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137
137====================
30. 격돌
그렇다. 미친개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일단 피하는 것이 옳다.
성소를 빠져 나온 형진과 크루그는 서로 말을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양쪽으로 갈라졌다. 공교롭게도 둘 다 라이언하트의 사용자였고, 이 스킬은 한 명의 추격자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가장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것에 도움을 주었다. 모르긴 해도 처음 라이언하트라는 스킬을 창조해낸 사람이 이 모습을 봤다면, 이런 데다 쓰라고 만든 스킬이 아니었다며 자괴감이 들 것 같은 모습이긴 하지만 어쨌든 그랬다.
크고 작은 두 신사가 두 방향으로 갈라지자, 잠시 멈칫하던 제랄딘은 누가 봐도 명백하게 이 사건의 주범이라 할 수 있는 형진의 뒤를 쫓았다.
“에엑! 어째서! 이런 경우엔 아직 풋내 나는 소년의 뒤를 쫓아가서 올바른 이성관을 가질 수 있도록 바람직한 성인 여성의 교육적 지도를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미안해요. 아쉽게도 전 어린애 취향이 아니거든요.”
“그럴 수가!”
꽝! 꽝! 꽝!
그렇게 형진의 개소리에 답하면서도 제랄딘은 시간차로 공격을 가했다. 채찍보다는 오히려 검은 뇌전이라는 말이 어울릴 법한 그녀의 공격이 연속으로 쏟아지자, 형진은 기겁하며 얼른 바닥을 굴러 공격을 피했다.
“히익!”
“어머나. 고작 이 정도 공격에 겁먹으신 건가요? 변태 신사님!”
“제가 생각보다 연약한 몸이라.”
“엄살이 심하시네요.”
겉으로 보기엔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지만, 약삭빠른 형진의 몸놀림과 그 와중에도 쉬지 않고 나불거리는 입이 제랄딘의 화를 더욱 일깨우고 있었다. 어느 정도냐면 미꾸라지처럼 공격을 피할 때마다 제랄딘의 이마에 힘줄이 하나씩 빠직거리며 모습을 드러낼 정도다.
“어라?”
다급하게 도망치는 와중에도 얼른 장비를 갖춰 입은 형진의 감각에 놀라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임프들이 감지되었다.
임프들로서도 당황스러운 일이다. 다른 자들의 눈에 띄지 않는 자신들만의 장소에서 잘 살아가고 있다가 리스폰 현상에 의해 이런 어두컴컴한 곳에 불려나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당황스러운 일이건만, 느닷없이 땅이 흔들리고 무언가가 터지고 박살나는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하니 아무리 몬스터라도 간이 쪼그라들고 심장이 쫄깃해지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오, 럭키!”
벌써 리스폰 시간이 되었던가. 형진은 임프 여섯 마리의 존재를 확인하자 얼른 질주로 거리를 좁힌 후 우왕좌왕하고 있는 임프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콕코코콕!
마치 리듬 게임을 즐기는 느낌으로 눈앞에 드러난 임프들의 약점을 단검으로 콕콕 찌르자, 녀석들은 끽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대로 인스턴트 킬의 제물이 되었다. 마스터급에 도달한 단검 숙련과 높은 손재주, 그리고 민첩의 하모니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었다.
촤라락! 착!
연이어 두 개의 갈고리가 뻗어 나가며 조금 떨어져 있던 임프 두 마리의 목을 움켜잡았고, 임프들은 차갑고 단단한 무언가가 자신들의 목을 콱 움켜쥐자 죽는다고 비명을 지르며 속절없이 형진에게로 끌려왔다.
형진은 발버둥치며 끌려오는 임프 두 마리 역시 단검으로 콕콕 찔러 인스턴트 킬을 성공시킨 후, 후다닥 룻을 주워들고 급히 그 자리를 벗어났다.
꽝!
“이익!”
이제 제랄딘은 약이 오를 대로 올라 전신에서 불꽃과도 같은 검은 기운을 마구 뿜어내고 있었다. 얌전하게 한두 대 쥐어 박히면 그걸로 모른 척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죽거리며 도망치는 것도 모자라 그 와중에 몬스터를 사냥하는 여유까지 부리고 있으니 제랄딘으로서는 이제 분노마저 느끼고 있었다.
“힉!”
형진은 자신을 뒤쫓는 제랄딘의 모습이 검은 불꽃에 뒤덮이자 크게 놀랐다. 이전에 보았던 흑요호의 모습까지는 아니지만 저 정도면 거의 전력 개방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도망치지 말아욧!”
“하, 하지만! 히익!”
앞서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굵기를 가진, 이제는 누가 봐도 채찍이라는 비유를 쓸 수 없을 정도의 굵고 검고 흉측한 무언가가 자신에게 날아들자 형진은 기겁을 하며 쿨이 돌아온 환영의 반딧불로 그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제랄딘도 그 정도는 이미 예측하고 있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형진과 제법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낸 그녀였기 때문에 그가 어떤 이동 기술을 주로 사용하는지 정도는 훤히 꿰뚫어 보고 있는 것이다.
“거기냐!”
“헉!”
모습을 드러낸 자신에게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한 번 굵고 검은 무언가가 날아들자 형진은 등골을 타고 서늘한 기운이 꼬리뼈까지 타고 내려오는 것을 느꼈다.
피해야 한다. 하지만 환영의 반딧불은 방금 전에 사용해서 이제 막 쿨타임이 돌기 시작한 상태. 그렇다면?
형진은 다급하게 갈고리를 뻗어 천장의 일부를 움켜잡고는 그대로 당겼다. 그러자 휙 하고 그의 몸이 딸려가며 아슬아슬하게 제랄딘이 가한 회심의 일격을 피할 수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니까욧!”
“살살 때린다고 약속해주시면 그렇게 할게요.”
“살살 때리고 있잖아요! 남자가 이것도 못 참아요?”
“남자 이전에 보통 그거 맞으면 죽거든요!”
“힘 조절 할께요. 그러니 순순히 한 대만 맞아요!”
그렇게 형진과 제랄딘이 참으로 따뜻하고 정겨운 대화를 주고받으며 던전 안을 질주하자, 같은 던전 안에서 한참 격렬한 전투를 치르고 있던 모험가들 역시 두려움에 떨었다.
“일 났다. 뭔가 엄청난 게 깨어난 모양인데.”
“큭! 딴데 신경 쓸 시간 있으면 이놈들부터 처리해!”
모험가들과 한창 전투를 치르고 있는 이 임프들은 지금까지 형진이 맞닥뜨렸던 임프들과는 좀 달랐다. 제법 덩치도 크고 그 주제에 조악하긴 하지만 얼기설기 뼈를 엮은 갑옷도 걸치고 있었으며, 돌도끼 같은 무기와 나무판자로 된 방패도 들고 있었다. 이른바 임프 전사라고 불리는 존재들이다.
키약! 키야악!
모험가들이 형진과 제랄딘의 전투로 인한 소음에 당황한 것처럼 임프 전사들도 갑자기 울려퍼지기 시작한 진동과 폭음으로 인해 큰 혼란에 빠져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약삭 빠르게 움직이며 적을 교란하는 식의 전투를 치러야 함에도 불구하고 죽기 살기로 모험가들의 진형을 뚫고 나가려고 발악하는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어라, 저 놈들은 처음 보는 녀석들인데?”
제랄딘의 계속된 추격을 교묘하게 피하며 도주하는 상황에서도 형진은 새로운 종류의 몬스터를 확인하자 얼른 그곳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리고 한창 임프 전사들과 전투를 치르고 있는 모험가들을 무시한 채 역시나 그 속으로 곧장 뛰어들었다.
콕코코코콕!
임프 전사들은 서로의 방패를 맞댄 채 모험가들에 대항해 진형을 짜고 있었던 탓에, 머리 위에서 떨어져 내리며 사정없이 단검을 찔러대는 형진의 일격을 피할 틈도 없이 모조리 인스턴트 킬의 제물이 되고 말았다.
“예쓰!”
무려 다섯 마리의 임프 전사를 한 호흡에 모조리 인스턴트 킬로 쓰러뜨린 형진은 옆으로 굴러가는 룻까지 갈고리로 얼른 챙겨 들고는 다른 한 손의 갈고리를 뻗어 마치 빨간 코스튬 입고 타잔 놀이하는 어떤 히어로처럼 급히 그 자리를 벗어났다.
“어?”
“무슨?”
갑작스럽게 나타나 단숨에 임프 전사들을 쓰러뜨리고 어디론가 휙 날아가 버리는, 시커먼 두건과 망토를 뒤집어쓴 누군가의 등장에 모험가들은 잠시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굵고 검고 두꺼운 무언가가 방금 전까지 임프 전사들이 진을 치고 있던 자리에 벼락처럼 떨어져 내리자,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으아악!”
“히익!”
당황한 와중에도 모험가들은 보았다. 시커먼 불꽃에 휩싸인 채 허공을 휙 하고 지나가는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촉수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두꺼운 무언가에 휘감긴 채, 눈에서 붉은 안광을 뿜어내고 있는 여자와도 비슷한 형태의 무언가를!
그 붉은 안광을 직시하는 순간 모험가들은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공포를 느꼈다.
저 존재와 대적하면 죽는다. 확실하게 죽는다!
머리 속에서 누군가가 외치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는 순간, 모험가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도, 도망쳐!”
“괴물이다!”
기껏 사냥 중이던 몬스터를 형진에게 눈 깜짝할 사이에 스틸 당했다는 사실 따위 이미 모험가들의 머리 속에서는 지워진지 오래. 대신 그들의 뇌리에 남은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저 기괴하고 강력한 데다 사악하고 어두운 기운마저 뿜어내는 무언가로부터 도망쳐야 한다는 본능적인 외침뿐이었다.
물론 그런 상황을 만들어낸 장본인은 다른 모험가들의 일 따위 관심조차 주지 않은 채 딴짓에 열중하고 있었다.
아이템정보
명칭 : 용맹한 임프 전사의 무기 장식.
등급 : 희귀
착용제한 : 없음
설명 : 임프 전사의 용맹함이 담긴 무기 장식. 열쇠 고리로 써도 된다.
효과 : 공격력 증가, 지구력 증가.
강화시 효과 : 공격력 증가.
“나이스!”
정신없이 도망치는 와중에도 임프 전사가 떨군 룻을 확인한 형진은 열쇠고리처럼 생긴 이것이 무기의 공격력을 상승시켜주는 보조 장비인 것을 알아보고는 쾌재를 올렸다.
“…”
하지만 제랄딘은 그런 형진의 모습에 오만상을 찌푸렸다.
어떻게 된 걸까. 뭔가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동기조차 없어서 빌빌 거리던 것이 어제 같은데. 어느 틈에 자신이 거의 전력을 쏟아 부어도 유유히 도망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단 말인가.
처음에는 단순히 변태 척결의 기치를 들고 추격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자존심 싸움이 되고 말았다. 자신이 그동안 여러 가지 일 때문에 수련을 게을리 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하급 성도에 불과했던 자조차 따라잡지 못해서야 말이 되지 않는다.
크루그도 그렇지만, 신분이 높은 이들은 대부분 자존심이 강한 경우가 많다. 제랄딘 역시 다른 것에는 상당히 관대한 편이지만 집행자로서의 능력에 대해서는 상당히 자존심이 높은 편이었다.
그러나 모처럼 제랄딘이 그렇게 열심히 추적을 해도 형진은 약삭빠르게 그녀의 손에서 벗어나 온 던전을 헤집고 다니며 성소 주위에 접근하던 모험자들을 내쫓고 주위에 리스폰된 몬스터들을 싸그리 쓸어 담았다. 그리고 그 일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멈추어 서며 제랄딘에게 말을 걸었다.
“제랄딘님. 이렇게 하죠.”
“어떻게요?”
“계속 이래서야 끝이 나지 않습니다. 도망치지 않을테니 제대로 한 판 붙은 다음 그걸로 딱 모든 걸 잊는 걸로 하죠. 어떻습니까.”
“…”
확실히 지금 상태로는 결말이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밤낮없이 계속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일 수도 없는 노릇. 뭔가 엄청나게 손해를 보는 느낌이긴 하지만, 슬슬 지쳐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 제랄딘은 결국 형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좋아요. 도망치지 않는다면 나로서야 더 좋을 수가 없는 일이겠죠.”
“양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형진이 감사의 인사를 입에 담는 순간, 제랄딘은 지금껏 억누르고 있던 모든 힘을 개방해 흑요호로의 변이를 실행해 버렸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이렇게까지는 않으리라 예상했던 형진은 그 모습을 보고 기겁을 하고 말았다.
“헉!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도망치지 않는다고 했죠. 그 말이 거짓말이라면 전 아마도 크게 실망할 것 같아요.”
제랄딘은 분위기마저 확 바뀌어 버린 채 요요로운 기운을 담아 그렇게 말하고는, 일순 모습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곧바로 형진의 코앞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