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636
00636 144. 원정 =========================
사실 이쯤 되면 반 이상 넘어온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여기서 그대로 알았다고 해버리면 형진은 문자 그대로 선량하고 마음씨 좋은 신에 불과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물론 그건 가급적 좋은 표현을 가져다 붙인 것이고, 보통 이런 식으로 다른 자들에 형편에 맞춰 이용해 먹기 좋은 자들을 가리켜 우리는 보통 호구라고 부른다. 신이라 해도 그건 마찬가지. 은염랑들은 아마도 형진이 그런 쪽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불행히도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은 법이다.
“음… 저도 그렇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습니다만, 이건 사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네? 어떤…”
이런 식으로 난색을 표하는 모습에, 두 촌장을 조바심 나는 표정을 지었다.
“간단한 얘깁니다. 스스로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신이라 해도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거든요. 제가 지닌 힘도 무한하지 않고, 제가 볼 수 있는 영역도 한정되어 있는데다, 제 뜻을 받들어 함께 움직일 추종자의 숫자 역시 제한되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게다가 세상에는 은염랑 외에도 많은 종족들이 있지 않습니까.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제가 지닌 역량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동원해 지금 닥쳐온 위기를 헤쳐 나가는 것입니다.”
에둘러 말하기는 했지만, 이것은 은염랑 만을 특별 취급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없다면, 자신이 지닌 역량을 적제 적소에 투입해 최대한의 효율을 뽑아내야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그렇습니까.”
두 촌장은 그제서야 자신들의 부탁이 얼마나 철없는 것이었는지 이해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 몸소 신이 자신들을 찾아와 위기를 해결해 준 것만도 엄청난 호의가 아닌가. 달리 보상을 요구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런 식의 도움을 줄 수 있는 신이니 그 이상의 호의를 무작정 바랬던 것이 잘못일지도 모른다.
두 촌장은 즉시 다른 은염랑들에게 이와 같은 사실을 알렸다. 본래 그리 염치 없는 종족들은 아닌지라, 다른 은염랑들도 신이 난색을 표한 이유를 어렵지 않게 납득했다.
곧바로 소통을 통해 열띤 토론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신에게 보상으로 지불할 만한 것이 무엇인지 그들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식으로 보상을 주고 신을 부려먹는 식의 상황을 제안했다가 오히려 진노를 사게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아무리 선하고 착한 신이라 해도, 결국은 신이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신의 자존심을 그렇게 건드렸다가는 당장 언데드의 일은 문제가 아니게 될 수도 있다.
형진은 고심하는 두 촌장을 보면서 슬슬 적당한 떡밥을 던져 줄 때를 가늠하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네? 정말입니까?”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좋은 방법이 없나 고심하던 두 촌장은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형진이 넌지시 건넨 말에 바로 반응했다.
“앞서도 말했다시피, 부끄러운 얘기지만 제 역량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나… 저는 젊은 신에 속하는지라 아직 추종자의 수가 그리 많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현실적으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도 바로 그것이죠. 한정된 수의 추종자들을 유효적절하게 운용하려다 보니 여러분을 지키는데 따로 인원을 할당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형진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이런 방법은 어떻겠습니까.”
“어떤…”
“여러분들이 제 추종자가 되는 겁니다.”
“네?”
갑작스런 제안에 두 촌장은 놀란 표정이 되었다.
“아시다시피 제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추종자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에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제 힘을 받아들여 추종자가 된다면, 스스로를 지키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게 됩니다. 물론 필요에 따라서는 여러분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럴 때는 여러분들의 노고에 걸맞은 충분한 보상을 약속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형진은 다시 눈앞에 여러 가지 영상을 드러냈다.
“저는 최근 대신 가운데 한 분이신 공포와 죽음님과의 제휴를 통해, 그분께서 오랜 세월에 걸쳐 구축하신 스킬 시스템과 의뢰 시스템을 나누어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활용한다면, 여러분은 지금보다 더욱더 강력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게 될 겁니다. 제 힘은 지금 세상을 위협하고 있는 타락한 신 파괴와 재생의 힘을 파훼하는 것에 큰 효과가 있으니, 지금 출몰하고 있는 언데드들을 퇴치하는 것 정도는 문제가 아닙니다.”
꿀꺽.
두 촌장은 자신들의 눈앞에 드러난 수많은 떡밥들을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또한 저는 마찬가지로 대신 가운데 한 분이신 희망과 생명님과의 제휴를 통해 그 어떤 신도 흉내 낼 수 없는 강력한 회복 능력을 지닌 포션을 거의 무한대에 가깝게 제공할 수 있습니다. 물론 포션이 모든 질병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적어도 아프거나 다쳤을 때 그것을 치료할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에 하나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냥 힘을 전해 주는 것만으로도 귀가 솔깃한 판에, 다른 강력한 두 신의 권능을 빌어쓸 수도 있다고 한다. 똑같은 값이라도 원 플러스 원에 더 눈길이 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사람 마음인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두 촌장이나 그들을 통해 소통으로 이 상황을 전해 듣고 있는 다른 은염랑들에게도 너무나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 아닐 수 없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앞서의 두 신입니다만, 저는 그 외에도 보호와 균형, 꽃과 바람, 황혼과 망각 등 십여 명에 달하는 여러 신들과의 제휴를 통해 그들의 능력을 빌려 쓸 수 있습니다.”
“세상에…”
두 촌장은 이어지는 형진의 말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말이 쉬워서 권능이지, 신의 힘이란 그 자체로 기적이다. 그런 기적들은 하나도 아니고 이렇게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다니,
보통의 신도 감히 함부로 할 수 없는 대상이건만, 이 신은 이미 그런 신의 기준마저 초월해 버렸다. 그런 신이 자신들에게 힘을 나누어 주겠노라고 말한다.
이것은 기회다.
은염랑들은 이것이 자신들의 종족에게 찾아온 엄청난 기회임을 인식했다.
스스로를 지킬 힘을 얻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모든 종족들 중에서도 특별한 존재로 우뚝 솟을 수 있는 그런 기회인 것이다.
애초에 그들이 서로 다른 세계에 흩어져 사는 이유가 무엇이던가. 그것은 은염랑이라는 종족 자체가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한 욕구로 가득 찬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환경에서 그에 걸맞은 진화를 거쳐 그 모든 것을 다시 소통과 교류라는 능력을 통해 종족 전체의 발전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이야 말로 은염랑의 존재 이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 지금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기회가 찾아왔다. 어쩌면 그들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보다 높은 존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지금 그들과 마주하고 있는 젊은 신과 같은 그런 존재가.
“하나만 물어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십시오.”
“신께서는 아까부터 저희들에게 계속 말을 높이고 계십니다. 그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형진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세상의 모든 지성있는 생명체들은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더구나 당신들은 제 권속 또한 아닙니다. 상하 관계가 정립되어 자연스럽게 그리 된다면 모를까. 그렇지도 않은 상태에서 어찌 신이라 하여 함부로 말을 놓을 수 있겠습니까.”
“…”
두 촌장은 그의 말을 가감없이 은염랑들에게 전했고, 소통을 통해 그것을 전해들은 은염랑들의 총의는 마침내 한 가지 결정을 내렸다.
마침내 결정이 내려지자, 두 촌장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무릎을 꿇고 극상의 예를 형진에게 취하며 말했다.
“당신을 따르는 자가 되고자 합니다. 부디 앞으로 말씀을 편하게 해주십시오.”
“저희들을 당신의 추종자로 받아들여 주십시오.”
형진은 속으로 흐뭇한 기분을 감춘 채 나름 진지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제가 직접 권하기는 했으나, 제 추종자가 된다는 것은 또한 의무 역시 생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께서는 주어진 것에 상응하는 의무를 감당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준엄한 그의 목소리에 두 촌장은 입을 모아 답했다.
“물론입니다. 위대한 밤의 신의 이름에 누가 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제 목숨을 걸고 맹세하겠습니다.”
일부러 말을 맞춰하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이런 것이 바로 소통의 효능인가 싶기도 하다. 솔직히 이 정도로 다른 사람들과 생각을 나눌 수 있다면 자칫 개성이 매몰될 수도 있을 텐데, 그런 기미가 보이질 않는 걸 보면 은염랑은 생각보다 개인의 사고나 정서도 상당히 발달해 있는 종족인 모양이다.
“좋습니다. 마음을 그리 정했다면, 이제 내 앞에 손을 내밀어 보십시오.”
“…”
두 촌장이 양손을 손등이 하늘을 보도록 공손하게 내밀자, 형진은 그들의 손을 맞잡고는 그곳에 자신의 문양을 새겼다.
“아…”
“이것이…”
문양이 생김과 동시에 그들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앞에 나타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당장 라스 쿠의 주위를 맴돌고 있는 위성으로부터 들어오는 정보부터 시작해서, 스킬 시스템이나 임무 시스템 같은 것도 포함하고 있었다.
“둘에게 주시자의 자격을 내림과 동시에, 각자의 마을에 속한 주시자들을 통솔할 수 있는 지위인 지부장에 임명한다. 지부장은 내 눈과 귀가 되어 각 지역의 주시자들을 지휘함과 동시에 스킬 마스터로서 그들의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스킬들을 부여하는 책무를 지닌다. 이것은 매우 엄중한 역할이니, 너희들은 그 책임과 의무를 수행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기대하겠다.”
두 촌장에 대해 주시자의 자격을 부여하는 일이 끝나자, 형진은 몸을 일으키며 첫 번째 지시를 내렸다.
“지금부터 나는 라스 쿠에 존재하는 여러 마을들과, 다른 여러 세계에 퍼져 있는 은염랑들을 방문하여 그들을 주시자로 받아들이는 일을 시작할 것이다. 너희들은 그들에게 알려 나를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게 하라.”
“명을 받듭니다.”
쇠뿔도 단김에 뺀다고, 형진은 그 즉시 라스 쿠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여러 세계에 퍼져 있는 은염랑들의 마을을 방문해 그들의 마을에 보호의 성역과 황혼의 결계를 배치하고, 또한 필요할 경우 서로의 마을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황혼의 성물 또한 배치했다. 이렇게 되자, 순식간에 형진의 영향력은 존재하는 수십 개의 우주로 단숨에 퍼져 나가게 되었다.
은염랑들이 스킬을 익히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당장 지니고 있는 힘만으로도 여느 인간보다는 훨씬 강력한 힘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형진은 그들로 하여금 우선 기존의 주시자들을 보좌하는 예비대로서의 역할을 맡게 했다.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얻는 것이 우선이거니와, 애초에 형진이 그들을 받아들인 것은 그들의 전투 능력보다도 생명력이 충만한 지역을 찾아 나설 수 있는 능력 때문이다. 지성체가 이미 존재하는 곳이든, 그렇지 않은 곳이든, 생명력이 충만한 장소는 미리 찾아내 선점하는 것만으로도 큰 자산이 될 수밖에 없다.
대략의 일이 끝나자, 라스 쿠 각지로 흩어져 사방에 퍼져 있는 언데드의 힘을 청소하는 일을 맡았던 주시자들이 돌아와 자신들이 수행한 임무의 성과를 보고했다.
“말씀하신대로, 특히 그 규모가 큰 한 곳을 제외한 모든 곳의 언데드들을 정리했습니다.”
즈라탈과 렐그낙이 주시자들을 대표해서 그렇게 상황을 보고하자, 은염랑들을 추종자로 받아들이는 일을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던 형진은 그들의 노고를 치하한 뒤, 일부러 남겨둔 곳을 향해 나아갔다.
기존의 주시자들을 비롯해, 새롭게 받아들인 주시자들을 거느리고 도착한 그곳은 마치 거대한 늪지대를 연상시키는 듯한 느낌의 기분 나쁜 분위기의 수렁이었다. 검은 기운들이 소용돌이치며, 지옥의 입구처럼 끓어오르는.
이 규모 심상치 않다. 일부러 크게 확장시키고 있는 느낌이랄까. 마치 그 안에 잠들어 있는 거대한 무언가를 통과시키기 위해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형진이 알기로, 이 정도로 거대한 규모의 출구를 필요로 하는 언데드는 하나 뿐이다.
“재미있군.”
덕분에 아주 좋은 선물마저 얻었으니, 그에 걸맞은 보답을 하는 것이 인지상정.
형진은 소용돌이 치고 있는 언데드의 힘 속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자신을 잠식하려고 드는 힘들을 단숨에 흩어버리고는 단숨에 그 안으로 뛰어 들었다.
경계를 넘어서 어둠의 힘으로 가득한 저편에 들어서는 순간, 형진은 자신의 눈앞에 거대한 존재가 기다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넌…”
예상대로 그 존재는 바로 티폰이었다. 하지만, 그가 알던 기존의 티폰과는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원래의 티폰과는 달리, 지금 형진의 눈앞에 드러나 있는 그것은 기괴하게 일그러진 누군가의 머리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보는 순간 알았다. 이것의 정체를.
지금 형진의 눈앞에 있는 것은, 파괴와 재생의 아바타가 티폰과 결합한 형태의… 그야말로 괴물이라는 말로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는 존재였다.
“이렇게까지… 타락해 버린 거냐. 너란 존재는.”
형진의 탄식과 함께 이제는 뭐라 불러야 좋을지조차 모를 이 거대한 존재가 분노에 찬 포효를 터트렸다. 스스로를 그런 지경까지 몰고 가도록 만든 원한 깊은 존재의 출현을 그제서야 알아차린 것이다.
============================ 작품 후기 ============================
두편째.
오늘은 일이 좀 있어서 일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