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sorry I went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379
내가 속하고 내게 속한 곳 (5)
눈에 띄는 것이 싫어서 굳이 탑을 오르는데, 계단 오르기 싫다고 마법을 써버리면 단위 면적당 에테르 감응자 비율이 대륙 최대일 수도방위대 학교에서는 말짱 헛일이 되어버린다.
교내의 모든 사람이 클레이오와 제베디의 행방을 GPS라도 켠 듯 알게 될 것이다. 그 탓에 클레이오는 사흘 치 활동량을 십여 분 만에 다 채워버렸다.
한 사람은 쯧쯧대고 한 사람은 헥헥대면서도 아무튼 첨탑의 꼭대기까지 어떻게 올라갔다.
첨탑의 가장 높은 단을 디딘 두 사람은 말없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들의 등 뒤로는 강 너머 서안이, 앞으로는 므네모시네의 문이 자리한 울창한 숲이 자리했다. 그 양편 모두로 에테르의 선이 조밀하게 엮인 채 수도의 하늘을 반구형으로 에워싸고 있었다.
에테르의 선이 시작되는 곳은 수도방위대 학교의 내부 결계였고, 결계의 한가운데인 므네모시네의 문 맞은편에 제천의 거울이 놓였다.
거울은 내부 결계를 이루는 마석에 빼곡히 새겨진 마법식을 반사하고 증폭시켜, 룬데인의 경계를 둘러싸고 세워진 에테르 충전지 기둥과 결계의 핵을 연결했다.
완성된 스텔라 방벽이었다.
“오늘 날이 좋아서 시험 가동을 해 보았다. 에테르 전지는 나와 마법단 단장 놈이 최소한의 충전은 해 놓았는데, 수도에 귀환한 마법사들의 손을 보태 완전히 충전하면 십수 번은 가동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번 내부 결계와 외부 결계가 연결되면, 이후에는 내부 결계로부터 에테르가 증폭되어 지속적으로 방어 기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에테르 전지가 필요한 이유는, 결계 작동 방향을 바꾸거나 강도를 조정할 때 재시동을 해야 해서였다.
마법은 한 번 가동되면 발동 순간의 마법식 조합을 그대로 따르기에, 결계 역시 그러한 마법식의 속성을 가졌다.
그래서 새로운 기능을 쓰려면 재시동하는 편이 가장 간단하고 빨랐다.
스텔라 방벽은 학교 결계보다 한층 발전된 구조를 지녔다.
외부 결계의 에테르 전지를 충전해 두면, 여러 마법사가 동시에 시동을 걸 필요 없이 제천의 거울만 조정하여 결계를 켜거나 가동 모드를 바꿀 수 있었다.
결계는 기민한 모드 변경보다는 지속력과 강도가 더 중요했기에, 제베디는 한정된 자원 안에서 선택과 집중을 한 거였다.
클레이오는 오랜만에 「지각」까지 펼쳐 결계의 구석구석을 살폈다.
최대한도로 전개된 ‘약속’의 기능은, 이제 그 통제 범위가 수도를 뒤덮을 정도였다. 8레벨 마법사의 서클 범위조차 까마득하게 뛰어넘는 엄청난 면적이었다.
젊은 메이지 마스터는 마구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넘기며, 창공으로 이어진 에테르의 선들을 보았다.
은총의 구조물은 한 치 어긋남 없이 조화로웠다.
클레이오 자신이 했더라면, 제약이 많은 상황에서 이렇게까지 세부가 정밀한 결계를 완성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이걸로 한시름 덜었다.’
전쟁과 마수 습격의 파괴를 거친 8교의 룬데인은 역설적으로 ‘영원의 도시’라는 이름을 얻었다.
처참한 시련 속에서도 끝내 무너지지 않고 남겨진 도시이기에 그 명명됨에 부족함이 없었다.
마침내 맞이한 인간의 세기에서는 세상의 모든 강물과 도로, 선로와 항로가 룬데인으로부터 시작하고 끝났다.
‘8교에서도 아슬란 최후의 일격은 수도를 공격했어. 비행선은 더 양산하기 어렵겠지만, 이미 비행 기술이 존재하는 세상이니 무슨 수를 낼지는 모르지.’
그러나 저 방벽이라면 그 어떤 공격도 결국 이겨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마지막 세상에서도 룬데인은 남겨질 것이다. 에테르의 가호 아래에서.
“참으로 아름답군요. 고맙습니다, 스승님.”
“저걸 만든 게 왜 네게 감사를 받을 일이 되느냐.”
“룬데인 시민의 한 명으로서 드리는 감사인데 문제가 있습니까?”
클레이오는 나름의 농담을 시도했지만 최근엔 항항 그렇듯 역시나 그의 농담은 실패였다.
사람을 웃기기는커녕 울리고 말았다.
제베디의 주름진 눈가에 눈물이 도르르 스몄다. 노인은 말하는 쪽도 듣는 쪽도 속지 않는 변명을 어색하게 주워섬겼다.
“허허, 고놈 참. 한데, 바람이 너무 거세서 눈에 티끌이 드는구나!”
마법감은 그간 몇 번이나 전선으로 전출을 요청했으나 국왕 대리는 끝내 그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전쟁 내내 멜키오르의 정보 통제는 엄격했다.
제베디는 전방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이가 빠진 전달을 통해 후방에서 무력하게 전해 듣기만 해야 했다.
왕실 마법감의 지위를 가진 상원의원인데도 공식적인 창구를 통해선 전황의 완전한 전모를 알 수 없었다.
멜키오르가 워낙 정보 전달 체계를 복잡하게 얽어놓았기 때문이었다. 모든 정보는 최종적으로 내무 보안국에서 취합되었다.
지난 3월 공세의 막바지, 브룬넨의 기사단이 룬데인의 코앞인 셀바 주 경계까지 진군했을 때에도 내정 혼란을 구실로 민간인에게는 정보가 통제됐다.
하여 템푸스강의 수원지와 룬데인이 동시에 공격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제베디는 뒤늦게야 알 수 있었다.
이전에는 너무 일러서, 그때에는 또 너무 늦어서, 마법감은 수도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멜키오르가 내내 그런 식이었기에 제베디는 자신의 혼란과 불안을 잠재우며 달리 헌신할 주제를 찾아야 했다.
그것이 제베디가 스텔라 방벽의 완성에 혼신의 힘을 다한 이유였다.
“이제 기초는 모두 다졌으니 강도와 지속 시간을 보강하는 후반 작업을 더하면 되겠군요. 기반이 튼튼하니 성벽이 높게 쌓일 것 같습니다.”
어쩐지 후련하게 들리는 제자의 목소리에 제베디도 의욕 넘치는 답을 했다.
“높이만 쌓겠느냐? 다채롭게 쌓아 보자꾸나.”
팔을 걷어붙인 마법감은 결계를 이루는 부품들에 [보존]과 [복원]을 거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눈물이 마른 노인의 눈은 어린아이처럼 반짝였다. 순수한, 마법사적인 열정이었다.
클레이오는 아무 조건도 안 따지고 찬성했다. 그 열정에 감화되지는 않았지만, 스승의 바람을 이뤄주고픈 마음은 넘쳤다.
‘8교 기준으로는 인류 역사상 마지막 대마법사인 사람의 꿈인데, 뭘 아까워하겠어.’
“좋습니다, 스승님. 이제는 제가 힘을 좀 내보겠습니다.”
마법 이론과 마도구 설계 능력에선 절대 스승을 따라갈 수 없겠지만, 순수한 에테르의 양과 이중 발진의 범위에서만큼은 클레이오가 제베디를 압도했다.
동원할 수 있는 자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백화점 부지 임대 계약을 하며 받은 계약금부터 일단 퍼부어볼 작정이었다.
“그렇다고 죽을 정도로 힘쓰라는 것은 아니다. 정양이 우선이다.”
“그럼요, 제 몸 먼저 챙기고 그다음으로 수도를 챙길 겁니다. 그래도 연구제자 연구실을 쓰려면 이쯤은 해 주어야 셈이 맞지 않겠습니까?”
“너는 네 셈이 자주 틀리고 부정확하단 사실을 잘 아는 줄 알았다만?”
“스승님, 비겁하게 하필 지금 그 이야길….”
노인이 돼서도 수 계산이 빠릿빠릿한 제베디는, 숫자엔 영 맹탕인 제자의 아픈 구석을 쿡쿡 찔렀다.
그렇게 스승과 제자는 결계를 보강하기 위해 한 주에 한 번씩 회합을 가지기로 하고 헤어졌다.
클레이오는 흐물흐물해지려는 다리를 재게 놀렸다. 수업 시간이 끝나기 전에 움직여야 학생들의 관심을 덜 살 테니까.
그렇게 교정을 부지런히 가로질러 마침내 일 년 만에 그리운 건물 앞에 섰다.
수도방위대 학교의 숲 한구석에 소담히 자리 잡은 연구제자 연구실, 우니카식으로 지어진 화려하면서도 아담한 건물이었다.
짙은 색 나무 현관 앞에 선 클레이오는 묘하게 긴장된 숨을 뱉은 후 연구실 문을 여는 주문을 왰다.
“[위대하신 학예의 영묘 베헤못을 찬양하라!]”
일 년여를 방치해 두었던 연구제자 연구실인데 어쩐 일인지 무거운 티크 원목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바짝 귀를 세워보니 응접실 쪽에서 웃음소리와 인기척이 들렸다.
‘오후에 온다더니 벌써들 도착했나?’
몸놀림이 둔한 클레이오보다 손님들의 반응이 훨씬 기민했다.
리피와 레티샤, 두 쌍둥이가 와다다 뛰어와 이제 막 복도에 들어선 클레이오를 턱 붙들었다.
“레이!”
“레이다!”
“이게 얼마 만임!”
“야, 정말 얼굴 까먹겠어!”
훌쩍 키가 크고, 머리 모양이 달라지고, 한껏 자라 열여덟 성년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짓을 할 때는 열세 살 무렵과 차이가 없었다.
“얘들아.”
“아, 뭐 감동적인 연설하려거든 여기서 자르자.”
“일단 차부터 마셔마셔. 아서가 물 끓이고 있음!”
비록 그들이 차려입은 제복에 수훈 리본과 부상 기장이 화려하게 달렸다 하더라도, 그조차도 실제 전투에 참여한 횟수와 부상 횟수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전부 다 단다면 리본으로 옷을 지어 입어도 될 정도라, 아이들은 제각기 마음에 드는 색으로 한두 가지의 리본만 달고 다녔다.
쌍둥이들에게 잡혀 응접실 안으로 들어서자, 이미 이시엘과 첼, 아서가 모두 모여 제각기 가구에 덮인 천을 걷어 내고 있었다.
거의 두 달 만에 얼굴을 마주하는 친구들은 클레이오가 반가운지 모두들 들썩이는 기색이었다.
클레이오를 끌어다 먼지만 대충 턴 소파에 앉힌 쌍둥이들은 잡아 온 사냥감을 자랑하는 고양이들처럼 웃었다.
“레이까지 왔으니 모두 다 모였지!”
땡땡, 법랑 주전자 뚜껑을 치며 소리친 레티샤의 선언에 친구들은 크게 웃고는 제각기 답했다.
“두 번째 안젤리움 중위 여기.”
“용감하고 멋있는 공중타격대장 첼레스테스 대위님도 여기 계신다. 에헴.”
“…나는 뭐라 관등성명을 대는 쪽이 사리에 맞지?”
“이시엘은 이시엘!”
클레이오는 오랜만의 소란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 난장판 가운데서도 우아하게 차를 타던 첼이 찡긋 윙크를 해 보였다.
“여기 앉으니까 감회가 새롭지? 무슨 천 년쯤 자고 나온 것 같은 표정이다?”
“진짜로 그렇게 자다 나와 볼 테니 지금과 얼굴이 얼마나 다른지 비교해주겠어, 첼?”
“실험을 해야만 알 수 있는 사실은 아니니까 차나 마시도록 해. 찻잎 향이 다 날아가긴 했지만 천 년 묵은 것 치고는 괜찮네.”
첼의 재치 있는 농담에 클레이오의 양옆을 차지한 쌍둥이들만 꺄르르 넘어갔다.
“으하하하. 그래, 차를 마셔야 일을 하지.”
“아까 사환이 아세르 저택에서 보냈다며 간식 바구니도 가져왔어. 열자열자.”
“저기, 지금 잔에 먼지 뜬 거 같은데 일단 먼지만 좀 세정해 볼게.”
자연스레 마법식을 펴려는 클레이오를 쌍둥이들이 또다시 붙잡았다.
그는 어설프게 공중에서 팔을 멈췄다.
“동작 그만.”
“완드 꺼내지 마. 우리 차 다 마신 다음에 청소할 거야!”
“먼지 먹어도 안 죽어.”
“위생의 중요성은 열 번 강조해도 부족하고, 에테르는 많아.”
“아이고야, 아세르 소령님이 에테르 자랑하시네!”
“에테르 많아도 앉아 있어. 이것만 먹고 청소하고 환기도 하자!”
클레이오의 손에 건네진 머그잔으로부터 차가운 손가락이 녹아갔다.
디오네의 조언은 이번에도 옳았다.
그녀가 방문한 다음 곧장 친구들에게 연락을 넣길 잘했다.
곳곳에서 부르는 데가 많아 매일 바쁘고 치열하게 사는 친구들이 열 일을 제치고 모두 이곳에 모여 주었다.
정확한 직위가 없어도 아서를 필요로 하는 곳은 많았다.
상원 군사위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했으며, 마수 피해 보상위원회에서 다루는 동부 재건 기획에서도 목소리를 냈다.
멜키오르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티플라움 광산 복구 역시 아서가 키를 잡고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했다.
광산의 복구는 평민원과 귀족원 모두가 바라는 일이었다.
본래 멜키오르 일파였던 상무장관 이슬레이 백작은 국왕 대리의 두문불출에 답답함을 느꼈는지 결국 민의를 대변하는 아서에게 손을 보탤 수밖에 없게 됐다.
이시엘은 신임 상원의원으로서 상원의장 페텐카 세르게프의 비호 아래 아서를 보좌했다.
리피와 레티샤는 구 수도방위대 기사단 훈련장에 불러 모은 니네베 연대의 잔류 인원들을 혹독하게 훈련시켜, 기사로서의 레벨을 올리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여전히 브룬넨과의 휴전 협약은 이뤄지지 않았기에 니네베 연대는 해체 대신 재편성되었다.
그래도 원하는 이들은 퇴역시켜 집으로 돌려보낼 수 있었다.
남은 자들은 그 시작이나 계기가 어떠하였든 격렬한 전투를 거치며 2레벨 이상의 수준에 오른, 어엿한 기사들이었다.
수도방위대 학교를 졸업하지도, 심지어 징집 영장을 받기 전까진 검을 잡아본 적 없는 이들 가운데서도 중급 기사가 나타났다.
그건 천지가 개벽하는 변혁이었다.
본디 기사와 마법사는 부유층이나 귀족 가문의 전유물쯤으로 취급되었다.
니네베 연대의 양치기와 농사꾼, 짐꾼 기사들은 그러한 기존의 관념을 깨부수고, 에테르 감응자의 출신 계급 편중이 교육 기회와 투입 자원의 불평등 때문에 벌어진다는 이론가들의 주장을 증명하는 사례가 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평민원 의원들은 대개 니네베 연대원들을 좋아했다.
그들은 이 시대의 새 영웅이었다.
우리 이웃, 우리의 아들, 딸들이 크뤼엘 공작을 이기고 그의 영지를 알비온의 것으로 되찾은 사건은 시민의 주체 의식을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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