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32
‘군기를 읽는 것도 아니다. 그냥 재밌는 상황이 되도록 계속 싸움을 거는 거야.’
승패에 연연하지 않기에, 승률은 5할이다.
‘만약 이기려고 마음을 먹는다면, 아니, 그 또한 혼돈과는 어울리지 않는가?’
발칸이 물었다.
“전하께서 인간을 지배하는 철학은 무엇입니까?”
하비츠의 제왕론은.
“그런 건 없어. 너무 단순하거든. 사과를 이리저리 분류한들 결국 사과일 뿐이지.”
“하지만 세상에는 딸기 같은 사람도, 배 같은 사람도 있지 않겠습니까? 각양각색이지요.”
“없다니까.”
하비츠가 고개를 들었다.
“다들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창고에 가두어 놓고 3일 동안 몽둥이로 두들겨 패잖아?”
하비츠가 앓는 시늉을 했다.
“아이고, 죽겠습니다! 네! 저 사과가 배입니다! 당신은 신입니다! 저는 개입니다!”
발칸이 눈을 깜박거렸다.
“참으로 이상하지. 정말 최고면 몽둥이로 치든 내장이 뽑히든 최고여야 되는데, 항상 말을 바꾼다니까.”
“허허.”
하비츠가 콧수염을 만졌다.
“그럴 거면 평소에는 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어. 무슨 병인가 봐.”
“푸하하하하!”
발칸이 무릎을 때렸다
“빼어난 통찰이십니다! 전하!”
***
무던히도 더운 여름이었다.
기록적인 폭염이 기승을 부렸고 카샨과 구스타프의 국경선에는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이로써 모든 준비가 끝났다.”
우오린의 왼편에 엑스마키나를 다루는 이루키 팀이, 오른편에 을 담당하는 시로네 팀이 자리했다.
“하비츠를 죽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야.”
미네르바가 중심에 서 있는 아벨라를 돌아보았다.
‘아벨라와 제이스틴, 둘 다 만전이지만 확률이 높은 쪽은 오히려 알파피시.’
반년 동안 황성에 머물면서 아벨라와 제이스틴은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각자의 인연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으나, 실상은 전략적인 판단이었다.
“유스 아벨라. 이제 당신의 손에 수많은 자들의 목숨이 달려 있습니다. 알고 계시죠?”
“걱정 마세요. 실수하지 않을 겁니다.”
최고 전문가들과 함께 분석과 학습을 거듭한 아벨라의 얼굴에서는 긴장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하비츠 아저씨, 내가 가요. 당신을 죽이러.’
황제의 성격이 포악하니 시종들이 도망치고 인력 기근에 시달리는 건 당연한 수순.
“출발하겠습니다.”
알파피시의 첫 번째 임무는 구스타프 제국의 시녀로 들어가 하비츠를 알현하는 것이었다.
율법 살인 (2)
***
구스타프의 황성 마르사크는 제국의 시녀가 되기 위해 찾아온 여성들로 바글거렸다.
‘어떻게 이럴 수가…….’
하비츠의 악명이 세계 곳곳에 퍼진 와중에도 무려 300명이 넘는 자들이 지원했다.
“황제 폐하가 어떤 분이신지 알고 온 거예요?”
좌측 열에서 대기하고 있는 턱이 뾰족하고 차갑게 생긴 여성에게 물었다.
“흥, 너도 마찬가지잖아. 서로 말은 삼갔으면 좋겠는데. 앞으로는 경쟁자니까.”
‘나는 아닌데…….’
다른 후보들과 달리 아벨라는 하비츠를 죽이기 위해 찾아온 사람이었다.
“돈 때문인가요?”
여자가 싸늘하게 돌아보았다.
“그럼 뭐겠어? 출신 불문, 페이는 말할 것도 없고 직원 복지도 뛰어나지. 무엇보다 황성의 시녀가 되는 거야.”
평민의 가치는 귀족이 정하고, 황성의 시녀라면 귀족들도 낮게 보지는 않는 위치였다.
“하지만 폭군이잖아요?”
모두 아벨라를 돌아보았고, 현장의 분위기는 북극처럼 얼어붙었다.
“어이, 너 지금 뭐라고 했지?”
시녀를 인솔하는 경비대장이 살기를 눈에 담으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괜찮아. 나는 괜찮을 거야.’
아벨라가 프로젝트에서 가장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은 하비츠를 사랑하는 것이다.
알파피시 본래의 가치를 상실하면 율법이 뒤틀리고, 그러면 모든 게 끝이었다.
“조금 전에 했던 말, 다시 내뱉어 봐. 내 귀가 이상한 것이기를 신께 기도하는 게 좋을 거야.”
“하비츠 아저씨는 폭군이에요.”
황제에 대한 경의조차 없는 대꾸에 경비대장이 칼을 뽑아 들었다.
“날 죽이면 당신도 죽어요.”
칼날이 아벨라의 목 언저리에서 우뚝 멈췄다.
“그게 무슨 뜻이지?”
“저는 황제를 모시려 여기에 온 게 아니거든요. 개인적으로 하비츠 아저씨를 만나러 왔어요.”
“네가…… 황제 폐하를 안다고?”
“의심스러우면 상부에 보고하면 되잖아요. 하비츠 아저씨에게 아벨라가 왔다고 전하세요.”
차마 그럴 용기는 없었다.
‘난처하게 됐어.’
게다가 만의 하나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절대로 무례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남에게 맡기자. 괜히 얽혔다가는 죽는다.’
검을 갈무리한 경비대장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며 한마디를 내뱉었다.
“조용히 있어. 모든 일에는 절차가 있는 법이다.”
꽁무니를 빼는 모양새였고, 아벨라는 경비대장의 등에 대고 혀를 삐죽 내밀었다.
황당한 일을 지척에서 보고 있던 여자가 충격을 받은 눈으로 말했다.
“너, 미쳤어? 어쩌자고 그런 거짓말을 해?”
시녀 후보답게 임기응변에 뛰어난 것은 인정하지만 사실이 밝혀지면 그 자리에서 사망이었다.
“일단은 살고 봐야죠. 그리고 저 경비대장은 확인도 못 할걸요, 새가슴이라서.”
여자가 피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정식으로 인사하자. 나는 마나카 출신 카테니아. 나이는 서른두 살. 내가 언니지?”
“네. 저는 아벨라예요. 스물세 살이고요.”
통성명을 끝내고 카테니아가 물었다.
“그런데 너 정말 간 크다? 어떻게 제국의 황제를 모욕하는 말을 그렇게 쉽게 내뱉어?”
솔직히 모르겠다.
‘하비츠 아저씨.’
그의 기행에 가까운 악행을 들을 때면 치가 떨리지만 마음속 한구석에서는…….
-으응, 괜찮아. 괜찮아.
그가 등을 쓰다듬으며 괜찮다고 했을 때, 생애 처음으로 울타리를 가진 기분이었다.
“그야 뭐, 사실이니까요.”
아벨라는 어깨를 으쓱하며 둘러댔다.
“하긴……. 나도 솔직히 말하면 무서워. 하지만 나이가 있으니까 측실로는 들어가지 않을 거라는 기대는 하고 있지. 아, 미안해.”
카테니아와 달리 아벨라는 하비츠의 잠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적령기였다.
“괜찮아요. 저는 사실 측실로 들어갈 거거든요.”
“뭐?”
아무리 돈이 좋은 카테니아도 하비츠의 곁으로 가야 한다면 생각을 달리했을 터였다.
“4조 입장!”
경비대가 성문을 개방하자 30명의 인원이 우르르 아치를 통과했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인공 구조물답게 황성의 길은 끝이 없었고, 마침내 널찍한 중앙 관청 앞에 멈췄다.
‘왔군.’
1차 면접을 보는 장소에는 또 다른 카샨의 첩자가 은밀하게 침투해 있었다.
여황 우오린의 자객, 엘 크라우치.
한때 인형 제작자였던 그는 동방의 인형사에게 흑마술을 배워 자신의 육체를 인형으로 개조했다.
‘남은 생명은 2개.’
도자기 인형에 자신의 생명을 분산시켜 200년이 넘게 살았으나 이제 그것도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하긴, 오래 살았지.’
카샨을 떠나는 날, 우오린이 말했다.
“미안하다, 크라우치.”
살점을 붙이지 않은 크라우치가 고개를 들자 내장 대신 채워진 기계장치가 돌아갔다.
“여황님이 사과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우오린이 씁쓸하게 웃었다.
“우린 참으로 오래 만났지. 을 마르사크로 옮길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밖에 없구나.”
“영광입니다.”
크라우치의 임무는 운반조였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나 발칸이다. 군중기를 읽는 그에게는 다수의 자객을 보낼 수가 없어.”
“복수複數. 1명의 살기는 읽을 수 없으나 2명 이상의 살기는 눈치챈다는 것이죠.”
“그래. 숫자가 늘어날수록 군기는 선명해지겠지. 현재 알파피시는 하비츠에 대한 적의를 없애는 쪽으로 훈련 중이다. 따라서 네가 잠입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어.”
“진짜 문제는 계획 당일.”
알파피시가 살기를 드러내면 크라우치에 더해 2명이 되므로 발칸이 군기를 읽어 버린다.
“알파피시가 하비츠를 죽이는 순간에는 제가 죽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단수單數여야 되고, 목숨이 여러 개 있는 크라우치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두 번 죽어야 할 수도 있다.”
“…….”
그렇게 되면 영원한 사망이다.
“을 알파피시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초기화’를 거쳐야 해. 그 과정은 위험하다.”
“알고 있습니다, 여황 폐하.”
“그러니 크라우치.”
우오린이 크라우치에게 다가갔다.
“목숨이 2개여서 맡긴 게 아니다. 너라면…… 한 번은 빠져나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야. 죽지 마라.”
철사로 만든 크라우치의 얼굴근육이 뒤틀리더니 입 모양이 비죽하게 올라갔다.
“여황님이 주신 삶입니다. 제가 드린 도자기 인형이 모두 깨진다고 해도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뜻이 아니지 않느냐.”
크라우치는 눈웃음을 지었으나, 눈꺼풀이 없어 그저 크게 뜬 것처럼 보였다.
“저에게까지 소녀처럼 구실 필요는 없습니다.”
우오린이 볼을 부풀렸다.
“뭐어?”
“돌아오는 그날까지, 옥체 보존하십시오.”
카샨을 떠난 크라우치는 마르사크의 시녀를 암살하고 그녀의 역할을 대신 수행했다.
‘내 이름은 오르페.’
변장술의 달인답게 외모는 물론 성격, 사소한 습관까지도 완벽하게 모방한 상태였다.
1차 면접장에 있을 것이라는 작전은 알고 있는 아벨라도 크라우치를 찾을 수 없었다.
‘날 지켜보고 있을 텐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자 크라우치는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서로 알아서 좋을 것 없지.’
대기하고 있던 면접관들이 4조의 여성들에게 다가와 신체검사를 실시했다.
몸을 더듬어 남자인지 여자인지 확인하고, 문신을 새긴 여성도 탈락이었다.
“통과. 다음 관문으로.”
6명의 여성들이 탈락했고 남은 24명이 경비를 따라 도착한 곳은 작은 대기실이었다.
“1차 면접에 통과한 것을 축하하네.”
염소수염을 기른 관리가 명부를 들고 단상에 섰다.
“물론 앞으로 2차, 3차, 4차 면접에 최종 시험까지 치러야 하지만 말일세.”
시녀들의 눈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최종 발탁은 30명. 10분의 1이 탈락하는 경쟁이지. 하지만 이 관문에서 특채를 뽑을 것이네.”
“특채?”
시녀 후보자들이 웅성거렸다.
“혹시 이 중에서 천황전, 그러니까 황제 폐하를 곁에서 보필할 생각이 있는 사람 없나?”
살인마의 수발을 들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차가운 정적이 흘렀다.
“강요하는 것은 아닐세. 하지만 어차피 최종에는 추첨으로 뽑게 되어 있어. 합격할 자신이 없다면…….”
“제가 할게요.”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이고, 카테니아가 황당한 표정으로 말을 더듬었다.
“너, 너…….”
아벨라가 어깨를 으쓱했다.
“말했잖아요, 이런 거라고.”
관리가 그녀의 명찰에 달린 번호를 확인하고 장부를 빠르게 넘겼다.
“흐음, 유스 아벨라라. 집시 출신이고…….”
특별한 이상은 없어 보였다.
“저쪽 문으로 가게. 시녀들이 재검을 해서 특별한 이상이 없으면 바로 합격이네.”
“네. 그런데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죽는 사람 소원이라는 셈으로 관리가 장부를 덮으며 턱을 치켜들었다.
“말해 보게.”
“하비츠, 아니 황제 폐하께서 저를 기억하실지도 모르니 미리 언질을 드릴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