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773
00773 176. 탄생 =========================
“어, 그게. 그러니까…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막상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정확히 뭐가 어떻게 확장되었는지에 대한 것이 아니라 난처하다는 느낌 가득한 말뿐이다.
세 여신의 얼굴이 와락 찌푸려진다. 다소 급한 성격의 희망과 생명만이 아니라, 본신 상태라서 뭘 생각하는지 잘 드러나지 않는 공포와 죽음이라든가, 형진이 하는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보호와 균형마저도 표정이 구겨질 정도다.
아이를 다독거려 트림을 시키고 있던 유아가 보다 못해서 조심스럽게 한 마디 건넨다.
“설명하기가 어려운 건가요?”
세 여신의 표정에 흠칫하던 형진은 그런 유아의 구원에 얼른 화답했다.
“어, 맞아. 사실은 나도 명확하게 뭐가 어떻게 확장된 건지 알 수가 없어서.”
그러자 희망과 생명이 기다렸다는 듯이 따져 물었다.
“뭐야, 그게. 말이 돼? 신이 자기 신격의 한계를 알지 못한다는 게 말이…”
하지만 그녀의 말은 점차로 작아지더니 제대로 끝을 맺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말을 하는 도중에 뭔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설마…”
공포와 죽음 역시 이내 뭔가 깨달은 표정이 되었고, 두 여신의 모습을 보며 보호와 균형만이 갑자기 둘 다 왜 그러는지 몰라 우왕좌왕할 뿐이다.
“왜요? 뭐가 어떻게 된 건데요?”
그러자 형진이 다시 말했다.
“음… 둘이 생각하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 한계는 분명히 있어. 그게 없다면 말이 안 되지.”
“그, 그렇지? 하하…”
그제서야 희망과 생명이 어색하게 웃는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계가 정해지지 않은 신격이라니, 그건 바꿔 말하자면 전지전능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건 단순히 인과를 비트는 수준이 아니라, 인과율 그 자체를 마음대로 해버릴 수 있는 수준을 의미한다. 그 정도 수준까지 신격이 확장된다면, 기존의 신과도 구분되는 뭔가 다른 존재가 되어 버린다는 의미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뭔가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스스로가 인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한계가 확장되었다는 것 또한, 기존의 신과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차이점이니까.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형진은 이미 엘리시온에서 나고 자란 다른 신들과는 다른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에게 하나의 신격이 더 남아 있다는 점이다. 당장 하나의 신격을 가지고 있는 상태만으로도 어지간한 신들의 신격은 씹어 먹을 정도인데, 또 다른 신격까지 갖추게 되면… 그 한계가 어느 정도일지 여신들로서도 가늠이 되질 않는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녔길래…”
희망과 생명이 이마를 짚은 채 앓는 소리를 내자, 그제서야 얘기의 맥락을 이해한 보호와 균형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도 궁금하네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에요?”
“그게 말이지.”
형진은 자신이 사색에 들어가기 전에 겪었던 일을 설명했다. 그러자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미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말씀하신 대로라면, 아버지라든가… 그것과 연관된 새로운 신격을 얻어야 맞을 것 같은데요.”
“맞아. 나도 그 생각했어.”
“저도요.”
희망과 생명, 그리고 보호와 균형이 맞장구를 치자 잠자코 심각한 표정으로 형진의 말을 듣고 있던 공포와 죽음이 다른 의견을 냈다.
“꼭 그렇게만 볼 수도 없는 일이야. 진도 방금 말했잖아. 자신이 어떻게 밤이라는 신격을 얻게 된 것인지에 대해 생각했었다고. 어쩌면 그것이 원인이 되어 새로운 신격이 아닌 밤이라는 신격의 확장으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
그러자 유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어떤 생각들을 했는지 들어보는 것이 빠를 것 같네요. 적어도 그 생각들이 이런 결과에 원인을 끼친 것은 분명한 일일 테니까.”
그러자 방 안에 있던 이들의 시선이 다시금 일제히 형진에게로 쏟아졌다.
“글쎄… 그걸 한 마디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서…”
난처한 표정으로 그렇게 대답했지만, 말없이 쏟아지는 여신들의 눈초리를 견디다 못한 그는 이내 머뭇거리며 두서없이 떠오르는 대로 말을 시작했다. 뭔가 장황한 얘기였지만, 그건 형진이 사색에 들어간 시점에서 어떤 식으로 생각을 이어갔는지에 대한 가장 명확한 설명일 수도 있었다.
“잘도 이렇게 중구난방으로 생각을 이어가는구나.”
“하하…”
어떻게 보면 맥락 없는 내용들의 연속이라 형진은 희망과 생명이 어이없다는 듯이 던진 말에도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번에 밤의 신격이 확장되면서 아버지라는 화두가 적잖이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밤과 아버지… 뭔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조합인데.”
“그러게요.”
일반적으로 신화에서 밤은 여성으로 의인화되는 경우가 많다. 태양이 밝게 빛나는 낮에 비해 밤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조용한 이미지를 갖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남성인 형진이 밤이라는 신격을 얻은 것부터가 기이한 일일 수도 있다. 어찌 보면 형진의 사색 가운데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일반적이지 않은 점 때문이었으리라.
“꼭 그렇게만 볼 것도 아니야. 사실 육아의 대부분은 종족이나 사회, 문화를 불문하고 어머니가 맡는 경우가 많으니까. 사실 태양이나 낮이 남성으로 상징되는 건, 실제로 가정에서의 역할 때문이 아니라, 사회에서의 역할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맞겠지.”
“그래서 사실은 밤이 아버지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어째 궤변으로 들리는데.”
“사실은 내가 혼란스러워 하는 것도 바로 그 부분이야. 신격이 지니는 의미와 그것의 확장이란 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개념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희망과 생명이 형진과 나누는 문답을 가만히 듣고 있던 공포와 죽음이 문득 대화에 끼어들었다.
“꼭 그렇게 생각할 것도 없을 것 같은데.”
“무슨 의미야?”
“애초에 신격의 확장이란 건 근래 들어 밝혀진 현상이야. 그만큼 그 사례가 드물다는 얘기지.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 대해 그런 식으로 예단할 필요가 있을까.”
“그건…”
확실히 일리가 있는 얘기다. 어떤 형상으로부터 원리를 추측하기 위해서는 우선 통계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물론 통계가 반드시 진리를 가리키는 표석이 되지는 않는다. 관측 당시의 여러 가지 조건에 따라 얼마든지 결과가 변할 수도 있는 문제니까. 하지만 아직 몇 번 확인되지도 않는 현상을 미리 이럴 것이다 생각하며 예단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형진은 공포와 죽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러고 보니 그렇군. 오히려 반대일수도 있으니까.”
“반대라면?”
“인간이나 다른 지성이 있는 종족들의 통념이 신격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신격이 그런 통념들을 만들어내는 것일 수도 있다는 얘기지.”
“허…”
분명한 건 신이 지니는 힘을 공급하는 주체인 여러 지성체들의 생각이 어떤 식으로는 신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즉, 신이 지니는 권능이나 신격도 고정된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변화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런 상호작용이 그 신을 떠받드는 지성체의 통념과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는 정도일 것이다.
“결국 신과 인간은 단순히 종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얘긴가.”
이미 신과 인간은 형진이라는 존재에 의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지고 있었다. 단순히 문명의 발전이나 확장에 관여하고 있는 지금과 같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존재 자체가 결코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계였다는 뜻이 되어 버리는 셈이다.
“뭔가… 복잡하네요.”
중간부터는 뭔 소린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표정을 짓고 있던 보호와 균형의 말에 다른 이들은 쓴웃음을 지었다.
“어쨌든 밤의 신격이 아버지라는 개념을 받아들여 확장되었다. 결론은 그렇게 되는 건가.”
“일단은.”
“그럼 밤과 아버지가 아니라, 밤의 아버지… 아니 이전 밤이라는 자식을 낳은 아버지라는 뜻이 되어버리니 뭔가 맞지 않는 것 같고. 뭐라고 해야 맞는 거지?”
희망과 생명이 얼굴을 찌푸리며 그렇게 말하자, 공포와 죽음이 그 말을 받았다.
“굳이 말을 만들 필요는 없지 않을까. 밤이라는 신격의 의미에 아버지가 포함되었다. 그 정도만 되어도 충분할 것 같은데.”
“뭔가 미묘하네.”
“그렇긴 하지.”
그런 식으로 대화를 나누던 희망과 생명, 그리고 공포와 죽음은 이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형진에게 시선을 던졌다.
“뭐야. 왜 그래. 왜 갑자기 그런 시선으로 보는 건데.”
두 여신이 별다른 말도 없이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자, 혹시 뭔가 잘못 하기라도 했나 싶은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움찔해버리고 만다.
“흥. 모르면 됐어.”
“이하동문.”
“…”
형진은 평소라면 서로 아웅다웅하기 일쑤이던 두 여신이 묘하게 의기투합한 듯한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앞서의 대화 내용을 살펴봐도, 저런 식의 반응을 보이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며, 두 여신은 피식 웃어 버리고 말았다. 스스로 자신의 신격이 어떤 식으로 확장된 건지 모르겠다는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확인한 탓이다.
사실 형진이 깨어나는 순간 왕성 라이언하트에는 아주 미약한 파장이 퍼졌다. 다른 이들은 미처 알아챌 수 없는, 함께 새로 태어난 왕자에게 축복을 전해주고 있던 보호와 균형마저도 알아차리지 못한 그러한 파장이 희망과 생명, 그리고 공포와 죽음에게 동시에 전해졌던 것이다.
두 여신은 그 파장을 느끼고는 크게 놀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전해진 순간, 그녀들의 신격이 마치 공명하듯 함께 반응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현상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일단은 형진이 오기를 기다려 그의 말을 들었고, 그제서야 그녀들은 자신들이 겪은 그 일의 원인을 이해할 수 있었다.
두 여신이 겪은 현상은 공명이 맞았다. 정확히는 생명과 죽음이라는 신격이 형진에게 반응한 것이다.
밤이라는 신격에 아버지라는 개념이 포함되면서, 그 의미는 생명이라면 겪을 수밖에 없는 두 가지 개념인 생명과 죽음에 영향을 주게 된 것이다.
밤은 생명이 잉태되는 시간이다. 또한 밤은 영원한 잠이라는 형태로 죽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형진의 신격이 받아들인 의미는 단순히 아버지라는 단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결국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도록 만드는 이라는 의미이고, 이것으로부터 의미가 확장되어 결국은 생명과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정의되는, 생물의 시작과 끝을 가리키는 뜻마저 포함되기에 이른 것이다.
형진이 깨어날 때 그녀들의 신격이 공명을 일어킨 것은 그녀들의 신격에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상위 신격의 태동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아직 형진이 그 의미를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해 당장 그녀들에게 지배력을 발휘할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그가 기존의 신들을 넘어서 상위의 존재로 진화한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라고 봐야한다.
어쩌면 그는 이 순간 포트니아 테론과 동등한 수준의 어떤 존재로 올라선 것인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을 거쳐온 포트니아 테론과 당장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비슷한 단계로 올라서기 위한 첫 번째 계단을 밟은 것은 틀림없는 일일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본래 신으로 태어나지도 않았던 존재가, 인간을 넘어 신이 된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 그런데 이제는 그 신들을 발 아래 둘 수 있는 존재마저 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어찌 보면 이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몰랐다. 애초에 포트니아 테론이 그에게 내린 과제가 무엇이었던가. 그녀는 자신을 넘어서 자신의 역할을 대신할 자가 되기를 바랬다. 어찌보면 그런 식의 의도가 그의 발전에 길을 열어주고 촉매로 작용한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이미 한참 오래전에 그런 길을 열어주었음에도 최근까지 엘리시온에서 웅크리고 있던 신들을 생각해 보면 발판이든 촉매든 마련이 되었다고 무작정 같은 단계로 올라설 수 없는 일이란 건 명확한 일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 놀라운 일일지도 모르는 일이고.
“쳇. 이깟 변태 따위에게…”
“…”
희망과 생명은 그렇게 툴툴거리기 시작했고, 공포와 죽음은 그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자신의 전부를 소유하게 된 남자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당사자인 형진은 자신이 뭔가 또 잘못한 건가 싶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녀들은 구태여 그 내용을 설명하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두편째.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