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herited the throne of the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220
65장. 가야 토벌(3)
“탯줄을 품은 인간은 들어가면 안 된다고?”
설명해달라는 뜻을 담아 바리를 돌아보았다.
“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인과를 설계했는지 모르겠지만 인간이 저 안으로 들어가면 끝내 탯줄이 본래의 형태를 잃고 엉키게 될 거예요.”
바리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확히는 저 안에 갇혀 있는 어떤 존재의 영향을 받아서 그것에 접근하는 이들까지 탯줄이 엉켜버리는 건데…….”
설명을 하면서도 바리는 이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
“어쨌든 저 공간 자체가 한 사람의 탯줄이 엉키면서 이루어졌어요.”
한 사람의 탯줄이 엉키면서 만들어진 공간이라니.
예상치 못한 말에 단군이 남긴 메시지를 곱씹었다.
-세 번째 방법을 사용한 대가로 그의 성역에는 꽤 까다로운 주술이 걸려 있습니다.
-수로왕이 머무는 성역, 정확히는 그가 갇혀 있던 교도소 말입니다.
-그 교도소를 누가 지었는지 한번 알아보시는 것도 좋을 겁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것만은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우주에게 청하는 세 번째 방법.
수로왕이 세 번째 방법으로 완성한 주술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단군의 조언대로 수로왕이 갇혀 있던 교도소에 대해 조사하며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교도소를 세운 이의 정보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단군이 정리하기 전의 한반도는 분명 몹시 혼란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한들 헌터 시대가 열리고 국가가 전복된 이후 최초로 교도소를 설립한 자에 대한 기록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것은 지나치게 부자연스러웠다.
말하자면 그는 단군 이전에 만인의 칭송을 받았던 영웅.
교도소가 세워진 것은 세상이 뒤집어지고 꼬박 10년이 지난 뒤였다.
당시 한반도는 치안을 유지할 체계가 없어 악인이 작정하고 악의를 품으면 약자는 그저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는 처참한 상태였다.
그러한 때에 수로왕을 가둔 교도소는 한반도에 최소한의 법과 질서가 돌아왔다는 상징성을 지녔다.
수로왕은 그 당시에도 경상도 일대에서 막강한 힘으로 약자를 착취하며 군림했던 이름난 악인이었다.
그렇기에 그를 제압하고 교도소에 가둔 그 각성자는 영웅이 되었다.
수로왕을 단순히 힘으로 제거했다면 그저 힘이 모든 것이었던 그때까지의 약육강식과 다를 바가 없었을 터.
하나 수로왕이 죄수 신분이 됨으로써 그는 약해서가 아니라 악인이었기 때문에 벌을 받은 것이 되었다.
법과 질서를 잃어버렸던 한반도의 사람들에게 그 사실이 말하는 바는 매우 컸다.
강력한 구심점이 생기자 그를 따라서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악인을 벌하겠다는 이들이 많아졌고,
그들이 대규모의 자경단을 결성하면서 일대의 치안이 좋아졌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
그 믿음이 약간이나마 돌아오게 한 것만으로도 그는 분명 영웅이라고 불릴 만했다.
한데 4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어디에서도 영웅의 이름 석 자를 알 수 없었다.
돌이켜 보면 그때 내가 아무리 저승의 차사로 지냈다고 한들,
이승에서 그 정도로 큰 사건이 있었는데도 사건의 핵심 인물을 알지 못하는 것은 확실히 이상했다.
우리 대왕님께서 이승으로 나가는 것을 금지하신 것이 20년 전이다.
하다못해 그사이 그가 죽기라도 했다면 분명 차사들 사이에서 어느 지옥의 누가 이번에 그를 데려왔다며 말이 나왔을 것이다.
유명한 망자를 데려오는 것은 제법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였으니까.
대왕님께서 관심 가지셨던 바둑기사의 이름도 아는 내가 그런 영웅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다.
한데도 나는 지금껏 그런 영웅이 있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인터넷이나 자료를 뒤져봐도 수로왕이 갇혔던 교도소가 한 자경단의 업적이라는 짤막한 언급만이 전부였다.
마치 인위적으로 기록을 지워버린 것처럼 부자연스러웠다.
그러던 차에 수로왕이 머무는 성역에 탯줄이 엉켜버린 누군가가 갇혔다는 말을 들으니, 비로소 무슨 일인지 조금 감이 잡혔다.
탯줄은 한 영혼이 윤회를 거듭하며 쌓아온 카르마다.
탯줄이 본래의 형태를 잃고 엉켰다면 쌓아온 카르마가 왜곡되었다는 뜻이고,
카르마가 왜곡되었다는 것은 결국 존재 자체가 흔들린다는 뜻이다.
즉, 바리가 가리킨 이가 40년 전 수로왕을 교도소에 가둔 그 영웅이라면.
그의 존재 자체가 흔들리면서 아예 세상에서 기록이 사라진 것은 아닐까.
……물론 한 사람이 품은 탯줄이 세상 전체에 그만큼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남는다.
하지만 정말로 그 영웅이 맞는다면.
혼란했던 세상에 최초로 질서를 가져다준 영웅이 존재가 지워진 채 가혹한 주술에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건 너무 비참하지 않은가.
수로왕이 영웅을 주술의 핵심으로 만든 것이 40년 전 그를 가둔 일에 대한 복수라면, 참으로 끔찍한 복수였다.
“다른 차사님들은 상관없으시겠지만, 탯줄을 품은 오빠와 저는 시간을 지체할수록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커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때 바리가 말을 이었다.
“그래도 저만한 주술을 시전했다는 건 수로왕도 큰 대가를 치렀다는 뜻이겠죠.”
***
인간은 오래 머물면 탯줄이 왜곡되어 버린다는 공간.
그런 위험이 있음에도 그동안 수많은 도사들이 수로왕에게 도전했다는 것은,
세 번째 방법을 통해 그러한 공간을 설계하는 대가로 수로왕에게도 어떤 약점이 생겼다는 뜻이겠지.
단군이 남긴 메시지를 그렇게 해석하며, 나는 차에서 나와 일행들과 함께 수로왕이 있는 건물로 향했다.
본래는 수로왕을 가둔 영웅이 세운 교도소였으며,
어느 순간 전설급 던전으로 변한 곳이자,
이제는 수로왕이 전설급 각성자로서 도전자들을 기다리는 그의 영역.
“다섯 개의 층마다 다른 독물이 지키고 있다더군요.”
강림 형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에게 접근했던 괴한들을 정리하면서 건물에 대한 정보를 얻어낸 모양이었다.
“1층은 지네, 2층은 전갈, 3층은 도마뱀이라고 합니다만 그 이상은 알지 못하더군요.”
“음? 그러면 그거 그냥 오독(五毒)인가 본데?”
형의 말에 호구별성이 팔짱을 꼈다.
“보나 마나 나머지는 두꺼비랑 뱀이겠구만.”
오독이라면 독을 가진 다섯 가지 특정 동물을 한데 묶어서 이르는 말이었다.
독에 정통한 역신은 자신의 추측에 확신하는 기색이었다.
“아마 맞을 거예요. 주술을 짤 때는 그런 규칙을 넣는 게 효과적이니까요.”
호구별성의 추측에 바리가 긍정했다.
“독물만 한자리에 모아두었다니 꼭 무고(巫蠱) 같구나.”
듣고 있던 사라가 무심히 말을 보탰다.
“온갖 독물을 한데 모아놓고 서로를 잡아먹게 만들면 아주 독한 저주가 완성되지.”
건물의 입구에 선 바리가 문을 가리켰다.
“환각을 거는 방진이 있어요.”
문이 지저분해서 눈에 잘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바리의 말대로 검붉은 방진이 그려져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환각으로 풍경을 바꾸고 공간을 뒤틀어 우리를 떨어뜨려 놓겠죠.”
바리가 우리를 돌아보며 마저 설명했다.
“이런 주술의 파훼는 보통 방진에 힘을 부여하는 매개를 파괴함으로써 이루어져요.”
그렇다면 매개를 파괴하는 것은 아마 바리나 내가 되어야 할 터였다.
환각으로 시야가 왜곡되면 도사의 눈을 가진 바리나 업경으로 인과를 읽을 수 있는 나만 제대로 매개를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
바리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건물의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츠츠츠.
살갗을 타고 축축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물감을 휘젓듯 주변이 소용돌이쳤다.
“이런…… 생각보다 훨씬 넓은데.”
순식간에 바뀐 광경에 주위를 둘러보며 작게 탄식했다.
비가 내린 것처럼 젖은 숲속에 어느새 나 혼자뿐이었다.
바리의 예고대로 곧장 일행을 떨어뜨려 놓는 주술이 발동된 것이다.
“윽…….”
주변의 풍경에 집중하자 불현듯 아찔한 현기증이 일었다.
“탯줄이 엉킨다는 게…… 이런 거였나.”
젖은 숲속 위로 거미줄처럼 얽힌 투명한 탯줄이 겹쳐 보였다.
집중할수록 탯줄은 더욱 선명하게 보였는데, 선명히 보이면 보일수록 그것이 품은 인과가 내게 밀려들어 나를 어지럽게 했다.
“으윽…….”
나도 모르게 신음하며 입가를 감싸 쥐었다.
탯줄은 하나의 영혼이 윤회를 거듭하며 쌓아온 카르마였다.
여러 사람이 쌓아온 막대한 인과가 여과 없이 밀려들자 마치 보이지 않는 폭풍에 휩쓸린 양 좀처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런 와중 가장 괴이한 것은, 그렇게 휘몰아치는 인과에서 정작 그것을 품었던 인간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수없이 많은 기억이 담긴 필름 한가운데 서 있는데 정작 기억의 주인은 보이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무슨 조화인지는 모르겠으나 꼭 탯줄만 남기고 그 탯줄의 주체는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하아아…….”
간신히 업경을 닫고 숨을 골랐다.
그새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으며 다시 주변에 집중하는데, 이번에는 근처에서 낯선 기척이 느껴졌다.
가가각!
순식간에 가까워진 기척에 본능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촤아아악!
검의 끝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나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베어냄과 동시에 그것이 품은 막대한 인과가 또다시 폭풍처럼 나를 강타했다.
다만 밖에 산재했던 탯줄의 인과와 달리 이번에는 그 끝에서 탯줄의 주인인 영혼까지 느껴졌다.
“……!”
기이한 감각에 눈을 크게 뜨며 뒤로 물러섰다.
가가각!
가가가각!
내가 베어낸 그것이 큰 몸에 달린 수많은 다리를 꿈틀거렸다.
1층을 지키는 거대한 지네였다.
“……도령님 표현이 맞았구나.”
지네를 올려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것의 거대한 몸에는 내 검에 베인 흔적이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벌어진 상처의 틈으로 보이는 것은 거미줄처럼 뒤엉킨 투명한 탯줄이었다.
다시 말해 이 지네는 무수히 많은 탯줄과 혼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여긴 결국 거대한 무고(巫蠱)였어.”
무고는 독충이나 뱀 같은 독물을 항아리에 집어넣고 서로 잡아먹게 만들어 하나만 살아남게 만드는 주술이었다.
그렇게 살아남은 독물은 강한 원한을 품은 귀물이 되어 강력한 저주의 매개가 된다.
무고 중에서도 가장 사악하고 위험한 것은 독물이 아니라 사람으로 만드는 무고였다.
사람끼리 서로를 잡아먹게 만들어서 만드는 무고.
“수로왕은 자기한테 도전한 수많은 인간들의 혼과 탯줄을 하나로 엮어서 귀물을 만들고 있었던 거야.”
그것을 깨달은 순간 지네로부터 끔찍한 귀곡성이 들려왔다.
-아아아!
-아아아아아!
왜곡된 탯줄과 함께 하나로 엉켜버린 혼들의 귀곡성에서 그들의 기억이 함께 전해졌다.
그들은 단순히 지네에게 잡아먹힌 것이 아니었다.
공간을 이루는 주술로 인해 탯줄이 왜곡되면서 혼과 육의 경계마저 허물고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존재가 된 것이었다.
그렇게 존재가 무너진 이들이 지네의 형태로 합쳐졌다.
말하자면 인간을 살아있는 채로 우주퇴적물을 만드는 주술이었다.
여러 사람들의 카르마가 뒤엉킨 지네는 북유럽에서 보았던 우주퇴적물을 품은 마법 생명체와 본질이 같았다.
“단군이 내게 막아달라는 테러가 이런 것이었나…….”
3만 명의 사망자가 나오는 테러란, 정확히는 살아 있는 인간을 이러한 귀물로 만드는 테러겠지.
만들어진 귀물은 3만 명을 시작으로 끊임없이 탯줄과 혼을 집어삼키려 들 테고.
분명한 것은 이번에 수로왕을 막지 못하면 한반도 전체가 인간들이 서로를 잡아먹는 무고가 되리라는 사실이다.
“…….”
전말을 파악하면서 무심결에 가슴 위로 손을 올렸다.
이 공간이 왜곡하는 것은 탯줄.
시간이 지체되면 나 또한 무사할 수 없다.
가가각!
그것을 실감하자마자 지네가 수많은 다리를 휘두르며 내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