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7th century, he became the king of Taiwan RAW novel - Chapter 114
114화
왕의 총애를 받는다던 이만춘을 제외하면 선내 유생들의 분위기는 굉장히 어두웠다.
하지만 그들과 다른 신분을 가진 사람들의 분위기는 이와 대조적이었다.
특히 조선과는 다르게 대두국에선 신분과 상관없이 입신양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서자와 얼자들은 하나같이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권상길이라는, 경상도에서 거유(이름난 유학자)로 인정받는 이의 서자로 태어난 권혁 역시 희망에 부풀어 있는 상태였다.
“대두국에선 정말 서자에 대한 차별이 없습니까?”
그가 해군 장교에게 그리 묻자, 장교는 피식 웃었다.
“명나라에선 아버지가 사족이면, 어미가 어떤 신분의 여인이든, 그 아들은 사족으로 인정받습니다. 물론 대두국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애초에 아내의 신분을 가지고 자식을 그렇게까지 차별하는 나라는 조선밖에 없을 겁니다.”
“···허어. 서얼의 차별이 없는 나라라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습니다.”
권혁은 태어나길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런데 그는 한 번도 장남 대우를 받은 적이 없었다.
오히려 아우들을 윗사람 대접하며 식사할 때조차 차별을 받아왔다.
어렸을 때 실수로 다섯 살이 된 막내를 ‘너’라고 불렀다가 죽도록 맞은 적도 있었을 정도였다.
더 우스운 것은 그나마 서자라서 이 정도 대우를 받았다는 점이었다.
얼자라면 죽도록 맞은 게 아니라, 진짜 죽었을지도 몰랐다.
가문에 따라 노비보다 못한 대우를 받기도 하는 것이 얼자였으니까.
조선이란 나라는 그런 나라였다.
그리고 그런 조선이란 나라에서 나고 자란 권혁이었기에 서얼의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대두국이란 나라가 요순시대의 이상 사회를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믿으십시오. 신분이 존재하지 않은 대두국에서 서얼의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니까. 그런데 귀하처럼 능력이 있으신 분은 막상 이런 대두국의 신분제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서자의 신분으로 입신양명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저는 대두국이 홍길동이 세웠다는 율도국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신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귀하 같은 유능한 인재가 사족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물론 곧 보훈 연금이란 제도가 만들어진다 하니, 공만 세우면 몇 대 정도는 부를 세습할 수 있을 거 같지만 말입니다.”
장교의 그 같은 말을 듣고 권혁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사실 보훈 연금이니, 부의 세습이니 그런 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이해가 안 가기도 했고, 애초에 자식은커녕 결혼도 하지 않은 몸이었기에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기도 했다.
다만 그는 자신을 유능한 인재라 칭하는 장교의 말에 감동할 뿐이었다.
태어나서 누군가로부터 인정받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저의 무엇을 보고 유능한 인재라 칭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음, 여러 면을 봤습니다. 건장한 체격과 굳은 심지, 그리고 출중한 학식까지. 귀하가 만약 군인이 된다면 입신양명은 전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학식이라. 저는 경서와 사기를 조금 읽었을 뿐, 학문의 폭이 그리 넓지 않습니다.”
“경서와 사기를 읽어 보기만이라도 했다는 것만으로도 이곳에선 엄청난 인재입니다. 물론 장교로 성공하려면 그런 것보단 병법을 익히는 게 더욱 인정받는 일이겠지만 말입니다.”
권혁은 사실 처음 이민을 결정했을 때, 관리로 입신양명을 꿈꿨었다.
조선은 무(武)보다는 문(文)을 중시하는 나라였고, 그런 나라에서 태어난 권혁도 자연히 문관이 되기를 꿈꾸며 살아왔다.
하지만 장보고함에서 지내는 동안 수병과 간부 등 해군 장병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는 무관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조선이 문을 중시한다면, 그가 생각하기에 대두국은 무를 조금 더 중시하는 나라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군관이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우선 훈련소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 장교로 복무하지 않겠냐는 제안이 들어올 겁니다. 물론 요즘은 경쟁이 치열해져서 월등하게 좋은 성적을 받아야만 합니다.”
권혁은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드디어 목표가 분명하게 세워진 것같았다.
자신이 대두국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마침내 결정을 내린 것이다.
***
보통, 왕국의 왕후는 단 한 명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왕의 아내가 여럿이어도 왕후라 불리는 여인은 단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두국은 달랐다.
요한의 아내는 모두 두 명이었는데 두 여인 모두 왕후로 불렸다.
제1 왕후, 정은지.
제2 왕후, 타히라.
두 여인이 바로 대두국의 왕후들이었다.
“후궁이 이번에 큰돈을 들여 값비싼 장신구를 구매하였다네요.”
“태생이 천해서 그런지 화려하기만 하면 전하의 총애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봐요. 호호.”
원래 두 왕후의 관계는 나쁘지 않았었다.
아무리 같은 왕후 신분이어도 제1 왕후인 정은지가 모든 면에서 압도하였다.
먼저 왕후가 되었을 뿐더러, 심지어 요한의 아이를 낳기까지 하였다.
외가가 가진 힘도 정은지 쪽이 월등하였는데, 비록 양녀라고는 하나 정은지는 정지룡의 딸이었다.
이처럼 정은지는 여러 면에서 타히라를 압도하였기에 타히라를 견제해야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었다.
타히라도 자신보다 훨씬 현명하면서 어른스러워 보이는 정은지를 같은 여자로서 존경하였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두 사람의 관계가 나빠지기 시작한 것은 한 가지 소문이 돌면서였다.
그 소문은 다름 아닌, 수도 이전에 관한 소문이었다.
안평은 대만 남부에 있었고 이곳은 번족이라 불리는 대만 원주민보다 본성인이라 불리는 한족의 세력이 월등히 강한 지역이었다.
반면 대만 중부부터는 사실상 번족의 땅이었는데, 소문에 의하면 대두국의 수도는 대중(대만 중부) 또는 대북(대만 북부)로 옮겨진다고 하였다.
두 왕후에게 수도 이전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궁전 내 권력의 추가 단숨에 정은지 쪽에서 타히라 쪽으로 기울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수도 이전 문제로 정은지가 타히라를 의식하기 시작할 때, 타히라가 요한의 아이를 뱄다.
수도 이전 문제에 후계자 문제까지 얽히자 정은지는 타히라를 견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타히라가 남자아이를 낳자 더더욱 강하게 견제하기 시작했고 말이다.
이러니 두 사람의 관계는 나날이 악화할 수밖에 없었다.
유일하게 두 사람의 관계를 중재할 수 있는 요한은 1년 가까이 대만을 떠나 있었기에 누구도 두 사람의 충돌을 막지 못하였다.
“전하께서는 언제쯤 돌아오실 거 같으냐?”
궁녀들이 타히라를 후궁이라 부르며 흉을 보는 걸 가만히 듣고 있던 정은지가 불쑥 그와 같이 물었다.
“아마 나흘 안에 도착할 거 같아요.”
“대나무 부채를 준비해야겠어. 단아하면서 기품 있는 그런 부채를 말이야.”
정은지는 요한에게 잘 보이려는 목적으로 타히라가 그랬던 것처럼 화려한 장신구나 의복을 준비하지 않았다.
‘전하께서는 사치를 그리 좋아하시지 않아. 실용적인 것을 좋아하시지.’
물론 요한이라고 아름다운 것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아내가 미모를 가꾸기 위해 사치 조금 부리는 것을 나무랄 성격은 더더욱 아니었고.
하지만 정은지는 그깟 미모를 조금 가꾸는 것보다 다른 방식으로 요한의 환심을 사고자 하였다.
‘일본과 전쟁을 치르면서 상당히 많은 재물을 사용하셨다지? 빈 창고를 예상했는데, 내가 창고를 가득 채워둔 것을 알게 된다면 전하께서 대단히 기뻐하실 거야.’
요한은 서구적 외모를 가진 그녀를 미녀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정작 정은지는 큰 키에 오뚝한 코, 심지어 발까지 큰 편에 속하는 자신의 외모가 형편없다고만 여겼다.
그래서 정은지는 요한의 총애를 얻기 위해 외모를 이용하는 대신, 자신이 가진 가장 강력한 재주를 살리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녀가 생각한 자신의 가장 강력한 재주는 바로 상재였다.
실제로 그녀는 요한이 대만을 떠나있는 동안 요한 대신 어용 상단을 관리하며 엄청난 재원을 벌어들였다.
요한이 여유 자금이라 부르는 여윳돈으로만 무려 100만 냥이 넘는 은자를 확보한 것이다.
***
“이, 이곳이 대두국의 수도인 안평이란 곳입니까?”
요한은 이만춘의 얼굴을 보고 기분 좋게 웃었다.
그간 지켜본 이만춘은 감정 변화라는 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늘 무표정한 얼굴을 하는 사내였다.
그나마 아내의 곁에 있을 때만 웃는 얼굴을 살짝 보였을 정도.
해적들의 등장으로 장보고함이 함포 사격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는 그때도 전혀 놀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번화한 안평의 모습을 보자 그는 처음으로 입을 떡 벌리며 놀란 얼굴을 감추지 못하였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감정이 무딘 이만춘의 표정이 이러하다면 다른 이들의 표정은 말할 것도 없었다.
“배가 도대체 몇 척이란 말인가? 적어도 천 척은 되어 보이는군!”
“도시의 크기가 한양보다 커 보입니다.”
“허어. 믿기 어렵지만, 크기는 몰라도 인구는 확실히 이 안평이란 곳이 더 많아 보이는구려.”
유생들은 안평의 전경을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들이 생각하는 대두국은 신생 국가이며 변방의 소국이었다.
당연히 그런 변방 소국의 수도는 보잘것없을 것으로만 생각했다.
기껏해야 인구 오천 정도에 불과한 소도시로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안평에 정박한 배의 숫자만 천 척이 넘었고, 상주인구는 수만에 달하였다.
도시 크기도 점점 커지고 있어서 미래의 서울이라면 모를까, 조선의 한양보다는 작다고 보기 어려웠다.
콰아아앙!
“에구머니나!”
“이건 포격이 아닌가!”
그러던 중, 항구에서 갑자기 대포를 쏘자 유생이고 서얼이고 너나 할 것 없이 당황해서 몸을 낮추었다.
항구에서 장보고함을 공격했다고 판단한 것인데, 요한은 그런 그들에게 별일 아니라는 듯 말하였다.
“호들갑 떨지 마라. 우리를 환영하기 위해 예포를 쏜 것이니.”
“예, 예포 말씀입니까?”
아마 예포라는 단어조차 처음 들어봤을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애초에 예포는 미래에 생길 문화로 지금은 유럽에서도 없는 문화였다.
현재로선 대두국에만 있는 문화라는 뜻.
“사람들이 부두로 몰리고 있습니다.”
요한은 부두를 바라보았다.
수천 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인파가 운집한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내 얼굴 한 번 보겠다고 저만한 인파가 몰려온 것인가.’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시민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즐거워 보였기에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그 역시 즐거운 마음이었다.
만약 요한이 암군이나 폭군이었다면 시민들이 저런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을 터.
“와아아아아!”
“국왕 전하 천세! 대두국 천세!”
“만세다, 만세!”
마침내 요한이 부두에 발을 디디자 엄청난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우, 우리 임금님이 성군이긴 한가 봐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환영하는 걸 보면.”
“그러게 말입니다.”
조선인들은 이런 모습이 낯설게만 느껴졌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을 할 뿐이었다.
유생들 역시 어리둥절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무언가를 구경하는 걸 원체 좋아하는 조선인들이다 보니, 왕의 행차에도 구경꾼이 상당히 몰리고는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왕의 행차를 보고 이런 반응이 나왔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에초에 왕을 봤으면 엎드려 절을 할 생각부터 하지 저렇게 함성을 지르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성군이라. 전하께서는 이미 성군의 정치를 펼치고 계셨던 모양이군.”
이절은 뒤늦게 깨달았다.
자신이 요한을 가르치려 했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를.
대두국의 백성들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군주 자질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요한은 이미 대두국에서 위대한 군주로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을.
***
요한은 안평 시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가장 먼저 자신의 아내들을 찾았다.
마침 멀리서 타히라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주머니를 어루만져 자신이 유구에서 구매한 진주 목걸이가 잘 있는지 확인하였다.
그러고는 당당한 발걸음으로 타히라를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그는 이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타히라의 목에는 유구에서 산 진주 목걸이가 하찮게 느껴질 정도로 화려한 목걸이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