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sorry I went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467
지금 시간 (4)
“에즈라 세르게프는 에테르에 독특한 자취가 있다. 그리핀의 피가 밴 성물과 에테르 그릇을 결합한 탓이겠지. 그래서 레벨의 성장이 멈춘 그가 또다시 에테르 레벨을 올린다면 이전과 같은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으리라 여겼다. 부수었다가, 외부의 힘을 결합하여 재구축하기. 이번엔 두 가지 요소가 작용했군. 대마법사가 복원한 유니콘의 뿔, 그리고 이전까지의 데이터가 없는 기이한 외력. 그것이 신성력이란 건가?”
“맞아요. 하지만 미약한 신성력이죠. 이제 이치를 벗어난 힘을 쓰려면 육신을 베어 쓰는 수밖에 없는 내가 일으킨 비루한 기적이네요.”
여전히 유니콘 모습을 한 에즈라는 디오네의 말을 부정하듯 고개를 젓다가, 애교를 부리며 촉촉한 코끝을 그녀의 어깨에 콕 닿게 했다. 그에게 디오네가 선사한 기적은 다시없이 찬란하고 위대한 것이었다.
프란은 불편한 헛기침을 했다. 때마침 클레이오가 모래가 들치지 않은 차통을 찾았다며 프란을 불렀다.
“프란! 이리 와서 주전자 물 좀 받아 줘.”
분위기는 생생해졌대도 겨우 부상이 나은 정도로, 쇠약함은 그대로인 클레이오는 물을 채운 8인용 주전자를 제힘으로 못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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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의기양양 울음소리를 쭉 뽑아냈다.
“먀아아아옭.(본묘는 갈 수 있다.)”
“그래. 세계의 반복도 견뎌냈으니, 세계의 이동도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어. 마석은 기억된 세계가 파훼된 후에도 부피가 유지되는 유일한 물질이고.”
“심지어 팔림프세스트를 복원했다 깨져나갈 적에 핵이 되는 흑요석에 당신의 피와 눈물과 에테르가 결착되었으니까요.”
“우리의 심장이 계약으로 엮여 있는 것과 비슷하게 말입니까?”
“그러네요. 하지만 이 경우엔 죽음으로 대가를 치른 피의 맹약이죠. 저 애의 영혼과 당신의 영혼이 한데 있도록 하며, 그 어떤 언어로든 베헤못과 당신이 소통할 수 있게 만들 연계이고요.”
“뭵?(부러우냐?)”
거만한 표정을 하고 있던 고양이가 돌연 주둥이를 디민 쪽은 디오네나 클레이오의 방향이 아니라 소파에 눕혀진 아서 쪽이었다.
아서는 어느새 눈을 뜨고 있었다. 그러나 의식을 되찾고 나서도 자신이 이 시공간이 언제의 어디인지를 명확히 알아보지 못한 상태였다.
최고급이긴 하지만 너무 오래 묵은 찻잎을 우린 듯한 홍차 향기가 연구제자 연구실을 채우고 있었다.
아서는 의아했다. 클레이오는 찻잎을 그렇게 오래 두는 법이 없는데.
또한 발치엔 마석 난로가 켜져 있는데 공기 역시 묘하게 쌀쌀했다. 그래서인지, 갑주는 어디엔가 떨구고 셔츠와 바지 차림인 그의 몸 위에는 클레이오의 캐시미어 모포가 덮여 있었다.
고양이는 커다란 테이블 위에 퍼져 금테 두른 물그릇에 담긴 홍차를 할짝거렸다. 고양이 뒤편으로 자리를 잡고 앉은 클레이오와 디오네는 각자 자신의 머그를 붙잡고 있었다.
아주 불만스런 얼굴로 두 사람에게 차를 따라주던 프란이 주전자를 탁, 하고 베헤못 곁에 내려놓았다.
측면으로 반쯤 열린 응접실 문밖으로는 중정을 거니는 웬 하얀 말과 손님용 머그를 들고서 그 말을 쭈뼛쭈뼛 관찰하는 제레미, 그리고 곧은 자세로 주변을 경계하는 스웨인의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고양이는 심드렁한 얼굴로 아서를 쿡 찔렀다.
“미야아아아아아아오옭. 므에으우우우우우웅? (이 자식 이거 여기가 어딘지 헷갈리는 거다. 아직 반복 중인 걸로 아는 거 아니냐?)”
고양이의 말을 알아듣는 디오네와 클레이오만 살짝 웃음을 지었다.
아서는 엉거주춤 반만 일어선 자세로 저도 모르게 모포를 꽉 쥐었다. 어쩌면 몇백 년간 보지 못했던, 어설프게 구는 소년 같은 모습이었다.
그의 청록빛 눈이 헤매듯 공간을 떠돌다가 아래로 고정되었다.
차를 다 마신 베헤못은 테이블을 내려가 클레이오의 발목 옆에 찰싹 붙어선, 거만하게 배를 내밀었다.
신수의 새카만 털과 거대한 체격은 흘러간 시간을 증명했다.
아서 역시 기억했다. 저쪽 세상에서 처음 다시 보았을 때 저 고양이는 아주 조그만 새끼였으니까. 저것은 긴 시간 동안 천천히, 클레이오의 영혼을 따라 반복을 겪으며 다시 성묘로 자라났다.
그는 확실하게 인지한다. 시간은 모두 지났다. 이곳은 1899년의 마지막 날, 부서져가는 세계의 한복판이다.
그렇지만.
“아직 가지 않았구나, 레이.”
아서의 말에서 생략된 부분은 다음과 같다. ‘그러나 곧 가겠지.’
클레이오는 축 처지는 아서의 눈썹을 못 본 척 가볍게 답했다.
“응. 팔림프세스트에는 여전히 한 문단 정도의 유예가 남았고, 그걸 다 채울 때까지 아주 조금의 시간이 있으니까.”
공무로 바쁜 이들의 최신 필수품인 그레이어 사 손목시계를 들여다본 프란은, 얼타는 아서와 느긋한 클레이오의 태도에 진절머리를 냈다.
“국왕까지 깨어났으니 이제 실질적인 사안을 논의할 때라고 생각되는데. 그러니까 클레이오, 너는 지난 여덟 번째의 세계로 가 균열을 없애고 너의 임무를 완수한 후 여기 최후의 세계로 어떻게 되돌아온다는 거지?”
클레이오가 제출한 답은 말이 아니라 설계도였다.
프란은 클레이오가 「기억」을 빌어 그려낸 복잡한 마도구 설계도를 보며 안경을 치켜올렸다.
그건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설계였다.
“그러니까 이건 마석 분석학과 마도 과학이 다음 한 세기 동안 무섭게 발전한 결과물이지. 그 반복은 아주 여러 번이었고, 그래, 이제 기억난다. 스물일곱 번째 태어난 프레다 세넷 연구원은 네 늦깎이 제자로 활약했었는데, 그녀가 이 상호견인발생기의 난점을 해결했어. 설마 내가 이런 걸 생각해낼 수 있을 리 없잖아.”
“나도 클레이오 아세르 네가 이런 고난도 마도 과학 설계를 해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텔라 방벽부터 아킬레우스의 방패까지 클레이오가 뭔가를 만들 때 제베디나 프란의 기술력이 들어가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클레이오의 에테르 감응력은 전설적이었고 발상도 독특한 편이었지만 마도구 제작 실무에 대한 이해나 설계 능력은 평균치 이하였다.
좀처럼 흔들리는 일이 없는 회색 눈이 안경 너머에서 혼란을 일으켰다.
클레이오가 고작 기초 설계도만 그린 것뿐인데도 프란은 그것이 지시하는 완성품의 모습을 알았다. 이미 본 것을 떠올리듯 내면에서 떠올랐다. 그 수식은 여러 번 보고, 세부를 고친 것이었다.
기초 구조는 단순했다. 서로를 끌어당기는 주고-받음 장치의 가동 기한을 무한대로 늘리는 것이 쟁점이었던 마도구다. 그러나 그것으로 산출량이 줄어들어 가던 티플라움을 통한 화력발전을 대체할 수도 있었다.
그는 그런 것을 본 적이 없다. 아니 상상도 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손이, 몸이, 머리가 그 수식을 알았다.
어째서 하지 않은 일에 대한 기억이 있고 만들지 않았던 도구에 대한 명확한 설계도가 머릿속에 있는가.
클레이오는 애를 써서 상황을 이해시키려 했다. 설명을 다 듣고도 프란의 미간은 쭉 찌푸려진 채였다.
“저 얼빠진 녀석이 갖은 애를 써서 세상을 지탱하는 동안 인류가 발전했고, 그 발전의 기억이 우리에게 남아있다는 건가? 그걸 믿으라고?”
프란은 또다시 신의 개입을 의심했다. 클레이오는 허둥지둥 손을 내저었다.
“우리들은 모두 함께 천 년을 살아냈으니까. 미래가 과거에 있고 또한 과거는 미래가 되지. 너는 인류사의 가장 위대한 발명이 일어날 때 종종 개입했고, 그건 한두 사람의 천재가 아니라 전 세계의 무수한 사람들이 평생을 바친 결과물이야. 그러니까 이런 것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거고. 시작은 포옹의 반구의 원리에서 착안한 거 알겠지 않아? 사실 난 모르겠지만. 그리고 저건 라리마로 만들면 가장 오래 가.”
클레이오는 코트 주머니에 남아 있던 천지조화의 라리마를 불쑥 꺼냈다. 라리마는 두 뭉치의 구름이 그림처럼 담긴 하늘색 마석이었다.
이제는 먼 옛날에, 실로 머나먼 세월 전에 리피와 레티샤 두 쌍둥이가 용과 싸워 얻어낸 보물.
마법사는 마석을 두 개로 나누어 각기 한 뭉치씩의 구름을 품은 구슬로 가공했다.
그런 다음 연구실 구석에 쓰러진 마석 가공 기구를 주워다 [복원]했다. 디오네와 프란은 막 복원되어 깨끗한 확대경 아래에 마석을 놓고 프란이 확정한 설계도를 라리마에 새겨 넣었다.
수첩을 들고서 눈치껏 주변 상황을 메모하던 제레미는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하며 어깨만 으쓱했다.
상사에서 대체 복무를 한 여신과 ― 심지어는 한때 그녀를 악신이라 칭했던 ― 현재 알비온에서 가장 지위 높은 2레벨 마법사가 만들어낸 라리마 마도구는 두 개가 짝을 이루어, 주고-받음의 식이 새겨졌다.
한 쌍의 라리마는 서로를 감지하고 견인했다. 떨어졌던 하나가 다른 하나에 가까워지면 마석 속의 하늘이 일렁이며 해가 떠오르듯 밝아졌다.
클레이오는 완성된 마도구를 보며 감탄했다.
“라리마는 정말이지 드물고 이 설계와 상성이 좋은 마석이야. 안젤리움들에게 꼭 감사의 말을 전해 줘. 화해도 했으면 좋겠고. 아무튼, 지난 반복 동안에는, 메리디에스의 남방 군도에서 두 개가 발견된 게 고작이었던 귀한 놈이야. 하늘과 땅이 서로 끌어당기듯, 주고-받음의 견인력을 상승시켜주거든. 그렇지요?”
“맞아요. 클리오의 세계가 끝이 나 세상이 전부 물에 잠기면 강물에 비추어진 구름이 하늘과 꼭 같이 흐르듯, 이 두 조각의 라리마는 서로를 감지하고 끌어당길 거예요.”
“…그러고 나서 난 뭘 하면 돼?”
쉬어서 아프게 들리는 목소리였다. 마도구에 집중하고 있던 세 명의 마법사가 동시에 아서를 돌아보았다.
대관을 거부한 주인공으로서 격렬하게 신에게 저항하던 아서는, 초췌한 모습에 너덜너덜한 차림새로 그냥 엄마와 떨어진 아이같이 덩그러니 있었다.
아서에겐 최선을 다한 패배를 받아들이는 자의 후련함과 상실을 직면한 자의 불안함이 함께 감돌았다.
천 년이 지나도 저 애에겐 소년 같은 부분이 남아 있고, 클레이오는 그것이 그의 강인함의 원천임을 알면서도 마음이 쓰인다.
어쩌면 8교에서도 기록되지 못했을 뿐, 아서의 내면 깊숙한 곳에는 그의 심지가 보존되었을 것이다.
긴 세월도 훼절치 못한 저 견고한 순수함이. 그토록 오래 살아도 여전히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울고 웃는 선선함이.
프란은 과거 연구 보조원을 하며 몸에 익은 대로 머그를 아무거나 하나 끌어왔고, 디오네가 이제는 가벼워진 주전자를 들어 홍차를 따랐다.
아서는 반쯤 무의식적으로 제 몫의 머그를 받았다. 클레이오는 아서의 상처투성이 손끝이 데워지는 걸 보고서 말을 이었다.
“너는, 그러니까 운이 좋다면 너와 친구들은 세상 어딘가에서 나를 찾아낼 수 있겠지. 라리마는 이전의 세상이 끝나고 내가 이곳에 돌아온 순간을 알려 줄 테니까.”
아서는 금빛 속눈썹 아래 눈을 꿈뻑이며 클레이오의 말을 되뇌었다.
“레이, 너를….”
“얼마나 시간이 걸리든 몇 세대가 지났든지 간에 너는 해낼 거고. 그렇지, 아서?”
이제 팔림프세스트에는, 몇 시간 남지 않은 신의 세기가 기록되는 책에는 고작 서너 문장을 적을 자리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클레이오는 그곳에 아서의 불멸을 거두어 갈 문구를 쓸 생각이 없다.
“천 년 전의 나는 잘못 생각했어. 한시적 불멸은, 그래, 네가 견딜 수 있을지 모르고서. 너는 기다릴 수 있지.”
“응. 기다림의 기회조차 없는 것보다는, 기다릴 수 있는 편이 좋아. 영원히 사는 군주에 대한 그 오페라의 가사는 틀렸어.”
“그게 아직 기억이 나냐.”
“난생처음 본 오페라라서.”
“전엔 하품만 하면서 졸더니.”
“그 뒤로도 스물세 번 정도 봤더니 감상이 바뀌더라고. 주기적으로 재상연하는 레퍼토리라서, 새 국립 극장을 지을 때마다 걸더라니까. 흡혈귀 이야길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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