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853
00853 197. 진입 =========================
알큐비에레 어뢰는 어떻게 보면 핵무기와도 유사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워낙 위력이 강력해서 그냥 대충 맞추기만 해도 어지간한 목표는 충분히 파괴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명중한 뒤에 이어지는 후속 피해가 상당하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물론 파괴력이나 기타 여러 가지 사항을 살펴 봤을 때, 알큐비에레 어뢰가 핵무기보다 월등한 효과를 지니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핵무기만으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상대라면 그냥 핵무기를 쓰면 되지 굳이 알큐비에레 어뢰를 사용할 필요가 없는 일이니까. 무엇보다도 빛을 뛰어넘는 압도적인 속도는 그것만으로도 다른 모든 단점을 상쇄할 수 있을 정도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형진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터무니없는 욕심일지도 몰랐다. 현재의 체계만으로도 충분히 상대를 끝장낼 수 있는 결전 무기로서의 가치가 충분한데, 주변에의 여파를 최소화해서 난전 상황에서도 쓸 수 있는 무기로 만든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굳이 지구의 무기 체계와 비교를 하자면, 육군이 공군을 외쳤을 때 아군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고 적군만 때려잡을 수 있는 핵무기를 개발하란 소리나 마찬가지다.
이런 문제 때문에 형진도 당장 무리한 요구를 하기보다는 우선 위성의 방어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었지만, 계속 어딘지 모르게 아쉬운 느낌을 저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요안나와의 관계 중에 실마리를 찾아낸 것이다.
“이중 탄두 체계 말씀이십니까?”
마찬가지로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식사를 하려다가 느닷없이 불려나온 프리츠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알큐비에레 어뢰에는 탄두가 없으니 사실 이건 맞는 얘기가 아니지. 굳이 비유를 하자면 그렇다는 얘기야.”
“흠… 확실히 그런 무기 체계가 없는 건 아닙니다만… 이건 비슷하다고 말하기도 뭐하군요.”
지구의 무기 체계 중에 벙커 버스터라는 것이 있다.
외부에서 가해지는 공격으로부터 중요 시설물을 지켜내기 위한 시도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특히 우월한 공군력을 자랑하는 적에게 대항하는 입장의 나라들로서는 상대의 압도적인 화력을 막아내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를 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과정에서 나온 것이 바로 지하 벙커이다.
항공기에 의한 융단폭격은 그 자체로 지상의 모든 시설물을 쓸어버릴 수 있는 파괴력을 지녔지만, 두터운 콘크리트 구조물에 대해서는 사실 그 효과가 미미한 편이다. 두께 수미터 이상의 강화 콘크리트 구조물이 수십 미터 지하에 위치하고 있다면, 어지간한 무기로는 피해를 주기 어렵다. 실제로 이차대전 당시 강화 콘크리트로 지어진 잠수함 기지에 융단 폭격을 퍼부은 영국군이 이후 해당 지역의 레지스탕스에 폭격의 성과에 대해 묻자, 찻잔이 넘어져서 독일군이 짜증을 냈다는 보고를 받은 일도 있을 정도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바로 벙커 버스터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무기 체계이다.
대부분의 벙커 버스터는 탄두 중량을 늘리거나 이단 추진 형태로 속도를 증가시켜 강화시켜 강력한 운동에너지로 암반이나 콘크리트 구조물을 관통하는 능력을 지닌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이 통상적인 폭약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 자체로 모든 것을 쓸어버릴 수 있다고 여겨지는 핵폭탄 역시 벙커 버스터 능력을 부여하여 더 효과적으로 적을 파괴하는 능력을 지니게 된다.
굳이 핵폭탄에 벙커 버스터 능력을 부여하는 이유는 바로 사용 후의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지하 백여 미터 깊이에 두께 육 미터 이상의 강화 콘크리트로 지어진 지하 구조물이 존재한다면, 현존하는 통상 무기 체계로는 입구 근처에 폭탄을 때려 박아서 지진효과로 붕괴시키는 방법을 제외하면 달리 파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대형 폭격기도 한두 개 겨우 실을까 말까 싶은 초대형 벙커 버스터만이 간신히 효과를 줄 수 있을 정도랄까. 흔히 전술핵이라고 불리는 물건은 바로 이런 식으로 통상 무기 체계로 파괴할 수 없는 목표를 파괴하기 위한 무기 체계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위력을 약화한 전술핵이라도 결국은 핵무기라는 점. 핵무기는 사용하고 난 뒤가 오히려 더 문제일 수밖에 없는 무기 체계다. 때문에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사용할 수도 없고, 사용하더라도 그 뒤의 악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안배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전술핵에 벙커 버스터 능력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관통력을 높인 상태의 핵무기는 일반적인 핵무기에 비해 최소 몇 배 이상의 효율을 보인다. 다른 특별한 조치가 가해지지 않은 240킬로톤의 핵무기를 써야 파괴할 수 있는 지하 시설을 고작 60킬로톤급의 핵무기로 완전히 소멸시켜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알큐비에레 어뢰는 현존하는 어떤 무기 체계도 따라잡을 수 없는 압도적인 무기 체계라 할 수 있다. 빛을 넘어서는 속도에서 뿜어져 나오는 운동 에너지는 설령 블랙홀이라도 단숨에 잠재울 수 있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알큐비에레 어뢰가 가진 파괴력을 온전하게 전부 발휘한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애초에 충격파가 그렇게 사방 팔방으로 흩어진다는 것 자체가, 알큐비에레 어뢰가 지닌 파괴력을 온전하게 한 점에 집중시키지 못한다는 의미나 마찬가지니까.
형진이 깨달은 것은, 바로 이런 알큐비에레 어뢰에 관통 특성을 부여하여 이 무기 체계가 가진 압도적인 운동에너지가 목표의 보다 심층부를 타격하도록 만드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알큐비에레 드라이브의 운동에너지에 비견될 만한 위력을 지닌 무기 체계가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통상적인 벙커 버스터의 이중 탄두처럼 성형 작약 탄두 같은 걸 장치하는 식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일테니까요.”
그렇다고 핵폭탄 같은 걸로 성형 작약 탄두가 가지는 노이만 효과 같은 걸 기대하긴 어려운 일. 설령 그것이 가능하다 해도 핵폭탄의 파괴력 역시 알큐비에레 어뢰의 위력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기에 그런 식의 이중 탄두를 만들어봐야 관통 효과는커녕 오히려 어뢰의 위력에 먹혀 버릴 것이다.
프리츠의 말에 형진은 씩 웃었다.
“물론 그런 식의 재래식 이중 탄두 같은 걸 쓸 생각은 없어. 이미 알큐비에레 드라이브에는 그 자체로 충분히 이중 탄두 역할을 할 만한 것이 존재하니까.”
“무슨…”
“잊었나? 알큐비에레 드라이브에 내장된 소우주를.”
“아!”
그렇다. 알큐비에레 드라이브는 이미 그런 용도로 쓰일만한 것을 가지고 있었다.
워프 버블의 형태로 우주선을 감싸 상대성 이론에 저촉되지 않으면서도 초광속 항해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은 좋았지만, 그 워프 버블에 휩쓸진 우주 먼지 등은 알큐비에레 드라이브가 가진 태성적인 문제점 가운데 하나였다. 초광속 항해를 실현하면 뭐하겠는가, 도착 지점의 행성이 충격파에 휩쓸려 초토화되어 버리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을.
그래서 형진은 알큐비에레 드라이브 내부에 이렇게 초광속 항해 도중에 휩쓸리게 되는 우주 먼지 등을 담아두기 위한 소우주를 별도로 만들어야만 했다. 그리고 현재 건조중인 티폰급의 우주선에는 이런 식으로 초광속 항해 도중에 소우주 속에 쌓인 에너지를 일종의 파동포와 같은 형태로 발사하는 무기 체계 역시 탑재할 계획이다.
바로 그 소우주를 알큐비에레 어뢰의 이중 탄두 역할로 사용하면 어떨까.
물론 알큐비에레 어뢰는 티폰급 우주선에 비해 규모도 작고, 초광속 항해로 나아가는 거리도 훨씬 짧으니 소우주 안에 응축될 에너지의 양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초장거리에서 파동포의 형태로 상대를 두들기는 것이 아니라, 제로 거리에서 발현되어 알큐비에레 어뢰가 가는 길을 여는 역할 정도라면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는다.
이건 된다!
프리츠는 형진의 자신만만한 말을 듣는 순간, 이것이 충분히 효과적인 무기 체계가 될 수 있음을 확신했다.
“이런 식으로 관통력을 높이는 것이 우선이라면… 워프 버블의 형태도 바꿀 필요가 있겠군요.”
“맞아. 가늘고 날카로운, 이를테면 작살과 같은 형태가 되어야겠지. 물론 이런 식의 워프 버블을 만들어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만약 이것이 성공한다면, 앞서와 같이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는 대신 필요한 부분만 완전 관통하는 형태의 무기가 만들어질 수도 있겠군요.”
“그렇게 되면 오직 관통에만 모든 에너지가 쓰이게 되니 쓸데없이 충격파가 사방 팔방으로 뻗어갈 이유도 없겠지.”
“주위에 가해지는 여파가 없다면 난전 상황에서도 사용할 수 있을 테고요.”
마치 문답을 나누듯이 그렇게 대화를 주고받던 두 사람은 곧바로 허세와 망상에게 찾아가 이 새로운 무기 체계에 대해 설명했다.
“맙소사… 자네들은 도대체 뭘 만들고자 하는 건가.”
허세와 망상은 설명을 듣는 순간 이 무기 체계가 얼마나 치명적인 것인지 바로 이해했다. 알큐비에레 어뢰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강력한데, 그것에서 진일보한 무기 체계라니.
“알큐비에레 드라이브가 절대로 인간의 손에 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군.”
“아마도요.”
다행스럽게도 이미 형진은 수십 수백 광년 떨어진 거리도 단숨에 오고 갈 수 있는 또다른 방법을 지니고 있었다. 황혼의 권능을 통해 구현될 게이트가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이미 가본 곳에만 설치가 가능하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안전하게 오갈 수 있는 대안이 존재한다면 위험한 초광속 항해를 시도하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개념을 떠올리는 것이 어려웠을 뿐이지, 그 체계 자체는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곧바로 새로운 어뢰의 제작이 시작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실증시험용의 기체가 완성되었다.
“두렵군. 만에 하나라도 인간의 손에 이 무기 체계가 쥐어지게 되었을 때가.”
이것은 이미 신에게 위협이 된다 아니다 하는 수준의 파괴력을 넘어선 무기다. 자칫 행성간의 전쟁에 사용되기라도 하는 날에는, 순식간에 이 우주에서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모든 것이 소멸해 버릴 수도 있다. 아니, 그 이전에 신들의 존재 자체가 존폐의 위기에 내몰릴 수도 있다. 마치 평민들의 손에 총이 쥐어진 순간 왕정 국가들이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던 것처럼.
어쨌든 그렇게 우려 섞인 시선마저 가득한 상태로 시험이 시작되었다.
목표는 앞서와 마찬가지로 근처의 항성계에서 가지고 온 소행성. 마침내 알큐비에레 어뢰가 발사되자, 지켜보는 이들은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번쩍!
처음의 시험처럼 거대한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단지, 뭔가 번쩍하는 섬광이 소행성으로부터 터진 것이 고작이다.
“이건…”
형진의 입에서 그러한 중얼거림이 흘러나오자, 어뢰의 관제를 담당하던 잡신이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어뢰… 건재합니다!”
“워프 버블에 손실 발생! 자동으로 수복을 진행합니다!”
“목표 소행성, 붕괴가 시작되었습니다!”
결과는 실로 놀라웠다. 소행성은 앞서와 같이 거대한 폭발과 함께 파괴되는 대신, 중심핵이 소멸하면서 그대로 서서히 붕괴하기 시작했다. 알큐비에레 어뢰는 그런 일을 벌이고서도 여전히 건재한 상태로 항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관통력이군.”
단순히 소우주에 집적된 우주 먼지를 충돌 직전에 발출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한 가지 단계가 추가되었을 뿐인데도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
“어뢰의 항행을 중지시켜라! 그리고 바로 회수하여 확인하도록!”
“어뢰 정지!”
“회수용의 스파이더를 투입합니다!”
잡신들이 허둥지둥 허세와 망상의 지시를 수행하는 것을 지켜보던 희망과 생명이 문득 형진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이건 단순한 무기 체계를 넘어서는 힘이야. 어뢰 따위로 부르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
“그런가. 그럴지도 모르겠군.”
형진이 쓴웃음을 짓자, 공포와 죽음 역시 한 마디 건넸다.
“어쩐지 네 능력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인스턴트 킬을 두고 하는 말이리라. 사실 그리 틀린 말도 아니다. 정밀도를 더욱 높이고 타격 부위를 형진의 뜻대로 완벽하게 조절할 수 있게 된다면, 이 말도 안되는 무기 체계로 인스턴트 킬을 내닌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테니까.
게다가 이것이 위협적인 이유는, 얼마든지 양산이 가능하다는 점에 있다. 즉, 생산 능력만 충분하다면 백 개든 천 개든 만들어서 한 번에 뿌릴 수도 있다는 뜻. 관통력의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는 계속된 실험을 통해 확인해 봐야겠지만, 천체 하나를 관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미 일반적인 무기의 개념을 뛰어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요안나. 이 무기의 이름은 당신이 지어줬으면 해.”
“제가요?”
“그래. 당신 덕분에 만들어진 무기니까.”
“…”
요안나는 민망해 하며 얼굴을 찌푸렸다. 아무리 그래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이런 얘기를 꺼내다니. 물론 내막이야 둘 만의 비밀이지만 그래도 너무 하지 않은가. 게다가 형진은 아직 그렇게 자신을 버려두고 뛰쳐나간 일을 아직 사과조차 하지 않은 상태.
아무리 요안나가 그의 지배력에 묶여 있는 상태라 해도. 이쯤 되면 화가 나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다.
“몰라욧! 그딴거 알아서 하세요!”
“응?”
갑자기 화를 버럭 내며 어딘가로 가버리는 그녀의 모습에 형진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허둥지둥 그녀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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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