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740
00740 167. 흑요호 =========================
그 자리에 있던 여성들은 모두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흑요호가 신성한 의무라 칭하면서도 아이 낳는 것을 꺼리는 이유가 무엇이던가. 너무나 오랜 출산 기간 때문이다. 떨어지지도 못한 채 한 사람에게 얽매여 있어야만 하는 너무나 긴 시간 때문이다.
차라리 신처럼 시간관념이 아예 다르다면 모를까. 흑요호는 오랜 세월을 살아가면서도 인간과 시간관념이 그리 다르지 않다. 언제까지나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아이가 귀엽게 옹알거리는 것을 듣기도 전에 먼저 세상을 뜨는 경우가 허다하다.
뿐인가. 겨우 정이 들었다 싶으면 떠나보내야 하는 그 심정 또한, 어찌 보면 흑요호들에게 있어 반려를 맞이하는 일을 꺼리게 만드는 중요한 이유이다.
그런데, 지금 그들 앞에 나타난 이 남자는, 자신들보다 아직 한참 어린 흑요호가 이미 출산을 마쳤다고 말하고 있다. 게다가 한두 명도 아닌, 무려 다섯 명이나 한 번에 낳았다고 말하고 있다. 신이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운을 지닌 것은 그들도 잘 알고 있는 일이지만, 이것은 확실히 전대미문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다.
“다, 다섯이라고 하셨나요?”
“네. 아주 예쁘고 귀여운 아이들입니다. 눈을 마주치는 순간 빠져들 수밖에 없는 공주님들이죠.”
“…”
형진은 아이들이 빠아거리면서 달려드는 모습을 떠올렸는지 몸을 부르르 떨며 행복해 하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그건 아빠로서의 아주 당연한 반응이었지만, 지켜보던 여성들은 그런 그의 모습에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미, 믿기 어렵군요. 물론… 신께서 하시는 말씀을 의심하고자 하는 건 아닙니다만, 이제껏 흑요호 가운데 그런 식으로 많은 아이를 한번에 낳은 경우가 있다고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다른 여자가 그렇게 말하자 형진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바로 말했다.
“하엘은 오히려 적게 낳은 편인데요. 미엘은 한 번에 일곱이나 낳았습니다. 물론 좀 더 오랜 시간동안 저와 함께 하긴 했지만요.”
“이, 이, 이, 일곱?”
다섯도 놀라 자빠질 판인데, 일곱이라니.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이긴 한 건가!
하지만 형진은 입이 떡 벌어진 그들의 모습은 이미 잊은 것처럼 자랑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네. 덕분에 이름을 짓느라 아주 고생이었지요. 하엘이 낳은 아이들까지 합치면 무려 열둘입니다. 아, 물론 흑요호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스스로 이름을 짓는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일국의 공주들을 쑥쑥이니 열심이니 하는 이름으로 부를 수는 없는 일이라. 하하.”
“…”
아이들의 이야기가 나오자 어느새 형진은 바보 아빠 상태로 바뀌어 버렸고, 그런 그의 모습에 여성들은 더욱더 당혹스러운 기분이 되어 버렸다.
믿기 어렵다. 하지만 상대는 신이다. 게다가 말하는 품으로 봐서는 정말로 아이들이 귀여워서 어쩔 줄 모르는 모양새다. 흑요호들에게 진실을 꿰뚫어 보는 힘 같은 건 없지만, 아이들을 좋아하는 아빠인지 그냥 그러는 척 하는 것인지 정도는 엄마의 감으로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잠시 동안 주위를 휘몰아친 당혹감을 겨우 수습한 여성 하나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저희를… 보살피기 위해 오셨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만,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다시 자신의 아이들에 대한 얘기를 늘어놓으려다가 방해를 받은 형진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대답했다.
“음… 글쎄요. 일단 흑요호들이 다른 위협에 노출되지 않도록 보호를 해드릴 수도 있고,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일도 가능합니다.”
“아이들의… 성장을요?”
“네. 사실 제가 보호하고 있는 흑요호가 하나 더 있습니다. 젤라님과 그녀의 아이인 도담이지요. 아직 낳은지 얼마 안 되는 아이지만, 도담이는 벌써 스스로 말을 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그, 그럴 수가!”
그제서야 흑요호들은 앞서 들었던 형진의 말에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위화감을 이해했다. 사실 태어난 직후의 흑요호 아이들은 인간의 형체가 아닌 털뭉치 같은 모습에 불과하다. 그나마 시간이 지나면 아이의 모습으로 변화하기는 하지만, 꼬리 하나가 나올 때까지는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한다. 그런데 아직 마을에 들어오기도 전인 아이가 스스로 말을 하다니,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했길래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 겁니까.”
“제가 좀 정기가 넘치거든요. 그 넘치는 정기를 좀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를테면, 유모 같은 거라고나 할까요. 남자로 태어나 유모 일을 하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하하하.”
“…”
이제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조차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흑요호들의 모습에 빙긋 웃어보인 형진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품에서 몇 가지 도구들을 꺼냈다. 인공위성을 탑재한 무인기와 몇 가지 성물이 바로 그것이다.
“그건…”
“아… 이곳을 보호하기 위한 몇 가지 도구들입니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
정중한 어조로 그렇게 말한 형진은 먼저 무인기를 띄우고는 허깨비처럼 스륵 움직여 마을 중앙의 공터에 다가가더니, 그곳에 성소를 불러일으켰다.
“헛!”
갑자기 땅으로부터 기둥이 불끈불끈 솟아오른다. 하지만 놀란 흑요호들이 뭔가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그것들은 성스러운 기운을 풍기는 작은 건축물로 변화했다.
형진은 성소 안에 마련된 제단 위에 여신들의 모습을 새긴 성물을 하나씩 비치했다.
“이쪽의 여신은 희망과 생명입니다. 아시다시피 그녀의 권능은 강력한 회복 능력을 선사합니다. 혹시라도 몸이 아프거나 할 경우에는 그녀의 힘을 빌리시면 됩니다.”
가장 먼저 희망과 생명의 성물을 가리켜 보이며 설명한 형진은 그 옆에 선 여신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보호와 균형입니다. 그녀의 성물이 배치된 곳으로부터 일정 범위 안은 허락 없이 상대를 상처 입히는 일이 불가능한 성역으로 정해집니다. 혹시라도 아이들이 장난을 치다가 다치는 일을 막아줄 겁니다. 또한 그녀가 지닌 또 다른 권능인 균형은 항상 여러분이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도움을 줄 것입니다.”
이번에는 황혼과 망각 차례다.
“황혼과 망각의 힘 가운데 가장 유용한 것은 바로 서로 다른 공간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황혼의 권능입니다. 그녀의 힘이라면 다른 성물이 위치한 곳, 이를테면 타나토스 각지에 위치한 신전 같은 곳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됩니다. 물론, 다른 이들이 함부로 이곳에 드나들지 못하도록 제한을 걸어두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런 식으로 비치된 신들의 성물에 대한 설명을 하나 하나 이어가기 시작하자, 흑요호들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 내용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 형진은 별 것 아닌 듯이 말하고 있었지만, 마을 안에 이런 강대한 힘을 지닌 성물이 하나도 아니고 몇 개나 비치되는 일 자체가 전례 없는 일이다.
그러다가 문득 이상한 점 하나를 깨달았다. 다른 신들의 성물은 그렇게 하나 가득 꺼내놓았으면서 정작 형진 본인의 성물은 없었다.
“저… 밤의 신께서는 성물을 비치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저요? 글쎄요. 전 이런 식으로 대중적인 신이 아닌지라. 이를테면 공포와 죽음과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
확실히 공포와 죽음의 경우엔 이런 식으로 신전에 모셔놓고 숭배하는 신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성물이 안치된 신들에 비해 존재감은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나, 죄지은 자들을 살피는 시선이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밤의 신 또한 그런 부류라고 한다면, 지금 이렇게 편안한 시선을 보내는 것은 그녀들과 마찬가지로 흑요호 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이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게다가, 사실 굳이 이런 식으로 성물의 힘을 빌리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어서… 라는 것도 한 가지 이유겠군요.”
“더 좋은 방법이요? 그게 무엇인가요.”
형진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간단합니다. 여러분이 제 추종자가 되는 거죠.”
“추, 추종자요?”
“그렇습니다. 물론 이건 포트니아 테론님의 허락을 받은 사안입니다.”
“…”
흑요호들은 미소를 짓고 있는 그의 얼굴과 마주하는 순간 이것이 거부할 수 없는 일임을 이해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저도 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이라 여러분에게 무리하게 무언가를 시킬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요. 그저, 제 추종자가 되시면 여러분의 상황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릴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제가 지닌 여러 가지 유용한 도구들을 누구보다도 먼저 여러분이 사용할 수 있게 되죠. 사실 지금 이 성소도 그런 보상 가운데 하나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공짜가 아니다. 형진의 다른 추종자들이 그런 것처럼, 그들은 신앙과 공헌도를 바쳐야만 한다. 하지만 이것에 대해서는 달리 설명하지 않았다. 권리가 있으면 책임과 의무도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어떤 외판원도 그것을 먼저 설명하지는 않는 법이다.
“저… 그래도… 이건 역시 어머니의 의향을 들어보지 않으면…”
포트니아 테론의 보호를 받아 이곳으로 이주한지 며칠 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제 다른 신의 추종자가 되라는 말을 들었으니 그것을 간단히 받아들이고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다른 신이었다면 이런 말을 듣는 순간 곤란한 표정을 지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형진은 당연하다는 듯이 누군가를 불러냈다.
“그렇다는데요. 장모님.”
그러자 흑요호들 앞에 한 명의 모습이 드러났다.
“어, 어머니.”
“어머님을 뵙습니다.”
흑요호들은 기겁하며 자신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포트니아 테론의 모습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형진이 신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도 보이지 않았던 태도다.
“일어나도록 해라.”
포트니아 테론이 그렇게 말하자, 흑요호들은 비로소 몸을 일으키고는 가만히 고개를 조아린 채 그 말을 경청했다.
“내가 너희들을 이곳으로 인도하기는 했지만 항시 너희들을 지켜보며 보살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밤의 신에게 너희들의 보호를 맡긴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앞으로 그의 말을 내 말처럼 따르도록 해라.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네, 어머니.”
형진에게 꼬치꼬치 따져 묻던 것과는 확연하게 비교되는 태도다. 물론 그것은 형진을 얕봐서가 아니다. 이들에게 있어 포트니아 테론은 항거할 수 없는 절대적인 법과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포트니아 테론은 흑요호들의 그와 같은 대답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형진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잘 부탁하겠네. 사위.”
형진은 씩 웃으며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장모님.”
그제서야 흑요호는 형진과 포트니아 테론의 관계를 정확하게 인식했다. 장모와 사위. 하기야 그런 관계이니 이렇게 자신들을 서슴없이 맡길 수 있는 것인지도, 흑요호는 그렇게 생각하며 비로소 지금의 이 상황을 확실하게 납득 했다.
모든 것은 이로써 확실하게 일단락이 된 듯 했다. 형진은 흐뭇한 표정으로 이제 다음에 무엇을 해야할까 생각하며 자신의 부름에 응해 모습을 드러낸 포트니아 테론을 배웅했다.
“아, 맞다.”
하지만 포트니아 테론은 그대로 다시 모습을 감추려다가 다시 형진에게 말했다.
“실은 내가 미처 얘기 못한 것이 있네.”
“네? 무슨…”
문득 형진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보통 이런 식의 불길한 예감은 어김없이 맞아들어가곤 한다.
“이곳에는 흑요호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환수들이 자리 잡고 있네. 그렇지. 저기 저 아이 같은 경우도 바로 그런 예라고 할 수 있겠군.”
“…”
포트니아 테론은 그렇게 말하며 아이를 데리고 있지 않은 여성 가운데 하나를 가리켜 보였다.
“산군이라 불리는 아이일세. 그 외에도 여러 부류가 이 세계에 모여 있으니, 그 아이들도 잘 부탁하네.”
산군? 그건 또 뭔가.
형진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환수는 포트니아 테론이 엘리시온을 잉태하기 전에 만들었던 종족. 하지만 형진이 만난 환수는 이제까지 은염랑과 흑요호가 전부였다.
하지만 과연 이 거대한 우주에 퍼져 살아가고 있는 환수가 그 두 종족 뿐일까?
“자, 잠깐만요. 그게 무슨…”
형진이 그렇게 급히 불러세웠지만, 포트니아 테론은 할 말 다 했다는 듯이 그대로 자취를 감춰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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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편.
데헷. 이제 정상인의 생활 사이클을 거의 회복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