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597
00597 136. 격돌 =========================
형진의 주된 의식은 캘리포니아 해변의 아름다운 별장에서 행성 스하의 달 표면으로 옮겨갔다.
인공위성으로 망을 구성해 황혼의 결계를 만들어 놓은 상태임에도 어디선가 전해진 힘이 격렬하게 끓어오르며 결계를 뚫고 공간을 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다. 이대로 힘을 쏟아 부어 결계를 강화하기만 해도, 출구를 틀어막고 있는 이상 파괴와 재생이 이곳에 자신의 힘을 투사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게 되니까. 제 아무리 열이 받아도 지리상의 이점은 이미 형진에게 넘어와 있는 상황.
형진은 결계를 보강하는 한편, 안식과 동굴이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에게 보낸 알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곧바로 엘리시온으로 보냈다. 물론 진짜 엘리시온이 아닌 거짓된 천국, 엘리시온으로.
파괴와 재생이 저지른 짓거리에, 그는 아버지로서 크게 분노하고 있었다. 자신의 신격을 보충하기 위한 수단으로 아이를 만들다니, 그게 무슨 되도 않는 얘기란 말인가. 언데드의 힘을 손에 넣더니, 두뇌의 뇌세포마저도 모조리 썩어 문드러진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형진은 자신에게 보내진 이 알이 파괴와 재생의 치밀한 안배 끝에 만들어진 부비트랩일 가능성을 잊지 않고 있었다. 만약 이것이 엘리시온 그 자체를 붕괴시키기 위한 함정일 가능성을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형진은 일단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되어 문제의 소지가 없는 거짓된 천국으로 먼저 알을 보내 여신들로 하여금 면밀하게 알을 살피도록 할 생각이었고, 이것을 위해 그와 얘기를 나누고 있던 여신들을 급히 거짓된 천국으로 들여 보내고 있었다.
무지개 빛으로 반짝이는 알은 순식간에 형진의 손에서 모습을 감추더니, 미리 자리를 옮겨 대기하고 있던 희망과 생명의 손에 쥐어졌다.
그녀는 형진의 당부를 잊지 않고 조심스럽게 알의 상태를 살폈다. 안에서 상처를 안은 채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아이의 일은 분명 안타깝지만 그래도 확인을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어른 모습을 하고 있는 다른 세 여신이 희망과 생명 주위를 에워싸더니, 각자의 힘으로 알을 감싼다. 보호, 바람, 그리고 황혼. 이렇게 세 가지 힘이 어우러지며 알을 보호하는 일이 끝나자, 희망과 생명은 아이를 보호하고 있는 알 껍질을 조심스럽게 벗겨 냈다.
무지개 빛의 알 껍질은 의지가 담긴 신의 손길을 맞이하는 순간 눈 녹듯이 사라지며, 그 안에 잠들어 있던 작은 아이의 모습을 드러내도록 만들었다.
“으아아아앙!”
아이는 자신을 보호하고 있던 알 껍질이 사라지자 가느다란 울음을 터트렸다. 힘이 부족한지, 울음 소리 자체에도 별로 힘이 없다. 희망과 생명은 물론이고 다른 세 여신 또한 그런 아이의 모습에 입술을 깨물고 말았다.
희망과 생명이 자애로운 손길로 아이를 어루만지자, 그제서야 천천히 울음소리가 잦아들며 잠이 들기 시작한다.
“확인했어. 황혼과 망각, 네 힘이 필요해.”
“맡겨 주세요.”
황혼과 망각은 지금까지 어지간해서는 드러내지 않고 있던 망각의 권능을 지금 이 순간 발동했다.
“뭔가 있는 겁니까?”
형진의 말에 희망과 생명은 어느새 이마에서 송글송글 땀을 흘리고 있는 모습으로 대답했다.
“함정은 아니고, 낙인이야. 파괴와 재생의 소유를 뜻하는.”
“미친…”
다행히 언데드의 영역에서 멀어진 상태인지라, 파괴와 재생이 남긴 낙인은 어렵지 않게 망각의 권능으로 해소될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을 위해서 희망과 생명은 꽤 큰 힘을 나누어주어야 했지만, 지금 이곳에 모인 이들 가운데 그것을 아까워 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침내 모든 처치가 끝나자, 희망과 생명은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치며 조심스럽게 아이를 안아들었다.
너무 작다. 인간의 아이도 저 정도는 아닐 텐데, 이 아이는 너무나 작았다. 그 모습이 또한 형진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고 있었다.
“수고했어. 난 바로 아이를 엘리시온으로 데려다 주고 올게.”
“부탁드립니다.”
희망과 생명은 아이를 안은 채 한 줄기 빛과 함께 모습을 감추었고, 긴장한 표정으로 그녀 주위를 에워싼 모습으로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고 정화시키는 일을 돕고 있던 세 여신은 긴장이 풀렸는지 그대로 털썩 주저 앉고 말았다.
형진은 그녀들을 살피며 이를 악물었다. 그는 조용하고 차갑게 분노하고 있었다. 그냥 화가 치밀어 올라 견딜 수 없는 수준이 아니라, 분노가 지나쳐 오히려 이성적인 상태로 접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이대로는 안 되겠습니다.”
“네? 어쩌시려고요?”
“그 망할 놈의 대가리를 있는 힘껏 걷어차 주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
세 여신들은 차갑게 분노를 일으키고 있는 형진의 모습에 흠칫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또한 지금의 그를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가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조심하세요.”
“알겠습니다.”
형진의 주된 의식은 다시금 행성 스하의 달 표면으로 옮아갔다. 파괴와 재생은 이미 알이 이곳을 떠나 엘리시온으로 향한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달에 둘러쳐진 결계를 부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수고했다. 스하와 함께 저곳으로 가서 쉬고 있도록.”
-알, 엘리시온, 부탁.
“그건 걱정할 필요 없다. 이미 조치를 취해 보냈으니.
-고맙다. 고맙다. 고맙다.
“훗.”
단순히 단어의 나열 밖에 쓰지 못하는 상황인지라 반말처럼 들리긴 하지만, 머리를 바닥에 쿵쿵 찧어 가며 그렇게 인사를 하는 녀석의 모습이 싫지만은 않다.
“알았으니 어서 가.”
-긍정.
형진은 황혼의 권능으로 경계를 열어 둘을 그들의 고향인 행성 스하로 보낸 다음, 여전히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는 지표의 모습을 차갑게 돌아보며 말했다.
“와라.”
그의 말이 떨어지자, 위성망으로부터 발동되어 있던 황혼의 결계가 일시에 사라졌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공간이 발기발기 찢기며 그곳으로부터 주위를 가득 메운 밤의 기운과는 다른 음습하고 어두운 기운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기운들과 함께 분노 가득한 파괴와 재생의 외침이 터져 나온다.
[어디냐! 어디에 있냐! 숨어도 소용없다! 숨겨도 소용없다! 그건 내것이다! 내놔! 내놓으란 말이다!]형진은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지랄.”
그리고 영혼포식자를 들어 넘실거리는 검은 기운의 중심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조차 없이, 그곳으로부터 발사된 무언가가 검은 기운을 향해 날아들었고, 힘의 중심이 가격되는 순간 찢겨진 공간으로부터 넘실거리며 쏟아져 나오던 검은 기운은 한 순간에 신기루처럼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크악!]파괴와 재생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을 들으며 형진은 천천히 찢겨진 공간의 균열을 통해 걸음을 옮겼다.
화아악!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의 몸 주위에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한다. 그 바람은 처음에는 조용하게 일렁이는 공간의 아지랑이를 만들어내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이내 격렬한 폭풍으로 화했다. 그리고 마침내 더 이상 아무것도 막아설 수 없는 거대한 태풍이 되었을 때, 바람은 차가운 분노의 감정을 담은 불꽃의 소용돌이로 변해갔다.
“네놈은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렀다.”
형진은 찢겨진 공간의 균열로 다가가 그 균열을 움켜쥐었다.
“그래도 나는 지금까지 네놈에게 아주 작은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다. 어찌 보면, 네놈의 타락이 나라는 존재로 인해 벌어진 일인지도 모른다는, 그런 작은 가책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손에 힘이 가해지자, 공간의 균열은 애처로운 비명을 지르더니 그대로 크게 찢겨져 나갔다.
“하지만 그건 얄팍한 동정심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야 확실하게 깨달았다. 네놈은 동정의 가치조차 없는 쓰레기라는 사실을. 신이라 불릴 자격조차 없는 존재임을.”
형진은 찢겨져 드러난 공간의 균열로 성큼 들어섰다. 그러자 시야가 확 바뀌며 음울한 분위기의 오래된 성곽이 모습을 드러낸다.
느껴진다. 놈의 기운이.
본래 자신과 하나였어야 할 또 다른 신의 힘이, 그 성으로부터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러니, 이번에야 말로 끝장을 내주겠다. 타락한 신이여.”
[너 이노오오옴!]
여신들이 일전에 말한 대로, 아이들의 존재는 형진에게 역린이 맞았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그것이 자신의 아이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형진은 다른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자신의 아이를 투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형진의 존재가 자신의 영역에 들어왔음을 확인하자, 주위에 도사리고 있던 모든 언데드의 기운들이 일시에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힘은 자신들의 새로운 주인을 지키기 위해 주변에서 잠자고 있던 모든 언데드들을 불러 일으켰다.
“흥.”
눈이 닿는 모든 장소에서 검은 빛을 지닌 언데드의 힘이 간헐천처럼 터져 나오고, 그 기운에 의해 강화된 수를 세는 것조차 무의미할 정도의 언데드들이 몸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하지만 형진은 그것을 보며 코웃음을 치고는 인벤토리에 담겨져 있던 것들을 허공에 쏟아놓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인공위성이다. 작은 탁구공만한 크기의 그것은 허공에 흩뿌려지는 순간 하늘로 날아오르며 그의 눈이 되었다.
뒤따라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근접 항공 지원용의 무인기들이다. 한 대만으로도 대대급의 기갑 부대와 맞먹는 화력을 지닌 이 놀라운 무기들은 인공위성으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를 넘겨 받아 순식간에 적의 식별을 마쳤고, 이내 공격을 시작했다.
꽝! 꽈광!
무인기들이 쏟아낸 제이댐과 12.7 밀리 전열 화학포는 대 언데드 전투를 상정하고 탄환과 폭약이 준비되어 있었던 상황. 단순히 그 폭발력과 물리력만으로도 꿈틀거리는 시체 덩어리 따위 단숨에 파괴할 수 있지만, 탄환과 폭약 자체에 신의 힘이 가미되어 그 파괴력은 한층 더 강렬하게 업그레이드되어 있었다.
순식간에 주위를 휩쓰는 융단 폭격에 주위에 끓어 넘치던 검은 힘과 그것으로 인해 불러일으켜진 언데드들이 빗자루로 쓸리듯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그곳에, 형진의 권속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나의 신이시여. 부르셨습니까.”
그들은 이전에 오래된 자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이제는 주시자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불사의 존재들.
스스로 지닌 힘만으로도 인간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힘을 지녔으나, 이제 밤의 신의 권능과 여러 강력한 장비들까지 받아들여 더욱더 강력한 힘을 지닌 존재로 탈바꿈한 존재들이 군대를 이루어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밤의 이름으로 명한다. 이 더러운 것들을 모조리 쓸어 버려라.”
형진의 명이 떨어지자, 검은 망토를 두른 주시자들은 일제히 자신의 근원이 자리한 곳을 손으로 감싸며 그에게 최대한의 경의를 담아 답했다.
“모든 것은 세상을 아우르는 밤의 뜻대로.”
“모든 것은 저희들의 주인이신 밤의 뜻대로.”
주시자들은 대답과 동시에 주위로 흩어져 검은 힘과 언데드들을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스하.”
그의 부름과 함께 다시금 공간이 열리며 그곳으로부터 네 개의 팔을 지닌 밤의 종족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형제들을 도와라.”
스하아…
스하는 자신과 같은 밤의 문양을 지닌 주시자들을 알아보고는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밤의 종족들을 이끌고 그들을 돕기 위해 나섰다.
무인기들의 화력 지원과 강력한 주시자들의 힘, 여기에 밤의 종족의 숫자까지 더해지자 주위에 들어찼던 검은 힘과 언데드의 군세는 맥없이 밀려나기 시작했다.
[이 노오오옴! 너 이 노오오오오옴!]자신의 군세가 형편없이 밀려나기 시작하자 파괴와 재생은 더욱 크게 분노하며 소리를 질렀고, 마침내 거대한 고성이 부서지며 그곳으로부터 검은 불꽃을 전신에 두른 존재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다리고 있었다.”
형진은 그것이 파괴와 재생임을 바로 알아보았다. 하지만 또한 그것이 본체가 아니라는 사실도 한 눈에 알아보았다. 하긴 자신 역시 본체가 아닌 아바타이니 마찬가지지만.
물론, 그렇다 해도 가만히 놔둘 수는 없는 일. 아바타라 해도 쓰러뜨리면 파편이 떨어져 나가는 건 마찬가지니까.
인간의 시력으로는 감히 쫓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의 속도로 두 존재는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고, 곧바로 가감없는 힘의 격돌이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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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편째.
더워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