암호문을 읊었다.
마침내 상대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대지급 통신을 사용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드리스콜 국장의 채널을 전용했습니다. 아서 전하. 오늘 오후 테르게스티가 브룬넨에 의해 점령되었습니다.]”
연결된 상대는, 놀랍게도 베스나가 아니었다. 제레미 툴민 비서관이었다.
아서는 국왕 대리 시절 제레미 툴민과 가까이에서 일했던 적이 있어서 그의 목소리를 바로 알아챘다. 여전히 문밖에 있을 정보 장교를 의식하여 아서는 상대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제레미 툴민은 멜키오르의 충성스러운 신하였다.
그런 그가 비서관의 채널이 아니라 북문을 사칭하여 통화를 시도했다면, 이것은 베스나나 멜키오르가 허가한 정보 공개가 아닐 공산이 컸다.
아서의 머리가 맹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전화기 앞에 간이 의자를 끌어다 앉은 아서는, 긴 다리를 꼬고서 미간을 엄지로 눌렀다.
제레미 툴민의 천성이나 성향을 의심하지는 않지만, 그 옆에는 멜키오르가 있다.
이것은 함정일까? 세뇌인가?
클레이오에게서도 툴민 비서관을 포섭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들었지만 전쟁으로 인해 미루어진 일이었다. 좀 더 정보가 필요했다.
아서는 별다른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객관적인 어투로 물었다.
“현재 중립 도시 테르게스티는 알비온, 브룬넨, 카롤링거, 페드르 네 개 나라 기사들이 각 국가로부터의 진입 도로를 번갈아 상호 감시하는 체계가 아니었습니까? 어디에서 급습이 일어난 겁니까?”
중립 도시의 4개국 기사 진주(進駐)는 최근 알비온 해군이 남부 해안 도로 전체를 되찾은 뒤에 만들어진 협의의 결과로, 그 협의안이 발효된 지 아직 2주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툴민의 제보가 사실이라면 테르게스티를 휴전 협정의 교두보로 삼아 보려던 아서의 뜻이 또다시 어그러진 셈이었다.
“[애초에 그 협의안 자체가 함정이었던 겁니다. 브룬넨은 한 발 양보하여 테르게스티의 독립을 보장해주는 척하면서 뒤로는 카롤링거와 거래를 한 것입니다.
카롤링거 북부 2개 주가 브룬넨 측에 붙었습니다. 그들이 길을 열어주어, 카롤링거 측 진입로로부터 브룬넨군이 야음을 틈타 진군했습니다.
나머지 3개국 주둔 기사는 모두 살해당했습니다. 그들이 선을 넘었습니다. 내무보안국 문건에 따르면….]”
전화 너머로 자세한 설명이 이어졌다.
카롤링거의 통령 빅투아르 모로가 피격당해 혼수상태에 빠졌다. 회복 가능성은 없었고, 마법사가 겨우 숨만 붙여놓은 상황이었다.
빅투아르 모로의 상태는 비밀에 부쳐졌지만 사람 사이에서 영원한 비밀이 어디 있단 말인가?
더군다나 베스나는 누가 뭐래도 휴민트1) 수집의 대가였다.
아서도 직접 겪어본바, 정보 수집에 결코 올바르고 아름다운 방법만을 쓰지 않는 것은 분명하지만.
카롤링거의 새 통령을 선출해야 할 중앙위원회는, 혁명헌법을 수호해야한다는 강경파 라자르 탈리앵과 과거 세력과의 화해를 추구해야 한다는 안정파 폴 베르나도트의 반목으로 인해 반으로 갈려 식물 상태에 빠져들었다.
최고통수권자의 자리가 빈 동안 국내의 혼란은 확대되었다.
카롤링거 공화국 정부의 통치력이 시험받는 와중, 북부 2개 주의 주지사가 왕정복고를 부르짖으며 브룬넨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 거래의 결과 카롤링거 방면 테르게스티 진입로가 열린 것이다.
야밤의 급습으로, 테르게스티의 브룬넨 측 검문소를 지키던 알비온 기사들이 가장 먼저 사살당했다.
툴민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매우 조급했고, 흥분으로 끝이 떨렸다.
그야 무단으로 베스나의 채널을 쓰면서 비보를 전하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서의 미간에 팬 주름이 깊어졌다.
“그러나 제게 이 정보를 알려주라는 허가가 내려오진 않았군요.”
전화기 너머에서 흡, 하고 숨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 침묵은 짧았다.
“[…미처 피난하지 못한 약 이만삼천 명의 민간인이 테르게스티 해안방어선 안에 대피해 있습니다. 항복 요구에 불응한 테르게스티 시민이 절반, 브룬넨 측의 원자재 징발 요구를 거부한 다국적의 상인들이 절반 정도입니다.
테르게스티 경비대의 기사 몇몇이 해안방어진지를 작동시켜 브룬넨군의 항구 진입을 막고 있습니다.]”
테르게스티의 자치가 보장되었기 때문에, 지금 테르게스티 항구에는 엄청난 수의 무역선이 정박해 있었다.
단 몇 시간 만에 도시 대부분을 점령한 브룬넨은 무역선에 실린 모든 원자재와 물품에 강제 징발을 명했고, 상인들은 그 명령에 불응하여 항구로 대피했다.
브룬넨의 클라이페다 항구는 부동항이 아니었고, 라에티카의 앞바다는 험난한 라주 해협의 초입이라 배가 드나들기 적절하지 않았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브룬넨에는 항구가 필요해진 것이다. 4개국 협의로 충분히 항구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 한 수 물러나리라 여겼지만, 쾨네부르크 사령부는 다르게 판단한 모양이다.
“[해안방어진지를 영원히 가동할 수는 없습니다. 설계도를 바탕으로 판단할 때 아무리 낙관적으로 전망한대도 최대 14시간까지만 버틸 수 있을 겁니다.
지금 당장은 브룬넨 측에서 공세를 멈추고 병사들에게 휴식을 취하게 하는 중입니다. 날이 밝으면 공격을 재개할 예정으로 사료됩니다.
전하께서 가지 않으면, 그들은 죽습니다. 항복한다 해도 전원 사살하라는 명령이 내려진 걸로 압니다.]”
“왜 바다를 통해 피난하지 않는 겁니까?”
“[테르게스티 항구와 부두를 감싸는 해안방어진지는 몇 년 전의 해양형 마수 습격 이후 설치되었습니다. 차폐를 시작하면 밖의 공격을 막아주지만, 안에서도 나갈 수가 없는 구조입니다.]”
브룬넨군의 전적으로 볼 때 징발을 거부한 상인들의 안전을 보장해 줄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핏속에 독이 흐르는 기사들에 대한 악명은 제법 널리 알려졌다. 차폐를 푸는 순간 브룬넨군의 학살이 시작될 것이다.
아서는 탄식했다.
테르게스티 항구에서 다국적의 상인들이 끔찍하게 살해당한다면 각 국가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반응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전쟁은 알비온과 브룬넨 사이의 대결 구도를 넘어서게 된다. 심지어 그런 일이 있다고 해서, 타국이 반드시 알비온의 아군이 될 거라 생각할 수도 없었다.
데르니에의 이웃들이 내린 판단에 따라 전화(戰禍)가 대륙 전체를 불태우게 될지도 모른다.
테르게스티에서 알비온의 남부 해안 도로를 역방향으로 뚫으면 노반테스까지는 먼 거리가 아니었다.
현재 동남부 해안가에 거주하던 많은 시민들이 노반테스 주변에 피난을 가 있는 상황이었다.
“안젤리움 자작에게는 해당 정보가 전달됐습니까?”
“[브룬넨의 비행선 두 대가 동시에 안젤리움 자작령 상공에 나타났습니다. 언제 전투가 개시될지 알 수 없습니다.]”
안젤리움 자작의 발마저 묶였다면 해결책은 하나였다.
“[그러나 룬데인 중앙사령부에서는 니네베 연대에 테르게스티로의 진군을 명령하지 않을 겁니다.]”
이 통신은 제레미 툴민의 목숨을 건 항명이었다.
툴민도 아서도 알았다. 학살을 막으려면 니네베 연대가 테르게스티로 가야 했다.
선택의 순간이었다. 툴민은 그저 아서의 이름을 불렀다.
“[아서 님.]”
그리고 아서가 할 수 있는 선택도 하나뿐이다.
“가진 정보가 있다면 모두 알려주십시오.”
“[전신이 끊기기 전 들어온 마지막 첩보엔, 테르게스티를 침공한 브룬넨 측 라에티카 공국군 사령부 위치와 상급 기사들에 대한 정보가 존재합니다.]”
툴민은 더 이상 목소리를 떨지 않았다.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침투 요원으로부터의 첩보입니다. 교차 검증도 완료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좌표를 불러 드리겠습니다.]”
아서가 펜이라도 찾기 위해 일어섰을 때 앙상한 팔이 뒤에서 뻗어와 그를 다시 의자에 눌러 앉혔다.
내색을 하지 말라는 듯 다른 한 손으로 입술 위에 검지를 얹은 클레이오가 계속 통화하라고 눈짓했다.
어느새 셔츠와 바지, 부츠 위에 코트까지 대충은 챙겨 입은 차림새였다.
‘내가 외울 수 있어. 말하라고 해.’
‘지각’을 쓰는 클레이오는 귀가 밝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도 충분히 식별 가능했다.
그는 툴민의 말을 들으며 동시에 ‘기억’을 펼쳐놓았다.
그의 앞에는 테르게스티의 지도가 떠올라 있었다. 아서는 클레이오의 시선이 자신에게 맺혀 있지 않음을 인식한다.
기억된 세계의 지리를 설명할 때처럼 클레이오는 또, 보이지 않는 지도를 보고 있는 것일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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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을 들은 첼은 타당한 의문을 제기했다.
“제레미 툴민 비서관을 의심하고 싶지는 않지만 함정일 가능성은? 이젠 평시도 아니고 전시에 항명을 했다는 혐의를 덮어씌우려는 국왕 대리와 내무보안국장의 음모일 수 있지 않아?”
오늘따라 안색이 더 나쁜 클레이오는 힘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적절성 판단’에 의거, 툴민의 말은 모두 진실이었다.
이런 위급 상황에서 에테르를 대량으로 날리는 능력을 쓴 것은, 바로 툴민의 말이 지닌 진실성이 군을 움직일지 말지를 결정할 유일한 단서였기 때문이다.
“그의 말은 진실이야.”
임시 사령부로 사용되는 교회에는 니네베 연대의 장교들이 빠짐없이 모여 있었다.
각자 마법사의 친구이거나 동료이거나 동창인 사람들은 그가 예언함을 의심치 않았다.
좀처럼 확신에 찬 발언을 하지 않는 마법사이나, 그가 확언한 말은 모두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결정할 건 하나뿐이군.”
사령부 회의를 주재하던 첼은 자연스럽게 아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펼쳐진 테르게스티 지도 앞에 선 아서가 입을 열었다.
“테르게스티 돌입 작전에 룬데인 사령부의 인가는 없었습니다. 명령이 아니니 원치 않으면 참여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서는 진지하게 말했는데 좌중에선 잔잔한 웃음이 일었다.
“내참. 이제 와서 발 뺄 거면 여기 와 있지도 않았지. 봉쇄 때 항명한 거 누구라고 생각해?”
“처세를 생각하면 줄 여기 안 섰지.”
“그보다 작전안의 세부에 대해서 논의하는 게 더 생산적일 것 같습니다.”
이른 밤의 사령부 회의는 긴급하게 소집되었고, 신속하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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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은 짐짓 기분이 상한 것처럼 표정을 꾸미며 투덜댔다. 어두운 정비고에서 왼쪽 뺨 한쪽으로만 마법식의 빛이 비추어 첼의 고상하고 아름다운 얼굴 윤곽을 두드러지게 했다.
그녀 역시 전보다 살이 내려서, 예전보다 얼굴선이 더 날카로워졌다. 여전한 것은 웃음을 이끌어내는 강인함뿐이다.
“몇 시간 후면 이 몸의 탄신일인데 와인도 키스도 없고, 예정된 거라곤 난전뿐이군!”
클레이오는 어깨만 으쓱 하고는 완드를 뽑아냈다.
후방의 정비병들을 불러올 시간적 여유가 없어, 연료 펌프 제어기가 문제를 일으킨 카스퍼 멜빌 상사의 기체에 그냥 [복원]을 걸었다.
이 작전에선 입수한 정보와 실상이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테르게스티를 정찰하고 오는 중차대한 임무에서 항공기 운행을 맡은 이는, 조종 스타일이 얌전하고 교본대로이며, 중간에 자퇴하기는 했어도 수도방위대 학교를 다녔던지라 눈에 [강화]를 거는 데 익숙한 카스퍼였다.
“탕페트 드 네쥬 대위, 지난번 특별 보급품이었던 부디갈라 와인 한 상자를 혼자 수령해간 걸로 기억하는데.”
“그건 우리 애들이 진작 다 없앴지요, 아세르 소령님? 그만한 걸 누구 코에 붙이게 한 상자만 가져오냐고 타박만 들었답니다.”
자신보다 키가 큰 클레이오의 어깨에 척 팔을 얹은 첼이 낄낄대며 웃었다. 그녀가 클레이오에게 존대를 써줄 땐 대체로 농담을 할 때뿐이다.
“무사히 돌아오면 사비로 같은 와인을 오크 통째 사 주지. 돌아오기만 해.”
“들었나, 카스퍼 상사?”
자신의 기체 옆에 부동자세로 서 있던 카스퍼가 곧바로 칼답을 했다.
“들었습니다, 대위님. 그렇지만 와인이 작전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와인을 더 마시다 보면 생각나게 돼 있어. 자, 가자.”
“음주 운전은 안 됩니다.”
“멍청한 자식아 지금은 마실 술도 없어, 인마.”
마침내 마법식이 꺼졌다. 카스퍼의 기체는 어제 출고된 것처럼 말끔해졌다.
클레이오는 비행기에 올라타는 두 사람에게 말없이 경례를 붙였다.
1) 사람을 활용하여 적의 정보를 수집하는 방법. 인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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