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637
00637 144. 재격돌 =========================
크우으으우으우우우…
소리와는 다른 어떤 울림이 자잘한 먼지조차 남지 않은 채 허무만이 들어찬 공간을 울린다. 그것은 얼핏 절규와도 같았으며, 또한 통곡과도 같았고, 그 모든 것을 합쳐 놓은 듯 원한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듣는 이의 마음을 끓어오르게 만들어 일순 그 사무치는 감정으로 인해 주의를 흩어놓고, 만약 격이 떨어지는 존재라면 그 감정에 현혹되어 버리도록 만들 수도 있을 정도의 소리다.
허나 형진은 정신력이 부족하지도 않았고, 격이 떨어지지도 않았다. 그에게 있어 눈앞의 존재가 터트린 절규는 그저 고통에 몸부림치는 가련한 몸부림에 불과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동정보다는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것이었기에 형진은 끈적하게 달라붙으면서도 반대로 자신을 밀어내려는 듯한 그 절규를 견디며, 기괴하게 변질되어 버린 괴수로부터 급히 물러났다.
단순히 피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이 거대한 괴수를 효과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무기를 꺼내놓을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곧바로 마치 검은색의 시가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함선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은 대 티폰용의 결전 병기인 균형 붕괴포를 장착한 대형 함선이었다.
거대한 질량을 지닌 물체가 모습을 드러내자, 변질된 티폰은 그것을 집어 삼키고자 하는 욕망을 터트리며 스스로의 육체를 변이시켰다.
무언가의 두상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형태로부터, 머리카락에 해당하는 부분이 확 흩어지더니 마치 촉수처럼 균형 붕괴포를 장착한 함선을 향해 날아든다. 상대가 일반적인 존재였다면, 그 소름끼치는 공격에 의해 삽시간에 사로잡혀 변질된 티폰의 먹이로 전락했으리라. 하지만 불행히도 함선의 앞에는 티폰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강력한 존재가 버티고 있었다.
“깨어나라, 진정한 심연이여. 별빛 가득 찬란하게 피어난 아름다운 나의 밤이여.”
형진의 입으로부터 스스로의 마음 속에 담겨진 심상을 이끌어 내기 위한 말이 흘러나온다. 그것은 마법 주문과는 다른 것이었지만, 또한 마찬가지로 그의 심상을 형상화시키기 위한 도구이기도 했다.
그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 말에 의해 심상은 구체화되어 하나의 형상을 갖추어 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른바 밤의 권능이라 불리는 현상. 하지만 또한 이것은 지금까지 그나 그의 추종자들이 사용했던 밤의 권능과는 달랐다.
기존에 형진이 사용했던 밤의 권능은 단순하게 칠흑 같은 심연을 끌어올려 목표의 주위를 감사는 것으로 상대가 느끼는 모든 감각을 무로 되돌리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새롭게 형상화된 심상은 그러한 심연 속에 찬란하게 빛나는 별빛이 더해져 있었다. 그저 모든 감각을 앗아갈 새카만 어둠만이 아니라, 반짝이는 별빛이 사방에서 쏟아져 내리는 그런 아름다운 밤이다.
하지만 이 별빛들이 단순히 아름답기만 한 장식인 것은 아니었다.
별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세계를 밝히는 태양이다. 이 아름다운 등불이 있음으로 인해 생명이 피어나고, 또한 번성해 나갈 수 있다. 바다가 생명의 어머니라면, 태양은 아버지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생명을 피어나게 만드는 그 아름다운 빛의 선율이 사방으로부터 쏟아져 심연 안에 갇힌 존재들에게 내리쬔다. 본래 생명을 지닌 존재라면 이 원초적인 생명력의 향연에 힘을 얻고 활력을 되찾겠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이라면 반대의 효과를 얻을 수밖에 없다.
지금 형진 앞에서 아우성치고 있는 이 저주받은 존재처럼.
한치 앞을 살필 수조차 없는 새카만 심연이 쏟아지자, 파괴와 재생의 아바타와 융합하며 흉측하게 변질되어 버린 티폰은 촉수처럼 뻗어나온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스스로의 몸에 거대한 불꽃을 피워냈다. 그것을 통해 주위를 밝혀 감각을 되돌리려 한 것이겠지만, 아쉽게도 그와 같은 시도가 효과를 발휘하기도 전에 주위에서 찬란한 별빛들이 마치 송곳처럼 이 거대하고도 흉측한 존재의 몸으로 내리 꽂히기 시작했다.
그것은 처음엔 바늘과도 같았다. 수천개의 바늘이 사방으로부터 쏟아져 티폰의 몸을 찌르는 것처럼 보였다. 과연 저 거대한 괴수의 몸에 저런 가냘픈 바늘과도 같은 빛이 효과가 있을까 싶은 의문이 자연스럽게 들 정도로, 쏟아지는 별빛들은 너무나도 미약해 보였다.
하지만 이내 그 별빛들은 가냘픈 바늘에서 날카로운 작살처럼 사정없이 티폰의 몸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티폰은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몸을 꿰뚫는 이 아름다운 빛의 해일로부터 벗어나려 했다. 머리카락을 연상시키는 촉수를 우산처럼 펼쳐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생명력 가득한 빛들을 막아내려 했다. 그러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티폰이 지닌 언데드의 힘과는 극성인 이 날카로운 빛들은 필사적으로 펼쳐낸 머리카락들을 녹이고 불태우며 놈의 피부를 사정없이 꿰뚫기 시작한 것이다.
쾅! 콰과광!
쏟아지는 별빛과 티폰이 몸에 두르고 있던 불꽃들이 서로 반응하며 연쇄적인 폭발을 일으킨다. 어찌보면 이것은 지금 가해지고 있는 공격들을 상쇄시키는 훌륭한 수단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그 폭발로 인한 타격은 또한 고스란히 티폰에게 누적되어 가고 있었다.
크으우으우우우…
티폰은 몸부림치며 비명을 질러댔지만, 진정한 악몽은 지금부터였다.
밤의 권능에 갇혀 놈이 발버둥치고 있는 동안, 준비를 마친 균형 붕괴포가 녀석을 향해 마침내 발사되어 버린 것이다.
심연 속을 뚫고 날아든 한 줄기 빛은 피할 겨를도 없이 티폰의 몸에 직격했다. 놈은 처음에 그것을 지금까지 자신을 향해 쏟아져 내리던 별빛과 같은 종류의 것으로 인식했지만, 그것은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형태의 공격이었다.
콰드드득.
처음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하지만 그 빛이 전신을 감싸고 흩어진 순간, 티폰은 자신의 몸에 이상이 생겼음을 이해했다. 골격이 뒤틀리고, 스스로의 무게에 짓눌려 살점이 뭉개지는 고통이 놈의 감각을 헤집어 놓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쏟아지는 별빛으로 인해 겉면이 타들어가고 터져 나가는 고통을 느끼고 있던 놈에게 있어, 내면으로부터 엄습하는 그 끔찍한 고통은 또 다른 재앙이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수면 아래로 침잠한 채 잠자고 있던 파괴와 재생의 의식이 깨어났다.
비록 아바타를 티폰과 결합시킨 상태였지만, 파괴와 재생은 파편이 깨져 나간 타격으로 인해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아바타를 티폰과 결합시킨 것도, 티폰이 지닌 강대한 언데드의 힘과 더불어 뭐든지 먹어치우는 놈의 식성을 통해 주위의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기 위함이었다.
엘리시온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안식과 동굴을 통해 떨어지고 깨져 나간 신격을 보충하려던 시도도 무위로 돌아가 버린 지금 상황에서 조금이나마 자신의 상태를 호전시키기 위해서는 그 방법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깨어나는 순간 파괴와 재생은 깨달았다. 고통을 감내하기 위해 의식을 침잠시키고 티폰으로 하여금 스스로 움직이며 먹이를 찾도록 맡겼던 것이 실수임을, 주위를 감싸고 있는 밤의 권능을 인지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파괴와 재생은 다급해졌다.
지금 상태에서 또다시 일격을 당해 신격을 잃는다면, 사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아 갈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부족한 신격은 물론이고, 겨우 조금씩 사그라들던 그 끔찍한 고통이 다시금 몰아칠 것을 생각하니 정신마저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놈은 지금껏 끌어 모았던 언데드의 힘을 아낌없이 뿜어내었다. 자신의 아바타와 결합한 티폰의 몸을 촉매로 하여, 축적되어 있던 힘들을 한순간에 거대한 불꽃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큭!”
이미 한 번 균형 붕괴를 이용해 티폰을 손쉽게 사냥했던 전력이 있는데다, 결합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파괴와 재생 역시 별다른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형진은 이번에도 이 거대한 사냥감을 별 문제 없이 요리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안이한 판단을 비웃듯, 거대한 힘의 폭발이 내부로부터 터져 나오며 일순간 티폰의 몸을 감싸고 있던 밤의 권능이 흩어져 버린다.
비록 타격을 받은 상태라 해도 파괴와 재생 역시 이전에 대신으로 불리웠던 존재. 잠시 방심한 틈을 노려 지금까지 모아두었던 언데드의 힘을 필사적으로 분출하자 그 힘의 크기를 견디지 못하고 권능이 밀려 버린 것이다.
밤의 권능이 흩어지자, 파괴와 재생은 형진의 존재를 비로소 완벽하게 인지했다. 순간 놈은 참을 수 없는 거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지만, 또 한편으로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로 인해 입었던 상처의 기억이 떠오르며, 다시 한 번 그와 같은 고통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두려움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갑작스런 파괴와 재생의 반격에 밤의 권능이 흩어져 버렸지만, 그것은 잠깐의 방심에 의한 것일 뿐 형진의 힘이 모자랐기 때문은 아니었다. 곧바로 형진은 미리 주위에 흩어 놓았던 인공 위성들을 발동해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공간 전체에 거대한 황혼의 결계를 발동했다. 파괴와 재생의 의식이 아바타로 돌아온 지금, 놈이 도망칠 공간을 막아버린 것이다.
“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갈 때도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곤란하지.”
형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검은 불꽃으로 뒤덮여 활활 타오르고 있는 거대한 괴수를 향해 다시 한 번 밤의 권능을 불러들였다.
그것도 앞서와 같은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효과를 곁들인 새로운 밤의 권능을.
-이런 잡스러운 눈속임으로 날 가둬둘 수 있을 것 같은가!
파괴와 재생은 그렇게 외치며 다시 한 번 자신을 에워싼 밤의 권능을 흩어 버리고자 했다. 새카만 심연이 자신의 몸을 감싸고, 쏟아지는 별빛이 피부를 태워버리는 것 까지는 앞서와 같았다. 거기까지는 파괴와 재생도 예상한 바였지만, 뒤이어 날아드는 통렬한 타격에는 그야말로 헉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다.
이것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혜성이라고 하기엔 그것으로부터 피어오르는 불꽃이 너무 화려하고 밝다. 단순히 유성이라고 표현하기에는 그 크기가 너무나 크다.
파괴와 재생은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이 거대한 무언가가 단순한 눈속임이 아니라 분명한 실체를 가진 무언가임을 단숨에 간파했다. 하지만 녀석은 코웃음쳤다. 지금 자신의 아바타가 결합해 있는 이 존재는 별을 먹는 괴수라고 불리는 티폰이다. 이제 와서 혜성 따위에 몸을 움츠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 아무리 별을 먹는 괴수라 할지라도 저런 걸 함부로 삼켰다가는 어떤 탈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파괴와 재생은 일단 그 무언가를 촉수로 날려버리든 박살내버리든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게 웬 일.
기세 좋게 뻗어나간 촉수는 그 무언가를 후려치려다가 이내 튕겨져 나가고 말았다. 그렇다. 이 거대한 혜성은 또다른 신의 힘에 의해 보호 받고 있었던 것이다.
-어림없다!
하지만 파괴와 재생은 그렇게 소리치며 자신의 힘을 한데 모은 거대한 불꽃으로 그것에 맞부딪혀 갔다. 권능을 통해 보호 받고 있다 한들, 그보다 더 강한 권능으로 부숴버리면 그만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 생각은 훌륭하게 맞아 들어가고, 날아들던 거대한 혜성은 한 순간에 박살나며 파편을 사방에 흩뿌렸다.
파괴와 재생은 마치 폭죽처럼 터져 나가는 혜성의 모습에 쾌재를 올렸지만, 다음 순간 다시금 고통에 찬 비명을 터트려야만 했다.
어째서. 어째서 이런 일이!
이유는 간단했다. 이 혜성을 이루는 물질 자체가 언데드의 힘에 상극이었기 때문이다.
혜성을 이루는 구성 성분의 대부분은 얼음과 먼지다. 당연히 얼음은 물이 얼어붙은 것. 형진은 이것으로부터 착안해 언데드를 제압할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 냈다.
원리는 간단하다. 혜성을 구성하는 얼음 그 자체를 희망과 생명의 성수, 즉 포션화 시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사제는커녕 성녀의 자격을 지닌 유아조차도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작은 혜성이라도 결국은 우주 규모의 천체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물통에 들어차 있는 물에 신성력을 퍼붓는 것과는 규모 자체가 다른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관점으로 봤을 때의 얘기고, 그 일을 하는 주체가 신이라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것도 힘만으로는 모든 신들 가운데 최강이라 일컬어지는 어떤 츤데레 여신이라면, 일반적인 사제들은 시도조차 하지 못할 엄청난 일을 해내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름 하여, 성스러운 꼬리별.
적이 천체 스케일을 가지고 있다면, 이쪽도 천체 스케일로 대응하면 그 뿐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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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