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37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37화 –
자신을 성녀라고 불러 달라고 한 여자는 특이한 외양을 지니고 있었다.
엉덩이까지 늘어지는 머리카락은 순백색이었고, 눈동자 또한 하얬다. 동공마저도 하얀색이라, 그녀가 어딜 보는지 알기 어려울 정도였다.
‘신기하게 생겼네.’
워낙 특이한 외양이라 자꾸만 눈이 갔지만, 계속 쳐다보는 것도 실례인 것 같아서 일단 그녀가 안내한 대로 그녀의 맞은편에 마련된 푹신한 의자에 앉았다.
미리 준비해 둔 모양인지, 의자 옆에는 악시온을 눕힐 수 있는 요람도 있었다.
음. 그러니까, 일단 인사부터 해야 하나?
“어, 안녕하세요.”
내 어색한 인사에 성녀가 싱긋 웃었다.
“네. 반가워요. 갑자기 친밀하게 불러서 놀랐죠? 영애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어서인지 저도 모르게 가깝다고 느껴 버렸나 봐요.”
음.
나에 관한 이야기라.
이 몸에 대한 악평을 떠올린 나는 살짝 어색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하하. 거참 즐거운 소식 전해 들으셨겠군.
“아, 그러셨구나.”
“네에. 엘스턴이 말 안 하던가요?”
“네?”
여기서 엘스턴 이름이 갑자기 왜 나와?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고개를 갸웃하자, 성녀가 살포시 미소 지었다.
“이런, 이런. 엘스턴이 제 얘기를 하나도 안 했나 보네요.”
“어……. 엘스턴과 아는 사이세요?”
성녀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밖을 나갈 수 없는 제게 세상 소식을 전해 주는 고마운 친우죠. 시아스터 공작가의 꼬마 영애님을 가르치게 되었다는 소식도 알고 있어요.”
그 덜떨어진 마탑주 녀석과…… 이 신비로운 성녀님이 친구?
조금, 아니 꽤 믿기지 않는 사실이지만.
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네에. 친구셨구나.”
“엘스턴이 누군가에게 쩔쩔매는 모습은 처음 봐서 만나 뵙기를 고대하고 있었어요. 이렇게 뵙게 되니까 기쁘네요.”
“하하…….”
엘스턴이 나에 대해 무슨 말을 꿍얼댄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내용이 썩 좋지 않을 거라는 건 금방 유추됐다.
흐음. 그럼 엘스턴이 가서 마룡의 드래곤 하트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한 건, 성녀에게 말하지 말라고 한 것이겠구나.
친우이긴 하지만 모든 걸 공유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오늘 같이 온 이 아이는 누구인가요? 에반로아르 영애께서는 결혼하신 적이 없으니, 아들은 아니실 테고…….”
“아.”
악시온을 입양한 건 아직까진 공식적으로 알려져선 안 되었으므로,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에반로아르 자작가의 핏줄을 이은 아이예요.”
“어머, 그렇군요.”
일부러 내 아이가 맞다, 아니다 명확하게 이야기하지 않은 채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제법 눈치가 빠른지 성녀는 내 말뜻을 빠르게 알아챘다.
“에반로아르 자작가 분들은 금발에 푸른 눈을 지니고 계시다고 들었어요. 그럼 이 아이도 어여쁜 색을 지니고 있겠네요.”
응?
나와 악시온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건…….
“아. 제가 눈이 보이질 않아서요. 불편하게 생각하지는 마세요.”
성녀가 소탈하게 웃으며 손을 살짝 저었다.
그러고 보니 성녀는 미묘하게 몸의 방향이 틀어져 있었다. 마치 내가 그 앞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눈 전체가 하얀색처럼 보여서 몰랐는데.
‘동공까지 하얀 건, 그래서 그런 건가.’
혹시 내 행동 중에 무례하게 느꼈을 만한 게 있었을까, 싶어서 재빨리 되돌려 보는데.
성녀가 대수롭지 않게 입술을 뗐다.
“이렇게 오랫동안 시간을 뺏어서는 안 되니, 슬슬 시작해 볼까요?”
“엇, 네.”
성녀가 살포시 미소 지은 채 손을 내밀었다.
“실례지만, 이쪽으로 이마를 대 주시겠어요? 지금부터 몸에 남은 마기를 제거하려고 해요.”
성녀가 시키는 대로 천천히 이마를 그녀의 손에 붙이듯 댔다. 그녀의 손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혹시 아이가 놀랄 수도 있으니까, 아이의 눈은 가려 주세요.”
성녀가 시키는 대로 순순히 따랐다.
제 발을 쥐고 장난을 치고 있던 악시온은 갑자기 눈앞이 가려지자 고개를 도리도리했다.
“우아?”
“쉬이, 잠시만 기다리자.”
내가 악시온의 눈을 가리고 나자, 성녀는 마치 무언가를 말하듯이 입술을 벌렸다.
“?”
하지만 그 소리는 내겐 들리지 않았다.
분명, 무언가를 말한 것 같았는데 말이다.
그와 동시에 아주 밝은 빛이 그녀의 손에서부터 퍼져 나갔다. 그 빛은 방 안을 잠식하는 것도 모자라, 내 눈이 이대로 멀어 버리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밝았다.
“자, 다 됐어요.”
성녀의 말이 끝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빛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다자르는 마기가 묻어 있을 거라고 했는데. 전혀 묻은 게 없는걸요? 혹시나 해서 오셨나 보네요.”
“그, 그런가요?”
마물이 눈앞에서 펑펑 터져 나가는 걸 하루 종일 봤는데. 몸에 묻은 게 없다고?
‘이것도 이 몸의 특이 체질 때문인가?’
괜스레 내 몸을 내려다보는데. 곧이어 성녀가 다시 손을 내밀었다.
“이제는 아이의 이마를 대 주시겠어요?”
나는 조금 긴장한 얼굴로 악시온을 안아 들었다. 혹시 드래곤 하트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겠지? 드래곤 하트를 성녀가 눈치챈다거나.
이런 나의 걱정과는 달리, 성녀의 작업(?)은 별일 없이 끝이 났다.
“아무래도 아이 때문에 오셨던 모양이군요. 아이에게는 마기가 조금 묻어 있긴 하네요. 다행히 다 끝났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악시온에게 마기가 묻어 있었다니. 그리고 그걸 제거했다니, 정말 다행이었다.
악시온을 데려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성녀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힐끗 살핀 악시온의 얼굴은 평화로웠다.
마룡의 드래곤 하트를 들키거나 이상한 부작용이 나타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마음이 놓였다.
“이렇게 보내야 한다니, 아쉽네요. 다음에는 엘스턴과 함께 오실 수 있을까요? 그땐 차라도 한잔 대접해 드리고 싶어요.”
성녀는 퍽 아쉽다는 얼굴이었다.
두 손을 모은 채로 절절한 표정을 짓는 그녀를 보니, 마냥 싫다고 할 수는 없었다.
“시간 날 때 한번 올게요.”
이 몸은 이 신전에 알레르기가 있는 듯했지 막상 와 보니 별로 무서울 것도 없었다.
‘신전은 무서운 곳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가 보네.’
내 말에 성녀가 기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해요. 에반로아르 영애. 아,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이름으로 불러도 될까요?”
이름?
별일이 없었다는 안심에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멈칫했다.
“조, 조금 실례일까요?”
성녀가 어깨를 움츠리며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어이, 어이. 그렇게 소심한 모습을 보이면 이 언니의 마음이 약해진다고.
“괜찮아요. 이름으로 부르세요.”
“정말요? 고마워요, 실리아!”
성녀가 방긋 웃음 지었다.
그렇게 웃는 걸 보니, 성녀가 아직 어리다는 느낌이 그제야 들었다. 특이한 외양과 신비로운 분위기 때문에 몰랐지만, 그녀는 아직 소녀였다.
“그럼 다음에 꼭 오세요, 꼭!”
“네. 알았어요.”
성녀와 엄지 도장까지 꾹 찍고 약속을 한 뒤, 방을 나왔다.
“휴우. 그럼 이대로 잠시 밖에서 기다릴까?”
다자르는 신전에서 일을 더 본 뒤에 온다고 했으니까.
미리 신전 밖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참이었다.
나는 악시온을 안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음을 뗐다.
* * *
탁,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 전까지 기쁜 얼굴을 하고 있던 성녀의 얼굴이 점차 무표정하게 변했다.
“흐응. 다자르가 제 거처에 들였다기에 어떤 사람인가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별것 없는걸.”
실리아가 소녀라고 생각했던 순수한 성녀는 온데간데없었다.
한순간에 산전수전 다 겪은 여인처럼 무료한 얼굴이 된 성녀는 귀찮은 듯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냥 평범하잖아.”
성녀가 툭 턱을 괴고 다리를 흔들었다.
“엘스턴이 말한 대로, 확실히 저 아기는 다자르의 핏줄은 아니군. 혹시나 싶어 일부러 엘스턴이 아기도 이쪽으로 보내도록 했는데.”
사실 성녀는 악시온에게 축복을 하는 동시에 다른 마법도 걸었다. 다자르의 핏줄인지, 즉, 초월자인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다자르가 아이를 아끼는 모양인지 보호용의 결계를 이것저것 걸어 두긴 한 모양이지만. 초월자의 핏줄은 아니었다.
성녀가 손을 휘젓자, 저 멀리 책상에 놓여 있던 종이와 펜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과거 엘스턴이 앞이 보이지 않는 그녀를 위해 만들어 준 마법 물품이었다.
펜이 그녀의 뜻대로 쓱쓱 글자를 적기 시작했다.
엘스턴에게 보내는 서신이었다.
“그래도 뭔가 찝찝하단 말이야. 아무리 식량 개발을 위함이라고 해도, 그 다자르가 사람을 둘이나 제 옆에 들이다니. 거기다 보호를 위한 결계도 이상하고.”
새로운 초월자의 탄생은 이미 계시를 받았기에 바닐라가 다자르의 딸로 입양된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지만.
그와 비슷한 시기에 연고도 없던 여인과 아이를 제집에 들인 건 역시 이상했다.
성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설마 정분이라도 난 건 아닐 테고.”
그 인간을 혐오하는 다자르가? 그럴 리 없지.
성녀가 고개를 휙휙 내저으며 손을 튕겼다. 저절로 글을 적어 내려가던 펜이 툭, 힘을 잃고 서신이 저절로 접혔다.
이대로 두면 사제가 알아서 엘스턴에게 보낼 것이었다.
“뭔가 있어. 뭔가가.”
성녀가 조그맣게 읊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