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827
00827 190. 아이들 =========================
“다희가요?”
“응.”
달이에게 수유를 하던 유아는 형진에게서 다희의 일을 전해 듣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공주들의 성장이 빠른 것은 그녀도 익히 알고 있는 일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직 한 살도 안 된 어린 아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성장이 빠르니 어쩌니 해도 결국은 아이일 뿐이라고,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엘 언니는 뭐라던가요?”
형진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마찬가지지 뭐. 어쨌든 저 아이들은 전대미문의 연속이니까, 뭔가 참고할 만한 일도 없는 것이 사실이고.”
비슷한 사례가 있다면 참고라도 하겠지만, 형진의 아이들은 출생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이 전대미문 수준이다. 어떻게 보면 이제부터 태어날 다른 흑요호 아이들이 참고할 만한 첫 사례 역할을 형진의 아이들이 하고 있는 셈이다.
“다른 아이들은 어때요?”
다희가 그런 모습을 보였다면 다른 아이들에게도 뭔가 변화가 있지 않을까.
“글쎄… 아직 다희처럼 뭔가를 하는 아이는 없는 것 같아. 단지…”
“단지?”
“예전처럼 몰려다니는 대신 각자 움직이는 일이 많아졌다는 정도?”
“그렇군요…”
어떻게 보면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이것은 지금까지 일곱 아이들 가운데 하나였던 상태에서 각자의 개성이 갖춰져 가는 상황으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급격한 변화를 거치는 시기를 인간은 보통 사춘기라고 부른다.
“아직 한 살도 안 된 아이들의 사춘기를 걱정해야 하다니. 이거 참…”
아이들이 쑥쑥 커가는 건 분명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도를 지나치면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 주된 원인이 자기 자신이라면 그건 말할 필요도 없는 일. 형진의 표정이 조금 우울해지자 유아는 푸근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무 걱정마세요. 당신이 그렇게 사랑해주고 있으니, 모두 별 탈 없이 잘 자라날 거에요.”
“그럴까?”
“물론이죠.”
“그럼 다행이고.”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형진은 그 와중에도 열심히 식사중인 달이 녀석을 살펴보았다.
“볼 빵빵한 것 좀 보게. 아주 배가 터지게 먹어대는 구만.”
“누나들처럼 빨리 자라고 싶어서 그런가보죠.”
“어어, 그런 소리 말아. 이 녀석까지 그렇게 쑥쑥 커버리면 나는 어쩌라고.”
달이는 분명히 인간이지만, 역시나 신의 아이인 만큼 뭔가 다른 구석이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종종 떠올리곤 한다. 사실 이 녀석이 잉태되었을 때는 아직 신은커녕 반신도 아닌 상태였다. 하지만 임신 중에 내내 희망과 생명이 유아의 몸 안에 봉인되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이 가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역시나 이런 경우 역시 전대미문인 관계로 딱히 어딘가 물어볼 수도 없는 처지인 것도 일곱 공주들과 마찬가지다.
“여러모로 전대미문의 연속이로군.”
그렇게 중얼거리며 형진이 열심히 식사중인 달이 녀석의 뺨에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그 보들보들한 살결을 슬쩍 어루만지고 있는데, 문득 달이가 주먹으로 그런 형진의 탁 쳐내 버린다.
마치, 식사하는데 방해하지 말라는 듯한 느낌으로.
“…”
형진은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달이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생각해 보면 막 태어났을 때도 이런 일이 있었다. 그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이제 보면 그것도 단순한 우연은 아닌 모양이다.
“쳇. 이 녀석아. 그거 원래 내거라고. 빌려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지는 못할망정.”
그 말을 듣고 유아는 살짝 눈을 흘겼다.
“애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어요.”
“왜?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못 말려, 정말.”
그렇게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문득 문이 살짝 열리며 작은 머리 둘이 모습을 드러낸다. 누군가 하고 바라보니, 아란의 아이들인 니샤와 니야다.
“응? 어쩐 일이야? 거기서 그러지 말고 얼른 들어오렴.”
“네…”
설마 형진이 있을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남매는 잠시 머뭇거리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형진이 재촉하자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왔다.
“동생 보러 온 거니?”
“네!”
별 거 아닌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조심스럽던 표정이 밝은 미소로 바뀌었다.
니샤와 니야는 일단 형진의 아이로 받아들여졌지만, 실제로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들이다. 더구나 이 아이들의 아버지는 파괴와 재생. 왕성 안에 머무르는 아이들 가운데 어찌 보면 가장 미묘한 위치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게다가 나이대도 미묘하다. 형진의 공주들이 폭풍 성장 중이긴 하지만 여전히 이 아이들에 비하면 어린 모습이고, 그렇다고 카트린이나 크루그와 함께 놀 수도 없다. 여러모로 어딘지 모르게 붕 떠 있는 느낌일 수밖에 없다고 해야 하나.
지금 당장은 별 문제가 없어 보여도,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런 자신들의 위치를 자각하게 될 것이다. 갑자기 성장해 버린 공주들의 일도 걱정이지만, 어찌 보면 가장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것은 바로 이 아이들이라 할 수 있다.
아이들이라고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아니다. 별 거 아닌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상처를 받는 것은 아이들도 마찬가지. 인격과 육체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오히려 더 세심하게 다뤄야 할 필요가 있다.
방금 형진이 달이를 가리켜 동생이라고 부른 것도 바로 그런 작은 배려의 하나였다. 아이들이 밝게 웃는 얼굴로 대답한 건 그 배려를 이해했기 때문이고.
“잠시만요.”
유아는 형진과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물리고 있던 가슴을 바꾸었다. 워낙 달이 녀석의 먹성이 좋다보니 한쪽 가슴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는 탓이다.
위치가 바뀌자 달이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는가 싶더니 자신을 신기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두 아이를 뚱한 눈으로 쳐다보다가 이내 넘보지 말라는 듯 얼굴을 찌푸린다. 그 표정에 담긴 감정이 묘하게 실감 넘쳐서 아이들은 그만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다가 얼른 입을 손으로 막았다. 큰 소리로 웃다가 혹시라도 아이가 놀라면 어쩌나 해서 보인 반응이었지만, 누가 형진의 아이 아니랄까봐 달이는 그 정도 일에는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귀엽지?”
“네!”
“너무 귀여워요!”
왕성 라이언하트는 환수들의 아이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뒤로 항상 아이들이 넘치는 장소가 되어 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요정들 때문에 정신없는 곳인데, 아이들까지 가세하니 더 정신없는 곳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하지만 달이는 그런 아이들 중에서도 특별했다. 형진의 아이라는 점은 물론이거니와, 빠른 성장을 보이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아주 느긋하게 성장해 나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자신들과는 달리 너무나도 빠르게 성장해 가는 환수의 아이들만 보다가, 이렇게 느긋하게 엄마의 젖을 먹어대는 아이를 보게 되니 니샤와 니야로서는 작은 안도감마저 느끼는 모양이다. 딱히 자기들의 성장이 느린 것이 아니라는 걸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형진은 말없이 커다란 손으로 니샤와 니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여기서는 굳이 이런 저런 얘기를 꺼내는 것보다 더 자주 스킨십을 갖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었다.
[혹시… 아이들이 그곳에 있나요?]그렇게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달이 녀석의 식사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아란으로부터 메시지가 전해져 왔다.
[응.] [역시 그랬군요. 그럼 식사 준비는 제가 할까요?] [아니. 내가 갈게. 재료만 준비해줘.] [알았어요.]찾아와서 데리고 간다는 식의 서툰 대응은 하지 않는다. 그런 식의 대응은 자칫 아이들로 하여금 달이와 자신들의 처지가 다르다는 걸 명확하게 인식하는 계기를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메시지로 대화를 마친 형진은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만 가서 식사 준비를 해야겠어. 좀 있다 부르면 천천히들 와.”
“네!”
니샤는 기운차게 대답했지만, 니야는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이렇게 물었다.
“도와드려도 되나요?”
거절하면 어쩌나 하는 기색이 역력한 그 모습에 형진은 씩 웃으며 답했다.
“우리 니야 공주님이 도와주면 아빠로선 고마운 일이지.”
“정말요?”
“물론!”
그러자 니샤는 우왕좌왕하기 시작한다. 아기는 더 지켜보고 싶은데, 니야만 혼자 보내자니 뭔가 걱정스러운 모양이다.
“있고 싶으면 계속 있어도 돼. 니야는 내가 잘 살펴보도록 하마.”
“음… 하지만…”
형진의 말에도 잠시 머뭇거리던 니샤는 이내 결정을 내렸다.
“저도 도와드릴게요.”
“정말?”
“네!”
동생을 보살펴야 한다는 책임감이 아기를 지켜보고 싶다는 욕망을 억눌러버린 모양이다. 어지간해선 아이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니샤는 훌륭한 기사님이로구나.”
“기사님이요? 오귀스트님 같은?”
“그래.”
좋은 오빠라든가 그런 식의 칭찬은 오히려 아이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자꾸 그런 역할을 강조하고 강요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사라든가 하는 식의 표현은 아이의 상상력을 자극함은 물론이고 그것이 가진 좋은 이미지를 아이에게 부여하는 효과마저 있다.
역시나 니샤는 칭찬을 들은 것이 기분 좋은지 얼굴을 발그레하니 붉히기 시작했다. 사실 말은 않고 있었지만 오귀스트는 니샤에게는 우상이나 다름 없는 사람이었다. 커다란 칼과 방패를 들고 반짝거리는 갑옷을 걸친 그 모습이 너무 멋져서 처음 봤을 때는 저 사람이 새 아빠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조차 있을 정도니까.
유아는 형진이 두 아이를 다루는 모습을 보며 흐뭇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이전에 아란이 아이들을 데리고 성으로 들어왔을 때, 유아는 속으로 많은 걱정을 했다. 물론 입장상 대놓고 뭐라고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어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희망과 생명 신전에서 여러 아이들을 지켜보았던 그녀로서는 이 아이들이 어른들의 사정으로 이런 거창한 곳에 머물게 되면서 자칫 엇나가지나 않을까 싶은 걱정을 지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공포와 죽음으로부터 사정을 전해 듣고, 다시 그 모든 일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형진이 마음을 다해 아이들을 보살피는 것을 보니 역시 내가 남자는 잘 골랐구나 하는 생각을 저버릴 수가 없다. 솔직히 자신이었다면, 이유가 있다고는 해도 적의 아이를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긴 어려웠을 것이다.
아직 니샤와 니야는 어리니, 나중에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유아는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적어도 저런 모습을 보면, 그런 걱정은 잠시 접어 둬도 좋을 것 같은 기분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가자! 오늘은 이 아빠가 실력 발휘를 해주마!”
“와아아!”
형진의 외침과 두 아이들의 환호가 터지자 달이는 슬며시 눈을 뜨고는 귀찮다는 듯한 시선으로 흘깃 쳐다보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유아의 가슴에 매달려 식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에게 지금 당장 제일 중요한 일은 바로 그것이라는 듯이.
모르긴 해도 이 녀석은 거물이 될 것 같다. 형진은 달이의 태도를 보며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태생적인 거만함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 거만함이라는 단어는 어쩐지 좀 어울리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역시 희망과 생명이 임신 중에 봉인되어 있었던 것이 문제였을까. 공주들 같으면 직접 물어볼 수라도 있을 텐데, 이 녀석은 그러지도 못하니 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자, 그럼 가자.”
“네!”
어찌 되든 그건 나중의 일이다. 저마다 다른 개성을 지닌 아이들이 저마다의 과정을 거치며 성장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부모라는 입장이 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니까.
물론 그것이 무조건 기쁨으로 귀결되는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이 괜히 있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그래서 형진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가 단단하게 지면에 뿌리를 박고 버티어 줘야, 그에게서 뻗어나간 가지와 잎사귀들이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을 테니까. 어떻게 보면 신으로서 세상을 생명의 빛으로 채우는 것보다, 그것이 더 어려운 일일수도 있었다.
“부우!”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니샤와 니야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문득 달이 녀석이 식사를 하다 말고 손을 들어 보이며 그렇게 소리를 냈다. 시끄러우니 그만 좀 하고 얼른 가라고 주먹을 휘둘러 보이는 건지, 잘 가라고 인사를 하는 건지 좀 헷갈리는 모습. 하지만 형진은 후자일거라고 생각하며 마주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 작품 후기 ============================
일단 한편
즐점하세요. 너무 늦었나 싶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