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220)
220화. 혈검(血劍), 백사(白蛇) (2)
진혁이 팔과 다리의 상처 부위를 움켜쥐었다.
욱씬!
예리하고 날카로운 날붙이에 당한 자리에서 붉은 피가 흘렀다.
하지만, 당장의 통증보다 중요한 건 무엇에 당했는지를 파악하는 것부터다.
“그 무기…….”
진혁의 눈매가 늘어졌다.
백사의 손에 들린 검이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를 띠고 있었다.
촤르르륵.
톱날로 된 검은 어느새 7m가 넘게 늘어진 상태였다.
연검(軟劍).
단순히 묘하게만 생겼던 검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기에, 검의 궤도를 예측하는 게 난해하기 짝이 없는 무기이지만.
제대로 다룰 줄만 알면 그 어떤 무기보다 상대하기 까다로운 게 바로 저 연검이었다.
게다가.
‘피에 섞인 마력까지 흡수하다니.’
피를 머금은 칼날이 오히려 하얗게 변하는 게 굉장히 특이하다.
마치, 한 마리의 백사(白蛇)를 보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놀랍군. 그것마저도 반응한 건가. 천마신교의 10대 분파 놈들 중에서도 첫 일격을 이 정도로 받아 넘긴 건 네놈이 처음이다.”
“생긴 거하고 어울리지 않게 되게 섬세한 걸 쓰네. 아저씨.”
가뜩이나 무식한 내공과 실전 경험을 지니고 있는 적이었건만.
저 검을 쥐자 완전히 그 기세가 변했다.
호랑이 등에 날개라도 단 것 마냥 백사의 전신에서 붉은색 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온다.
진혁이 자리를 박차는 것과 동시에.
취리리릿!
연검이 지면을 휩쓸며 다가왔다.
흙과 자갈에 부딪친 검이 묘하게 궤도를 바꿨다.
저걸 예측하려고 해선 안 된다.
지금까지 쌓아 온 경험으로 대응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카카칵!
카아아앙!
진혁이 허공에서 미친 듯이 송곳니를 휘둘렀다.
‘검마제왕보’를 통해 강화된 몸으로도 연검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젠장! 분명, 생포하겠다고 하지 않았어?”
이건 완전히 제대로 놀아 보겠다는 의지가 뚝뚝 묻어나온다.
모처럼 연검을 써서 흥분되는 건 알겠는데, 이렇다가 사람 하나 잡는 건 시간문제일 거다.
“도망만 치지 말고 제대로 싸워라. 검은 강기를 사용할 줄 아는 놈이 겨우 이 정도로 무슨 엄살이란 말이냐!”
거칠게 포효한 백사가 연검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이건 심상치 않다.
수백 갈래로 퍼진 강기가 삽시간에 일대를 집어삼켰다.
콰콰콰콰콰!
일검에 주위에 있던 나무들이 이쑤시개처럼 쓰러졌고.
가로막는 것이 바위든 무엇이든 간에 반 토막으로 쪼개졌다.
속도도 빠른 데다 공격력까지 무식할 정도로 막강하다.
“큭!”
몇 번이나 튕겨나간 진혁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별의 가호’로 인해 상처가 치유되곤 있었지만, 그 속도가 너무 느렸다.
아마 저 검에 상처를 악화시키는 무언가가 발라져 있는 거겠지.
그러나 숨을 채 돌릴 틈도 없이, 또 다른 공격이 이어졌다.
퍽!
퍼억! 푸욱!
왼쪽, 오른쪽. 다시 왼쪽.
방금 전까지 발을 딛고 있던 부분에 바람구멍이 생겼다.
연검이 꿈틀대며 발등을 노리는 듯하더니, 이내 궤도를 틀어 다리를 노렸다.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
아슬아슬하게 피했지만, 이번에도 진혁의 몸에 상처가 하나 늘었다.
“후우…….”
잃어버린 혈액량이 늘어날수록 체력이 급속도로 떨어졌다.
문제는, 마력의 절대량 차이 때문에 상대는 아직까지 조금도 지친 기색이 없다는 점이다.
‘계속해서 방어만 하다가는 결국 당한다.’
시간은 상대의 편.
반격의 틈을 노린다면, 그건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검이 멈추는 그 순간을 찌르는 것뿐이다.
진혁이 튀어 오르는 불꽃 속에서도 칼날이 움직이는 방향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또 다시 온다.
검을 쥔 자세를 살짝 바꿨다.
그리고 일부러 허점을 노출한 순간.
콰아아앙!
반원을 그리며 날아온 연검이 측면부를 강타했다.
무겁다.
하지만, 어떻게든 견뎌내었다.
‘지금!’
유일하게 연검이 다음 공격을 하기 전까지 틈을 보이는 때가 바로 지금이다.
[Lv11 ‘빙하조형(氷河造形)’이 발동됩니다!] [고유 능력 ‘화룡의 숨결’이 발동됩니다!]두 개의 스킬이 동시에 사용되었다.
화르르륵!
파츠츠…….
얼음과 불의 만남.
상극의 스킬이 같은 장소에 작렬했다.
“이런 잡기술 따위로……!”
백사가 호신강기를 사용해 달라붙는 얼음 조각과 불꽃을 단숨에 털어냈다.
워낙에 내공이 깊었기에, 이 정도 공격으로는 녀석의 몸에 상처 하나 입힐 수 없었다.
하지만.
“시선을 끌어 주는 걸로 충분했어.”
본 게임은 그게 아니다.
어느새 허리춤에 찬 검집에 쌍룡검을 집어넣은 진혁이 극한까지 마력을 끌어 모았다.
단 한 번뿐인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승기를 잡기 위해서.
기꺼이 살을 내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상대의 뼈를 취할 시간이다.
꾸욱…….
섬세한 손가락이 칼자루의 끝을 어루만졌다.
[Lv2 ‘발검(拔劍)’이 발동됩니다!]응축된 마력이 뿜어진 건 바로 그때였다.
‘백월야(白月夜)’
하얀 그믐달이 칼날을 통해 그 형을 갖췄다.
동시에, 한 줄기 섬광이 공간을 가로질렀다.
[고유 능력 ‘고속검(高速劍)’이 발동됩니다!]제국 최강이라 칭송받는 기사의 능력이 더해지자, 가속하던 검이 이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인지를 초월한 검격.
한 줄기 선풍이 먼저 그 시작을 고했고.
그렇게.
모든 것이…….
하얗게 물들었다.
***
‘……당했다.’
방심을 한 것도 아니고. 손속에 사정을 둔 것도 아니다.
그저 연검의 유일한 약점을 상대가 파고들었을 뿐.
그 작은 실수가 지금의 결과를 낳았다.
백사는 대응할 수 없는 공격을 눈앞에 둔 채 어금니를 부러져라 깨물었다.
이제 잠시 뒤엔, 그 실수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운이 좋아야 팔이 잘리고.
운이 없다면 목숨을 잃게 되겠지.
그런데.
콰아아앙!
발검과 고속검으로 구현시킨 백월야가 허공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진혁과 백사의 사이에 누군가 끼어들었다.
백사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두 눈을 부릅뜬 건 진혁도 마찬가지였다.
이 느낌. 이 감각.
설마…….
틀림없다.
“암황…….”
“지존!”
두 사람이 동시에 외쳤다.
“조금만 늦었다면 큰일 날 뻔했구나. 고양이 새끼 정도로 생각했건만, 알고 보니 호랑이 새끼였어.”
눈앞에 나타난 사람은 결코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인물이었다.
건장한 체구의 노인이 작게 그슬린 손바닥과 진혁을 번갈아 보더니, 혀를 끌끌 찼다.
“며, 면목 없습니다. 제가 그만 방심을 해서…….”
“되었다. 상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생포 명령을 내린 내 잘못도 있으니. 차라리 죽이라고 했으면 이렇게 까진 되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에 와선 다 의미 없는 가정들이겠지.”
암황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손을 저었다.
그러다 무언가를 느꼈는지 숲의 저 너머를 바라봤다.
“부대주와 음영대는 저쪽으로 보낸 거냐?”
“예. 이자의 동료들을 처리하라 지시했었습니다.”
“흐음……. 또 하나의 괴물을 데리고 있었군. 완전하지는 않지만, 제약이 풀리면 나도 상대하기 쉽지 않겠어.”
암황이 숲의 반대쪽을 바라보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희미한 공기의 떨림만으로도 저곳의 상황이 어떻게 됐을지 짐작이 되었다.
멀쩡히 제 발로 서 있는 놈이 단 하나도 없는 게 틀림없었다.
“계약을 한 당사자가 너인 게로구나. 계속해서 마력을 공급하는 와중에도 백사와 동수를 이루면서 허까지 찌르다니…….”
“거의 성공할 뻔했죠. 암황께서 끼어들지만 않았다면요.”
“부정하지 않으마. 내가 오지 않았다면 이 싸움은 네 승리였겠지.”
“그런 의미에서 그냥 이긴 걸로 해 주면 안 될까요?”
“무어라?”
“그 왜. 강호의 도리라는 것도 있지 않습니까? 후배들 싸움에 어른이 끼어드는 것도 영 모양새가 안 좋기도 하고요.”
“푸하하하! 이것 참 맹랑한 아이로구나.”
진혁의 능글거림에, 암황이 폭소를 터뜨렸다.
화가 난 것이 아닌,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듯한 웃음이었다.
“왜 계속해서 이 아이가 신경 쓰는가 했는데, 직접 보니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실력과 그에 못지않은 입담을 가진 인재라면, 그 누구라도 끌릴 수밖에 없는 법이지. 안 그러느냐 월영?”
암황이 부드럽게 미소를 그렸다.
그러자.
그 옆으로 익숙한 그림자가 꿀렁였다.
월영이었다.
“…….”
월영은 복잡한 심정이 담긴 눈빛으로 진혁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젠장. 이건 실연한 연인을 다시 보는 것도 아니고.
배신감과 실망감으로 얼룩진 얼굴을 마주하자니 솔직히 말해 양심이 살짝 찔리긴 한다.
“잘 지냈어?”
“주군…… 아니. 그쪽이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삐졌네.
이건 확실히 삐진 거다.
“껄껄껄! 사내놈들끼리 아주 가지가지 하는구나. 묵힌 감정이야 나중에 풀고. 우선 나부터 할 말을 해야겠다.”
“할 말이라면…… 저에게 말입니까?”
“그래. 사실 나는 네놈이 마음에 든다. 그 재능과 실력을 이대로 쳐내 버리기엔 너무 아깝지. 해서 말인데, 우리와 함께하는 게 어떻겠나?”
천마신교는 그 무엇보다 실력을 우선시 한다.
가문의 휘광도.
개인의 과거도.
전부 상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뜻밖의 제안에, 가장 크게 당황한 건 백사였다.
“지존!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무리 그래도 탑 밖에서 온 외인을 받아들이는 건……!”
“백사. 내가 지금 말을 하고 있지 않느냐?”
“죄…… 죄송합니다.”
백사가 움찔하며 꼬리를 말자, 암황이 재차 진혁에게 물었다.
“어떤가? 우리에게 온다면, 고작 탑의 중층부가 아니라 상층부를 노릴 수도 있다. 부와 명예가 보장되는 것 또한 예정된 일이지.”
무엇보다…….
“전투광인 그대에게 있어 질릴 정도의 대련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거다.”
“마치, 제가 싸움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는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아닌가? 내가 볼 때 그대는 뼛속부터 무광(武狂)으로 보이네만?”
암황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거야…….
이쯤 되면, 어느 쪽이 능구렁이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암황은 알고 있을까?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제안마저 모두 각본에 쓰인 대사를 읊고 있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
‘……걸렸군.’
진혁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암황과 여기서 만나게 될 것까진 예상하지 못했으나, 만약 저 영감님과 만나게 된다면 이런 식의 제의가 올 거라는 것쯤은 예상해 두고 있었다.
강한 자에게 끌리는 건 무인의 본능일 터.
과거 시련의 탑에서도 암황은 이런 식으로 제안을 해 온 적이 있었다.
‘시기의 차이로 인해 스킬들을 전부 볼 수 없는 건 아쉽긴 하네.’
그래도 ‘탐식의 눈’을 통해 암황에 대한 정보가 대략적이나마 파악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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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암황(暗皇)
성별: 남
나이: 72세
레벨: ???
힘 ??? 민첩 ??? 체력 ??? 마력 15 내공 ???
보유한 스탯 포인트: 0
직업: ???
고유 능력: 흑천마황공(하위 등급의 고유 능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간파에 성공했습니다.)
스킬: ‘탐식의 눈’의 레벨이 너무 낮아 대상의 능력을 간파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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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 조건: 당신은 평소 암황의 수제자를 자청했습니다. 그것을 거짓이 아닌 현실로 만든다면, 흑천마황공의 온전한 12식을 당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단, 최소 수련 기간이 1달은 되어야 합니다.)]본래 암황의 독문무공을 완벽하게 익히려면 수십 년이란 세월이 필요하다.
하지만, 복사 조건을 따른다면 그 기간을 한 달로 단축시킬 수 있었다.
문제는 이 기회를 어떻게 살리느냐는 건데…….
잠시 고민하던 진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암황께서 제 제안들을 들어 주신다면 한 번 고려해 보겠습니다.”
능력 복사부터, 이번 전쟁에 있어 암황이란 카드를 활용하느냐는 것까지.
그 모든 걸 결정지을 수 있는 담판이 시작되었다.
221. 스승님을 뵙습니다.
“제안이라고?”
암황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예. 어차피 암황께서도 제가 자진해서 함께하는 걸 원하시지 않습니까?”
강압에 의한 복종과.
자신의 의지로 따라가겠다고 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재밌구나. 내 앞에서 제안을 하려 하다니, 내가 누구인지는 알고 하는 말이냐?”
쿠쿠쿠쿠쿠!
암황의 내공을 해방하자, 숲 전체가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천지를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이 전신을 옭죄어 왔다.
하지만.
진혁은 그 속에서도 얼굴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제가 제안 드리고 싶은 건 합리적인 등가교환입니다. 제 편의를 봐주신다면, 저도 암황님께서 모르시는 정보를 넘겨드리죠. 또한 제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 한 가지도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어이가 없군. 네가 아는 것 중에 우리가 모르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암황이 허탈한 실소를 머금었다.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실망한 듯한 웃음이었다.
‘그래도 먹히는 패와 사용해서는 안 되는 패 정도는 구분할 수 있는 놈이라 여겼거늘…….’
아무렴, 무림 최고의 정보 집단이라 불리는 천마신교의 정보부가 일개 플레이어보다 정보력이 뒤지겠는가?
허세를 부리는 건 좋으나, 그거에도 어디까지나 선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하물며,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제공해 주겠다니.
이건 자신감이 아니라 만용에 가까운 발언이었다.
‘그 두 개를 혼동하는 수준이라는 건……. 안타깝지만, 내가 기대하는 것에는 미치지 못하는 인재로군.’
문과 무를 모두 갖춘 인물.
자신의 모든 걸 물려줄 만한 기재를 찾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암황은 쓰디쓴 입맛을 다신 채 진혁에 관한 관심을 접어두려고 했다.
그런데.
“제국이 보유한 마도 병기 ‘타이탄’.”
진혁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 구동의 핵심이 되는 ‘마력 재생석’을 제거할 수 방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실망감을 단숨에 날려 버리기에 충분했다.
아니, 단순히 날려 버린 수준이 아니다.
경악으로 일그러진 두 사람의 표정이 꽤나 볼 만하게 변했다.
“타이탄이 마력 재생석으로 움직인다는 건…… 천마신교 내에서도 극히 일부만 알고 있는데, 그걸 대체 어떻게…….”
암황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뭐 하는 놈이냐. 네놈은…….”
옆에 있던 백사의 입 또한 믿을 수 없다는 듯 쩍하고 벌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제국이 보유한 ‘타이탄’.
각종 동물의 형상을 한 골렘의 일종으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대전쟁용 마도 병기다.
타이탄은 워낙에 단단한 갑주와 무지막지한 돌파력으로 상대의 방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전투의 효율을 족히 5배가량 끌어올릴 수 있었는데.
특히 소드마스터에 해당하는 기사들이 말의 형상을 한 타이탄에 올라 탈 경우, 무림이 보유한 절정급 고수들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실제로 바로 몇 시진 전.
제국이 보유한 타이탄 기사단이 로드메리우스 평원에서 점창파의 정예 3개 분파를 괴멸시켜 버렸으니까.
그런 타이탄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천금과도 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적어도 천마신교가 무림 놈들과 똑같은 꼴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반응을 보니,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로 알겠습니다.”
“……제안이라는 것부터 우선 들어보지.”
“먼저, 제가 천마신교에 가는 건 입교하는 것이 아닌, 어디까지나 계약에 의한 일시적인 관계라는 걸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계약이 끝나면 언제든지 나가 버리겠다는 말인가?”
“제가 원한다면요.”
“그게 무슨……! 지존! 저런 터무니없는 요구를 들어주실 생각이십니까? 게다가 네놈도 지금 제 정신으로 하는 말이냐! 우리가 동네 왈패들도 아니고 한 번 들어온 교인은 오직 죽었을 때만 본교에서 나갈 수 있다!”
백사가 길길이 날뛰었지만, 암황은 묵묵히 생각을 가다듬었다.
“다른 요구도 있나?”
“지존!”
“두 번째는 바로 백사와 음영대를 제 수족처럼 부르게 해 주십시오. 기한은 삼일이면 족합니다.”
“어째서 저런 건방진 놈의 말을…… 으잉?”
목에 핏대를 세우던 백사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단, 백사와 음영대는 암황님께 하듯이 저를 따라야 합니다.”
“자, 잠깐만! 그게 무슨 소리냐?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지. 하하. 지존, 그렇지 않습니까?”
“허락한다.”
두 가지 조건을 들어줘도. 타이탄을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을 얻을 수 있다면 이득이리라.
암황은 그렇게 저울의 무게를 판단했다.
“그, 그럴 수가…….”
“3일간 아주 자알 부탁드립니다. 우선 백사님은 눈에 힘부터 좀 빼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제가 기분이 아주 살짝 나빠지려고 하거든요.”
진혁이 생긋 웃었다.
잘하자는 말은 진심이다.
삼일뿐이긴 하지만…….
아마, 암황의 옆에 있던 게 천국으로 느껴지게 될 거다.
“또 다른 조건이 있나?”
“마지막으로 한 가지. 월영을 돌려받고 싶습니다.”
“……!”
진혁의 말에, 이번엔 잠자코 있던 월영이 움찔했다.
“허락하마. 저 녀석도 너에게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
“저는……!”
“되었다. 나도 그리 눈치 없는 건 아니다.”
암황이 단칼에 상황을 종결지었다.
“이번엔 내가 한 가지 묻지. 이 제안을 내가 받아들일 거라고 확신한 이유가 뭐였나?”
타이탄이 굉장히 유용한 카드이긴 하지만, 세 가지 조건을 전부 들어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괘씸하다고 생각된다면, 언제든지 저울을 엎어버릴 수 있다는 뜻이다.
“그건, 암황님께선 반드시 저를 제자로 맞이하고 싶어 하실 테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우우우웅!
진혁의 손을 타고 검붉은 기가 일렁였다.
흑천마황공.
암황이 창시한 독문무공이며, 동시에 수많은 천마신교의 고수들 중 그 누구도 익히지 못한 무공이…….
……탑 밖에 있는 플레이어의 손을 통해 발현되기 시작했다.
***
한계를 돌파하며 끝없이 걸어온 수라의 길.
붉게 물든 손은 아무리 씻어도 혈향이 빠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그것이 강해지기 위한 길이었고.
그것이 본교를 위한 업이었으니까.
무림은 그런 그를 가리켜 암황이라 부르며, 경외와 두려움을 표했다.
하지만, 영원할 것만 같았던 행보는 어느 순간 멈췄다.
스스로에 대한 한계를 느껴버린 것이다.
흑천마황공의 12식을 모두 극성까지 익힌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영역.
마(魔)의 13식.
그 벽을 돌파하는 데 필요한 게 단순히 재능과 노력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 때. 암황은 절망에 빠졌다.
‘시간…… 그래. 나에겐 남아 있는 시간이 없다.’
너무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올라왔기에, 환골탈태를 했음에도 수명이라는 벽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자신이 할 수 없다면…….
그걸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제자를 찾겠노라고.
그렇게. 너무나 많은 실망과 절망 속에 적합한 인재를 찾아 헤매던 세월.
자신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사람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며 포기하려고 했었는데.
마침내.
……찾았다.
“하하…… 크하하하하하!”
암황이 미친 듯한 광소를 터뜨렸다.
“그래. 탑의 내부가 아닌 외부에 있었으니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던 거였구나. 그런 거였어.”
“이렇게 좋아하실 줄 알았으면, 진즉에 좀 찾아올 걸 그랬나 봅니다.”
“허어. 정말로 그러지 그랬느냐. 기다리다가 목이 빠질 뻔했느리라.”
“저런. 불초 제자. 하마터면 처음 모시는 스승님을 팔척 귀신으로 만들어버릴 뻔했습니다.”
“무어라? 지금 그게 스승에게 할 말이냐?”
“못 할 게 뭐가 있습니까. 이것도 다 제자를 잘못 맞이한 스승님 업이지요. 그러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십쇼.”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익숙하게 대화가 이어졌다.
옆에 있던 백사는 이런 암황의 모습을 생전 처음 봤기에,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다.
천마신교의 두 호법 중 하나인 암황이 이토록 허술한 모습을 보일 거라고 그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아마 이 일을 나머지 대주들에게 말한다면, 술을 얼마나 많이 마셨느냐며 비아냥거릴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위화감을 느낀 건 암황도 마찬가지였다.
“이상하구나. 분명, 본좌는 오늘 너를 처음 보는데, 어째서인지 오랜 세월을 함께한 것처럼 네가 편안하게 느껴지는 건지 모르겠다.”
그렇겠지.
함께했던 플레이어들이 모두 시련의 탑을 떠나 홀로 남겨진 터라.
대화를 할 수 있는 상대라곤 탑 내부에 있던 거주자들이 전부였다.
함께 울고 웃으며 추억을 쌓아 왔기 때문에, 진혁은 알고 있었다.
암황이란 인물에 대해서.
물론, 그걸 사실대로 말할 순 없으니, 여기선 적당히 얼버무려야 한다.
“같은 무공에 뿌리를 둔 탓이겠죠. 스승님에 비하면 한참이나 부족한 무공입니다만…….”
“흐음. 흑천마황공을 어디서 익혔는지까지는 지금 당장은 묻지 않겠다. 너에게도 너만의 사정이 있을 테니까.”
중요한 건 뿌리가 아닌, 재능.
오히려 독자적으로 독문무공의 묘리를 깨달은 거라면 그 편이 더욱 좋다.
진혁이 그만큼은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기재라는 뜻이었으니까.
암황이 사소한 부분은 유하게 넘어갔다.
“정식으로 사제 관계를 맺는 건 지금 당장은 무리겠구나. 이토록 소란을 피웠으니 제국에서도 곧바로 눈치를 채고 조사단을 파견하겠지.”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본교로 찾아 오거라. 약조한 대로 음영대를 3일간 허락하겠다.”
암황이 진혁에게 독특하게 생긴 풀로 만든 피리를 건넸다.
“이걸 불면 일각(15분)이내에 음영대가 나타날 거다. 그리고 백사.”
“예. 지존.”
“이 녀석은 이제부터 내 수제자다. 앞으로는 그에 맞는 예를 갖추거라. 만약, 이후에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간 본좌가 직접 그에 대한 책임을 묻도록 하겠다.”
“조, 존명.”
백사가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본능적으로 깨닫고 만 것이다.
이 3일이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보다 더 고통스러울 거라는 것을.
***
암황과의 일을 마무리한 진혁은 곧장 숲의 반대편으로 향했다.
“뭐야? 왜 이렇게 늦었어?”
“마스터. 괜찮은 겁니까? 달그락.”
티본의 뼈로 만든 감옥 안에 갇혀 있는 음영대원들과 그 감옥 위에 걸터앉아 갓 끓여낸 홍차를 홀짝이고 있는 엘리스의 모습이 보였다.
역시나.
이렇게 될 거라곤 예상했지만, 너무나 일방적인 결과긴 하다.
마력의 제한이 걸려 있어도 이 정도면…….
완전히 본신으로 현현했을 때는 얼마나 강하려나?
언젠간 그 진가를 한 번 보고 싶다는 위험한 호기심이 들었다.
“여러 일들이 좀 있었어. 자세한 건 가는 길에 차차 말해 줄게.”
“음? 근데, 뒤에 있는 애는 뭐야? 저 녀석. 새빨간 거짓말만 해 대는 너한테 질려서 손절해버린 거 아니었어?”
엘리스가 그림자 속에 숨어 있던 월영을 발견했다.
“넌…… 뭔 말을 그렇게 하냐. 새빨간 거짓말에 질렸다니.”
“사실이잖아.”
“……크흠! 그건 그렇긴 한데.”
거짓말을 한 것도 사실이고. 그것에 배신감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미안한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러나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월영이 삐진 걸 풀어 주는 게 아니다.
거인들의 성체를 공략하는 게 급선무지.
[거인들의 성체.]중요한 거점이지만, 제국과 무림 양측에서 이 거점을 쉽사리 손에 넣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성체 전역에 펼쳐져 있는 결계가 굉장히 골치 아픈 종류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어지간한 고인물도 혀를 내두르는 난이도긴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