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68
“나가자! 세상으로!”
리안의 목소리가 콜로세움 전체에 메아리치는 것을 신호로 관객들이 전부 일어나 박수를 쳤다.
“최고다! 토르미아 왕국의 자랑이야!”
“넌 분명 대마법사가 될 거야!”
바로 옆의 말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시끄러웠고, 초면에 서로를 끌어안은 미로와 폴타르도 민망함을 잊은 채 펄쩍 뛰었다.
“꺄악! 수석이야! 시로네가 수석이에요!”
“내가 말했잖아! 해낼 줄 알았다니까! 역시 내 안목은 틀리지 않았어! 아, 잠깐!”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던 폴타르가 가방을 뒤지더니 노트에 허겁지겁 감상을 기록했다.
반면에 아직 찬사에 익숙하지 않은 듯 수줍게 인사하는 시로네를 바라보는 미로의 얼굴은 조금 슬퍼졌다.
‘준비가 되었구나.’
이천번이라고 해서 실전보다 여유롭게 싸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가상과 현실의 간극은 분명 존재했다.
만약 졸업 시험에서 등장한 모든 마법이 현실에서 충돌했다면 오늘과는 또 다른 결과가 나왔으리라.
하지만 모두가 똑같은 기회에서 싸워 왔기에 이보다 더 검증된 방법은 없는 것도 사실이었고, 미로가 슬픈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었다.
‘시로네, 너는 오늘부로 왕국 최고의 학생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큰 책임을 떠안아야 할 것이야.’
시로네가 싸워야 할 세상은 졸업 시험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참혹한 실제의 아수라장이었다.
‘축하해. 그리고 미안하다.’
시로네를 성장시킨 사람 중의 1명으로서 앞으로 그가 겪어야 할 일들이 벌써부터 그려졌다.
‘지옥일 것이다. 견디고 싶지 않을 거야. 피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시로네.’
강자의 의무 따위를 들먹이지 않아도 결국 인류는 파멸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고, 시로네 또한 전체의 일원으로서 모두를 이끌어야 한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 오늘을 즐겨라. 너의 날이니까.’
미로가 그제야 눈웃음을 지으며 돌아서는 그때 대머리 중년이 다가왔다.
“여기에 있었구나, 미로. 후드를 써서 못 알아봤다.”
페르미의 아버지 엔리케였다.
“호오, 그래도 아들이라고 오기는 왔네?”
“이번에는 분위기가 좀 달랐으니까. 하지만 떨어졌군.”
“유감이야. 페르미는 만나고 왔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 버렸어. 내년에 다시 도전할 것인지, 어쩌면 학교를 그만둘 수도 있을 것 같고.”
페르미 또한 미로에게 버릴 수 없는 전력이었다.
“걱정하지 마. 절대로 손해 보는 판단은 안 하는 애니까. 그게 더 얄밉기는 하지만.”
올가의 아들이라면 믿고 맡겨도 문제가 없을 터였다.
“흐음, 미로라. 어디서 들은……! 뭐, 미로라고!”
폴타르가 눈을 휘둥그레 치켜뜨며 소리쳤다.
20인의 심판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지만 세계 최고의 재능이라고 명성이 자자했던 그녀의 이름만큼은 잊을 수가 없었다.
볼을 부풀리고 검지를 가져다 대는 미로의 모습에서 인지 부조화를 느낀 폴타르가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그녀가 어깨동무를 했다.
“기분도 최곤데 술이나 한잔 걸치러 가요. 물론 아저씨가 사는 것으로 하고요.”
“……정말 자네가 미로라고? 하나도 안 늙은 것 같은데, 대체 여태까지 뭐 한 거야?”
“호호호! 얘기를 들으면 놀라 까무러칠걸요? 엔리케, 뭐 해? 가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뒤를 따르던 엔리케가 물었다.
“그런데 시로네는 안 만날 생각이야?”
“응, 괜찮아.”
콜로세움의 출구를 향해 걸어가며 미로가 뒤를 돌아보았다.
“더 높은 곳에서 만나게 될 테니까.”
박수갈채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시로네가 네이드에게 손을 내밀었다.
“네이드, 일어설 수 있겠어?”
네이드가 쳇 하고 고개를 돌렸다.
“됐어. 날 친구로 생각하지 마. 그럴 자격도 없잖아.”
“그런 말이…….”
시로네가 미간을 찡그리며 한 소리를 하려는 그때.
“너! 똑바로 말해야 할 거야!”
이루키가 달려와 네이드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아! 왜 때려!”
고개를 돌린 네이드의 눈앞에 이루키의 손가락이 불쑥 들어왔다.
“왜 나만 두 번 공격해! 일부러 그런 거지?”
잠시 눈을 깜박이던 네이드가 인상을 찡그렸다.
“몰라! 네 얼굴이 주먹을 불렀나 보지! 가뜩이나 기분 안 좋은데 끼어들고 있어.”
이루키가 눈을 가늘게 떴다.
“기분이 안 좋을 게 뭐 있어? 관심 없다고 하면서 차석까지 한 주제에.”
말을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네이드는 다시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아무튼 용서하지 마라. 나는 오늘부터 삼총사에서 빠지겠어.”
이번에는 시로네가 머리를 쥐어박았다.
“아! 왜 그래, 진짜!”
“답답하니까! 안 싸우는 게 친구가 아니야! 싸우고도 화해할 수 있는 게 친구지! 너에게는 그 정도의 신뢰도 없냐?”
이를 악물고 쳐다보던 네이드가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냥, 내가 나를 용서할 수 없어서 그래.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인생을 진지하게 사는 건 중요하지만…….”
이루키가 네이드의 어깨를 짚었다.
“심각하게 살 필요는 없잖아? 다 잘 끝났어. 그냥 털어 버리고 나가면 되는 거야.”
과연 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있을까?
자문하는 그때, 시로네가 다시 손을 내밀며 미소 지었다.
“밥 먹으러 가자, 네이드.”
떠나는 사람들 (1)
관리자가 출장 방송을 했으나 졸업 시험의 여운이 남아 있는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자리를 뜨지 못했다.
바이칼 또한 자리를 지킨 채로 타국 스카우트들의 목소리를 수집하고 있었다.
예상대로 그들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이름은 시로네였고, 엘리자베스는 그 점이 자랑스러웠다.
“알페아스 마법학교에 온 보람이 있네요. 다른 지역의 시험이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이곳만큼 많은 주목을 받지는 못할 거예요.”
이제 스카우트들이 할 일은 리포트를 작성하는 것이다.
30명 전원에 대한 세부적인 평가가 기재될 것이고, 등급에 따라 분류한 다음 협회에 제출하면 왕성의 마법부에서 계약 조건을 책정해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가게 된다.
“시로네는 반드시 잡아야 해요. 타국의 스카우트들도 벌써 행동에 들어갔습니다. 막대한 계약금과 옵션을 준비하고 있을 겁니다.”
“아직은 우리에게 기회가 있어. 레드 라인 협약에 의해 자국의 학교에서 배출한 학생은 자국 내의 마법부가 우선 협상권을 갖는다.”
설령 타국에서 온 유학생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시로네를 설득하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실력을 확실히 관철시켰습니다. 협상 거부권을 발동하고 레드 라인에 공시되면 세계 각국에서 경쟁적으로 계약 조건을 올릴 겁니다. 그가 받아들일 이유가 없어요.”
“……처음부터 이걸 계산하고 졸업 시험에 임한 거야. 이제 입장이 역전되어 버렸군.”
라라가 말했다.
“단지 왕국 최고 계약 조건을 갱신하는 것이 아니라 파격적으로 올려야 해요. 제국에서도 제안이 들어올 것이라 생각하면 절대 손해 보는 일은 아닙니다.”
엘리자베스가 동의했다.
“합리적인 수준이라면 시로네도 굳이 토르미아를 떠나고 싶지는 않을 거예요. 어쨌든 평생을 살아온 곳이니까요.”
삶의 역사가 담긴 곳을 떠나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그 합리적인 수준이라는 게 문제인 거지. 파격이라는 것도 경험에 근거해서 세워지는 법이야. 현재 왕국 최고 연봉은 10년 전에 체결한 2,400만 골드. 추가적인 혜택과 옵션을 제외하고도 귀족들 사이에서 말들이 많았어. 어쨌거나 공인 자격증도 없는 일개 졸업생이었으니까.”
2,400만 골드라면 토르미아의 용병 길드에서 평균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비공인 마법사가 1만 년을 일해도 벌지 못하는 액수다.
마법이 창출하는 어마어마한 가치를 고려하더라도 납득이 안 가는 소득 격차였다.
대체 산업이 존재할 수 없는 인력 기반의 독점성과 국방력에 직결되는 문제, 레드 라인 네트워크로 통합되어 있는 세계 각국의 경쟁 심리가 만들어 낸 마법 분야의 특수성이었다.
실제로 세계에서 이름이 알려진 마법사라면 1년에 수십억 골드를 쏟아부어서라도 붙잡아 두고 싶어 하는 것이 각국의 공통된 정서였다.
“하지만 그 계약의 당사자는 공인을 손쉽게 통과했고 현재 왕국 근위 마법부대의 지휘관이 되었죠. 최고 계약을 갱신할 정도라면 공인은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렇다면 얼마를 제안하지? 1억? 10억? 제국은 낼 수 있다. 시로네의 마법이 100배, 1천 배 강해서가 아니야. 오직 시로네만이 가능한 마법이기 때문이야. 돈으로 때려 버리면 왕국은 상대가 안 돼.”
베테랑 바이칼의 예측이라면 아마도 정확할 것이다.
“우선 협상에서 돈 이상의 것을 제안해야 할 거야. 평민이라고 했으니 귀족 작위를 주는 것도 한 방법이지. 하지만 마법부서에서 그렇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야.”
“어째서죠? 당연히 시로네를 잡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렇게 생각하는 건 우리가 마법사이자 스카우트이기 때문이지. 귀족들의 반발, 왕족 포니의 탈락 등 여러모로 생각해야 될 것이 많아. 이제부터는 정치야.”
바이칼의 주름이 깊어졌다.
“그리고 정치는 언제나 개인의 상식을 배신하지.”
***
대기실에서 휴식을 취한 참가자들은 관객들이 모두 자리를 비운 뒤에야 콜로세움을 나섰다.
아직 학교를 떠나지 않은 관객들이 멀리에서 박수를 치고, 수많은 학부형들이 자식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엄마!”
시로네는 오젠트 가문의 사람들과 함께 서 있는 올리나와 빈센트를 발견하고 달려갔다.
“시로네!”
가장 먼저 끌어안은 사람은 당연히 올리나였고, 그녀는 이제 훌쩍 커 버린 아들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채 펑펑 눈물을 흘렸다.
“힘들었지? 어디 다친 데는 없고?”
졸업 시험 합격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었음에도 자식의 건강부터 챙기는 소박한 품성에 시로네 또한 눈시울이 붉어졌다.
“괜찮아요, 엄마. 죄송해요.”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고생했다. 정말로 고생했어, 시로네.”
빈센트가 아들과 아내를 동시에 끌어안는 모습을 리안과 레이나가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다른 참가자들 또한 부모와 재회하는 가운데 에이미의 어머니 이시스가 콜로세움을 가리켰다.
“저기 에이미가 와요.”
생각에 잠긴 듯도 보이고 멍한 듯도 보이는 얼굴에서는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에이미, 여기야.”
이시스의 목소리를 들은 에이미가 퍼뜩 정신을 차리더니 고개를 숙이며 다가왔다.
최종 졸업 순위 4위.
상위권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어릴 때부터 1등을 놓치지 않았던 그녀의 자존심이 납득을 할지는 미지수였다.
“걱정이네요. 재수까지 한 거라서 욕심이 컸을 텐데.”
에이미의 아버지 샤코라가 근엄하게 일렀다.
“내색하지 말아요. 모르는 체하는 게 도와주는 거니까.”
두 사람 앞에 멈춘 에이미가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엄마. 아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그때, 그녀가 눈물을 쏟으며 손으로 브이 자를 만들었다.
“나…… 해냈어. 내가 합격했어.”
울컥한 샤코라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딸을 끌어안았다.
“그래! 장하다, 우리 딸! 네가 최고야!”
지금은 4위지만 영원한 4위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카르미스 가문의 명예를 등에 업고 두 번째로 치른 시험이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
‘이제부터 시작이란다, 에이미! 네가 해낸 것에 자부심을 가져라!’
최선을 다했고 만족했다면, 부모에게 자식의 순위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우리 딸이 합격했다!”
샤코라가 체면을 망각하고 소리치자 이시스의 얼굴이 빨개졌다.
“여보, 하지 말아요. 팔불출처럼…….”
“아하하!”
콧물을 훌쩍이며 눈물을 닦은 에이미가 밝게 웃었다.
가족애가 넘쳐흐르는 카르미스 가문과 달리 메르코다인 가문의 식구들은 담담했다.
“네가 학교를 졸업할 줄은 예상조차 못 했다. 내 머리도 이제 녹슨 모양이군.”
알비노의 첫마디에 아르가네스가 옆구리를 찔렀다.
“그게 아들에게 할 소리예요? 축하해요, 이루키.”
아르가네스는 아들에게 존대를 했고, 이루키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분명 젖을 먹고 자란 친엄마지만 메르코다인의 핏줄은 감정과 이성을 분리시키고, 그렇기에 아르가네스도 아들이 커 갈수록 대하기가 어려웠다.
“확실히 녹슬기는 하셨네요. 제가 좀 열어서 닦아 드릴까요?”
“큭큭큭큭!”
메르코다인 특유의 인간미 없는 농담에 어깨를 들썩거린 알비노가 코를 만지며 물었다.
“그래, 이제 어떡할 거냐? 정히 내 머리를 닦겠다면 말리지 않겠다만.”
이루키는 콜로세움을 돌아보았다.
“충분히 만족했어요. 용뢰로 가겠습니다.”
알비노의 입꼬리가 의미심장하게 올라갔다.
기계는 쓰고 버리지만 인간은 복제한다.
이루키라면 자신의 후임으로 부족하지 않을 터였다.
“괜찮겠냐? 이 바닥도 만만치 않아. 마법사가 되는 것도 괜찮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만족했다고 했잖아요.”
각오를 확인하는 데에는 두 번 물어보는 것으로 족했다.
“졸업하고 수도로 와라. 준비해 두마.”
가문마다 성향은 다르지만 결국 가족인 것이다.
그리고 어느 한편에서는, 남보다 못한 가족이 어색한 재회를 맞이하고 있었다.
“축하한다.”
볼룸이 악수를 건넸으나 네이드는 아무 말도 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민망해진 손을 거두어들인 볼룸이 아내의 등을 떠밀며 말했다.
“당신도 뭐라고 말 좀 해요.”
테리아가 무섭게 노려보았으나 네이드는 예전처럼 무섭지 않았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기 때문이다.
“마법사가 될 거니?”
아들에게는 관심이 없어도 어떤 마법사가 떼돈을 벌어들이는지에 대해서는 빠삭한 테리아였다.
졸업 시험 차석이라면 계약금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것도 물론 알고 있었다.
“아뇨. 마법사 안 할 겁니다. 저 같은 놈을 데려갈 협회도 없어요.”
테리아의 인상이 잔뜩 구겨졌다.
“도대체 너, 우리가 무엇 때문에 너를 마법학교에……!”
“알았다. 네가 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
볼룸의 말에 테리아가 눈을 치켜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