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40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40화 –
다자르는 무료한 얼굴로 하얀 복도를 걸었다.
뚜벅뚜벅, 구둣발이 대리석 바닥을 밟는 소리가 텅 빈 신전 안을 울렸다.
‘여긴 언제 와도 참 별로란 말이지.’
오로지 신을 모시기 위해 마련된 장소.
이름도 모르는 신을 왜 모시는 건지, 전생을 통틀어 다자르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전생에서 마주한 성녀와 이번 생에서 마주한 성녀는 저처럼 생을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로 비슷했다.
한마디로, 똑같이 인형 같았다.
‘의지라고는 없는 신의 인형.’
퍽 재미없는 삶을 산다고 생각하며 다자르는 제 앞에 나타난 문을 열어젖혔다.
그는 실리아가 성녀와의 접견을 마칠 때까지 대기실에서 대기하다 입실했다.
그의 의지는 아니었다.
‘같이 받아도 되는데, 일부러 떨어뜨려 두었군.’
문을 열자 온통 하얀 여자가 방긋 웃는 게 보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순진하기 짝이 없는 소녀였지만, 저 안에 들어 있는 건 노년의 여인이었다.
다자르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입니다. 성녀.”
성녀가 빙긋 웃었다.
“그러네요, 다자르. 1년 만인가요, 우리?”
“예.”
다자르는 단답 하며 익숙한 몸짓으로 성녀의 앞에 앉았다.
조금 전 실리아가 앉아 있던 의자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문득 신전이 싫다며 기겁하던 푸른 눈이 떠올라 다자르가 피식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즐거운 일이라도 있나 봐요.”
성녀가 싱긋 웃으며 유려하게 말하자, 다자르는 한쪽 다리를 꼬고 등을 꼿꼿하게 세우며 마주 웃었다.
실리아가 대귀족의 대귀족다운 몸짓이라고 투덜댔던 그 모습이었다.
실리아와 함께 있을 때 보이던 한량 같은 모습은 완벽히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예. 요새 좀 즐겁습니다.”
“어머, 그래요? 바닐라 덕분일까요? 그것참 다행이네요. 당신이 이번 생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걱정이 많았는데.”
싱긋 미소 짓는 성녀는 퍽 자애로워 보였다. 다자르가 그녀의 미소에 화답하듯 마주 웃었다.
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제3의 인물이 그들을 보았다면, 아주 훈훈한 모습이라고 생각할 만한 장면이었지만.
“이젠 슬슬 걱정을 놓으실 때도 된 것 같은데, 역시 연세가 있으셔서 그런지 이성적인 판단이 잘 안 되나 보군요.”
“그럴 리가요. 전 다자르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나 지금이나 아주 이성적이랍니다. 그런 쓸데없는 생각보다는 전생의 실패에 대해 반성을 하는 게 더 유익할 것 같은데요?”
실제 방의 분위기는 얼음장처럼 차갑고 싸늘했다.
싱긋.
씨익.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며 깊은 웃음을 흘렸다.
“반성은 이번 평생 진행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죠.”
“어머, 그래요? 전생의 기억이 없는 제가 뭘 알 수가 있어야죠. 이해해 주세요.”
성녀가 미안하다는 듯 손을 살짝 저으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그러고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꺾으면서 말을 이었다.
“아아. 아쉽네요. 이번 생에 당신의 혈육으로 태어났던…… 당신의 옛 동료들이었다면, 당신을 보듬어 줄 수 있었으려나요?”
성녀가 무해한 웃음을 흘렸다.
반면 그 말을 들은 다자르의 얼굴에서는 점차 미소가 사라져 갔다.
“환생의 부작용으로 그들이 정신을 놓아서, 였죠? 당신이 그들을 제거한 이유.”
“……굳이 옛날 일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다 지난 일이죠.”
다자르가 서늘한 눈을 하자 성녀의 웃음은 더욱 짙어졌다.
“맞아요. 다 옛날 일이죠. 그럼, 지금 이야기를 해 볼까요? 실리아 에반로아르 영애를 저택에 들였다고요? 조금 놀랐어요. 당신 같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저택에 들이다니.”
“대륙을 구할 위대한 임무를 신께서 주셨으니, 아무리 싫어도 따라야죠. 식량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다자르가 어깨를 으쓱했다.
실리아를 신전으로 데려온 건 성녀에게 그녀가 무해한 인물임을 보여 주기 위해서도 있었다.
성녀는 제가 전생의 실패로 마기에 미쳐 정신을 놓아 버린 건 아닌지 항상 의심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던 와중 난데없이 제 옆에 나타난 괴상한 영애라니. 경계할 만했다.
‘그 녀석, 실제로 어릴 때는 마기에 씐 건 아니냐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니까.’
다자르의 반지르르한 대답에 성녀가 미소를 천천히 거둬들였다.
그녀의 하얀 눈이 작게 좁혀졌다.
“그래요, 그렇군요.”
작게 중얼대는 목소리에는 여전히 의심이 가득했다.
다자르는 언제나처럼 대수롭지 않게 성녀의 의심 어린 눈빛을 무시했다.
‘그 녀석, 끝나고 수도 골목거리에 간다고 했지?’
성녀의 의식이 시작되었다.
하얀빛이 방 안을 가득 메우는 동안, 다자르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
그녀를 떠올리면 가짜가 아닌 진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특히 제 짓궂은 장난에 바보 같은 표정을 지을 때가 제일 우스웠다.
이곳을 나가면 더 괴롭혀 줘야지. 다자르는 속으로 씩 웃었다.
* * *
“으어어.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
“이거 뭐야? 거미줄같이 온몸을 옭아매고 있잖아!”
모로카닐이 만들어 낸 꽃잎 형태의 신력은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내게 달려들던 이들을 말 그대로 묶어 버렸다.
진득한 밧줄에 갇힌 사람들처럼, 그들은 자리에 눌어붙어서 아우성쳤다.
“헉, 모, 모로카닐 님?”
나와 모로카닐이 서로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는 사이, 아까 느끼한 문장만 뱉어 내던 경비대장인가 뭔가 하는 남자가 모로카닐을 보며 아는 척했다.
“역시, 모로카닐 님이시군요! 이, 이것 좀 풀어 주십시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아.”
그가 우는 소리를 내며 손을 휘저었다.
모로카닐이 경비대장을 한 번, 나를 한 번 보더니 살포시 미소 지었다.
그러며 내게 물었다.
“에반로아르 영애. 다치신 곳은 없으신가요? 혹시 많이 놀라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들을 수 있을까요?”
경비대장이 아닌 내게 직접 상황 설명을 듣겠다는 말이었다. 눈에는 상냥함이 금방이라도 뚝뚝 떨어질 것처럼 가득했다. 이 남자는 대체 어디까지 달콤할 셈이지?
다자르의 막 나가는 대접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조금 떨떠름한 얼굴로 뺨을 긁적이며 답했다.
“저 변태 아저씨가 이상한 수작을 부리며 제 어깨를 만졌어요.”
“벼, 벼, 변태라뇨! 그대, 오해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어깨에 손을 올린 건……!”
“경비대장님.”
“히익.”
경비대장이 황급히 변명을 뱉자, 모로카닐이 내게서 몸을 돌려 그를 마주 보았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경비대장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공포에 질린 게 명백해 보였지만, 정말 억울했는지 바르작바르작 몸을 떨면서 할 말을 모두 했다.
“억울합니다! 저는 그저 요새 이 골목길에 이상한 놈들이 다닌다는 소식을 듣고…… 이 영애께서 타깃이 된 것 같아 도와드리려고…….”
“타깃이요?”
대충 듣자 하니 내가 범죄의 타깃이 되어 나를 도우려 했다는 말인 것 같았다.
“그걸 어떻게 아셨는데요?”
내가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 묻자, 경비대장이 핼쑥한 얼굴로 재빨리 답했다.
“거기, 어깨! 어깨를 보십시오!”
“어깨……?”
‘어라.’
경비대장의 말대로 힐끗 내 어깨를 보자 내 어깨 뒤편에는 이상한 문양의 표식이 묻어 있었다. 마치 도장을 찍은 것처럼.
‘언제 이런 게 묻었지?’
내가 눈을 천천히 깜빡거리며 생각에 잠긴 동안, 내 어깨를 함께 확인한 모로카닐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이건…….”
“아는 표식이에요?”
“…….”
하지만 모로카닐은 대답해 줄 수 없다는 듯 미안한 표정으로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알고 있는 표식이긴 합니다.”
그러며 혼잣말처럼 중얼댔다.
“폐하께 찾아온 이들과 같은 놈들인가.”
으음. 폐하라면 스칼렛을 말하는 거고. 찾아온 이들이라면, 우연히 나와 함께 마주한 그 암살자들?
머릿속을 팽팽 돌리고 있는데, 경비대장이 버럭 외쳤다.
“그래요. 바로 그 표식입니다! 요새 이 골목길에 갑자기 나타나서는, 이상한 포교 활동을 하는 놈들이요!”
“포교?”
“네. 곧 세계가 멸망한다면서, 표식을 남긴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세뇌시켜 제 종교로 끌어들이는 놈들입니다.”
경비대장은 제법 그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모로카닐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런 자들이 있었군요. 그런데, 왜 저희 초월자들이 모르고 있었을까요? 제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범죄는 초월자들에게 전해져야 할 텐데요.”
“……그, 그건.”
경비대장이 찔끔한 얼굴로 눈동자를 굴렸다.
“제가 직접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흠흠. 초월자님들께서는 공사다망하시니까요…….”
실제로는 제 성과를 높이기 위해서라는 것처럼 들렸지만. 모로카닐은 더는 그를 책하지 않은 채, 신력을 모두 풀어 버렸다.
“그럼 관련한 자료를 모두 취합해 보고 올리도록 하세요. 되도록 빨리 부탁드립니다.”
“부, 부탁이라뇨. 오늘 내로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
“아니요. 급한 마음에 일을 그르칠 수 있으니 차근히 하십시오.”
“감사합니다! 모로카닐 님!”
수도의 경비대장이라면 나름 높은 직책일 텐데. 역시 초월자들에게는 안 되는구먼.
경비대장이 꽁지 빠져라 사라지는 걸 보며 나는 어색한 얼굴을 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오해한 게 맞았는데. 사과도 못 했네.’
하지만 그런 콧수염에 느끼한 문장들이라니. 그건 참을 수 없었다고.
“괜찮으십니까?”
“어…… 네. 괜찮아요.”
모로카닐이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고 내게 다가왔다.
“표식을 남겼다고 하는데. 혹시 모르니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시죠. 제가 살펴보겠습니다.”
“괜찮아요. 이대로 돌아가면…….”
그때 이제껏 얌전히 안겨 있던 악시온이 우우, 하는 소리를 뱉더니 별안간 울음을 터트렸다.
“우아아앙!”
“악시온?”
“우아아아아앙!”
살벌했던 분위기에 놀라 움츠려 있다, 이제야 울음을 터트린 듯했다.
나는 황급히 모로카닐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안전한 곳에서 우선 악시온을 달래야 할 것 같았다.
“그래요. 같이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