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7
시이나는 입을 다물었다.
“모두 함께 짊어진다. 졸업반은커녕 클래스 포만 되어도 일어나기 힘든 일이지. 다들 그렇게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이겠지만, 글쎄, 딱히 싫지만은 않아. 지금 저 아이들의 생각이 학교 밖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면, 세상은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 테지.”
클래스 세븐이기에 가능한 일.
그리고 언젠가는…… 이 아이들도 오늘의 기억을 잊은 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알페아스는 학생들에게 걸어갔다.
“너희들의 뜻은 잘 알았다. 말인즉슨 전원 징계를 내려도 무방하다는 것이겠지?”
몇몇 학생이 흠칫했으나 서로의 시선을 살피고는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알페아스의 입꼬리가 찢어졌다.
“좋아. 이제부터 징계 내용을 밝히마. 클래스 세븐 전원은, 한 달간 근신이다.”
“네에?”
초유의 징계에 학생들은 놀랐으나 이번만큼은 교사들의 충격이 더 컸다.
기간도 길지만, 클래스 세븐 전원이라면 아예 수업을 닫는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교장 선생님, 학생들 가문에서 말이 나올 텐데요. 수업 진도 문제도 있고…….”
“내가 책임지겠네.”
단호하게 말을 끊은 알페아스는 무리에서 떨어져 있는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
무슨 말인가를 건네려는 듯했으나, 결국 그는 가볍게 웃으며 산을 내려갔다.
남은 학생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한 달이라고…….”
생애 처음으로 친 사고에 정신이 아찔했으나 막상 두려운 느낌은 크지 않았다.
“상, 상관없잖아! 어차피 전부 근신이니까. 수업도 똑같이 못 듣는 거고.”
“맞아. 오히려 3일 정학 같은 것보다 훨씬 낫지. 근신은 학적부에 적히지도 않으니까.”
학생들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하하! 그럼 뭐야? 우리 오늘부터 노는 거야?”
“놀기는! 도서관에서 밤새워야지. 그러지 말고 다 같이 모여서 공부할까?”
“재밌겠다! 마리아, 너도 할 거지?”
“어, 그게…….”
마리아는 교사들의 눈치를 보았다.
사드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화색을 되찾은 그녀가 수줍게 말했다.
“응, 나도 할게.”
처음에는 어색할 테지만 징계가 아이들을 결속시키는 이상 그녀 또한 괜찮을 것이다.
‘이걸 노린 건가. 하여튼 못 당하겠어, 스승님은.’
물론 한 달간의 근신이 끝나면 다시 치열한 생존경쟁이 치러질 테지만…….
‘함께였던 순간이 있었다.’
사드는 돌아섰다.
오늘의 감정이 그들의 기억 속에 가능한 오래 머물러 있기를 바라며.
또 1명의 천재(1)
시로네는 클래스 파이브로 진급했다.
그의 독특한 공부법을 아는 시이나가 전담 교사가 됐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클래스가 훌쩍 뛰었기에 이론 수업은 더욱 어려웠지만 시로네는 자신의 방식을 고수했다.
매주 치러지는 필기시험은 수업의 성취도를 평가하는 핵심 지표였다.
그리고 월말이 되면 중간고사를 통해 학급 등수가 갱신되는 시스템이었다.
클래스 파이브의 인원은 40명.
당연하게도 시로네의 첫 번째 필기시험 성적은 40등으로 가장 낮았다.
이 결과에 대해서는 시이나도 우려했으나 시로네의 점수 편차는 주목할 만했다.
총 11개 과목으로 분류되는 필기시험에서 시로네의 성적은 평균 32점.
그런데 놀랍게도 과목별 성적이 전부 30점에서 33점 사이에 분포되어 있었다.
‘한 과목에 치중하지 않는다는 건, 계획대로 되어 간다고 봐야 하는 건가?’
두 번째 필기에서 시로네의 평균 점수는 34점.
평균 2점 상승은 별게 아닐 수 있지만, 전 과목의 점수가 동시에 2점이 오른 건 특이했다.
세 번째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다만 전보다 빠른 상승세로, 36에서 39점 사이에 점수가 분포되어 있었다.
시이나는 시로네의 의지를 느꼈다.
‘명확한 목표가 있다. 흔들리지 않고 있다는 증거야.’
이론 시험이 중요한 이유는 스피릿 존의 전지에 관여하기 때문이다.
완벽한 기준은 아니지만 교사들은 대략 60점 이상을 마법을 구사하는 최소치로 보고 있다.
‘한 달에 10점을 올린다고 치면, 세 달 후부터는 기초적인 마법 운용이 가능하다. 이대로 성장한다면…….’
시로네는 정식으로 등록된 모든 분야의 마법을 구사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상일 뿐이지.’
인간의 개성은 제각각이고, 성향에 따라 잘하는 과목도 편차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전 과목이 동시에 상승하는 그래프를 보고 있노라면 묘한 기대감이 들었다.
‘지켜봐야겠지. 어차피 클래스 파이브 수준에서 평균 성적으로 상대를 무시하지는 않으니.’
그들의 지상 목표는 졸업반이고, 졸업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공이었다.
‘마법사에게 필요한 건 전문성이니까.’
왕족들은 최고 수준의 마법 체계를 유지하는 데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 그런 만큼 사회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마법사도 한 분야의 달인이었다.
국가에서 마법사에게 지출하는 돈은 실로 어마어마해서, 개인 연구실부터 고가의 마법장치, 구하기 힘든 재료까지 전액 부담하고 있다.
선진 마법이 창출하는 이윤이 투자 비용을 훨씬 넘어서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마법사회의 정세는 다른 누구보다 학생들이 빠삭하게 알고 있을 터.
따라서 고급반에 있으면서도 최적의 전공을 찾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시로네는 안심이지.’
순간 이동 마법을 전공자 수준까지 끌어올린 것에 동급생들은 부러워하고 있었다.
시로네 또한 광자를 다루는 마법이 적성에 맞다고 느끼고 있을 것이다.
‘광자화 이론은 지식으로 끝나는 게 아니야. 검증되지 못한 부분이 훨씬 많다. 그런 면에서 시로네의 통찰력은 좋은 무기가 되어 줄 거야.’
클래스 세븐과 달리 직업으로서의 마법사를 생각해야 하는 클래스 파이브.
동급생들이 시로네를 폄하하지 못하는 데에는 이런 요인들이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학교생활에 순조롭게 적응한 시로네의 사교 관계는 전보다 훨씬 좋았다.
통합 수업 시간에는 후배들이 인사를 했고, 징계가 끝난 마크도 그중 하나였다.
“선배님, 제가 자리 맡아 놨습니다.”
“응, 고마워.”
자리까지 봐 주는 게 민망했지만 마크는 늘 시로네의 옆자리를 자처했다.
클래스 세븐의 대장으로서 친분을 과시하려는 의도도 있을 테지만, 이제는 마크도 친구들을 괴롭히지 않았기에 좋은 뜻으로 해석했다.
그때 세리엘이 다가왔다.
“여기 있었네? 내 자리도 있을까?”
“헉!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클래스 포의 하늘 같은 선배를 본 마크가 벌떡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세리엘은 개의치 않는 듯 손을 휘저으며 시로네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 시로네, 요즘 힘이 없어 보이네. 하긴, 에이미가 없으니 당연한가?”
“하하! 아니에요.”
에이미는 일주일 전에 진급 시험에 합격해 마침내 졸업반에 입성했다.
손쉽게 통과했다고 하지만 아득바득 이를 갈면서 치렀을 것은 보지 않고서도 알 수 있었다.
“저보다는 선배님이 외로우시겠어요. 항상 같이 다녔는데.”
“그렇지, 뭐. 하지만 괜찮아. 나도 조만간 졸업반으로 올라갈 생각이거든.”
“네? 정말요?”
세리엘이라면 자격은 충분했다.
클래스 포에 쟁쟁한 실력자들이 많기는 해도 그녀 또한 회복 마법의 재인이었다.
전공이 중요한 졸업반의 경우라면 오히려 그녀에게 유리한 점도 있을 터였다.
“뭐, 친구 따라 들어가는 곳은 아니지만, 나도 에이미와 너를 보고 자극이 좀 됐어. 졸업하면 적당 적당 인생을 즐기려고 했는데, 왠지 이렇게 끝나기에는 청춘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마크가 울상을 지었다.
“선배님 정도의 실력자가 적당 적당이라니요. 그러면 저는 뭐가 되는데요?”
“후후, 너무 걱정하지 마. 나도 딱히 잘하는 게 있어서 여기까지 온 건 아니니까. 열심히만 하면 누구라도 졸업할 수 있어. 시로네가 특이한 거지.”
당황한 시로네가 손을 저었다.
“아뇨, 저도 사실…….”
“그렇게 뺄 거 없다니까. 조만간 너도 졸업반에 들어가겠지. 에이미는 절대 너랑 동기는 안 할 거라고 기를 쓰고 있긴 한데, 호호, 열심히 해 봐.”
에이미다운 발언이었다.
그녀가 필사적으로 훈련하는 모습을 떠올리자 시로네도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때 문득 어떤 생각이 스쳤다.
“맞다, 에이미는 전공 뭐로 했어요?”
“뭐야? 너한테도 말 안 한 거야? 너희들 정말 심심하게 사귀는구나.”
“하하, 원래 그렇잖아요.”
“글쎄. 이제 시작이라 확실하진 않지만, 주특기가 화염 마법이고 타깃형에 능숙하니까 스나이퍼 전공으로 나갈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스나이퍼는 군대 보직이잖아요. 그럼 에이미가 군인이 될 생각이란 건가요?”
시로네의 마음을 이해한 세리엘이 웃었다.
“할 수 없지. 재능이 있는 쪽으로 직업을 정하는 수밖에. 에이미도 가문의 명예가 있으니.”
“하지만 위험한 일이잖아요. 필요에 따라서는 사람도 해쳐야 하고요.”
“막상 전쟁이 일어나면 전공 같은 건 아무런 상관도 없어. 마법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면 무조건 전선에 투입될 테니까. 오히려 에이미처럼 뛰어난 실력자가 많을수록 전쟁 억제력이 강해지는 거야.”
“그렇긴 하지만요…….”
전쟁을 막는 건 강력한 무력이고, 토르미아 왕국은 나름 강국에 속했다.
하지만 안심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전히 대륙의 어딘가에서는 전쟁이 한창이었고, 외교 상황에 따라 토르미아가 참전한다면 에이미는 최전선에서 뛰어야 할 터였다.
시로네의 걱정과 달리 마크의 흥미는 다른 쪽에 있었다.
“에이미 선배님이 장교가 되면 부대에서 인기 끝내주겠네요. 솔직히 연상이 잘 안 돼요.”
“호호호! 그건 네가 에이미 성격을 몰라서 그래. 내 생각에는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시로네, 너무 걱정하지 마. 어차피 마법사는 전장에서 칼부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스나이퍼는 첩보전에 주력하니까. 멋있잖아? 미녀 첩보원 에이미.”
“하하, 그것도 그러네요.”
시로네는 괜한 걱정을 접었다.
1등을 놓친 적이 없는 천재가 어련히 잘 선택했을까.
통합 이론 수업이 끝나고 실습 시간이 되자 학생들이 클래스별로 흩어졌다.
시로네도 마크와 세리엘에게 손을 흔들고는 동급생이 모인 곳으로 향했다.
동갑내기가 가장 많은 클래스인 만큼 실습 시간에도 장난과 수다가 끊이지 않았다.
“이야, 시로네. 오늘도 활활 타오르는구만.”
네이드가 말을 걸어왔다.
시로네와 동갑인, 연둣빛 머릿결이 찰랑이는 개구쟁이 같은 소년이었다.
클래스 파이브로 진급한 첫날에 가장 먼저 말을 걸어 준 사람이기도 했다.
‘참 성격 좋아.’
한 달 정도 지켜본 바에 의하면 누구 하나 친하지 않은 사람이 없는 듯했다.
친구로 지내기에는 최고지만, 한편으로는 공부할 시간이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실제로 네이드의 성적은 중상위권으로, 특출나게 잘하는 것도 못하는 것도 없었다.
그나마 특이한 부분을 꼽자면 전기 마법을 구사할 수 있다는 정도일까?
세상에 쉬운 마법은 없지만, 전기력은 특히 전능을 얻기가 까다로운 분야였다.
‘인간에게 친숙한 속성은 아니지.’
얘기를 들어 보면 납득이 갔다.
네이드의 꿈은 마법무구 발명가였는데, 어릴 때부터 꾸준히 기계와 전기를 다루어 온 덕분에 전기력에 대한 전능을 얻기가 쉬웠다는 것.
“타오르기는. 어려워 죽겠는데.”
“하하! 그래서 내가 왔지. 혼자 어려운 것보다는 둘이 어려운 게 더 낫잖냐.”
어쨌거나 사람을 편하게 하는 재주가 있는 친구였다.
그래서인지 작은 이야깃거리라도 생기면 동급생들은 첫 번째로 네이드를 찾았다.
함께 수련을 하는 동안에도 남학생들은 마치 휴식처라도 되는 듯 네이드를 거쳤다.
그러던 와중에 두 소년이 티격태격 말싸움을 하며 이곳으로 오기 시작했다.
“야, 야! 시로네이드, 우리 얘기 좀 들어 봐.”
두 사람의 이름이 합쳐진 신조어에 시로네도 스피릿 존을 해제하고 눈을 떴다.
동급생이 바짝 다가와 물었다.
“너희들은 에텔라 선생님하고 시이나 선생님 중에 어느 쪽이야? 아, 시로네는 에이미 선배님이 있어서 신경도 안 쓰려나? 너는 어때, 네이드?”
“흠, 나는 당연히 에텔라 선생님이지. 물론 시이나 선생님도 예쁘긴 하지만.”
“오오, 동지여! 역시 에텔라 선생님이 최고지. 얼굴은 동안인 데다가 몸매는…… 어휴.”
시로네는 새삼 깨달았다.
‘정말 클래스 세븐과는 다르구나.’
클래스 파이브에서 단연 관심사라면 남녀 학생을 가리지 않고 이성異性 문제였다.
물론 시로네 또한 남자였다.
‘난 두 분 다 예쁜데.’
시이나가 도시적인 느낌이라면 에텔라는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외모였다.
아마도 커다란 안경과, 아이의 얼굴에 몸만 그대로 커 버린 듯한 볼륨감 때문이리라.
‘만약 나에게 물어본다면…….’
만일의 질문에 대비해 고민하는 그때 동급생들이 갑자기 자리를 떠났다.
“응?”
이상하게 생각한 시로네가 고개를 돌리자 괴팍한 인상의 소년이 걸어오고 있었다.
클래스 파이브의 괴짜, 메르코다인 이루키였다.
어떤 의미로는 왕따지만, 시로네의 생각에 그는 진짜로 사람과 어울리기를 싫어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런 괴짜도 말을 거는 친구가 있었으니, 바로 만인의 친구 네이드였다.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밌게 해?”
네이드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똑같지, 뭐. 시이나 선생님과 에텔라 선생님 중에 누가 더 예쁜가, 그런 거.”
신이 나서 떠들 때는 언제고 이루키를 배려하는 태도에, 시로네는 혀를 내둘렀다.
‘……정말 유연하네.’
네이드가 생각난 듯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