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7th century, he became the king of Taiwan RAW novel - Chapter 145
145화
요한은 겉으로는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았다.
하지만 내심 그도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샤먼이었다.
경제적으로 천문학적인 가치를 지닌 무역 도시가 바로 샤먼이었던 것.
‘정씨 일족의 가장 큰 자산이기도 하지.’
명나라 시절, 샤먼에서 외국 상인이 바치는 세금이 수백 만 냥에 달하였다.
그리고 정지룡은 바로 그 샤먼을 얻음으로써, 한 국가보다 더 부유해질 수 있었다.
외국과의 교역이 가능한 몇 안 되는 도시였기 때문이다.
“정확한 조건이 어떻게 되지?”
“1만 이상의 병력을 지원해주십시오. 그러면 샤먼은 대두국의 도시가 될 겁니다.”
필리핀을 얻기 전이라면, 아무리 보상이 매력적일지라도 1만 명의 병력을 지원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야, 흑기군의 총병력이 1만 안팎에 불과했었으니까.
하지만 필리핀을 얻은 지금은 흑기군의 규모가 상당히 늘어난 상태였다.
2만을 넘어 3만에 가까워진 상태였던 것.
그렇기에 1만 명의 병력을 파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마카오도 준다면 바로 군사를 보내도록 하지.”
샤먼만으로도 남명을 도울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요한은 남명의 상황을 조금 더 이용하기로 하였다.
샤먼에 이어 마카오까지 얻는다면, 매년 수백만 냥의 고정 수입을 얻을 수 있었다.
당연히 요한으로선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샤먼을 주는 것도, 조야에서 상당한 반발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마카오까지 준다면 더욱 극심한 반발에 시달릴 겁니다.”
“대신 2만 명을 파병하겠다.”
“2만 명이나 말입니까? 흑기군이 그 정도로 규모가 큽니까?”
“이번에 규모를 많이 키웠거든.”
감휘가 요한의 말을 듣고 눈을 부릅떴다.
흑기군을 소수 정예 집단으로 알고 있는 그였다.
그런데 소수 정예인 흑기군이 2만 명을 중국으로 보낼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외신이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거 같습니다.”
요한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샤먼에 이어 마카오까지 주는 건 일개 장수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서둘러 답변을 가져오도록.”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감휘가 물러나자 요한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라가 망하면 아무리 부유한 도시라 한들 아무런 의미가 없지. 그러니 남명에서도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을 거다.’
이 같은 생각을 한 요한은 중국 파병을 사실상 기정사실하고 움직였다.
***
요한은 새로운 여단을 창설하였다.
비사야 제도에서 병력을 모집하여 6여단을 창설한 것인데, 상당한 지원자가 몰려들었다.
요한은 철저한 체력 검사를 통하여 우수한 자원 위주로 병력을 뽑았다.
그는 심지어 본인이 직접 신병 훈련을 총괄하였다.
“필리핀을 지키는데 얼마나 많은 병력이 필요하지?”
“적어도 2개 여단은 필요합니다.”
마투스의 말에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3여단과 6여단을 남기고 가겠다.”
6여단이 조금 불안하기는 했다.
병사들은 신병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3여단은 흑기군 내에서 나름 정예라 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이 두 개의 여단이라면 필리핀을 지키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는 병력을 잘 통제해줄 거라 믿겠다.”
“…노력하겠습니다.”
“그리 자신 있어 보이는 태도는 아니군.”
“아무래도 병력이 너무 많아져서 저 혼자 통제하는 것이 쉽지 않을 거 같습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가 통제해야 할 병력은 거의 1만에 가까웠다.
심지어 그는 참모총장이면서 한편으로는 행정을 책임지는 총독이기도 했다.
필리핀 전체를 통치해야 한다는 뜻이다.
마투스가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그 혼자서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다.
“곧 너를 보좌해줄 인력이 대만에서 넘어올 거다.”
요한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리 말하였다.
필리핀에서 전쟁을 이어나가는 동안, 대만에서는 끊임없이 조선 이민자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대만 같은 경우는 이제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요한은 대만의 행정 인력을 필리핀으로 보내 달라고 지시를 내린 상태였다.
주로 조선인을 보낼 예정이었는데, 이들이 필리핀에 온다면 마투스의 부담도 상당히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
“이곳이 여송이란 곳인가.”
관복을 입은 한 사내가 감탄한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사내의 이름은 김성현.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조선에서 온 사내였다.
“도시가 상당히 큰데?”
“들어보니 인구가 5만에 다다른다는군.”
“허어, 한양보다 조금 적은 정도가 아닌가?”
김성현은 혀를 내둘렀다.
사실 여송이란 지역을 그리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요한이 여송을 점령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그냥 유구 같은 작은 나라를 점령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설마 도시 하나의 크기가 한양에 비견될 정도일 줄이야.
“인종도 다양한데?”
“건물들도 뭔가 범상치 않아 보이네.”
이들은 곧 마닐라의 중심부로 향하였다.
서양의 건축물, 중국 양식의 상점, 아랍과 이슬람 문화의 흔적까지.
조선 사람인 그들에겐 별천지라고 해도 될 정도로 조선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하지만 흥미로운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잠깐뿐이었다.
곧 총독 관저가 보이기 시작하자, 김성현은 침을 꿀꺽 삼켰다.
“주상을 뵐 생각을 하니 긴장이 되는군.”
“자네, 전에는 주상을 장군이라 부르더니?”
“관료가 되었는데 계속 장군이라 부를 수는 없지 않은가.”
김성현은 사실 조선에 있을 때만 해도 요한을 좋게 보지 않았었다.
일개 백성이 왕을 참칭하였으니 좋게 볼 수는 없었던 것.
그러다 대만에 도착하고 야인들의 땅이라 불리는 대만이 개화하는 모습을 보자, 요한을 존경하게 되었다.
물론 관료가 되어 엄청난 양의 은자를 월급으로 받은 것도 아예 영향이 없지는 않았고 말이다.
“도착했네.”
“과연 주상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군.”
그들이 총독 관저에 도착하자, 요한이 양팔을 벌리며 그들을 환영해주었다.
“어서 오게. 자네들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었네.”
그런 요한을 김성현은 감탄한 눈으로 바라봤다.
‘정말 소문처럼 비범하게 생기셨구나.’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던 김성현은 이내 당황하고 말았다.
덥썩.
갑자기 요한이 김성현의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대만에서 몇 달 생활하며 악수라는 문화에 적응하기는 한 상태였다.
하지만 설마 요한이 직접 그에게 악수를 건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였다.
“여, 영광입니다.”
“이름이 뭐지?”
“김성현이라고 합니다.”
“김성현이라. 좋은 이름이군.”
요한은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그의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하네. 이곳에서 자네가 해야 할 일이 아주 많아.”
“어떤 일이든 시켜만 주십시오!”
김성현은 감격한 목소리로 그리 말하였다.
이건 그의 진심이기도 했다.
요한을 본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마치 그는 처음부터 요한을 주군으로 모셨던 것처럼 요한에게 충성심이란 감정을 품게 되었다.
비범한 군주인 요한이 자신에게 이리 대해주는 것만으로도 충성심이 안 생겨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
필리핀의 행정을 책임질 인재들도 도착했으니 더 필리핀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다.
요한은 곧바로 필리핀을 떠날 준비를 하였다.
“어서 오시오. 여가 바로 이 나라의 왕, 김요한이오.”
대만으로 돌아가기 전, 요한은 여러 부족의 추장들을 자신의 총독 관저로 초대하였다.
사실 몇몇은 이미 요한과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루손 섬 북부에 거주하는 부족이라면 웬만해서는 요한과 마주친 적이 있었던 것.
반면 루손 섬 북부가 아닌 다른 곳에 거주하는 부족을 본 것은 요한을 오늘이 처음이었다.
“이렇게 전하를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타갈로그인의 추장이라 들었소.”
요한이 가장 환대한 것은 타갈로그인의 추장이었다.
아무래도 마닐라에 거주하는 부족이고, 인구도 제일 많아서 그만큼 대우를 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습니다.”
“앞으로 나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말하시오.”
“안 그래도 전하에게 한 가지, 도움을 청할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오?”
“제 딸이 공부에 대한 열의가 상당합니다. 하여 대만에 있는 학교에 보내고 싶은데, 전하께서 제 딸을 대만으로 데려가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 말을 듣고 요한은 속으로 픽 웃었다.
눈치 빠른 요한이 추장의 의도를 모를 리 없었다.
공부는 어디까지나 핑계일 뿐, 자신의 딸을 요한에게 소개하는 것이 추장의 목표일 것이다.
“그 정도야 어려운 부탁이라고 할 수 없지.”
“감사합니다. 전하.”
요한으로서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타갈로그인은 필리핀 내에서 유력한 부족이었고 그런 부족과 혈연관계로 이어지는 것은 필리핀을 통치하는 것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다줄 테니까.
‘그러고 보면 슬슬 유구 왕실의 여인과도 혼인을 해야 하겠어.’
유구의 왕, 쇼켄이 병환에 시달린 것도 벌써 2년째였다.
최근 들려오는 소식은 언제 붕어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소식뿐이었다.
요한은 오래전부터 유구 왕위를 노리고 있었던 만큼, 이번 기회를 놓치기 어려웠다.
필요하다면 유구 왕실의 여인과 혼인해서라도 유구 왕위를 얻고자 할 것이다.
그는 세력을 더 키울 수만 있다면 혼사를 이용하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
그 시각.
유구의 대신들이 쇼켄의 동생이자, 차기 왕으로 내정된 쇼시쓰를 찾았다.
“형님 전하가 돌아가셨다고?”
쇼시쓰는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병환에 시달리던 쇼켄은 결국 시름시름 앓다가 생을 마감하였다.
다른 사람이 쇼시쓰의 위치에 있었다면 오히려 기뻐했을 일이었다.
왕위를 승계하게 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쇼시쓰는 쇼켄의 붕어 소식을 듣자 기뻐하기는커녕 애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왕위에 대해 전혀 욕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하, 전하께서 붕어하셨으니 국법에 따라 보위는 저하의 것입니다.”
“보위에 오르소서, 저하!”
대신들은 애통한 표정을 짓는 쇼시쓰에게 보위에 오를 것을 권하였다.
쇼켄은 자식이 없었으니, 당연히 왕제인 쇼시쓰가 왕위를 이어야만 했다.
“나 같은 소인이 그런 막중한 책임을 지닌 자리를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나는 보위에 오르지 않을 것이다.”
쇼시쓰는 진심으로 생각하였다.
자신은 왕이 될 자격이 없다고 말이다.
물론 대신들은 이런 쇼시쓰의 말을 그저 겸양으로 여겼다.
기다렸다는 듯 보위에 오르면 아무래도 뒷말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며칠이 지날 동안 쇼시쓰는 계속해서 거절 의사를 표하였다.
진심으로 보위에 오르기 싫은 거 같은 태도를 보인 것이다.
“저하가 아니라면 누가 이 나라의 왕이 될 수 있습니까?”
“한 분 계시지 않은가. 그분이야말로 유구의 왕이 되기에 가장 적합한 분이다.”
이 같은 쇼시쓰의 말에 대신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쇼시쓰가 이렇게까지 극존칭을 쓰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오직 한 명, 쇼시쓰는 가장 존경한다던 요한을 언급할 때만 이렇게 극존칭을 사용하였다.
“그분이 도대체 누구입니까?”
“대두국의 왕, 김요한 전하시다.”
“……!”
아니나 다를까.
쇼시쓰의 입에서 요한의 이름이 나오자 대신들은 경악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