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herited the throne of the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292
82장. 걸음을 멈출 수 없을지니(6)
태권도 로봇을 탄 탈해가 나무쥐에게서 황금 열쇠를 탈취했다.
[ (!) 공간의 지배법칙이 바뀝니다. ]던전이 진행되면서 공간이 다시 한번 바뀌었다.
쥐 떼들만 가득했던 쥐구멍이 아닌, 온갖 물건들로 가득한 창고 안이었다.
중앙에는 커다란 테이블이 놓여 있고 벽에는 긴 선반이 여러 층 매달려 있었다.
-드르렁. 크흥. 크허엉.
창고의 문은 반쯤 열린 채였는데 바깥으로부터 천둥 같은 코골이 소리가 들렸다.
아마 저택의 주인인 거인이 멀지 않은 곳에서 낮잠을 자는 것 같았다.
[ ‘신비한 콩을 키우면 – 보물창고’에 입장하벨곽땍귀룔흐흐흐니다! ]– (!) 해당 던전의 베냈굵렷듸흐흐흐은 ‘영웅담’입니다.
– 클리어 조법맸꿨흐 : 콩나베뢰꿨흐 밑 복귀
“콩나무 밑으로 복귀라.”
새로운 클리어 조건을 확인한 단군이 일행들을 돌아보았다.
“우선은 설화대로 스스로 노래하는 하프를 손에 넣고 거인을 깨우면 되겠습니다.”
“대충 거인한테서 무사히 도망쳐서 나무 밑으로 내려가라는 거구나.”
알아들었다며 호구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어째 저 검은 것들이 훨씬 더 많아졌다만.”
사라는 바뀐 공간을 돌아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주변은 보물창고에 걸맞게 보석이나 금화, 화려한 장신구 등으로 가득했지만, 인과를 삼키는 검은 소용돌이가 부엌 이상으로 잔뜩 산재해 있었다.
“던전이 진행될수록 필드의 인과가 무너지고 있군요. 아마 필드를 설계한 청탑주 본인도 퍽 당황했을 겁니다.”
사라의 지적에 단군이 설명을 보탰다.
“이대로 던전의 최종 단계에 돌입할 때쯤이면 소용돌이들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있을 테지요.”
“염병, 본인도 감당 못 할 짓은 왜 저질렀대?”
“뭐, 죽을 때가 된 도사는 원래 다 그런 법이지.”
설명을 들은 호구별성이 짜증을 내자 사라가 건조하게 한마디 했다.
“우선은 하프부터 찾아야겠네요.”
나는 그들에게서 눈을 돌리며 창고의 안을 둘러보았다.
“근데 너무 넓어서 이대로는 하프를 찾는 것도 벅차겠는데.”
거인의 보물창고는 부엌이나 쥐구멍과 마찬가지로 무척 넓었다.
곳곳에 탑처럼 쌓인 금화 하나하나가 내 키와 맞먹을 정도였다.
바닥을 굴러다니는 보석이나 반지 따위는 길을 막는 바위와 다름없었다.
“테이블 위나 선반은 아예 눈에 닿지도 않을 지경이고.”
바닥에 쌓인 보물들도 문제였지만, 혹여 그 밑에 없다면 더욱 문제였다.
이 작은 몸으로는 그만큼 높이 올라가는 것도 난관이었으니까.
힘을 빌려줄 든든한 우군이 때마침 도착하지 않았다면 상당히 곤란해졌을 터였다.
“역시 탈해가 세 번째로 온 게 딱 맞았네요.”
번쩍이는 금화탑 사이에 우뚝 선 태권도 로봇을 올려다보았다.
로봇 뒤로 웅장하게 늘어선 전투기들이 화답이라도 하듯이 날렵하게 빠진 기체를 빛냈다.
-레이더 감지 결과 바닥에는 하프와 비슷한 물건이 없습니다, 대왕님.
벌써 창고 탐색을 시작했는지 탈해가 바로 응해 왔다.
그가 조종하는 태권도 로봇도 듬직하게 어깨를 펴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종석의 탈해는 보이지 않지만 그의 행동을 어느 정도 그대로 반영하는 모양이었다.
-테이블 위로 올라가시겠다면 저와 가신들이 모시겠습니다.
“음, 그럼 그래줄래요?”
나도 로봇을 올려다보며 똑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위이잉!
위이이잉!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가신들의 전투기에서 은색 집게가 내려왔다.
쥐구멍에서처럼 집게로 우리의 허리를 단단히 붙잡은 전투기들이 V자를 그리며 힘차게 날아올랐다.
전투기가 속력을 높이자 훅 하니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칼이 휘날렸다.
-혹시 모르니 수색용 드론도 함께 띄워 두겠습니다.
전투기들의 앞에 자리한 탈해가 태권도 로봇의 팔을 뻗으며 말했다.
주먹을 쥔 로봇의 손등에서 여섯 대의 드론이 분리되어 높이 날아올랐다.
흩어진 드론들은 각각 벽에 걸린 선반 위로 하프를 찾아 나섰다.
“위에도 소용돌이가 가득하군.”
테이블이 가까워지자 강림 형이 발밑을 내려다보며 미간을 좁혔다.
화려한 깃펜과 반듯한 실크해트, 귀해 보이는 양피지 따위가 늘어진 테이블에는 검은 소용돌이가 검버섯처럼 곳곳에 피어 있었다.
“보물들에 인과가 심어져 있어요. 아마 테이블 위를 헤맬 때 방해하는 역할이겠죠.”
바리가 문자를 흘리며 차분하게 말했다.
슈웅!
바리의 말에 시험이라도 하듯 태권도 로봇의 가슴에서 작은 미사일이 발사되었다.
파자작!
그 순간 얌전히 놓여 있던 실크해트가 마치 뚜껑을 따듯 기울어지더니,
먹이를 덮치는 고양이인 양 미사일을 모자 안으로 쏙 삼켜버렸다.
“호오, 저런 식의 함정이군.”
흥미롭다는 듯이 사라가 턱을 만졌다.
“다른 보물들에도 함정이 깃들어 있는데 아무래도 소용돌이들과 서로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바리가 설명을 이었다.
“모자가 삼킨 미사일은 아마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곳으로 빨려 들어갔을 거예요.”
-저런, 닿지 않게 조심하겠습니다.
주의를 들은 탈해와 가신들이 한층 높이 떠올라서 테이블 위를 누볐다.
“아, 저기……!”
잠깐의 비행 끝에 나는 테이블 끝에 자리한 황금색 물체를 가리켰다.
“저기 하프가 있어요, 탈해!”
알록달록한 향수병과 치렁치렁한 목걸이들 사이에 장식처럼 놓인 작은 켈틱 하프였다.
바닥에 놓는 페달 하프보다 작다곤 하나 태권도 로봇보다 훨씬 더 커다란 크기였다.
현을 매달아 놓은 틀의 앞쪽에는 천사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었는데, 정말 살아 있는 것처럼 이쪽저쪽 눈을 굴려 댔다.
“야, 너무 큰데? 저건 또 어떻게 가져간다냐?”
하프를 본 호구별성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로봇으로도 못 드는 거 아니야?”
-음, 어떨까요. 태권도 로봇은 기체의 중량에 최대 100배까지 들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호구별성의 염려에 탈해가 가능할 것 같다며 하프에 접근했다.
지이잉!
두 주먹에 신성을 발한 태권도 로봇이 위엄 있게 팔을 뻗었다.
그러고는 하프를 번쩍 들어 올렸다.
“오오! 이거 완전 천하장사구만!”
호구별성이 짝짝 박수를 쳤다.
하프가 워낙 큰 탓에 태권도 로봇은 꼭 자기 몸보다 훨씬 큰 빵조각을 짊어진 개미처럼 보였다.
“우와아…….”
나도 옆에서 함께 감탄하며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한데 하프를 들어서 옮기는 로봇을 지켜보자니 문득 스치는 의문도 있었다.
“그런데 이러면 탈해가 없었으면 아예 공략이 불가능했겠는데.”
지금이야 태권도 로봇의 힘으로 하프를 탈취했다지만 만약 탈해가 없었다면 하프를 가져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터였다.
자연히 던전의 공략 또한 막혔을지도 모른다.
“함정이 깃든 보물들 중 대상을 작게 만드는 보물이 있습니다.”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단군이 말했다.
그가 문자를 흘리며 테이블을 살피다가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화려하게 수놓인 손수건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하얀 손수건이로군요. 원래라면 저것으로 하프를 작게 만들어서 손에 넣는 순이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테이블 위의 보물들은 역할이 두 개라는 소리였다.
보물들의 방해를 피해 하프를 찾아내면서 동시에 하프를 작게 만드는 보물도 찾아내야 했겠지.
“하나 지금은 보물들의 인과가 왜곡되어 있어 손수건을 쓰기도 쉽지 않았겠지요. 근처에 갔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그럼 어쨌든 탈해가 와서 공략이 가능해진 것은 맞다는 거네요.”
단군의 설명에 작게 한숨을 내쉴 때였다.
-아아♪
하프에 새겨진 천사의 얼굴이 불쑥 입을 크게 벌리며 목소리를 내었다.
-아♩아아♩♬ 아아아♪♬♩
귀에 들리는 것은 분명 새가 지저귀는 것처럼 아름다운 노랫소리였다.
쿠우웅!
쿠우우웅!
하나 하프가 노래를 시작하자 창고 전체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팝업창이 뜨더니 테이블에 가득했던 보물들마저도 심상치 않게 요동쳤다.
“헉! 저것들 움직인다!”
호구별성이 독기를 뿜으며 테이블의 보물들을 가리켰다.
실크해트며 잉크펜, 향수병, 모든 것들이 갑자기 한꺼번에 우리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허.”
난데없는 맹공격에 사라가 작게 혀를 찼다.
“다른 건 몰라도 저 권총만큼은 정말로 위험해 보이는구나.”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손잡이로 벌떡 일어선 권총이 곧게 뻗은 총신을 번쩍였다.
타아앙!
발사된 탄환이 태권도 로봇과 전투기 사이를 뚫고 지나갔다.
-태권도 로봇과 전투기들은 상당한 타격에도 버틸 수 있게 설계되었으니, 혹 몇 대 맞더라도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우리를 안심시켜주려는 듯 탈해가 말했다.
퍼어어억!
한데 발사된 탄환이 창고의 벽을 뚫는 순간.
탄환에 뚫린 구멍에서 새까만 소용돌이가 새로이 휘몰아쳤다.
한눈에 봐도 먼저 있던 것들보다 훨씬 더 커다란 규모였다.
-음, 맞지 않게 조심하겠습니다.
소용돌이를 확인한 탈해가 곧바로 덧붙였다.
타앙!
타아앙!
타앙!
이윽고 쉴 새 없이 빗발치는 총탄에 탈해와 가신들이 바짝 긴장했다.
-속도를 높이겠습니다, 대왕님!
탈해가 태권도 로봇을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슈우우웅!
가신들의 전투기도 한층 더 맹렬한 기세로 바람을 갈랐다.
탕!
타아앙!
탕탕!
-우선 창고 밖으로 나가시면 됩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총성 속에서 단군이 말했다.
-보물들은 창고 밖에서는 작용하지 못합니다.
그의 안내를 따라 탈해와 가신들이 무사히 창고의 문을 넘었을 때였다.
[ (!) 하프의 노랫소베뚱몄귿땟흐흐흐 거인이 깨어베검띄받듬흐흐흐다. ] [ (!) 하프의 노랫소베뚱몄귿땟흐흐흐 거인이 깨어베검띄받듬흐흐흐다. ] [ (!) 하프의 노랫소베뚱몄귿땟흐흐흐 거인이 깨어베검띄받듬흐흐흐다. ]……
뜻밖에도 오류가 섞인 팝업창이 무수히 시야를 가로막았다.
파지직!
파지지직!
무한히 뜬 팝업창은 자기들끼리 부딪치며 기묘한 스파크를 일으켰다.
파장창창!
그러더니 한순간에 수많은 파편을 흩뿌리며 폭발하듯이 터져버렸다.
이번에는 수많은 팝업창에 갇혔던 태권도 로봇과 전투기들까지 휘말린 폭발이었다.
쿠웅!
쿠우웅!
한순간에 바닥에 내쳐지면서 로봇이며 전투기들, 그리고 전투기들이 붙잡고 있던 나와 일행들까지 모두가 바닥을 뒹굴었다.
“으윽…….”
현기증에 작게 신음하며 몸을 일으켰다.
한데 비틀거리며 일어서다가 문득 이상함을 알아챘다.
전투기들과 함께 하늘에서 내동댕이쳐졌는데도 고통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몸은 멀쩡하다……?”
어디가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몸에 생채기 하나 없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닌지 다른 일행들도 머리나 옷만 좀 헝클어졌을 뿐 멀쩡하게 몸을 일으켰다.
다치지 않은 것이야 다행이었지만 분명 이상한 일이었다.
“공간 전체의 인과가 점점 더 꼬이고 있습니다.”
영문을 알 수 없어서 인상을 찌푸리는데 단군이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이번에는 운 좋게 몸이 다치지 않았다는 유리한 쪽으로 풀렸습니다만, 계속해서 상식 밖의 일이 벌어질 겁니다.”
“이게 인과가 꼬여서 그런 거라고요?”
황당하게까지 느껴지는 설명에 그를 돌아보는데 불쑥 묵직한 진동이 울렸다.
쿠웅!
쿠우웅!
땅 전체가 흔들리는 울림에 본능적으로 그쪽을 돌아보자 용왕의 본신만큼이나 굵고 거대한 기둥이 둘 보였다.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이 생긴 한 쌍의 기둥에 호구별성이 깜짝 놀라 어깨를 떨었다.
“거인이다!”
그녀가 기둥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거인의 다리야!”
“잠깐…….”
나는 그녀를 거인을 올려다보며 숨을 삼켰다.
“저건…… 청탑주?”
어찌 된 일인지 거인에게서는 이전에 느꼈던 청탑주의 기운이 느껴졌다.
목을 최대한 빼서 올려다봐도 거인의 정강이나 겨우 보일 정도였지만, 업경은 그것에서 선명하게 청탑주의 존재를 읽어내었다.
“청탑주가 필드의 제어를 완전히 잃었군요.”
옆에 선 단군이 거인의 인과를 읽으며 문자를 흘렸다.
“설계자인 그에게까지 번지는 왜곡을 피하기 위해 거인과 융합한 겁니다.”
그의 말과 동시에 거인의 발이 금방이라도 우리를 밟아버릴 것처럼 드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