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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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변화
-크흐윽…
허세와 망상은 자신을 이루는 신격의 일부가 깨져 나가는 충격에 정신줄을 놓았다. 벌써 두 번째. 다른 신들은 한 번조차 겪기 힘든 일을 벌써 두 번째나 겪어 버렸다. 여러 번 겪으면 면역이 되어 익숙해지지 않느냐고 말하는 놈이 있다면, 당장에 눈앞에서 잡아 찢어 죽여버리고 싶은 그런 고통이다.
차라리 천벌은 이것에 비한다면 고통이라고 할 수도 없는 그런 일이다. 살이 찢겨도 그 통증에 쇼크가 오는 판에, 영혼이 찢기는 고통이란 것을 과연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또… 또 다시 이런 일을 겪게 되다니…
처음은 공포와 죽음에 의해서였다. 타나토스에서 축출될 당시 입었던 피해로 허세와 망상은 신격의 일부를 상실해야 했고, 기절할 것만 같은 그 고통을 견뎌내기 위해 엘리시온으로 도망치듯 흘러들어가 치유를 기다려야만 했다.
따지고 보면 공포와 죽음이라는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킬 듯한 반응을 보이는 건 바로 그래서다. 공포와 죽음이 허세와 망상이 이뤄놓은 것들을 떡 주무르듯이 제멋대로 다룰 수 있는 것도 그래서다. 그렇게 증오하면서도 차마 공포와 죽음 앞에 설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는 것도 그래서이며, 저들이 보호와 균형의 힘을 사용하는 것을 보았을 때 잡아먹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진 것도 그래서이다.
게다가 이번엔 공포와 죽음에게 당한 것도 아니다. 신조차 아닌, 하잘 것 없는 추종자 나부랭이에게 당해 버렸다.
하지만 그것이 허세와 망상에게는 더 큰 공포를 몰고 왔다. 한낱 추종자 따위도 당해내지 못할 정도라면, 도대체 공포와 죽음은 얼마나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얘긴가.
-이길 수 없어…
허세와 망상은 공포에 이어 거대한 무력감에 휩싸여 버렸다. 이 상태로 다시 엘리시온에 돌아가 회복을 기다린다면, 다음에 다시 그곳을 벗어났을 때 공포와 죽음이 어떤 존재가 되어 있을까. 그건 아마도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태일지도 몰랐다. 신앙도 공헌도도 바닥이 난 상태에서, 신도도 추종자도 없는 신이 신격만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그런 신이 이미 최고의 경지에 올라버린 신을 상대로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이겠는가.
그래도 엘리시온에 틀어박혀 두 번 다시 세상에 나오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고, 그래서 아무런 재미도 없이 정체된 세상이지만, 엘리시온에서라면 최소한 이런 두려움에 빠지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허세와 망상은 자신을 유혹하는 그런 달콤한 내면의 속삭임을 밀어내고는 이를 악물었다.
지금 당장 엘리시온으로 돌아가 버리면 그것으로 얘기는 모두 끝장이다. 회복이 되든 안 되든, 더 이상 공포와 죽음이라는 신이 무슨 일을 저지르든 그것을 저지할 방법 따위 그에게는 남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 들인 시간과 노력이 얼마인데 이대로 주저 앉아 버린단 말인가.
-그러고 보면… 그 놈 뭔가 이상했어.
신인 자신을 상대로 태연하게 도발을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중간에 자신의 공격을 막았던 것은 분명 보호의 권능이었다. 무언가 물건을 꺼내어 들긴 했지만, 그것을 통해 발현된 것은 분명히 그 의존증 바보의 힘이 맞았다.
게다가 마지막에 등판을 찔렀던 그 공격. 그것 역시 이상했다. 이전에 공포와 죽음에게 당해 신격이 깨졌을 때보다 훨씬 치명적이고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마치, 일부러 그의 신격 그 자체를 노리고 공격을 가한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하기야 보통의 추종자였다면 그런 식으로 자신을 간단하게 제압할 수 있을 리가 없는 일. 하지만 모르겠다. 도대체 놈에게 어떤 특별함이 있었던 것인지.
-으음…
어쨌든, 잠시 고민하던 허세와 망상은 그나마 남아 있는 힘을 모조리 짜내어 다시금 아바타를 만들어 냈다. 깨져 버린 신격 때문에 고통스럽긴 했지만, 이대로 엘리시온에 돌아가 버리면 그걸로 끝장이라는 일념에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낸 것이다.
하지만 그래봐야, 얼마 안 되는 힘으로 제대로 된 아바타를 만들어 낼 수 있을 리 없다. 결국 그가 만들어낸 것은 요정 사이즈의 아바타. 보호와 균형이 처음 형진을 찾았을 때와 같은 처지가 되어 버린 셈이다.
“크윽…”
하지만 그렇게 기껏 아바타를 만들어 그곳에 깃들였음에도 불구하고 허세와 망상은 제대로 버티고 서있기조차 어려울 정도의 고통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다가 문득 느꼈다. 여전히 자신을 깊이 신앙하고 있는 한 존재의 기척을.
“이럴… 리가 없는데?”
요정들조차도 지금은 거의 형식적인 수준의 신앙 밖에 지니고 있지 않는 시점에서, 이렇게 강렬하게 자신을 부르는 것이 누구인지 허세와 망상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유야 어찌 되었든 그것은 지금 상황에서의 유일한 희망이나 다름없었다. 자칫하면 그대로 잊혀진 신이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이토록 강렬한 신앙을 보내주는 존재라니. 허세와 망상은 처음으로 신도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었다.
혹시 공포와 죽음이 쳐놓은 함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더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그렇게 보내지는 신앙의 힘을 사용해 공간의 문을 열고 이동을 시도했다.
“어?”
“응?”
그렇게 가까스로 공간을 열고 도달했을 때, 허세와 망상은 전혀 예상치 못한 어떤 존재와 마주치고 말았다.
“서, 설마… 당신은?”
“…”
허세와 망상에게 깊은 신앙을 표출하고 있었던 존재는, 일본에서 발견된 파편의 소유자 아유무였다.
“너… 그게 무슨 꼴이냐.”
“아, 이거요?”
아유무로서도 갑자기 미니 사이즈가 되어 눈앞에 나타난 허세와 망상의 모습에 어리둥절하기는 매한가지였지만, 그가 자신의 옷차림에 관심을 보였다는 것이 더 중요했는지 얼른 한 바퀴 돌아 보이며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때요? 귀엽죠?”
“…”
글쎄. 저걸 과연 귀엽다고 해야할지. 허세와 망상으로서는 인간의 옷차림 따위 다 거기서 거기였지만, 가슴골이 훤히 보이고 팔뚝도 어깨까지 드러나 있는데다, 속옷이 보일랑 말랑할 정도로 짧은 치마를 입고 있는 모습은 어쩐지 그리 탐탁지 않게 느껴진다. 물론 팔에는 오페라 글러브를 껴입고 다리에도 스타킹을 신어서 노출된 면적 그 자체는 그리 크지 않더라도 다소 보수적인 아저씨 타입의 허세와 망상으로서는 저게 무슨 꼴인가 싶은 기분을 저버릴 수가 없다.
아무래도 이 신에게는 코스프레라는 이름의 문화를 이해할 지식이 부족한 모양이다.
“큭…”
뭐라고 해줘야 할지 난감해 하는 표정으로 그렇게 아유무를 지켜보던 허세와 망상은 다시금 치밀어 오르는 고통에 얼굴을 찌푸린 채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헉! 아저씨, 괜찮아요?”
아유무는 허세와 망상이 신음 소리와 함께 풀썩 주저앉자, 얼른 그의 목덜미를 잡아 들고는 유심히 살핀다. 처음에는 코앞에 그를 가져다 놓고 새파랗게 질린 안색을 살피더니, 이내 팔과 다리부터 시작해서 마치 여름 방학에 채집한 장수풍뎅이의 관찰 일지를 적으려는 아이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그의 속옷을 들춰보기까지 한다.
“뭐하는… 짓이냐…”
신격이 찢겨나간 고통 때문에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허세와 망상은 아유무의 무엄하면서도 위험한 행동에 흠칫 놀라며 그렇게 호통 아닌 호통을 쳤다.
하지만 아유무는 그런 그를 물끄러미 보더니 씩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보니, 아저씨도 꽤 귀엽다 싶어서요.”
“무슨… 켁!”
허세와 망상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아유무는 그를 자신의 드러난 가슴골 속에 쏙 집어 넣어버린다.
발칙한 가슴이로다. 아직 설익은 꼬맹이 주제에 가슴은 꽤 풍만… 아니, 이게 아니지.
“너… 이게… 무슨 짓…”
“가만히 좀 있어요. 간지럽다구요.”
“…”
허세와 망상은 버럭 소리를 지르려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문득 아유무와 그 사이에 어떤 유대가 생겨나며 생으로 살을 찢는 것보다도 훨씬 괴로운 영혼의 통증이 조금이나마 진정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후후, 어때요. 풋풋한 여고생의 부드러운 가슴은. 반할 것 같아요?”
“…”
“아무한테나 해주는 서비스가 아니라고요. 그러니 감사하도록 하세요.”
“음… 고맙다.”
“킥킥.”
작아져 버린 사이즈 탓일까. 아유무는 그나마 가지고 있던 허세와 망상에 대한 저항감마저 모두 지워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거에요. 갑자기 이런 모습이라니. 저야 좋지만.”
그렇지 않아도 허세와 망상이 다시 찾아오면 반드시 뇌살시켜 버리겠다고 벼르고 있던 아유무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식으로 몸을 바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발랑 까진 모습을 보여주기는 해도, 역시 그런 식으로 몸을 굴리는 것에 대해서는 저항감이 있었다고나 할까.
“어, 음… 그게… 나쁜 놈에게 당해서.”
“네? 아저씨, 신이라고 그러지 않았어요?”
“맞아.”
“그런데 당했다고요? 그럼 상대도 신이었나요?”
“뭐… 그 비슷한 놈이었지.”
차마 신도 아닌 추종자 나부랭이한테 당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라, 허세와 망상은 그렇게 얼버무렸다.
“혹시… 죽음의 천사인가 하는 쪽?”
“글쎄.”
그러고 보니 자신을 쓰러뜨린 놈이 뭐하는 놈인지 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멍청하긴. 이래서야 바보 소리를 들어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그럼… 관둬야 겠네요.”
“뭘?”
“저도 죽음의 천사인가 하는 사람들처럼 정의로운 마법소녀 역할을 해보려고 했거든요.”
마법소녀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허세와 망상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래. 관둬. 그런 짓 했다간 죽는다.”
“네? 죽는다고요?”
진지한 말투로 죽음을 논하는 허세와 망상의 모습에 아유무는 움찔해 버리고 말았다.
“그 놈들은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걸 가장 싫어해. 네가 만약 범죄자들을 죽이고 다닌다면, 귀신 같이 알아채고 널 죽이고자 나타날 거다.”
아유무는 순간 움찔했지만, 이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렇게 되물었다.
“그럼 안 죽이면요?”
“뭐?”
“안 죽이면 어떻게 되냐고요. 그냥 혼내주기만 하면?”
“혼내주기만 한다고?”
“네. 원래 정의로운 마법소녀는 적이라 해도 죽이거나 하지 않아요. 아름다운 마법의 힘으로 그들을 갱생시킬 뿐이지요.”
“…”
그게 무슨 헛짓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문득 허세와 망상은 이 나사 빠진 여자애를 이용하면 뭔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지금 그에게 있어 가장 절실한 것은 부서진 신격의 회복과 고갈되어 버린 신앙, 그리고 공헌도의 보충이다. 계획 자체는 어설프고 바보 같이 느껴지지만, 적을 죽이지 않고 갱생시키는 방향이라면 딱히 집행자들이 관여할 이유도 없고, 직접적으로 허세와 망상의 이름을 알리지는 않더라도, 자신의 추종자인 아유무의 이름이 좋은 쪽으로 알려지면 부족한 신앙과 공헌도 역시 어느 정도 보충이 될 것이다.
물론 그 와중에 아유무가 위험해지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그는 거기까지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하기야 원래부터도 책임감과는 담을 쌓은 신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유무와 이런 식으로 접촉하고 있으면 깨진 신격의 고통도 어느 정도 진정이 되니 당장의 도피처로서도 부족함이 없다.
혹시 아유무가 지닌 파편이 자신의 깨진 신격의 모자란 부분을 보충해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아직 확신은 이르다. 아유무를 죽이는 순간 무조건 파편을 획득할 수 있다면 모르지만, 그것도 아닌 이상은 괜히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당장은 다소 부자연스럽더라도 지금의 상황을 유지하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허세와 망상은 근엄함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좋아. 마법 소녀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마법을 익히는 일이라면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다. 너무 과하게 움직여서 집행자 놈들의 주의를 끌지 않는 선에서.”
“킥…”
하지만 모처럼 그렇게 진지하게 말해도 아유무는 킥킥거리며 웃기만 한다. 허세와 망상이 말을 할 때마다 가슴을 통해서 간지러운 느낌이 전해지는 것도 있고, 남의 가슴골에서 고개만 쏙 내민 채 그런 식으로 진지 빨고 근엄한 모습을 지어대는 것이 귀엽기도 하고.
“…”
허세와 망상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작달막한 여자애의 가슴골에 파묻힌 자신의 모습을 보니, 이렇게까지 해서 이 세상에 붙어 있어야 하나 싶은 자괴감이 절로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세와 망상이 잊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무책임의 대명사답게, 싸움이 벌어지기 직전 아사드를 타나토스로 보내버린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
아사드는 영문 모를 숲속에 홀로 서있었다. 어딘가 다른 곳으로 오긴 한 것 같은데, 막상 이렇게 도착하고 보니 뭘 어떻게 해야할지조차 막막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친절하게 어디에 구현자가 있으니 그곳을 찾아가라는 식의 이정표나 퀘스트 표식 같은 건 있지도 않았다. 그저 눈에 보이는 것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광활한 자작나무 숲 뿐이다.
“어쩌지…”
아사드는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그의 목소리를 듣고 대답해줄 사람은 적어도 이 근방에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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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