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702
00702 159. 조치 =========================
이미 한 차례 포트니아 테론의 추종자를 강제 개종 시킨 일이 있는 상황이지만, 추종자의 문장과 소환된 개체를 지배하는 문장은 다소 차이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형진의 생각과는 달리, 베헤모스의 머리에 드러난 문장 역시 강도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추종자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
“음… 강제로 지배하는 건 아니라는 얘긴가.”
하긴 만약 그랬다면 소환이 완료된 시점에서 여자가 포효 한 방에 나가떨어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뭐가 불려나올 줄 알고 이렇게 강제성이 없는 형태의 문장을 새겨놓는단 말인가.
형진은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포트니아 테론의 문장을 지우고 그곳에 자신의 문장을 새겨 넣었다. 강제성이 없다고는 해도 포트니아 테론의 힘은 역시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제법 고생을 한데다, 혹시나 뭔가 함정 같은 것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꼼꼼하게 살피고 다시 자신의 의지를 강제할 수 있도록 새로운 문장을 새겨 넣다보니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려버렸다.
“후… 다 됐다.”
“뀨우?”
“끙… 그 울음소리 좀 어떻게 안 되냐? 덩치를 좀 생각하란 말이다.”
“뀨우우우…”
“에효. 말을 말자.”
문장을 새기는 일이 끝나자, 제랄딘이 다가와 물었다.
“얘는 어떻게 하실 거에요?”
“글쎄.”
일단 어디서 어떻게 사는 녀석인지부터 알아봐야 한다. 의사소통이 안 되니 쉽지는 않겠지만.
“일단… 이것저것 먹이가 될 만한 걸 줘봐. 뭘 먹는지 알면 대충 생태도 알 수 있을 테니까.”
“왕성에 가시려고요?”
“응.”
포로의 심문이나 사로잡은 베헤모스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역시 미엘과 하엘, 그리고 그녀들에게서 태어난 열두 명의 공주들이다. 포트니아 테론이 환수를 소환하고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이상, 다른 어떤 문제보다도 이것을 먼저 해결해야만 한다.
급히 왕성으로 돌아간 형진은 미엘과 하엘, 그리고 열두 공주들을 불러모았다.
“빠앗!”
“그래. 재미있게 놀았어요?”
“네에!”
아기 공주들은 변함없이 아빠가 부르자 좋다고 달려와 매달렸지만, 엄마들인 미엘과 하엘은 그의 기색이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무슨 일이에요?”
“그게 말이지…”
형진은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이 확인한 사항을 미엘과 하엘에게 전했다.
“환수 소환 능력이라니.”
“그런 신이 있었단 말인가요.”
“글쎄. 정확히 포트니아 테론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아. 이것이 전부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극히 일부분일 수도 있지. 하지만 분명한 건 어떤 식으로든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이야.”
신격 중에는 특정한 생물이 지칭되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에는 그 생물에 대한 수호신 역할을 하게 되는데, 만약 해당 생물이 멸종하게 되면 그 신은 사실상 신격이 소멸한 것과 다름없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는 예외가 있다. 바로 인간처럼 지성을 가진 생명체가 그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며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고 능력을 가지기 때문에, 수호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생각해보면 환수라도 흑요호나 은염랑처럼 지성을 가진 존재는 신격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형진은 포트니아 테론이라는 신이 지금까지 자신이 알고 있던 어떤 신과도 다른 부류라는 걸 직감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만약 그렇다면, 그가 알고 있는 상식을 통한 대응은 의미가 없는 일이 될 것이고,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제약도 더 이상 제약으로 기능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말인데.”
형진은 자신의 품에 달라붙어 행복한 표정으로 뺨을 부비고 있는 아기 공주들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안전장치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아이들을 내 추종자로 받아들이고 싶어.”
사실 지금까지 그러려고 마음먹었으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아이들이니 그냥 자신의 추종자로 삼아버리면 그뿐일 수도 있는 일이니까.
하지만 형진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비록 자신의 아이들이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소유물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미래는 아이들 스스로가 선택해야만 한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어떤 신을 섬길지에 대한 것도 그런 부분 중 하나인 셈이다.
물론 아이들을 추종자로 삼는다고 해서 그것이 완전한 대책이 되는지는 아직 알지 못한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포트니아 테론 역시 강제 개종이라는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는 문제니까. 하지만 적어도 추종자로 삼으면 포트니아 테론이 아이들에게 뭔가 수작을 부릴 경우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신이라고 추종자에 대한 것을 모두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럴 의지가 있다면 공포와 죽음처럼 세세한 것까지 들여다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형진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미엘은 작게 미소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당신이 그렇게 하기로 정했다면, 아이들도 거부하진 않을 거에요. 모두들 당신을 좋아하니까요.”
“그, 그럴까.”
그렇게 말하며 하엘을 바라보자,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미엘 뒤에 숨어버린다. 뭔가 반응이 미묘하다. 이제 와서 갑자기 낯을 가리는 것도 아니고 왜 저러는지.
하지만 미엘은 그런 하엘의 모습에 다시 웃으며 아기들을 향해 말했다.
“물론이죠. 그렇지? 얘들아.”
“네에!”
미엘의 말에 아기 공주들은 입을 모아 그렇게 대답했다. 병아리 같은 그 모습에 형진은 등골로부터 짜릿한 어떤 기분마저 느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뭐랄까. 지금까지 해왔던 일이 그리 잘못된 것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고 해야 하나. 솔직히 말해서 애들이 추종자가 뭔지 알기나 할까 싶긴 하지만, 그래도 싫다고 안하는 것이 어딘가.
“자, 그럼 한 명씩 시작하자. 누가 먼저 할래?”
“저요!”
“그래. 다희부터 해보자.”
형진은 혹시라도 아이들에게 탈이라도 날까 싶은 마음에 조심조심 주시자의 문장을 건네 주었다.
“다 됐다.”
“다 돼따!”
앵무새처럼 자신의 말을 따라하는 다희의 손에는 자신의 추종자가 되었음을 상징하는 작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형진은 그런 다희의 손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는 아빠한테 말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메시지를 이용하면 돼. 자, 이런 식으로 쓰는 거야.”
[까꿍!]
“꺄하하하하하!”
형진의 목소리가 메시지를 통해 전해지자 다희는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오늘도 어김없이 비와 낭만을 인형처럼 품에 안은 모습으로.
어쩐지 미안하다. 원래 이 정도면 다희는 비와 낭만의 추종자가 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식으로 아이들을 추종자로 받아들이는 일을 끝낸 형진은 한 시름 던 기분으로 다시 베헤모스를 불러냈던 사막 행성으로 돌아갔다.
“어떻게 됐어?”
제랄딘은 형진을 바라보며 바로 대답했다.
“음… 원래 바다에 살던 녀석인가 봐요.”
“그래?”
하긴 이 정도로 거대한 생명체라면 자신의 몸을 유지하기 위해 바다의 부력을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은염랑들의 고향인 라스 쿠 같은 특이한 환경이 아닌 이상은.
베헤모스는 제랄딘이 건네준 커다란 물고기를 냠냠거리며 맛있게 먹고 있었다. 이렇게 보니 어째 등껍질이 없는 바다거북 같은 느낌도 든다.
“바다라… 음, 어쩐다.”
형진이 보유한 곳 가운데 바다가 가장 넓은 곳이라면 역시 왕성 라이언하트가 옮겨간 곳이다. 바다가 행성 표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그곳이라면 이 정도의 덩치라도 마음껏 활개치고 다닐 수 있고, 왕성은 물론이고 멀리 떨어진 별궁에도 제각기 결계가 쳐져 있기 때문에 안전에도 문제가 없다.
“좋아. 원래 살던 곳을 찾기 전까지는 일단 그곳에 가져다 놓는 것이 좋겠군.”
그렇게 해서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울음소리를 지닌 거대한 환수 베헤모스는 왕성 라이언하트의 바다에서 살게 되었다.
“뀨우우!”
“시끄러. 가서 혼자 놀아. 너랑 놀아줄 시간 없어.”
“뀨우우우…”
다소 강제성이 있는 문양을 새기고 먹이까지 줘서 그런지 되지도 않는 아양을 떤다. 작고 귀여운 녀석이라면 몰라도, 문자 그대로 산만한 녀석이 이러니 뭔가 징그럽다.
일단 급한 조치는 모두 취했으니 이제 슬슬 포로를 심문할까 하는데, 문득 제랄딘이 말했다.
“생각보다 머리가 좋은 것 같아요.”
“제깟 녀석이 머리가 좋아봐야, 얼마나 좋다고. 뭐… 아주 멍청이는 아닌 것 같지만.”
형진이 툴툴거리면서 그렇게 말하자, 제랄딘은 웃으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래서 말인데요. 혹시 이 녀석의 고향…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요? 기억을 살펴서.”
“이 녀석의 고향?”
그 말을 듣는 순간 형진은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왜 진작 그 생각을 못 했단 말인가.
베헤모스는 티폰보다는 덜하지만 역시나 소환되는 것만으로도 재앙이라고 할 만한 덩치를 가진 환수다. 하지만 이 녀석이 본래 서식하는 장소를 찾아내, 그곳을 결계로 뒤덮어 버린다면 어떨까. 일일이 다른 세계들을 강력한 결계로 감싸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소환을 막을 수 있게 된다. 하나의 행성을 결계로 감싸는 것이 다른 모든 행성의 결계를 강화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대단해. 역시 제랄딘이야!”
“꺄앗! 아하하하! 이, 이러지 말아요. 놀랬잖아요!”
갑자기 형진이 와락 껴안고 마구 입을 맞추자 제랄딘은 간지러운지 웃음을 터트리면서도 살짝 눈을 흘겼다. 그 모습이 또 어찌나 귀여운지, 형진은 제랄딘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꽉 껴안은 채 마구 입을 맞춰 주었다.
“아우. 정말. 못 말려.”
“하하.”
형진은 곧바로 물속에서 느긋하게 헤엄치고 있는 베헤모스에게 다가가 녀석의 기억을 읽었다. 역시나 인간처럼 고차원적인 지능을 지니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기억력 만큼은 상당한 수준이어서 어렵지 않게 녀석의 고향을 알아낼 수 있었다.
“자, 다 됐다. 이제 네 녀석 고향으로 가보자.”
“뀨우?”
“끙… 설마 다른 놈들도 다 이런 건 아니겠지.”
어쩐지 일부로 뀨뀨 거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떠올리며, 형진은 녀석의 기억으로부터 읽어낸 베헤모스의 고향을 향해 황혼의 권능을 발현시켰다.
경계를 넘자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짙은 공기였다. 은염랑의 고향인 라스 쿠 정도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수준의 밀도를 지닌 짙은 공기가 순간 확 하고 피부로 전해져 온다.
“뀨우우!”
베헤모스는 갑자기 주위의 모습이 바뀌자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자신의 고향에 돌아왔음을 깨닫고는 기뻐하며 얼른 눈앞의 늪지대로 뛰어들었다.
“뭔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군.”
“그러게요.”
베헤모스의 고향은 왕성 라이언하트가 있는 행성과는 또 달랐다. 바다나 하천이라고는 하기 어려운 질퍽한 늪지대와 함께 양치류로 보이는 식물들이 우거져 있는, 꼭 지구의 중생대를 재현하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은 곳이었다.
“뀨우우우!”
“뀨!”
“뀨뀨!”
새로운 세계의 모습을 살펴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리더니 지축을 울리며 베헤모스 무리들이 달려온다.
“어, 엄청나군.”
“그러게요.”
놀랍게도 사로잡힌 베헤모스는 그 무리 중에서 그나마 작은 편에 속했다. 도대체 저 체구를 어떻게 유지하는 걸까 싶은 거대한 체구의 놈들이 일제히 몰려오니, 제 아무리 형진이라 해도 슬쩍 위압감을 느낄 정도다.
“뀨우우!”
형진의 문장을 머리에 단 녀석이 납작 엎드리며 그렇게 외친다. 뭔가… 고맙다는 식의 표현은 아닌 것 같고 다른 의도가 담긴 행동 같다.
“왜? 뭐 어쩌라고?”
형진이 그렇게 묻자, 제랄딘이 쿡쿡거리며 웃더니 인벤토리에서 커다란 물고기 하나를 꺼내 던져 주었다.
“아까 왕성에 가 있으신 동안 제가 뭘 좀 가르쳤어요. 방금 그건 먹을 걸 달라는 뜻이에요.”
“강아지냐!”
하지만 베헤모스는 그러거나 말거나 제랄딘이 던져주는 물고기를 얼른 받아먹었다.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뀨우웃!”
“뀨! 뀨!”
녀석이 끌고 온 베헤모스들이 일제히 같은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왜 죄다 뀨뀨거리나 했더니 이래서였던 모양이다. 그렇게 하면 맛있는 물고기를 준다는 걸 그 짧은 순간에 학습해 버린 것이다!
“어떻게 할 거야?”
“그, 글쎄요.”
형진의 말에 제랄딘은 식은땀을 주륵 흘리며 난처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 작품 후기 ============================
두편째.
배, 배고파… 뀨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