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90
그녀가 한 걸음을 물러설 때마다 모두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긴장감이 몇 톤씩 덜어지는 기분이었다.
이카엘이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갔을 때. 그녀의 앞에 오색찬란한 패널이 빛을 발하며 3각 마라가 등장했다.
천국 최고의 마검사 아슈르라는 것은 가올드 일행의 몇몇만이 알고 있었다.
“이카엘 님.”
“말씀하세요.”
이카엘은 여전히 시로네에게 시선을 둔 채 말했다.
대수롭지 않은 말투인 이유는, 이미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반동입니다. 카리엘이 불의 거인들을 제2천에 불러들였고 유리엘이 동조했습니다. 남은 대천사들도 제각기 다른 목적을 가지고 천국의 각지로 흩어졌습니다.”
그들도 깨달은 것이다.
원래의 힘을 되찾은 이카엘이지만 전과 다른 치명적인 결함이 있음을.
강력한 힘으로 모두를 통솔할 수 없다면 대천사들은 각자의 판단에 따라 행동할 것이다.
물론 천사의 활동을 금지시킨 마당에 앙케 라의 전언을 거부할 만큼 엇나갈 천사는 카리엘과 유리엘 정도뿐이다.
하지만 최소한 다른 대천사들이 거느리는 3명의 마라들은 자유로운 상황이었다.
‘가히 천국의 격변기로구나. 허나 이것 또한 내가 짊어져야 할 몫이다.’
이카엘이 물었다.
“평천사들의 동태는 어떤가요?”
“제불 밖으로는 나가지 않고 있습니다. 대천사라는 상위 율법에 얽매인 이상 허튼수작은 부리지 못할 것입니다.”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만약 대천사 중에 누군가가 또 다른 반동을 일으킨다면 평천사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테니까.
“돌아가죠. 협상은 결렬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아슈르는 찜찜한 표정으로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이카엘이 저지른 죄는 그녀를 복권시키면서 말소되었으나 기억이 사라진 것은 오직 이카엘뿐이었다.
따라서 아슈르는 이카엘과 시로네의 관계에 대해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지극히 비정상적이고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본래 이카엘을 완벽하게 복권시키기 위해서는 리셋을 해 버리는 게 가장 좋다. 사건 자체를 지워 버리면 변수조차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한 것인가?’
그럴 경우가 있을까?
울티마 시스템으로도 결국 라의 리셋을 막아 내지 못했다.
따라서 하지 못했다는 것은, 라의 능력과는 상관없는 상황적인 구속력이 발휘되고 있는 거라고 봐야 했다.
‘즉, 현재 라는 리셋을 시도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아슈르의 몸을 타고 전율을 뜻하는 전기적 신호가 흘렀다.
‘빌어먹을! 그렇구나. 우리가 있는 시간선은 지금…….’
밑사건이 완성되기 전에 먼저 찌르고 들어왔다.
따라서 천국과 반군의 전쟁은 눈에 보이는 상황일 뿐, 그 이면에서는 고도의 심리전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인류 쪽에 있는 어느 누구, 집단, 조직, 혹은 그보다 거대한 어떤 것.
‘그렇기에 이미르는 움직이지 않는다. 완전히 꼬였어.’
현재 저쪽에서 먼저 변수를 만들려고 한다면 지금 그들이 경험하는 사건은 리셋에서 벗어난 최초의 사건.
즉, 날것의 시간선이 흐르고 있는 와중이다.
지고의 정신체인 천사라도 인과 너머에 흐르는 시간의 변수까지는 예측하지 못한다.
앙케 라는 전쟁을 억누르고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홀로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인류 저편에서 시간선을 통제하는 누군가와.
‘그렇다면 나도 입을 다물어야 한다.’
오늘의 사소한 변수가 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니 일단은 라의 판단에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의 미래조차 예상할 수 없는 답답함을 끌어안고, 아슈르는 이카엘에게 돌아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이카엘이 날아오르려는 그때 가올드가 물었다.
“미로는 어디 있지?”
오늘의 사건으로 반군들의 기세는 꺾였지만 가올드는 올 것이다. 그렇기에 카리엘이 라키아에 미로를 가두어 두고 있는 것일 테니까.
“제2천에 있다.”
이카엘은 순순히 털어놓았다.
아슈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그녀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7명의 대천사를 통솔하기 위해서는 가장 위험 요소가 강한 카리엘과 유리엘을 어느 정도 묶어 두는 편이 좋다.
“그렇군. 찾으러 가지.”
이카엘은 대답하지 않았고, 빛처럼 빠르게 날아올라 사령부 모두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
반군 사령부의 분위기는 숙연했다.
천국에서 제안한 이례적인 제안을 망쳐 버린 건 그들이었기에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간부들은 전쟁을 결정하지 못하고 밤새 열띤 회의를 벌였고, 가올드 일행은 각자의 생각을 마음에 품은 채 정신을 가다듬고 있었다.
그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프로젝트는 진행되어야 한다.
그것은 가올드뿐만이 아니라 시로네도 마찬가지였다.
‘이카엘…….’
어째서 그녀는 자신에게 매몰차게 대한 것일까?
착각일 뿐이었다면, 그렇게 인정을 해 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그녀는 공격을 하지 못했다.
그 머뭇거리는 떨림 속에는 시로네가 정말로 듣고 싶던 말이 담겨 있었다.
노크 소리가 들리고 세인이 들어오자 시로네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약간은 씁쓸함이 담긴 이유는, 그가 방문한 이유를 짐작하기 때문이다.
“기분은 좀 어떠냐?”
서번트인 그가 감정에 신경을 쓴다는 건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아직 잘 모르겠어요. 현실로 와 닿지가 않아서.”
“너와 이카엘이 어떤 사이인지는 묻지 않으마.”
세인은 진심이었다.
그건 시로네만의 문제였다.
“알고 있어요. 계약 조건을 이행했으니 저도 망설이지 않을 겁니다. 신의 징벌을 가동할 작전을 세워 주세요.”
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그것이 가장 중요한 안건이었다.
“이카엘의 어떤 부분이 네가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면…….”
세인은 두 번째 안건을 꺼냈다.
“그건 아마도 앙케 라의 아카식 레코드가 발동한 것일 거다.”
“이카엘이 기억을 잃었단 말인가요?”
“그럴 가능성도 있다는 거지. 부분이 바뀌면 전체도 바뀐다. 앙케 라는 전체이기에 어떤 식으로 바뀌어도 상관이 없겠지만, 우리는 거기에서 나온 변수를 활용할 생각이다. 이카엘 또한 그 변수의 범주에 들어가지.”
시로네는 세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았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너는 독립적인 임무를 수행하게 될 거다. 줄루가 너를 서포트하는 게 최상이지만 우리 쪽에도 약간 거슬리는 부분이 생겼어. 플루가 붙을 거다.”
시로네는 기뻤다.
제2사령부에서도 느꼈지만 플루야말로 가장 믿을 수 있는 아군이었다.
“네. 저는 아주 좋아요.”
“쉬어라. 작전이 세워지면 말해 주지.”
세인은 짧게 용무를 마치고 몸을 돌렸다.
문을 열고 나가려는 그때, 시로네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세인은 마지막까지 할 말을 고심하면서 문을 닫았다.
“……전술의 일환일 뿐이야.”
분명 그럴 테지만 시로네는 전보다 훨씬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카엘.’
그녀를 만날 것이다.
그것이 천국에 온 유일한 이유니까.
전쟁 개시 (1)
동이 트는 아침
대형 타기스가 굉음을 내며 엔진을 돌리기 시작했다.
강력한 전자기파가 천국을 직격하고, 천국의 방공 시스템인 이지스가 전면 마비되었다.
“돌격하라!”
통합 반군 사령부 예하에 있는 무려 15만 명의 군대가 아라보트를 제외한 제1천부터 제6천까지의 관문을 향해 진격했다.
그렇게 천국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선배님, 이쪽으로.”
시로네와 플루는 영생을 얻은 신민들이 거주하는 제3천 셰하킴에 무사히 침투했다.
현재 반군들은 셰하킴의 관문을 뚫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것 또한 전술의 일환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터미네이터인 시로네를 어떻게든 아라보트까지 운반하는 것.
적군의 시선을 외곽으로 돌리고, 소수의 인원만을 적진에 침투시키는 첩보 작전이었다.
처음 와 보는 셰하킴은 신민들이 거주하는 샤마인과 달랐다.
노르, 메카, 케르고의 종족이 섞여 있지만 그들이 머무는 곳은 파라다이스라고 불리는 규격화된 양식의 건물이었다.
흰색 바탕의 벽돌집은 크기가 제각각이었으나 하나같이 아름다웠다.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종족의 특색을 버리고 영생을 얻은 자들만의 하늘하늘한 옷을 입고 있었다.
영생. 일화의 술의 공포에서 벗어난 자들.
외곽에서는 전쟁이 한창임에도 그들의 삶은 아직까지 크나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정말 대단하네. 불멸자의 자신감인가?”
플루는 고까운 눈초리로 그들을 살폈다.
선한 미소를 지으며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담소를 주고받는 태도에서는 두려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일단 옷부터 구하죠. 이런 차림으로는 돌아다니기 어렵겠어요.”
전투 병력이라고는 단둘뿐이니 싸우면서 아라보트까지 갈 수는 없다.
어떻게든 저들의 무리에 섞여서 움직이는 게 상책이었다.
시로네와 플루는 가장 가까운 파라다이스로 잠입했다.
실내에 수영장이 설치되어 있고 전면 유리 내부에서는 일가족이 단란하게 티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시로네는 건물의 뒤로 돌아가 2층으로 뛰었다.
높은 곳에서 도시의 정경을 바라보니 수많은 요정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미 전쟁은 벌어진 상황이기에 치안은 전보다 훨씬 강화되었다고 봐야 했다.
플루와 눈을 마주친 시로네는 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옷장에서 셰하킴의 의복을 찾은 그들은 곧바로 탈의했다.
옷을 갈아입고 본래의 옷을 큐브릭에 넣은 뒤에야 문이 열렸다.
“응? 누구시죠?”
시로네와 플루는 굳은 채로 소녀를 지켜보았다.
스피릿 존을 펼친 상황에서도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설마…… 당신들, 첩자인가요?”
시로네는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인간이 아니다.
처음부터 덫에 걸려든 게 분명했다.
플루가 피닉스를 전방에 내세우며 소녀의 접근을 막았다.
비실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빠져나갈 방법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가짜임에도 가짜라는 것을 느낄 수 없을 정도의 실체감.
‘공간에 걸린 능력인가.’
플루가 소리쳤다.
“여기서 나가!”
“꺄아아아악!”
동시에 소녀가 괴성을 지르며 형태를 변화시켰다.
참한 인상은 사라지고 입술이 기괴하게 찢어진 사악한 마녀의 얼굴로 두 사람을 덮치자 플루가 봉황정을 발동시켰다.
불꽃의 새가 솟아오르고, 소녀를 향해 무지막지한 불덩어리를 토해 냈다.
사방에 불이 옮겨붙으며 풍경이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렸다.
물질의 한계를 넘어선 풍경의 왜곡에 시로네는 금강무장을 발동했다.
규정외식-파라다이스.
셰하킴의 신민관리부장 오르가의 능력.
파라다이스를 정신으로 구현하여 건물에 들어간 대상에게 끔찍한 환영을 불러일으키는 정신계 마법이었다.
시로네와 플루는 원래 들어왔던 창문으로 향했다.
하지만 창문 바깥은 이미 아무것도 없는 공허한 어둠이었다.
“완전히 갇혔어!”
잠시 후 문이 열리면서 문둥병에 걸린 듯 머리가 듬성듬성 벗겨진 괴물들이 달려들었다.
“크아아아아!”
시로네는 아르망의 촉수를 휘둘러 한 번에 그들을 베어 넘겼다.
토막 난 괴물들은 섭식귀 쿠젠의 능력으로 흡수되었고, 그것은 다시 에너지로 전환되어 시로네에게 강력한 육체 능력을 부여했다.
문밖으로 나가자 계단의 끝까지 괴물들이 밀려들고 있었다.
포톤 캐논을 퍼붓자 마치 해머에 얻어맞은 듯 놈들의 몸이 움푹 들어가며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시로네는 난간을 뛰어넘어 곧장 홀로 내려왔다.
이어서 플루가 공중을 날아 건너편 난간에 착지했다.
천장에 그려진 그림들이 실체화되면서 그들을 덮쳤다.
뱀, 박쥐, 가고일, 이름 모를 생물체까지 달려들면서 파라다이스 안에서 한바탕 활극이 펼쳐졌다.
어떤 괴물도 시로네에게 작은 상처조차 입히지 못했다.
아르망의 촉수는 쿠젠의 흡수에 의해 점점 빨라졌고, 급기야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흔들렸다.
오직 강풍 소리만이 홀에 맴도는 가운데 수많은 괴물들이 폭죽처럼 터져 나갔다.
‘이 정도로 당하지는 않아. 하지만…….’
도무지 나갈 방법을 찾을 수가 없다.
건물에 들어오는 게 규정외식의 발동 조건이라면 문을 찾는 게 가장 해제에 근접한 해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