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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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시간이 끝나자, 미아는 형진에게 돌아가 포로에 대한 것을 알렸다.
“그래. 상태는 어떤 것 같아?”
사실 형진은 미아가 포로를 돌보는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지켜보고 있었다. 안전조치를 충분하게 취했다 해도 완전히 안심하지 못한 탓이다. 게다가 화면을 통해 보는 것과 직접 눈앞에 두고 대할 때의 느낌은 여러모로 다를 수밖에 없는 법이라 겸사겸사 묻는 중이다.
“음… 좀 멍한 것 같기는 한데, 딱히 위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그건 다행이군.”
여기서 위험하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돌보는 미아 자신에게 어떤 위협적인 태도를 보이지는 않는지, 아니면 포로가 된 자신의 상태를 납득하지 못하고 자해를 시도하려는 느낌은 없는지에 대한 답인 셈이다.
사실 자해든 뭐든 시도해봐야 성역이 펼쳐진데다 보호와 균형의 여신 본인이 상대라면야 일개 추종자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수단은 처음부터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걸 확인하는 이유는, 포로의 상태를 정확히 확인해야 심문이든 설득이든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미아의 소감대로, 포로 상태로 감금된 네아는 지금 다소 멍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로서는 무엇 하나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을 연속적으로 접하게 된 탓이다.
자신이 먹은 음식이 실은 밤의 신이 직접 요리한 것이고, 그것을 가지고 와서 자신의 상태를 살피고 돌보는 역할을 한 사람은 바로 그 신의 부인이었다. 신이 직접 요리를 하고, 그런 신과 함께 살아가는 아내가 마치 자신의 집 앞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진 나그네를 돌보는 것처럼 자신을 돌봐주고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 네아가 알고 있던 상식으로는 문자 그대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혹시 다른 우주의 신이라서 그런 걸까.
이런 식으로 생활감 넘치는 일상을 보내는 것이 그쪽 신들의 모습인걸까.
신이라고 그저 조용히 구름 위에서 내려다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상의 존재와 함께 먹고 자고 사랑하는 식의 생활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인 걸까.
보통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고 넘어갈 만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하나의 교단에서 최고 장로의 직위에 있었던 네아로서는 그렇게 담담하게 들어 넘길 수가 없었다.
어쩐지… 지금까지 믿어 왔던 모든 것들이 부정당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생각이 많아진 탓인지, 아니면 정말로 잘 먹고 잘 쉬어서 몸이 좋아진 탓인지. 차라리 앞서와 같이 그냥 바로 잠에 빠져 들었으면 이런 식으로 고민하지도 않았을 텐데.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눈만 말똥말똥거리다가 한참이나 지나서야 겨우 다시 잠이 들었다.
그리고 또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따로 시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처럼 다른 시간을 알아 볼 수 있는 여타의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다보니 자신이 정말 잠이 들었다가 깨어난 것인지조차 알 수가 없다.
약간 몽롱한 상태로 무언가가 자신의 몸을 만지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깨어났던 네아는 다음 순간 시야에 들어온 모습을 보고는 마치 찬물을 뒤집어 쓴 것 같은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아, 깼어요? 미안해요. 제가 아직 이런 일은 서툴러서.”
“무, 무, 무, 무, 무슨…”
“기저귀를 가는 거에요. 아직… 아, 그러고 보니 아직 이름도 듣지 못했네요. 아무튼 당신은 아직 스스로 이런 일을 처리할 수 있을 만한 상황이 아닌데다, 제가 항상 붙어 있을 수도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 왕궁에 아이들이 많아서 평소에 좀 도와주긴 했지만, 이렇게 덩치 큰 아이는 처음이라. 후훗.”
나름 위트 섞어 말을 한다고 하기는 한 모양이지만, 미아의 손에 의해 치워지는 무언가를 보면서 네아는 참을 수 없을 정도의 강한 수치심을 느꼈다.
물론 이치상으로는 누군가가 자신을 간병한다는 것 자체가 이런 일까지 도맡아 처리해 준다는 의미이긴 하다. 당장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냥 침구를 더럽히도록 놔둘 수는 없는 일이니까. 이성적으로야 그런 걸 이해한다 쳐도, 세상 일이란 것이 모두 그렇게 간단하게 납득되지는 않는 법. 지금 네아가 겪는 상황도 바로 그런 식의 일이다.
“자, 끝났어요. 잠시만요. 환기 좀 시키고.”
“…”
아아. 죽고 싶다.
앞서 자신이 포로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그리고 밤의 신이 만들었다는 음식을 먹었을 때도 그녀는 진심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 따위는 떠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순간만큼은 정말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런 네아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아는 무언가를 꺼내 주위의 공기를 정화시키는 일을 마치더니 다시 어디선가 음식 한 그릇을 가져와서 그녀 앞에 내놓았다.
“모처럼 일어났으니 식사를 하는 편이 좋겠어요. 다 먹으면 좋은 소식을 전해주도록 할게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친근하게 다가앉는 미아의 모습에, 네아는 더욱더 심한 수치심을 느꼈다.
“필요… 없어요.”
“왜요? 잘 먹고 잘 쉬어야 빨리 낫는다니까요.”
“싫어요. 안 먹을 거에요.”
“고집 부리지 말고요. 아… 해봐요.”
“윽…”
혹시 모시던 신에 대한 생각 때문에 그러는 건가 싶었지만, 네아가 지금 먹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다른 이유에서였다.
먹으면 싸야한다. 그게 섭리 아니겠는가. 이런 것에 거창한 말을 가져다 붙이는 것 자체가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싶긴 하지만, 자연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법칙을 뜻하는 말이 섭리라면 틀리다고 부정할 수도 없는 일이다.
“자아. 어서. 어서.”
“…”
자꾸만 미음이 담긴 수저를 입 앞에 가져다 대는 미아의 행동에 네아는 울고 싶어졌다. 악의가 담긴 행동이라면 차라리 이를 악물고 버텨보기라도 하겠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선의에 가득 차 있으니 당해낼 수가 없다.
결국 네아는 코끝을 간질이는 맛있는 향기와 그것을 간절하게 바라는 신체의 반응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한 번 음식이라는 이름의 고문 도구 앞에 굴복하고 말았다.
아아, 이젠 정말 모르겠다. 아니, 그냥 모르는 채였으면 좋겠다. 아무것도 모르고, 알 수도 없는 백치와도 같은 상태라면 차라리 이렇게 번뇌하지도 않았을 텐데.
원래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째부터는 쉬운 법이다. 네아는 이미 형진의 음식을 맛본 경험이 있고, 그것이 얼마나 맛있고 신체를 풍요롭게 만들어지는지 잘 알고 있었다. 또한 그녀는 눈앞에서 생글거리고 웃고 있는 이 여성이 자신을 얼마나 성심껏 돌보고 있는지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이래서야 아무리 마음이 굳은 자라도 버텨내기 어렵다.
아니, 어쩌면 신을 향한 자신의 마음이란 건 처음부터 그리 단단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죽하면 네아는 그런 생각마저 떠올리고 있었다.
“잘 했어요. 맛있죠?”
“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한숨을 푸욱 내쉬며 대답하는 네아의 모습에, 미아는 잘했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주었다. 마치, 형진이 자신에게 하듯이. 네아는 미처 몰랐지만 그건 미아가 알고 있는 최고의 칭찬 방법이었다.
“투정 부리지 않고 잘 먹어 주었으니, 이제 상을 줄게요. 아까 말했죠? 좋은 소식이 있다고.”
“좋은… 소식이요?”
혹시 놓아주기라도 하려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네아는 이내 쓴웃음을 지었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자신과 같은 위치에 있는 인물을 그리 간단하게 놓아 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제가 그이에게 부탁했거든요. 환자를 이렇게 어두컴컴한 방에 계속 놔두는 건 별로 좋은 일이 아니라고. 그래서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조만간 방을 별궁에 있는 경치 좋은 곳으로 바꿀 거에요. 햇빛도 잘 들고, 바람을 통해 싱그러운 꽃향기가 스며드는 아주 아름다운 곳이랍니다. 아마 마음에 들 거에요.”
“…”
네아는 크게 놀라고 말았다. 햇빛이 드는 방이라니, 자신을 정말 그런 곳으로 옮기려 한단 말인가.
“그, 그게… 정말인가요?”
그러자 미아는 방긋 웃으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이래봬도 저 역시 신인걸요. 믿어도 좋아요. 아, 그전에 좀 더 몸을 회복해야겠지만요. 별궁의 정원 정도는 혼자서도 산책을 할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옮긴 보람이 있지 않겠어요?”
“…”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걸 듣고 있던 네아는 순간 흠칫하며 놀라버렸다.
“지, 지금… 뭐라고?”
“혼자서도 산책할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요.”
“아니, 그 전에…”
“그 전에?”
“신이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
“아… 얘기 안 했었나요?”
미아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맞아요. 저도 일단은 여신이에요. 미아는 이 모습일 때 쓰는 이름이고, 본래는 보호와 균형이라고 불려요.”
“…”
네아는 다시 한 번 뒤통수를 두들겨 맞은 듯한 기분이 되어 버렸다.
여신이라니. 여신이 자신의 잠자리를 살피고, 음식을 먹여 주고, 기저귀를 갈아주었단 말인가.
뭐라 말도 못하고 그대로 굳어 있는 네아의 모습에, 미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다시 말했다.
“뭔가 문제라도?”
“아니, 그게…”
뭔가 문제라도 있냐는 식으로 묻는다는 것 자체가, 자신에게 했던 일이 어떤 특별한 이유에서 행해지는 것이 아닌 일상적인 일이라는 의미다. 하기야 왕성에서는 지금 이순간도 우주 전체를 통할하는 주신인 형진조차 아주 즐거운 표정으로 푸짐하게 싸질러 놓은 달이 녀석의 기저귀를 흐뭇하게 갈아주고 있으니, 미아로서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환자를 이런 식으로 돌보는 것 정도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리페라면 아마 좀 다른 판단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아의 사고방식은 오로지 형진을 기준으로 하고 있으니 다른 이들이 보기에 이건 좀 아닐 수도 있다 싶은 일도 당연하게 여기게 되어 버린다. 맹목적인 의존증의 폐해라고나 할까.
이쯤 되면 네아는 이제 뭘 더 따져야 하는지조차 모르게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사로잡은 밤의 신도, 그리고 스스로를 보호와 균형의 여신이라고 밝힌 눈앞의 이 여성도 자신이 알고 있던 신과는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말이다.
“죄송… 합니다. 신이셨군요. 미처 알아보지 못해 죄송합니다.”
비록 빛의 신과 적대하는 입장이라고는 해도, 상대 역시 신이라면 그에 합당한 예우를 갖추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네아는 생각했다.
만약 대성전에서의 전투가 벌어지기 전의 그녀였다면, 이런 식으로 다른 신에게 존중의 뜻을 보이는 일조차 없었을 것이다. 빛의 최고 장로인 그녀에게 있어서, 자신이 신앙하는 빛의 신에게 대적하는 모든 존재는 악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존중의 뜻을 보인 것만으로도 미아의 보살핌이 얼마나 그녀의 마음에 와닿았는지 여실히 알아볼 수 있는 일이다.
“신경 쓰지 말아요. 이 모습일 때는 그저 남편의 일을 돕는 비서 가운데 한 명일 뿐이니까요. 음, 사실은 신이란 걸 밝혀서도 안 되는데, 말을 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그만.”
미아는 나름대로 편하게 대하라는 말을 하려고 했던 모양이지만, 네아는 또한 그 말을 통해 여러 가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네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물어보았다.
“저쪽 우주에서는… 신이 지상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건가요?”
“물론이죠. 엘리시온은, 그러니까 신들이 머무는 세상은 너무 지루하거든요. 그래서 여유가 되면 인간들의 세상에서 휴식을 즐기는 경우가 아주 많아요. 그 중에는 저처럼 아예 눌러 사는 경우도 꽤 되고요. 물론 단순히 즐기기 위해서만은 아니에요. 교단을 돌보려면 신도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직접 봐야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이래저래 지상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아질 수밖에 없는 거죠.”
“그렇군요…”
부럽다.
네아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아무리 기도를 해도 최고 장로인 자신조차 신을 영접하기는커녕 그 목소리를 듣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에 반해, 저쪽에서는 미처 스스로 인식하지는 못하더라도 신이 항상 곁에 있음을 느낄 수 있는 모양이다.
물론 이건 꽤 과장된 일이고, 지구처럼 아직 대중 전체에게 신의 존재가 알려지지 않은 세계마저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네아로서는 그런 세세한 부분은 알 도리가 없었고, 그저 신들이 주위에 항상 임하고 있다는 사실만이 부러움을 자아낼 뿐이다.
========== 작품 후기 ==========
일단 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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