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in Character’s Little Sister RAW novel - Chapter (76)
이보배는 가능하면 법을 지키고 싶기 때문에 거절했다.
암거래를 제의한 사람은 끈질겼지만 박마노가 선물한 행운목을, 정확히는 행운목에 묶인 리본을 가리키자 조용히 물러났다.
‘고마워요, 마노에몽!’
앞으로 나타날 진상도 마노에몽의 행운목이 퇴치해 줄 것이다. 이보배는 행운목이 말라비틀어지더라도 화분을 치우지 않기로 결심했다.
“진상은 없었느냐?”
“다들 상냥하고 친절하고 그래.”
“지금 오는 손님들은 네 지인 소개로 왔거나 저번에 소개받은 사람들일 테니까. 마노 누나와 현우 생각하면 함부로 못 하지.”
“막내야, 포션 주문은 받았어?”
“그건 그냥 물어보기만 하더라. 아무래도 상태 이상 치료제보단 회복 포션에 집중하길 바라는 사람이 많더라고.”
이제 고작 개업 이틀째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으니 이보배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보배는 지하에 있는 연구실로 가기 위해 눈치를 살폈다.
이해기에게 붙잡히지 않도록 슬금슬금 거리를 벌리다가 벌떡 일어났다.
“막내 어디 가?”
“지하실!”
이보배가 도망치듯 지하실로 뛰어가는데 웬일로 뒤가 조용했다.
방해하지 않을 건가 싶어 안심한 것도 잠시, 이해기는 정확히 30분 뒤에 찐빵 담은 쟁반을 들고 지하실로 내려와 말했다.
“일하느라 힘들지? 간식 먹고 하렴.”
“아, 진짜! 이렇게 방해할 거면 공방은 왜 내라고 한 거야!”
“번듯한 업장이 있어야 네가 가장이란 인식이 강해지지 않겠니.”
“정말 이러기야?”
“공방에 있는 시간은 터치하지 않으마.”
“손님이 오잖아.”
“어차피 팔 물건도 없잖니.”
“주문 제작 의뢰는 어떻게 받으라고?”
“앞에 투서함이라도 만들어서 편지로 받든지, 메일 주소 적어서 메일로 받든지 하렴.”
이해기는 한마디도 지지 않았다.
이보배는 부아가 치밀어 씨근덕거리다 호빵을 잡아챘다.
“올라와.”
“쉬게?”
“아니, 가족회의할 시간이야. 큰오빠랑 막내 오빠도 모두 소집.”
이렇게는 못 산다.
이해기의 횡포를 견디다 못한 이보배는 거실에서 가족회의를 열었다.
나태 또한 본인이 관장한다고 주장하는 타락의 지배자는 이해기에게 한 표 던졌다.
“나는 둘째 편!”
이보배가 일하든 말든 상관없는 이한생이 새로운 안건을 올렸다.
“그러지 말고 용돈이나 올려다오.”
“막내 오빠, 내 편 들어주면 용돈 올려줄게.”
“얼마나?”
“10%.”
“내가 말했지 않느냐. 배포 좀 키우라고. 좀 더 쓰거라.”
“쓰읍. 20.”
체키빙 공자께서 단호하게 일갈했다.
“돼지가 일하고 싶다지 않느냐! 돼지의 노동을 막지 말거라! 돼지는 자본주의의 돼지니라!”
이보배는 돈으로 산 한 표에 방긋 웃었다.
가족회의라 쓸 수 있는 편법이었다.
이보배는 이 문제로 줄곧 작은오빠와 싸워왔다. 오늘이야말로 벗어나겠다고 다짐했기에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이해기는 이보배의 진지함을 알아차렸는지 똥고집이 아닌 다른 수단을 사용했다. 불쌍한 척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지만 보배야. 오빠가 트라우마가 있단다.”
이해기가 대놓고 불쌍한 척했다.
이보배는 속지 않았다.
“웃기시네. 회귀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나 긴급 떨어져서 며칠 동안 외박해도 눈 하나 깜빡 안 한 양반이. 그리고 나한테 포션 마스터 운운한 건 뭔데? 막내 오빠 깨어나지 못했으면 적극 지지했을 거면서 이렇게 태도 바꾸는 건 이상하잖아.”
“네 말대로 너의 성장도 내 계획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말이다. 정작 네가 엘릭서 제작하겠다고 말하고 집중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조금 불안해지더구나. 안 좋은 기억이 자꾸…….”
이보배는 이해기의 말을 끊었다.
“죽은 보배가 떠오른다고? 그런데 나는 살았잖아. 죽지 않게 오빠가 지켜줄 거잖아. 순 억지야.”
“막내가 죽으면~”
이보배가 자연사 외의 방법으로 사망하는 날이 이 세계 최후의 날이 될 것이다.
이귀한이 손가락을 비비며 음산하게 노래를 불렀다.
“뿌셔뿌셔~”
화르세인지가 지레 겁먹고 이보배의 뒤로 숨었다.
“네 말대로구나. 억지라는 건 안다. 하지만 떨쳐내기 어렵기에 트라우마 아니겠니. 내겐 시간이 필요해.”
이해기는 서글퍼 보였다. 회한이 담긴 눈에서 연기가 아니라 진심이 흘러나왔다.
“보배는 말이다. 그러니까 그 애는.”
죽은 보배와 산 보배. 모두 그의 동생이다. 그럼에도 죽은 보배를 기억하는 사람은 이해기밖에 없다.
이해기가 세상에서 홀로 기억하는 동생을 부를 말을 찾기 위해 말을 골랐다.
‘그 애라. 서른이 넘었을 때인데 그래도 오빠한텐 애구나.’
이보배는 자신이 모르는 10여 년의 시간을 상상했다.
지금처럼 사남매가 모이지 못하고 둘이서만 보냈을 10년의 시간. 그리고 오지 않을 시간.
회귀자는 때로, 종종, 자주, 아니, 항상 동생이 보고 싶다.
과거로 돌아와 동생과 만났지만 다시는 보지 못할 동생이 그리운 건 어쩔 수 없다.
‘나라도 그럴 테니까.’
이해기의 심정을 상상한 이보배의 마음이 울적해졌다.
“갓보배는.”
그리운 동생을 부를 적절한 표현을 찾은 이해기가 입을 열었다. 동시에 이보배의 아련한 감정이 와장창 깨졌다.
“그건 뭐야.”
“마음에 안 드니? 네 별명이었는데. 포션 마스터, 갓보배, 인류의 보배.”
“인류의 돼지가 아니냐? 돼지 주제에 신이 붙다니 괘씸하도다.”
“갓보배! 나는 좋아!”
공자님은 못마땅해하고 이귀한은 갓보배가 마음에 든다고 히죽 웃었다. 이보배는 당황했다.
“마음에 들고 자시고 뭐가 그렇게 거창해.”
이해기가 어깨를 으쓱였다.
“진짜란다.”
“증인 없다고 날조가 심하네. 너무한 거 아니야? 장례식에 오빠 손님 말곤 조문객도 없었다며. 내 지인은 한 선생님이 유일했다고 말한 거 까먹었어?”
“그건 네가 유명세가 귀찮다고 감춰서 그래.”
이보배는 이해기가 종종 써먹는 거창한 칭호를 가지고 투덜거렸다.
“애초에 포션 마스터가 뭐야. 마스터면 모든 포션을 다 만들 수 있어야지. 결국 엘릭서 제작엔 실패했잖아. 그 별명은 누가 붙인 건데. 작은오빠가?”
“네가 세계 최초로 쿨 타임 없는 회복 포션 제작에 성공하고 레시피를 무료 공개했을 때 국제 헌터 협회와 연금술사 협회에서 감사패와 함께 붙여준 칭호였지. 레시피를 개량해 쿨 타임 없는 C급 회복 포션 레시피를 무료 공개했을 땐 모두 알아서 널 포션 마스터라고 불렀다.”
이보배의 입에서 씹다 만 호빵이 후두둑 떨어졌다.
화르세인지가 헛구역질을 하고 이보배의 벌어진 턱을 올려줬다.
“그거 대단해?”
이귀한이 묻자 이해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한 거지. 세계 최강의 헌터 따위보다 백 배, 천 배 대단했지. 균열 공략의 패러다임이 바뀌었어. 혹자는 그걸 2차 포션 혁명이라고 불렀고 교과서에도 등재되었어.”
어지간한 일론 기뻐하지 않는 이귀한이 눈에 띄게 반색했다.
“우리 막내가 교과서에 이름이 올랐어? 그런 거야?”
“응. 나랑 엮여 유명해지는 게 싫다고 이름만 공개했는데도 한동안은 마노 누나에게 이보배 오빠 소리 들었지.”
“우와앙! 우리 막내 대단해! 가문의 영광!”
교과서 등재의 영광은 마왕도 춤추게 한다.
이귀한이 얼씨구절씨구 춤을 췄다.
같이 추자고 이보배의 손을 잡고 휘둘렀지만 이보배는 그럴 정신이 없었다. 이보배는 이귀한을 밀치고 팥앙금과 침이 묻은 턱을 닦았다.
“거짓말하지 마. 내가, 갓보배 님이 그러셨다고?”
“진짜란다. 엘릭서를 제작하겠다면서 고작 노쿨 포션에 놀라는 거니?”
“아니, 그러니까, 어떻게 노쿨 포션을 고작이라고. 그러니까 내가, 갓보배 님께서.”
이보배는 정신이 혼미했다. 그녀는 작은오빠에게 다가가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회귀자의 머리가 메트로놈처럼 흔들렸다.
“이 기사, 특별 보너스 좀 받았다고 이러지 말지. 과한 아부는 좋지 않아.”
“정말이란다.”
“정말의 정말?”
“진짜의 진짜.”
“한 선생님이 아니라 내가?”
“현우와 공동 연구긴 했지만 현우는 네가 다 했다고 말했으니 네가 한 게 맞다.”
이보배는 미래의 자신이 해낸 업적이 믿어지지 않았다.
작은오빠를 흔드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러다 불현듯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님을 상기했다.
“잠깐만. 그러면 내가 이러고 있으면 안 되지. 하루 두 시간씩 잔 갓보배가 그러는데 나는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런데 이렇게 방해하는 거야?”
“네겐 내가 있잖니.”
“연구는 사랑이 아니야, 오빠. 장애물이 있으면 좌초되지 불타오르지 않는다고.”
이해기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참 얄미운 면상이라 한 대 때려주려다가 이보배는 멈칫했다.
“설마.”
이보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회귀자에게 질문했다.
“노쿨 포션 레시피 알고 있는 거야?”
“모른다. 알아도 알려주지 않을 거야. 제작법은 스스로 알아내야 시스템이 인정해 주지 않겠니.”
“그건 그렇지. 그럼 왜 그렇게 웃는데?”
이보배는 알고 있는 모든 걸 실토하라는 의미로 이해기를 짤짤 흔들었다.
이해기는 조금 흔들려 주다가 놀이를 그만두고 멈췄다.
“재료는 알고 있다.”
이보배는 가쁘게 숨을 내쉬었다. 재료만 알고 있더라도 대단한 수확이다. 무협지에서 나오는 절벽 기연이나 마찬가지였다.
“뭐가 필요한데! 지금 구할 수 있는 거야? 구하기 쉬운 거야? 나중에 나오는 거야?”
“진정하렴. 이것도 내가 전부 알려주면 의미가 없잖니. 네가 직접 알아내야 의미가 있지.”
이해기의 말대로였다.
기껏 쿨 타임 없는 포션을 제작해도 이해기에게 정보를 얻으면 이보배의 기여도가 감소한다. 시스템에게 기여도 깎인 업적 보상을 받을 확률이 높았다.
‘내가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이해기는 박마노를 꼬시기 위해 전투와 성장 방향에 대해 조언했다.
이보배는 그걸 바로 옆에서 지켜봤으면서도 자신의 성장을 위해 써먹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등잔 밑이 어두웠다. 아니지, 구슬이랑 실 잔뜩 늘어놓고 꿸 생각 없이 방치했다는 말이 딱이었다.
덤으로 그 구슬이 돌인지 옥인지조차 분간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연구실에 틀어박히고 작은오빠가 균열 공략하느라 밖을 싸돌아다녔어도 최소한의 대화는 오갔을 거잖아. 내가 뭘 제작하고 어떻게 성장했는지 작은오빠는 다 알고 있었을 텐데!’
전투계기 때문에 생산계에 대해 모른다 쳐도 무엇을 만들다 실패했는지, 어떤 스킬을 얻었는지에 대해선 물어볼 수 있다.
“내가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조언해 주겠다는 거지? 하루 여덟 시간만 연구해도 되도록 도와주겠다는 거잖아.”
“대놓고 돕진 못하더라도 작은 힌트를 줄 수 있고 성장하도록 유도할 수 있지.”
이보배는 기대에 벅찼다.
말로만 듣던 울트라 초특급 회귀자 성장 코스의 단꿈을 꿀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 오빠가 회귀잔데 내가 덕을 못 보는 게 이상한 거지.’
이보배는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작은오빠가 오늘따라 존경스러웠다.
“빨리 알려줘.”
“일단 하루 여덟 시간 노동을 준수하는 걸로 시작하자꾸나. 혹 모르잖니. 이것도 성장 유도의 일환일 수 있어.”
말은 그렇게 해도 휴식 강요가 성장에 포함되지 않는 게 뻔히 보였다.
부풀었던 기대가 꺼져 바람 빠진 풍선이 되었다.
이보배는 흰 눈으로 이해기를 응시했다.
“진짜 이러기야?”
“1년.”
회귀자는 오른손 검지를 들어 올렸다.
“딱 1년만 여덟 시간 노동을 준수하면 이후론 군말 안 하마.”
이보배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가 아는 이해기는 언제나 성실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회귀한 이해기도 마찬가지였다.
말은 10년 논다고 했지만 이해기는 몰래몰래 일했다. 가끔 보면 몰래 일하는 스릴을 즐기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 작은오빠가 왜 이렇게 휴식을 고집하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진짜 이러는 이유가 뭐야?”
“왜냐면 말이다.”
이해기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한번 놀면 멈출 수 없고 여럿이 노는 게 더 재밌기 때문에, 끄악!”
“내가 그거 하지 말라고 했지. 이번이 마지막이야, 다음부턴 절대 안 때릴 거야.”
이보배가 이해기를 응징한 주먹을 거세게 흔들었다.
화르세인지는 스칠까 무서워 2층으로 도망쳤다.
이보배는 바닥을 기는 이해기를 한심한 듯 응시하다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유를 들어볼 텐데 숨기니 답이 없었다.
이보배는 한숨 쉬며 2층 계단을 올랐다.
이귀한은 바닥에서 바들바들 떠는 동생을 발로 건드렸다.
“죽었어?”
“형, 나는 말이야.”
“살았네.”
“보배가 죽기 전까지 한 번도 포션을 산 적이 없어.”
“공짜 좋아용.”
“보배 죽고 그 애가 준 포션은 가능한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형 오는 바람에 하나씩 하나씩 썼거든. 나만 썼어. 주위에 누가 죽어가든 신경 쓰지 않고 나한테만 썼단 말이야. 결국 마지막 한 병이 남았을 땐, 주위에 남은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차라리 나도 죽어버릴까 그렇게 생각했거든.”
“썼구나.”
“쓰고 형을 죽였지.”
“장하다.”
이귀한이 쪼그려 앉아 이해기의 뒤통수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해기가 비실비실 웃었다.
“동료 목숨보다 귀하게 여긴 동생 유품 쓰고 죽인 게 형이라니. 내 인생이지만 진짜 왜 이러냐.”
“그러게 막내를 잘 지켰어야지. 자업자득이네?”
동생이 약한 소리를 하면 감싸줄 법한데, 이귀한은 촌철살인을 날렸다.
“돌아오면 더 잘하려고 했는데. 더 약게 살려고 했는데.”
“넌 원래 약은 새끼잖아.”
“내가 진짜 무서운 게 뭔지 알아, 형?”
이해기는 바닥에 붙은 얼굴을 떼지 않고 작게 중얼거렸다.
“보배가 노력하다가 자기 탓을 하는 거야.”
하루 두 시간씩 자가며 엘릭서 제작에 힘쓴 갓보배는 연금술사로서 성공했다.
하지만 엘릭서 제작 진도는 진척이 없었고, 갓보배는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다.
조바심이 지나쳐 확실하지 않은 정보에까지 손을 댔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판국에 썩은 외나무다리에 망설임 없이 발을 디뎠다.
이해기가 동생의 심정을 이해했더라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심정을 들어주기만 했더라도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하다못해 세상엔 비열한 자가 많다고 경고라도 했더라면.
지금의 이보배는 그 보배와 다른데 이해기는 가끔씩 무서워졌다. 등골이 오싹하고 전신의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
“형 죽일 생각으로 계획 짜왔을 땐 무서운 게 하나도 없었는데……. 형 안 죽여도 되니까 무서운 게 너무 많다.”
“이런 멍청한 놈!”
이귀한은 거칠게 문지르던 이해기의 머리를 냅다 때렸다.
이해기는 자신의 물리 방어를 뛰어넘는 타격에 거칠게 항의했다.
“죽을 뻔했잖아, 개새끼야!”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나야! 나는 공포다. 나는 타락이다. 나는 죽음이며 모든 것들의 파괴자다! 다른 존재는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없어! 나는 최후의 종결자다!”
이귀한이 오랜만에 흉흉한 기운을 내뿜었다.
2층에서 망나니가 고꾸라지는 소리와 이보배의 비명이 동시에 울려 퍼졌다.
“꺄악, 막내 오빠!”
공포의 대마왕 이귀한이 1일 1똥 여덟 시간 취침보다 우선시해야 할 규칙이 있었으니, 이한생 근처에서 힘을 쓰지 말지어다.
이보배가 계단을 뛰듯이 내려와 규칙을 어긴 이귀한을 응징했다.
공포의 대마왕은 겁쟁이 동생과 마찬가지로 거실 바닥에 누워 바르작거렸다.
* * *
결국 이보배는 회귀자의 똥고집을 꺾지 못했다.
회귀자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이보배를 방해했다.
이보배가 를 남발해도 소용없었다.
아파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같이 영화 보자는 회귀자의 집념에 이보배는 백기를 들었다.
‘진상이 여기 있다니까.’
진상 조심하라더니 이보배의 진상은 공방이 아니라 집에 있었다.
이보배는 작은오빠를 생각할 때마다 이를 갈았다.
‘시간 아깝다.’
오지 않을 미래의 갓보배를 떠올릴 때마다 무의미하게 흐르는 시간이 아까웠다.
눈은 ‘연금술사의 솥뚜껑’ 토론 게시판을 보고 있지만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공방 오픈 시간을 줄이고 포션 연구에 집중할까? 아니야, 아직 오픈한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시간 바꾸기는 좀 그래.’
본래 이보배의 계획은 이러했다.
공방에 머물면서 손님이 오면 상담하며 제작 의뢰를 받고 손님이 없을 땐 공방에 마련한 설비로 포션을 연구하거나 제작한다.
굳이 연금술사의 공방이 아닌 다른 공방이더라도 비슷한 시스템으로 운영되었다.
이보배 본인도 지극히 평범한 계획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이보배가 혼자 일한다는 것이다.
보통 그러한 공방은 특정 시간에만 손님을 응대하거나 아예 사람을 고용해 일을 나눈다.
이보배는 공방 운영을 만만하게 보고 사람을 고용하지 않았다. 섣부른 판단이었다.
‘만만하게 생각한 내 죄지.’
이보배는 혼자 후회하고 혼자 짜증 냈다.
‘손님 오는 거 신경 쓰느라 집중 못 하겠어.’
이 문제는 이해기의 말대로 투서함을 설치하거나 영업 시간을 변경하면 해결된다. 하지만 이보배는 그러기 싫었다.
‘작은 새끼 말대로 하면 지는 거 같잖아.’
인생을 사는데 하등 쓸데없는 오기인 걸 알지만 이보배도 고집이 있다. 이해기만 고집 있는 게 아니라 이 말이다.
‘직원이라도 고용할까.’
손님 오는 게 신경 쓰여 집중이 안 된다면 이보배 대신 손님을 응대할 사람이 있으면 된다.
이보배는 구체적으로 고민했다.
‘어디 보자.’
이보배는 아르바이트 사이트에 올라온 구인 공고를 훑어보았다.
종이에 시급과 시간, 업무 내용을 끼적이며 구인글 초안을 작성했다.
‘간단한 손님 응대, 청소 정도인가? 일 자체는 간단하니까…….’
펜을 까딱이던 이보배의 손이 멈췄다.
이보배는 아르바이트 사이트창을 끄고 종이에 끼적인 것도 지웠다.
‘나도 참 바보라니까.’
이보배는 스스로를 한심해하며 팔짱을 꼈다.
그녀는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뒤지거나 낯선 이를 고용할 필요가 없었다. 파랑새는 언제나 가까이에 있는 법.
‘집에 백수가 셋이나 있잖아.’
이보배는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난 미소를 지었다. 오빠들 일 시킬 생각하니 실로 즐거웠다.
그날 저녁.
이보배는 오빠들을 불러 모아 공방에서 내린 결론을 말했다.
“직원을 두려고.”
“우리 막내, 사장 되더니 부하도 생기는 거야?”
“흠, 사람은 됨됨이와 능력은 물론이고 집안까지 살펴 써야 하는 것이다. 아무 사람이나 고용해 돼지는 물론이고 나의 명예까지 실추되지 않도록 하여라. 최소 3대는 확인해야 하는 법!”
체키빙 공자가 귀족가에서 사람을 쓸 땐 조부모의 출신까지 검사한다며 으스댔다.
이해기가 웬일로 남동생의 말에 동의했다.
“한생이 말대로다. 사람은 잘 보고 고용해야 해. 일단 구인부터 해보고 지원자가 있으면 뒷조사를 하겠니? 아라크네에게 의뢰할까?”
“아니.”
이보배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팔을 벌리고 활짝 웃었다.
“집에 노는 손이 셋이나 있네! 요즘 노는 꼴 보기 싫었는데 잘됐지 뭐람! 알바비는 후하게 쳐줄 테니까 내일부터 한 명씩 나와.”
가장의 일방적인 통보에 삼형제는 거세게 반발했다.
“나한테 일하라고? 나한테 일은 파괸데?”
“돼지가 근면하여 좋게 보았더니 무엄하구나! 감히 나를 부려먹겠다는 소리냐?”
“보배야, 그건 좋지 않은 생각 같구나.”
이해기는 위험하게 눈을 반짝이는 이귀한을 가리켰다.
“나나 한생인 그렇다 쳐도 형은 안 된다.”
“일단 들어봐.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야. 내가 포션 제작하는 동안 카운터 보면서 손님 오면 인사하고 제작 의뢰만 받아주면 돼. 내용이 복잡하면 나를 부르면 되는 거야. 그 외의 시간은 뭘 하든 자유고 알바비는 잘 쳐준다니까.”
이보배가 생각하기엔 꿀알바였다.
말 그대로 가족이 사장이기에 가능한 후한 조건에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씨 삼형제 중 맏이에겐 그조차 불가능했다.
“뿌셔뿌셔 고고?”
이귀한의 눈이 위험하게 반짝였다. 부르기 편해서 마왕이지 실상 파괴신 쪽에 가까운 그에게 일이란 곧 파괴였던 것이다.
이해기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우리는 세계를 구하고 있단다’가 빈말이 아니었다.
“오케이, 큰오빠는 계속 노는 걸로.”
“에이, 노는 것보다 뿌수는 게 더 재밌는데.”
이귀한이 아쉬워하며 혀를 찼다.
하마터면 최저 시급에 2천 원 보탠 돈으로 지구를 부술 뻔한 이보배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노는 손 셋에서 하나를 제한 이보배는 남은 백수 둘을 보았다.
“그럼 작은오빠는.”
“나는 형을 감시해야지.”
“막내 오빠는.”
“무엄하다!”
작은 새끼는 이귀한을 가리키고 망나니는 펄펄 날뛰었다.
큰 새끼의 위험성을 고려했을 때 작은 새끼의 주장은 타당했다.
결국 이보배의 시선은 망나니에게 쏠렸다.
“왜, 왜 나를 그리 보느냐. 나도 싫다! 나는 바쁜 몸이니라!”
성신의 사랑을 받는 고귀한 귀족 화르세인지 드 체키빙 공자께서 외쳤다. 외치면서 화가 났는지 점점 목소리가 커졌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괘씸하구나! 나처럼 성스럽고 고귀한 귀인을 이리 무시하다니! 감히 나를 돈으로 고용하겠다는 것이냐!”
‘아, 포인트가 그쪽인가.’
귀족의 자존심 때문에 돈 받고 일하긴 싫었나 보다.
이보배는 근로 조건을 변경했다.
“그럼 막내 오빠는 무급으로 일해주고 월급은 오빠 이름으로 기부할게. 그럼 됐지?”
“돼지 주제에 날 우롱하느냐!”
화르세인지가 무급은 더 싫다며 핏대를 세웠다.
이보배는 근무 조건 조절이 가능하다고 외쳤지만 소용없었다.
이한생은 대화를 거부하고 2층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하여간 이놈의 망나니.”
이보배는 닭 쫓던 개가 되어 입맛을 다셨다.
“그냥 투서함 설치하라니까.”
이해기가 능글맞게 웃었다. 이보배는 작은오빠를 흘겨보았다.
“됐거든요.”
이보배는 한숨을 쉬며 팔짱을 꼈다.
집에 식충이가 셋이라 어떻게든 써먹어볼까 했더니 개똥보다 쓸데가 없었다.
“으아악! 아무나 오거라! 빨리!”
자기 방으로 올라간 망나니가 난데없이 비명을 질렀다.
악마든 사기꾼이든 돼지든 좋으니 아무나 오라는 다급한 절규에 이보배는 벌떡 일어났다.
균열의 날 이전의 이보배라면 이한생이 자신을 부르든 말든 들은 체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균열의 날 이후의 이보배는 다르다.
이보배는 바닥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는 큰놈, 작은놈과 달리 눈부신 속도로 움직였다.
계단을 오르는 동생을 보고 이귀한이 흡족하여 말했다.
“막내 도망칠 때도 저러면 안심.”
이귀한의 목소리는 느긋했지만 놀란 이보배의 귀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왜 그래!”
이보배는 2층에 오르자마자 막내 오빠를 찾았다.
이한생은 사색이 되어 방 밖에 나와 있었다. 그가 자신의 방을 가리켰다.
“가랏, 돼지!”
망나니가 돼지에게 전투 명령을 내렸다.
이보배는 싸우기에 앞서 적의 정체부터 파악했다. 이쯤 되니 슬슬 놀란 마음이 진정되고 이성이 돌아왔다.
애초에 큰놈과 작은놈이 움직이지 않은 시점에서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이보배는 일단 방을 살폈다. 심하게 어질러진 상태지만 위험해 보이는 건 없었다.
이보배는 움츠렸던 어깨를 풀었다. 힘이 빠지고 긴장이 풀렸다.
“뭐야, 뭔데?”
“빨리 처치해라. 빨리!”
“그러니까 뭘? 청소하라고 부른 거면 때려준다.”
이보배는 위협적으로 주먹을 들었다.
화르세인지가 반사적으로 겁먹고 뒤로 도망갔다.
그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하얗게 질렸고 동공 또한 확장되어 겁에 질린 기색이 역력했다.
이보배가 주먹을 들기 전부터 그랬다.
“고작 청소나 하라고 돼지를 소환했겠느냐! 나타나지 않았느냐!”
“뭐가?”
“칠흑의 어둠을 두른 사악한 악마! 그 끔찍한 몰골! 소름 끼치는 소리!”
“큰오빠 아래층에 있잖아.”
“대악마 말고 다른 악마 말이니라! 두 쌍의 날개로 나를 위협하는 대마수가!”
힌트를 주려는 듯 방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보배는 악마의 정체를 파악하고 김이 빠졌다.
‘아, 그거.’
이보배는 일단 이한생의 방으로 들어가 소리가 난 곳을 확인했다. 책상 밑이었다.
“여기로 들어갔어?”
“으아악! 내게 묻지 말거라. 그 끔찍한 모습을 눈에 담으면 난 미쳐 버리고 말 것이다!”
이한생은 보는 것도 무섭다며 눈을 가리고 아우성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