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699
00699 158. 불청객 =========================
왕성 라이언하트는 이전부터 왕족들에게 호평 일색이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그들이 살고 있는 왕성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곳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성이라는 것은 방어를 위해 지어지는 것이다. 물론 개중에는 자신의 권세를 드러내 보이기 위한 수단으로 짓는 경우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는 방어수단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 통례였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왕성 라이언하트는 확실히 통례에서 벗어난 건축물이었다. 망망대해 한 가운데 세워진, 도대체 어떻게 자재를 들여오고 인력을 충당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런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지구에서였다면 세계 7대 불가사의니 뭐니 하는 이름을 얻었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그런 건축물이다.
“이제서야 말인데.”
왕성 라이언하트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호사를 누리며 감탄을 연발하고 있는 레나리스에게 형진이 다시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이대로 바다를 가로질러도 라야바르트에는 돌아갈 수 없어.”
“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레나리스는 형진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음… 그러니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라야바르트와는 다른 세계라는 의미야.”
“…”
다른 세상이라니.
레나리스로는 갑작스런 이 말을 이해할 기본적인 지식 자체가 부족했다. 그녀에게 있어서 세상이란 건 타나토스와 동의어였기 때문이다.
형진은 그런 레나리스의 기색을 눈치채고는 간단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이를테면… 거짓된 천국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지만 타나토스의 일부는 아니지. 그런 식으로 세상은 여러 가지 세계로 이루어져 있어. 왕성 라이언하트가 있는 세계는 원래 네가 살던 타나토스와는 다른 세계이고.”
“아…”
왕성 라이언하트가 공개된 이후로, 사람들은 이 성이 위치한 환상의 섬을 찾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해왔다. 소문을 들은 이들 중에는 탐험선단을 이끌고 라이언하트를 찾겠다고 나서는 이들조차 있었을 정도다.
물론 그런 이들은 대부분 실패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왕성 라이언하트가 아예 다른 곳에 있으리라는 상상은 하지 못했다. 그건 그야말로 세계를 초월한 사고방식을 지니지 않고는 불가능한 발상이었고, 상식적으로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왕성 라이언하트는 얼마 전까지 분명히 타나토스의 일부로 존재하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포트니아 테론이라는 새로운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장소를 옮긴 것 뿐이다. 하지만 형진은 그런 세세한 내용까지는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러자면 포트니아 테론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설명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세계는 육지보다 바다가 더 넓은 특이한 구조를 지니고 있어. 그래서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네가 아무리 마차를 마구 달려도 이 세계에서라면 사고 같은 것이 일어날 가능성조차 희박하다는 얘기지. 어딜 봐도 끝없이 펼쳐진 망망 대해니까.”
“아…”
“자,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바다 쪽으로 방향을 바꿔봐. 그리고 마음 내키는 데까지 마구 달려봐. 내가 허락할 테니.”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다로 시선을 돌린 레나리스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해볼게요!”
“좋아.”
형진은 느긋하게 다시 소파에 몸을 기댔고, 레나리스는 왕성 주위를 천천히 선회하고 있던 마차를 바다로 향하게 했다.
하늘 위에서 빠르게 소용돌이치며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구름 아래에 새하얀 마차 하나가 빠르게 질주하기 시작한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레나리스는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은 상쾌함을 느꼈다.
처음에는 위험하지 않도록 고도를 높인 채 날았지만, 어느 정도 마차 운전에 익숙해지자 레나리스는 대담해졌다. 조금씩 고도를 낮추며 아래쪽에 스쳐지나가는 바다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여유까지 생긴 것이다.
“이곳에서라면 큰 문제는 없겠지만, 다른 곳에서는 너무 빠른 속도로 나는 것은 좋지 않아.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걱정 마세요.”
괜히 이러다가 희망과 생명 같은 속도광을 만들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어 그렇게 충고하자, 레나리스는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제 슬슬 다시 돌아가 보도록 하자. 내일의 일정을 위해서는 그만 자둬야 할테니까.”
“네. 그렇게 할게요.”
순순히 형진의 말에 대답하긴 했어도, 레나리스는 조금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 잠이 들었다가 깨버리면 모처럼의 즐거웠던 기억이 전부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버린 탓이다.
살짝 시무룩해진 레나리스의 모습에, 형진은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시 말했다.
“너는 이미 우리의 가족이 되었다. 네가 원할 때는 언제든 다시 올 수 있으니 그런 표정 할 필요 없어.”
“죄, 죄송합니다.”
레나리스는 자신의 생각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나 버렸음을 깨닫고는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형진을 바라보며 밝게 웃었다. 그의 말처럼 이제는 가족이니 굳이 이렇게 아쉬워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떠올린 것이다.
돌아올 때는 조금 더 조심스럽게 마차를 몰았다. 바다 위를 질주할 때야 상관이 없었지만, 괜히 왕성의 건물에 충돌하기라도 하면 큰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왕성에도 마차에도 그 정도 상황에는 대처할 수 있는 안전 장치가 충분하게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수고했다. 오늘은 푹 자고 내일 다시 보도록 하자.”
“네!”
레나리스는 마중 나온 다른 식구들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는 제랄딘의 안내를 받아 다시 자신의 궁으로 돌아갔다.
“그럼 편히 쉬어요.”
“네. 제랄딘님.”
제랄딘은 레나리스가 다시 잠옷으로 갈아입는 것을 도와주고는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어 준 뒤 돌아갔다.
“당분간 근처에서 레나리스를 지켜주도록 해.”
하지만 그 와중에도 레나리스의 경호를 위해 그녀의 궁 주위에 토끼들을 몇 마리 정도 풀어 놓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직 어린 아이이니 만큼 추종자들보다는 이쪽이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제랄딘이 물러가고 토끼들이 궁 한켠에 자리를 잡은 뒤에도 레나리스는 한동안 잠들지 못했다. 오늘 경험했던 일들이 자꾸만 머리속에서 떠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레나리스는 이내 쌕쌕거리는 숨소리와 함께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그렇게 모두가 잠들어 버린 깊은 밤.
토끼들은 수풀 한 곳에 웅크린 채 제랄딘의 명령에 따라 레나리스가 잠들어 있는 궁을 지키고 있다가 문득 뭔가가 궁으로 다가오는 것을 발견했다.
순간 경계를 발동하며 주시하던 토끼들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다람쥐 한 마리가 머뭇거리며 궁으로 향하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토끼들은 생각했다.
다람쥐는 과연 레나리스에게 해가 될 만한 동물인가.
몸집이 큰 것도 아니고, 독 같은 것을 지니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머뭇거리며 궁 한쪽의 부엌으로 향하고 있는 모양새로 봐서는, 아마도 아침 식사로 쓸 식재료를 훔쳐 먹으려고 온 것이 아닐까 싶은 느낌.
잠시 서로를 돌아보던 토끼들은 그래도 혹시 모르니 쫓아내자고 결론을 내리고는 기세를 뿜어냈다.
조심스럽게 궁으로 다가서던 다람쥐는 갑자기 어디선가 갑자기 기세가 뿜어져 나오자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뒤이어 어둠 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토끼들의 붉은 눈동자를 보자 기겁하며 그대로 도망쳐 버리고 말았다.
사실 여기까지는 별다를 것이 없는 사건이었다. 궁에는 이런 저런 작은 숲이나 정원들이 산재해 있었고, 그 안에는 새나 다람쥐 같은 생물들이 많이 살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토끼들은 물론이고, 그들을 간접적으로 지켜보는 요정들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쳇.”
하지만 그것이 맹점이었다. 아무런 힘도 없는 그러한 동물들이 누군가의 눈과 귀가 되고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탓에 생겨난 맹점.
“곤란한데.”
레나리스와 접촉을 시도하려 했던 누군가는 다람쥐가 쫓겨 나오자 혀를 차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오늘은 일단 여기서 그만두는 것이 좋을까.
왕성 바깥의 허름한 여관 안에 앉아 있던 키 큰 여자는 잠시 망설였다. 너무 급하게 접근하려 했다가 공연히 일을 망치기라도 하면, 그녀가 모시는 위대한 어머니에게 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이제 이 나라의 여왕이 될 레나리스가 밤 중에 몰래 나갔다가 들어온 것에 그녀는 매우 신경이 쓰였다.
“분명히 뭔가 있어.”
뭔가 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하지만 레나리스는 그 시간동안 누구에게도 발각되지 않고 왕성을 빠져 나갔다가 조심스럽게 돌아왔다. 정원의 나무 위에 앉은 새들이 그 모습을 보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채.
여자는 잠시 고민하다가 일전에 위대한 어머니께서 남기셨던 말씀을 떠올렸다.
-그는 역시 조금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조만간 다시 부를 테니, 당분간 그를 살펴보세요.
위대한 어머니께서는 분명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를 살펴봐야만 한다고.
“한 번 더 해보자.”
여자는 주먹을 불끈 쥐며 그렇게 말하고는 궁 안의 다른 생명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람쥐가 실패했으니 이번에는 새다. 토끼들이 아무리 흉악한 맹수라고 한들,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까지 어떻게 하지는 못할 테니까.
나뭇가지 위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던 작은 새 한 마리가 화들짝 놀라며 잠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어딘가로 푸드득거리며 날아오른다.
새에게서는 어떤 힘도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새로서는 누군가에게 조종당한다는 느낌도 없었다. 단지, 어딘가로 날아가고 싶을 뿐이다.
그렇게 잠시 정원을 가로지르던 작은 새는 마침내 레나리스가 잠들어 있는 침실이 들여다 보이는 나뭇가지 위에 내려 앉았다. 그리고 가만히 창문 안쪽을 바라보았다.
작은 새의 시야에 잠들어 있는 레나리스의 모습이 들어오자, 왕성 밖에서 새를 조종하고 있던 키 큰 여자는 눈을 감고 의식을 집중했다. 그리고는 이내 축 늘어지듯 고개를 떨구었다.
“응?”
곤하게 잠들어 있던 레나리스는 자신이 어딘지 모를 작은 숲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을 느꼈다.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레나리스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어느 틈엔가 자신의 눈앞에 놓여져 있는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거기 앉아 있는 제랄딘의 모습을 발견했다.
“아, 안녕하세요.”
“그렇게 서있지 말고 앉으세요.”
“네.”
레나리스는 제랄딘의 모습을 보고는 안도하며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그녀가 타주는 차를 마셨다.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현상이 꿈인지조차 모른 채.
“오늘 어땠어요?”
제랄딘의 말에 레나리스는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래요?”
제랄딘의 모습을 연기하고 있는 키 큰 여자는 자신도 모르게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어쩐지 그녀가 기대했던 반응과는 조금 다른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어리긴 하지만 레나리스는 왕족 여성이다. 그런 여성이 밤중에 어딘가를 비밀스럽게 다녀왔다. 일반적으로는 기피되는 일이지만, 개중에는 어린 여성을 좋아하는 변태들도 있기 마련. 여자는 혹시 레나리스가 형진과 밀회를 한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궁금하네요. 어떤 점이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그러자 레나리스는 살짝 상기된 얼굴로 자신이 오늘 겪었던 일들을 시시콜콜하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잠들기 전까지 선연하게 떠오르는 오늘의 일들을 떠올리며 되새김질 했던 터라, 그녀는 자신이 겪었던 모든 것들을 아주 세세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
여자는 당혹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레나리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는 내용들 또한 무엇 하나 그녀가 예상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보호와 균형께서 저에게 엄마라고 부르라고 할 때는 정말 당황해 버렸어요. 정말이지, 너무 엉뚱하시다니까요.”
“그, 그랬나요.”
그렇게 얼떨떨한 기분으로 레나리스의 말에 맞장구를 치던 여자는 뭔가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을 떠올리다가 다시 물었다.
“혹시, 진과 단둘이 뭔가를 하지는 않았어요?”
“네?”
레나리스는 그 말에 화들짝 놀래더니 이내 발그레하게 상기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해, 했어요.”
“했다고요?”
“네. 함께… 마차를 몰았어요.”
“마차… 요?”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딱 걸렸다는 생각을 떠올렸지만, 뒤이어 나온 마차를 몰았다는 말에는 그만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다.
“네! 정말 재미있었어요! 마차를 몰고 파란 바다를 마음껏 달릴 때는 정말이지, 가슴 속까지 뻥 뚫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거든요.”
“그, 그, 그랬군요.”
눈빛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그 일을 다시 떠올리는 레나리스의 모습에 여자는 식은땀을 주륵 흘리고 말았다.
아무래도 뭔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콱 움켜 잡는다.
“헉!”
기겁하며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그곳에는 심연의 눈가리개를 쓴 채 빙긋 미소 짓고 있는 남자 하나가 서 있었다.
“잡았다. 이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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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편째.
나쁜 어른이들. 딱 걸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