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703
00703 159. 조치 =========================
덩치에 맞지 않게 잔망스러운 베헤모스들의 모습에 당황하긴 했지만, 형진은 우선 녀석들이 살고 있는 행성에 위성망을 설치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물론 설치라고 해봐야 일일이 위성을 장치하는 것도 아니고 무인기를 띄운 다음 위성들이 자리를 잡는 걸 기다리는 정도에 불과하다.
베헤모스들이 살고 있는 행성은 처음 느꼈던 대로 지구의 중생대를 옮겨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특징적인 점이라면 역시나 생물들의 덩치가 무지막지하게 크다는 점. 다른 건 몰라도 팔뚝만한 모기를 봤을 때는 제랄딘마저도 기겁을 했을 정도다.
“농담으로라도 놀러올 만한 곳은 아니군.”
“그, 그러네요.”
이외에도 여러 가지 생물들이 존재했지만, 역시나 베헤모스들이 이곳의 최상위 포식자라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인 듯 했다.
“뀨우!”
“알았어.”
베헤모스들은 놀랍게도 마법 비슷한 것을 사용할 줄 알았다. 그렇다고 불을 뿜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식은 아니고, 거대한 자신들의 체구를 유지하기 위한 신체 강화나 푹푹 빠지는 늪지대에서 보다 자유롭게 움직이기 위한 보조 마법 정도다. 아마도 이런 능력들이 베헤모스들을 일반적인 생물이 아닌 환수로 분류되도록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참치 같은 물고기를 몇 개 던져 주자, 베헤모스들을 형진과 제랄딘을 등에 태우고 자신들이 사는 곳을 구경시켜 주었다. 그래봐야 유기물들이 가득 들어차 있는 늪지대와 빼곡하게 자라난 양치류 숲 정도가 고작이다.
“흑요호들도 어딘가에 이런 고향별이 있는 걸까.”
“글쎄요.”
타나토스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종족이 아니라면 결국 어딘가에서 넘어왔다는 얘기. 하지만 이전에 은염랑 때도 확인해 봤지만 아직 흑요호가 어디서 온 생물인지는 알 수가 없다.
“역시 그쪽도 조치를 취하긴 해야겠지.”
“…”
흑요호들은 타나토스 각지에 흩어져서 지내고 있긴 하지만, 자신들만의 마을 정도는 가지고 있다. 배우자에게서 떠난 흑요호들이 아직 어린 아이들을 성인이 될 때까지 키우는 곳이다.
사실 흑요호들은 매우 강력한 존재들이라 아군으로 끌어들이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당장 미엘과 하엘만 보더라도 그건 분명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진이 지금까지 그들에게 손을 뻗지 않은 건 역시 그들의 특이한 번식 과정 때문일 것이다.
“곤란한데.”
하긴 인간이었을 때라면 몰라도 신이 된 지금은 흑요호들이 번식하자고 무작정 달려들지는 못할 테니 큰 문제는 없을지도.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좀 달라졌다. 자칫 포트니아 테론 쪽에서 손을 써서 흑요호들이 그쪽으로 넘어가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미엘만 하더라도 집행자들 가운데 손꼽히는 강자라는 점을 생각하면, 아군으로 끌어들이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적이 되는 일은 막아야만 한다.
하나를 해결하니 곧바로 또다른 하나가 나타나는 식이다. 형진은 어쩐지 머리가 지끈거리는 기분마저 느끼고 있었다.
“할 일이 태산이군.”
“그러네요.”
베헤모스들은 일단 자신들의 행성에서 원래대로 살도록 놔두기로 했다. 이전에 타즈프라는 이름의 리치가 그랬던 것처럼 등에 뭔가를 짊어지게 하고 다닐 수도 있겠지만, 언데드도 아닌 살아있는 생물을 그런 식으로 쓰긴 뭔가 곤란하다. 워낙 덩치가 커서 제대로 활용할 수단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나중에 아기 공주들이 커서 이 녀석들을 다룰 수 있을 정도가 되면 한 마리씩 분양해 줄까. 다희라면 꽤 좋아할 것 같긴 하다.
어쨌든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형진은 자신을 태우고 다녔던 베헤모스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만 가봐야겠다. 잘 지내라.”
“뀨우?”
알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형진은 자신의 문장을 머리에 새긴 베헤모스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는 다시 왕성 라이언하트로 돌아왔다.
“당신은 흑요호의 마을 위치를 확인해 봐.”
“네.”
제랄딘에게 일을 맡긴 형진은 비로소 가둬두었던 포로에게로 향했다.
“나, 날… 어쩔 셈이지?”
베헤모스의 포효 한 방에 기절해 버렸던 것 치고는 제법 쌩쌩한 상태였다. 하기야 이쪽도 추종자이니 나름대로의 대책은 있을 것이다.
생포할 당시 지니고 있던 무기들은 회수했지만 어느 틈엔가 단검 하나를 뽑아들고 서있다. 아마도 인벤토리를 지니고 있는 모양. 하지만 바보 같은 짓이다. 형진이라면 그런 사실은 일단 숨겨뒀다가 비장의 한 수로 사용했을 테니까.
“글쎄. 어떻게 할까.”
“오지 마! 다가오면… 죽어버릴 거야!”
역시나 자신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고 생각한 걸까. 형진을 향해 겨누고 있던 단검으로 자신의 목을 겨눈다. 그걸로 형진의 행동을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고, 아마도 그의 손에 의해 더럽혀지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 식의 행동이 아닐까 싶다.
어쩐지 데자뷰가 느껴진다. 전에도 이런 상황이 있었던 것 같은데.
“시끄러워.”
형진이 귀찮다는 듯이 손을 내저으니 그들이 있던 장소는 순식간에 밤의 권능에 뒤덮여 새카만 암흑으로 변해 버렸다.
“무, 무슨 짓을…”
“글쎄 무슨 짓을 하려고 그러는 걸까.”
“악!”
시끄러우니 일단 입부터 다물게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형진은 어둠에 휩싸이자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여자에게서 간단하게 단검을 빼앗아 버리고는 그 머리를 한 손으로 움켜쥐었다.
“자, 잠깐… 아아악!”
그리고 곧바로 강제 개종. 굳이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길게 말로 이것저것 떠들어댈 필요는 없는 일이다. 더구나 그 와중에 기억을 읽는 것도 가능하니 실로 일석이조다. 굳이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심문과정을 귀찮게 거칠 필요가 있겠는가.
“응?”
여자의 혼란스러운 심정을 대변하듯 뒤죽박죽이 되어 버린 기억을 살펴보던 형진의 눈이 문득 부릅떠진다.
“젠장!”
그럴 수밖에 없다. 여자의 기억을 통해, 결선에 참가 했던 또 다른 요리사인 레테가 사실은 포트니아 테론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탓이다.
눈앞에 뻔히 다가와 있었던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다니. 게다가 한 번도 아니고 몇 번이나. 이런 빌어먹을 일이 있나!
[제랄딘. 긴급 수배다. 대상은 루사낙의 레테. 지금 바로 위치를 확인하도록.] [갑자기 그게 무슨…] [그 여자가 사실은 포트니아 테론이었어!] [네?]형진의 뜻에 따라 제랄딘은 본신을 통해 집행자들에게 루사낙 출신의 요리사인 레테의 위치를 확인하도록 했고, 그 일이 끝나자 곧바로 위성과 무인기들을 루사낙으로 급파해 동향을 살폈다.
정말로 레테가 포트니아 테론 본인이거나 아바타일 경우, 집행자로서는 감당하기 힘들다. 때문에 일단 멀찌감치 떨어진 상태로 살피고자 한 것이다.
레테의 위치는 어렵지 않게 확인되었다. 그녀는 루사낙에 있는 자신의 식당에서 열심히 일하는 중이었다.
“음…”
형진의 급한 연락을 받고 레테의 위치와 동향을 파악하던 제랄딘은 이내 얼굴을 찌푸렸다. 뭔가, 예상했던 모습과는 다른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위장? 물론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시기에 한가롭게 식당에서 요리하며 손님들을 맞이하는 행동을 해야 할 당위성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하기가 애매한 일이다. 따지고 보면 포트니아 테론은 적진 한복판에 들어와 있는 상태. 부지런히 세력을 모으고 추종자들을 만들어도 부족할 판에,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다니.
형진은 형진대로 당혹감에 빠져 있었다.
“아르테미스?”
그것은 바로 사로잡힌 여자에게 포트니아 테론이 부여한 일종의 코드명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또한 그것은 형진이 잘 알고 있는 어떤 신화의 여신 이름이기도 하다.
물론 이 여자에게 신격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그런 이명이 주어지고 그에 걸맞은 힘이 부여되었을 뿐. 그 힘은 권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미약한 힘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진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도대체… 이런 일이 가능하긴 한 건가.”
아르테미스라는 이명은 이를테면 하나의 패키지 같은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그와 같은 이름을 받는 순간, 거기에 걸맞는 능력들이 세트로 부여되는 식이다. 문제는 이런 식의 패키지가 하나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즉, 어딘가에는 아폴론이나 헤르메스 같은 형태의 패키지를 부여받은 포트니아 테론의 추종자도 있을지 모른다는 뜻이 된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공포와 죽음이 집행자들에게 부여한 스킬 시스템과도 비슷한 면이 있었다. 인벤토리나 기타 시스템 적인 측면은 허세와 망상이 지닌 힘과도 비슷했다.
“도대체… 신격이 뭐길래 이런 것이 가능한 거지.”
형진은 여자의 남은 기억들까지 꼼꼼하게 살펴보고는 강제 개종을 마치고 결계를 빠져 나왔다.
여자의 기억 자체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그녀는 조금 떨어진 다른 나라의 사냥꾼이었다가 포트니아 테론에게 선택되어 추종자가 되었다. 보통 사냥꾼이라고 하면 남자들이 많이 선택하는 일이고, 그래서 이 여자는 이런 저런 차별을 받아야만 했다.
단순히 견제나 차별을 받는 정도라면 몰라도, 숲에서 덮치려는 시도까지 몇 번 더해지자 그녀는 격렬한 남자 혐오 상태에 빠졌다. 형진을 보기가 무섭게 앙칼진 고양이 같은 반응을 보였던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면 아르테미스라는 이명이 괜히 붙은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랄까.
그녀에게 주어진 능력이 익히 알고 있는 스킬 시스템과 동류의 것이라면, 주어진 능력 자체가 약한 것이 아니라 아직 미숙해서 그런 것일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이것은 바꿔 말하자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력한 힘을 지닌 포트니아 테론의 추종자들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위치는 확인이 되었어요. 그런데… 아무리 봐도 별다른 이상한 점이 느껴지질 않는데요.] [그래? 알았어. 내가 가보도록 하지.] [조심하세요.] [걱정마.]형진은 곧바로 준비를 갖추고는 제랄딘이 알려준 위치로 이동했다.
그녀의 말대로 레테는 평범한 동네 아주머니처럼 자신의 자그마한 음식점에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그쪽에 앉으세요. 뭘로 드릴…”
레테는 다른 손님에게 하듯 형진에게 말을 걸다가 그의 모습을 보며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엇다. 형진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주위에 결계를 치고 몸을 긴장시켰지만, 이 인자한 분위기의 아주머니는 그대로 넙죽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에, 엘 파르드의 국왕 폐하를 뵙습니다.”
“뭐?”
“헉! 폐, 폐하를 뵙습니다.”
“…”
작은 음식점 안에서 기분 좋게 구운 감자를 안주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사람들은 레테의 말을 듣자마자 얼른 의자에서 내려와 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뭔가 기대했던 반응과는 다르다. 물론 레테는 요리 대회에서 그를 본 적이 있으니 이런 반응을 보여도 이상할 것이 없지만, 아르테미스가 사로 잡힌 것을 알고 있다면 좀 더 다른 반응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잠깐 밖에서 얘기를 좀 했으면 합니다만.”
“네. 자, 잠시만요.”
어쨌든 다른 사람들이 휘말리면 그것도 골치 아픈 일이라 그렇게 얘기를 꺼내자, 레테는 허둥지둥 손을 닦고 그를 따라 뒤뜰로 나왔다.
확실히 뭔가 다르다. 요리 대회에서의 그 차분한 모습과는 확실하게 구분되는 뭔가가 있었다. 겉모습은 같지만 어쩐지 알맹이가 바뀐 듯한 모습이라고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방심할 수는 없는 일. 형진은 레테가 뒤뜰로 따라 나오자, 정중하게 말을 건넸다.
“잠깐 확인할 것이 있어서 그런데, 손을 좀 잡아도 되겠습니까?”
“소, 손을요?”
갑작스런 형진의 말에 레테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얼굴마저 살짝 붉히는 모습이 어쩐지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러고 보면 그란델에서도 형진은 아줌마들한테 인기가 좋았다. 어쩐지 옛날 생각이 나게 반드는 반응이다. 잠깐 쉬었다 가라고 손목을 콱 움켜 잡던 그 아줌마는 요새 뭐하고 지낼까. 요즘도 지나가는 총각 붙잡고 물좀 떠다 달라고 부탁하고 있으려나.
“여, 여기…”
“…”
잠시 쓸 데 없는 상념을 떠올리던 형진은 내밀어진 레테의 손을 보고는 얼른 정신을 다잡았다.
너무 순순히 내준다. 자신이 있다는 걸까. 아니면 일종의 함정인 걸까. 생각이 복잡하긴 햇지만, 어쨌든 형진은 얼굴을 굳힌 채로 그녀의 손목을 움켜쥐고는 내면을 확인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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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