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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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금은 노오오력이 필요할 때.
아무 일도 없었던 척 자작나무 껍질 채취하는 일을 시작한다. 앞서의 일 때문에 아까운 버프 시간을 날려버린 것을 벌충하기 위해서도 열심히 움직여야 한다.
그때 문득 등짐을 짊어진 남자 여러 명이 길을 따라 내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어? 새로 이사 왔던 총각이네. 자작나무 껍질 캐러 온 거야?”
끼니를 해결하러 음식점을 들르다가 안면을 익힌 남자 몇이 형진을 알아보고 아는 척을 한다.
“네. 쓸데가 좀 있어서.”
“자작나무는 참 요긴한 나무지. 하지만 조심해. 이 근처에는 맹수가 나온다는 소문이 있거든.”
맹수라고 하니 골짜기의 토끼가 생각난다. 덤으로 쉬고 가라며 강력한 손아귀힘으로 손목을 움켜쥐는 아줌마들의 모습도.
“하하하, 맹수… 조심해야죠. 그나저나 돌아가시는 중이신가요?”
“응. 얼른 가서 한 잔 걸쳐야지. 그럼 수고해.”
“네. 살펴 가십시오.”
이들은 이를테면 등짐장수라 할 수 있다. 본격적인 상인이라기보다는 여기저기 떠돌며 그때 그때 인력 수요를 충당하는 역할을 하면서, 작고 가벼운 물품 등을 가져다 파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냥 어차피 가는 길에 물건을 조금 떼어다 여비나 충당하는 정도라고 이해하면 될 듯.
슬쩍 사냥개 코장식을 써서 그들에게서 남은 흔적을 살펴봤다. 그러나 딱히 피 냄새라든가 그 비슷한 흔적 같은 것은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시체가 암매장된 뒤로 다소 시일이 지난 상태이고, 그 정도 시간이라면 면밀하게 흔적을 지우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자작나무 껍질을 스무 개쯤 벗기고 나니 샌드위치의 버프 시간이 다 되어 버렸다. 시간을 다소 허비한 면이 있긴 해도, 채집 스킬이 충분한 수준이었다면 서른 개 정도는 뚝딱 해치웠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삼키며 인벤토리에 담겨진 샌드위치 하나를 더 입에 털어 넣는다.
“그나저나… 슬슬 보일 법도 한데.”
자작나무 껍질을 채취하면서 올릴 수 있는 부수입으로는 버섯 종류가 있다. 특히 자작나무에서 자생하는 버섯 중에 유명한 것으로 차가버섯과 말굽버섯이 있는데, 엘리시온에서는 특히 연금술을 통해 몇몇 비약을 제작할 때 들어가는 중요한 재료이기도 하다.
버섯류는 특정한 나무에서 세트로 자생하는 경우가 많다. 소나무에서는 송이버섯이, 떡갈나무에서는 송로버섯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차가버섯 또한 이런 식으로 자작나무로부터 채취할 수 있다.
물론 버섯류는 전문가가 아니면 독이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표고버섯이나 느타리버섯인 줄 알고 캐서 먹었다가 알고 보니 독버섯이었다는 식의 얘기는 절대 드문 일이 아니다.
하지만 게임 시스템에서는 이런 식의 착오가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한번 캐서 종류를 확인한 버섯은 아이템 정보를 확인하는 것만으로 이름을 정확하게 판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신의 권능이라고 불러도 확실히 부족함이 없다. 공포와 죽음에 영광 있기를.
“역시!”
자작나무 껍질을 벗기며 산을 오르다 보니 나무 둥치에 불룩하게 솟아 있는 말굽버섯 몇 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얼른 달라붙어 조심스럽게 채취하자 곧바로 메시지가 나타난다.
[채집 경험치가 상승하였습니다.] [채집 경험치가 상승하였습니다.]경험치 상승 2연발. 아무리 버프 상태라고는 해도 보기 드문 현상이다.
“아싸!”
사실 형진이 버섯류를 찾았던 가장 큰 이유는 나중에 쓸 연금술의 재료를 구하기 위한 목적보다 이런 식으로 추가적인 채집 경험치를 얻기 위한 것에 있었다. 말굽버섯이나 차가버섯은 그나마 좀 적은 편이지만, 송이버섯이나 송로버섯 같은 준영약급의 버섯들은 온전히 채취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양의 채집 경험치가 부여된다. 어떻게 보면 이런 고급 버섯들은 그 자체로 채집 스킬 상승을 위한 영약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게다가 버섯은 군집하는 특성이 있다. 하나만 덩그러니 피고 마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 얘기는 적절한 버섯 군락 하나만 발견해도 채집 스킬을 폭발적으로 상승시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으흐흐… 버섯이다. 경험치다. 스킬업이다!”
형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미친 듯이 말굽 버섯의 채취에 들어갔다. 하나를 캘 때마다 쑥쑥 올라가는 경험치와 스킬 레벨. 역시 채집은 이런 노다지를 찾는 맛에 하는 거다.
광분하며 말굽 버섯을 채취하다보니, 순식간에 눈에 띄는 버섯 군락이 모두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시고 있는데, 그런 형진의 눈에 또다시 한 종류의 버섯이 발견되었다.
“이건 차가버섯! 으하하하!”
말굽버섯보다 채집 난이도가 높긴 하지만, 차가버섯은 오직 자작나무에서만 자생하는 특별한 버섯이다. 난이도가 높고 희귀도까지 부여되었다면 더 높은 채집 경험치가 부여되는 것은 당연한 일!
혹처럼 달라붙은 차가버섯을 거의 깨부수다시피 하며 채취하자, 역시나 채집 경험치가 폭발적으로 상승한다.
[채집 경험치가 상승하였습니다.] [채집 경험치가 상승하였습니다.] [채집 경험치가 상승하였습니다.]이번엔 삼연타다. 앞서 말굽버섯 군락을 소탕하면서 채집 스킬이 한 단계 올랐다는 점을 감안하면 차가버섯의 채집 경험치가 얼마나 되는지 능히 짐작할만 하다.
“채집! 채집! 스킬업! 스킬업! 명장! 명장!”
주문인지 구호인지 모를 소리를 지껄이며 형진은 근처에서 발견된 차가버섯을 모조리 정복했다. 돌처럼 단단한 차가버섯까지 더해지자 망태기가 벌써 묵직하다.
엘리시온에선 사실 이런 대박을 기대하기 힘들다. 생활러가 적다고는 하지만, 형진처럼 눈이 벌개져서 노다지를 찾아다니는 채집꾼이 전혀 없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애초에 차가버섯이나 말굽버섯 같은 것은 그 효용이나 용도를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다른 목질버섯과 다를 것이 없고, 조직이 단단해서 식용할 수도 없는 목질버섯은 대부분 불쏘시개 같은 용도가 아니라면 채취 자체가 거의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이곳은 형진과 같은 생활러, 그 중에서도 채집 스킬을 올리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곳이 되는 셈이다.
자작나무 껍질은 이미 달성한지 오래. 시간이 벌써 꽤 지나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지만, 한번 노다지에 맛을 들인 형진은 혹시 또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노다지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좀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갔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수종이 바뀌었다. 자작나무가 사라지고 떡갈나무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떡갈나무. 떡갈나무라면, 송로버섯!”
송로버섯은 땅속에서 자라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찾는 것 자체가 극히 힘들다. 그래서 후각이 발달한 개나 돼지 같은 동물들을 이용해서 찾거나 아예 쇠스랑으로 숲 전체를 파 뒤집어 가며 찾아야 한다. 아무리 게임 시스템이 적용되었더라도, 이것은 상당히 난이도가 있는 일이었고 때문에 채집 경험치도 상당히 높게 배정되어 있다. 괜히 채집계의 영약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형진은 그런 모든 복잡하고 힘든 일들을 단숨에 해치울 수 있는, 그야말로 사기스런 아이템을 가지고 있다.
그 이름은 바로 ‘+1 예민한 사냥개의 코장식’!
“킁킁! 킁킁킁!”
노다지에 눈이 먼 형진은 곧바로 개처럼 킁킁대며 주위를 살피고 다니기 시작했다. 날도 어둑어둑해지는 상황이다 보니, 자칫 멀리서 보면 진짜 커다란 개가 냄새를 맡고 다니는 걸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겨우내 먹을 도토리들을 보금자리로 물어 옮기던 다람쥐들은 갑자기 나타나 땅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고 있는 이 기이한 남자의 모습을 갸웃거리며 바라보았다. 도대체 저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표정으로.
하지만 다소 추할 수도 있는 그런 식의 탐색은 곧바로 찬란한 결과물을 도출해 냈다.
“찾았다!”
형진은 송로버섯 특유의 강렬한 향을 확인하는 즉시 미친 듯이 땅을 파기 시작했다. 검술의 최고 경지 가운데 하나로 언급 되는 것중 하나가 신검합일이라면, 지금의 형진은 호미와 하나되어 채집술의 최고 경지 가운데 하나인 호아일체로 나아가고 있었다.
곧바로 두더지가 굴을 파는 것처럼 땅이 파헤쳐지고 그 깊이가 약 50센티 정도 되었을 때 돌멩이 같기도 하고 흙덩이 같기도 한 몇 개의 덩어리가 형진의 눈앞에 나타났다.
꿀꺽.
눈앞에서 짙은 향기를 뿜어내고 있는 덩어리의 모습에 형진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형진이 발견한 검은 색의 송로버섯은 거의 성인 남자의 주먹 정도는 될 정도의 수준이다. 작은 감자알 정도 크기만 되도 감지덕지할 마당에, 이 정도면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는 아니어도 충분히 대박 소리를 열 번은 외치고도 남을 수준이다.
이곳에 와서 처음 발견한 송로버섯. 형진은 어쩐지 감격한 기분으로 조심스럽게 그것의 채취를 시작했다.
혹시라도 상처가 나지 않을까 하며 애지중지 조심조심 주위의 흙을 걷어내기를 얼마나 했을까. 형진은 마침내 땅속의 블랙 다이아몬드라고 불리는 송로버섯 채취에 성공했다.
그러자 눈앞에 우르르 떠오르는 메시지.
[채집 경험치가 상승하였습니다.] [채집 경험치가 상승하였습니다.] [채집 경험치가 상승하였…갑자기 우르르 올라가는 메시지를 눈으로 쫓다가 형진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그리고 그렇게 쏟아지는 경험치 상승 메시지 속에 파묻혀 순식간에 밀려가버리는 메시지를 보고 형진은 두 손을 번쩍 치켜 올렸다.
[채집 경험치가 상승하였습니다.] [축하합니다! ‘채집 숙련가’를 달성했습니다!] [채집 경험치가 상승하였…“하하하하! 벌써 숙련가라니! 대박! 대박이다!”
전문가만 되어도 채집 효율이 확 달라진다. 과연 채집계의 영약. 크기가 좀 크긴 하지만 고작 하나 발견해서 채취에 성공했을 뿐인데 단숨에 숙련가까지 치고 올라가다니!
형진은 망태기에 담겨져 있던 자작나무 껍질을 얇게 벗겨서 그것으로 방금 채취한 송로버섯을 조심스럽게 포장했다. 그리고 그것을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다시 새로운 송로버섯을 찾기 위해 움직이려는 찰나,
“응?”
심상치 않은 냄새 하나가 사냥개의 코장식을 통해 감지되는 것을 깨달았다.
누릿하면서도 퀴퀴한, 살짝 맡은 것만으로도 야성의 느낌이 확 전해져 오는 이것은!
“멧돼지!”
그냥 멧돼지도 아니다. 덩치만 보면 멧돼지보다는 차라리 곰이라고 부르는 편이 맞을 듯한 그런 느낌. 송로버섯의 강렬한 향기 때문에 놈의 접근을 미처 알아채지 못한 것이 패착이다. 코장식에 이런 약점이 있었다니.
놈은 콧김을 훅훅 내뱉으며 눈에서 불똥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혹시 영역을 침범해서일까. 형진은 그런 생각을 떠올리다가 문득 방금 전까지 자신이 하고 있었던 일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놈을 정말로 화나게 만든 이유가 무엇인지도.
이곳이 놈의 영역인 것도 맞다. 자신의 영역에 인간이 침입한 것에 화가 난 것도 맞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괴물이라고 부르기에 마땅한 이 거대한 멧돼지를 정말로 화나게 만든 것은, 아껴 먹으려고 소중하게 지키고 있던 송로버섯을 영문도 모를 놈이 날름 채갔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형진은 아무래도 일이 꼬인 것 같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리고 아까 길에서 마주쳤던 남자가 언급했던 맹수가 아마도 이 녀석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천천히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들었다. 하지만 미처 자세를 잡기도 전에, 분노한 숲의 주인은 형진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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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격언: 아끼면 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