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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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손이 몸에 닿는다. 뒤이어 거짓말처럼 번쩍 몸이 들어올려진다.
“가볍다고 얘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군. 좀 더 식사를 열심히 해야겠어.”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그것이 이곳에 와서 들어본 적이 없는 목소리임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누구냐고 물어볼 겨를도 없었다. 어느 틈엔가 코와 입으로 흘러들어온 물을 뱉어내는 것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콜록! 콜록!”
“쯧쯧.”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제서야 네아는 자신을 안아 올린 자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었다.
이전까지는 본 적이 없는 조금 특이한 외모다. 그렇다고 눈이 하나라든가, 머리가 두 개라든가 하는 식은 아니다. 분위기라고 해야 하나. 그 와중에도 검은 머리와 검은 눈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어쩐지, 남자구나 라는 느낌.
지금까지 그녀는 이성에 대해 관심이나 신경을 써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자신을 안아든 강인한 팔과 낮게 깔린 목소리, 그리고 여성의 부드러운 윤곽선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선굵은 외모를 느낀 순간 어쩐지 얼굴로 피가 몰리는 기분마저 느끼고 있었다.
그는 가만히 그녀를 휠체어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방금 전의 일로 인해 여전히 팔과 다리를 떨고 있는 모습을 보며 말했다.
“조심했어야지.”
“죄송… 합니다.”
그는 네아를 슬쩍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네아는 방금 전의 일을 떠올리고는 민망하고 부끄러운 기분에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발목까지도 오지 않는 바다에 빠져 죽을 뻔 하다니. 그나마도 침착하게 대응하지도 못하고, 허우적거리며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러 버렸다. 바로 좀 전까지도 죽어야 하나 살아야 하나 고민했던 주제에, 막상 코앞에 죽음이 닥치자 당황해서 그런 추태를 보이고 말았던 것이다. 사실 형진이 한숨을 내쉰 건 그녀의 행동과는 전혀 무관한 이유 때문이었지만, 네아는 그것이 자신의 추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문득 그의 손이 움직인다. 손등으로 누군가를 살짝 밀치는 듯한 그 동작과 함께, 흠뻑 젖어 있던 네아의 몸으로부터 물기가 순식간에 날아가 버린다.
“물기는 그렇다 쳐도 소금기가 남아서 찝찝할 거다. 씻을래?”
“괘, 괜찮습니다.”
네아는 다급히 손을 내저으며 대답했다.
미아나 아란이야 여자들이니 그렇다 쳐도, 명백히 남자로 보이는 인물이 씻겠냐는 말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의 반응에 형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물론 내가 씻겨 주겠다는 말은 아니야. 아무리 나라도 초면에 대뜸 그런 일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래도… 괜찮습니다. 지금은 이대로도.”
“그럼 그러던가.”
굳이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지 형진은 순순히 물러났고, 네아는 안도의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그나저나,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인데 역시 상당히 아름답군.”
“그렇… 습니까.”
대놓고 면전에서 대뜸 아름답다는 말을 들은 네아는 조금 당황해 버렸다.
“응. 특히 날개가. 직접 날 수도 있는 거겠지?”
“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무리입니다.”
“그렇겠지. 아직 몸이 다 낫지 않았으니까.”
서로에 대한 소개 같은 건 하지도 않았지만, 이미 네아는 상대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이곳은 얼핏 보기엔 평화로운 휴양지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감옥이기도 했다. 오직 그녀만을 위해 준비된 창살 없는 감옥. 그런 곳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남자라면 역시 하나 밖에는 생각나지 않는다. 미아가 자신의 남편이라고 일컬었던, 밤의 신이 바로 그 유일한 남자다.
그런 식으로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그렇다 해도 역시 확인은 해보아야만 한다. 확인하지 않고 지레짐작만으로 판단했다가 그것이 착각이기라도 하면 역시 곤란한 일이니까.
“밤의 신이십니까.”
조심스럽게 묻자, 역시나 형진은 별로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바로 알아보는군.”
“그냥… 그럴 것 같았습니다.”
미아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지만, 스스로를 밤의 신이라 인정한 이 남자도 얼핏 보기엔 신으로 느껴지질 않는다. 오히려 일부러가 아닐까 싶을 만큼 강한 존재감이 느껴졌던 아란 쪽이 특이하게 생각될 정도다.
“왜? 신이라기엔 뭔가 평범해 보이나?”
씩 웃는 형진의 말에 네아는 당황해서 얼른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닙니다. 그런 불경한 생각은…”
자신이 섬기던 빛의 신과 적대하는 입장이고, 자신을 강제로 개종시키기까지 했다. 어떻게 보면 네아로서는 원수라고 불러도 될 법한 위치의 신과 마주한 셈.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로 적대감이 생기질 않는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기이할 정도다.
혹시 강제 개종 당했기 때문일까. 이미 밤의 신에 속한 자가 되었기 때문에 적대감을 떠올릴 수 없게 되어 버린 걸까. 물론 그것도 가능성이 있는 추론이었지만, 네아는 어쩐지 지금 자신이 느끼는 이 감정이 미아와 함께 했을 때와 비슷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신이지만, 또한 너무나 자연스럽고 편안해서 신이라는 것을 느낄 수 없는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네아의 모습에 형진은 껄껄 웃으며 다시 말했다.
“하긴 내가 좀 평범해 보이긴 하지. 게다가 본래 신으로 태어난 것도 아니니, 그런 느낌이 드는 것도 이상할 것 없는 일이야.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난 스스로도 내가 지금과 같은 위치에 서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평범한 소시민에 불과했으니까. 아니, 오히려 사회적으로는 약자에 가까운 쪽이었다고 해야겠지.”
“네?”
형진의 말에 네아는 잠시 이게 무슨 소린가 싶은 기분이 되어 버렸다.
신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니. 게다가 본래는 사회적 약자에 가까운 소시민이었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이미 미아나 아란 같은 이들과 만나면서 어쩌면 이쪽 우주의 신들은 그녀가 떠올리는 그런 절대적인 존재와는 다른 무언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밤의 신이 스스로 본래 신으로 태어난 존재가 아님을 밝히는 것을 듣자, 그녀는 이제까지의 모든 고정관념이 확 뒤집어지는 듯한 충격을 받고 말았다.
“아, 물론 이쪽의 신과 저쪽의 신이 서로 완전히 다른 존재인 것은 아니야. 아직 이쪽의 신을 만나보지 못해서 확답은 할 수 없지만, 일반적인 생명체에게 있어 절대적인 존재인 것은 맞아. 그렇다고는 해도 인과율을 완전히 뒤집어 버린다든가 하는 식의 초월적인 행동은 못하지만, 그건 이쪽의 신도 마찬가지이고. 만약 빛의 신이라는 자가 인과율을 제멋대로 뒤집어 버릴 수 있는 존재였다면, 애초에 싸움이고 뭐고 될 수도 없었겠지. 나와 빛의 신이 그리 다를 바가 없다는 건 그런 부분을 놓고 하는 얘기니까 오해는 말아.”
“…”
오해고 뭐고 간에 그런 식으로 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네아로서는 그저 어리둥절한 기분만 느껴질 뿐이다. 애초에 빛의 신은 세상에서 유일하며 절대적인 존재였고, 그러한 이에게 의문을 품는다는 것 자체가 불경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날 만나보고 싶다고 했었지? 어때. 직접 만나보니.”
“그게…”
“소감이야 이미 표정만으로도 알 수 있을 것 같고.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것 아니었나?”
“…”
분명 뭔가 할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막상 얼굴을 마주하고 보니 자신이 왜 밤의 신을 만나보고 싶어했는지조차 제대로 떠오르지 않는다.
“당장은 할 말이 생각나질 않는 건가.”
“죄송… 합니다.”
“아니. 죄송할 것까지야. 어차피 기별도 않고 불쑥 찾아온 나에게도 잘못은 있으니까. 원래는 좀 더 지켜보려던 참이었는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쩔 수가 없었어.”
“…”
네아는 다시금 얼굴이 확 붉어지고 말았다. 방금 전의 추태가 다시금 떠올라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형진은 키득거리며 웃더니, 이내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 그러자 공간이 열리며 작고 귀여운 외모의 요정, 림이 모습을 드러낸다.
-네! 부르셨어요? 스승님.
“그래. 애들 좀 불러와. 부탁할 일이 있다.”
-알겠습니다!
림은 곧바로 자신을 도울 요정들을 한 다스 정도 불러왔고, 왁자지껄 소란스럽게 떠들어 대며 몰려온 그들에게 형진은 바로 지시를 내렸다.
“여기 있는 이 사람 보이지?”
-네에!
“방금 전에 바다에 빠지는 바람에 몸에도 옷에도 소금기가 잔뜩 남아 버렸어. 저기 별궁에 데려다가 잘 씻기도록 해. 아파서 몸이 좀 불편하니까 신경을 써야 할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넵! 맡겨 주세요!
요정들은 마치 유치원의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대하듯이 그렇게 한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얼른 네아에게 달려들어 그녀를 휠체어째로 들어올렸다.
“자, 잠깐만요. 저는…”
“아무래도 이대로 계속 놔두는 건 옷이든 피부에든 별로 좋지 않을 것 같아서. 냄새도 슬슬 나기 시작했고.”
“…”
“씻고 오면 상을 주도록 하지. 너도 이미 알겠지만, 내 요리는 세상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거든. 하핫!”
역시 미아의 남편이 맞긴 한 모양이다. 네아는 결국 더 이상 뭐라고 하지도 못하고 요정들에게 끌려가 몸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씻기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아유, 이 피부 좀 봐.
-어떻게 관리하신 거에요? 정말 피부 너무 곱다.
-이 날개, 장식이 아니었네요?
-깃털 정말 너무 예쁘다.
-저, 하나만 주면 안 되나요?
-어이, 그건 실례라고.
-하지만 너무 예쁜 걸. 내 침대에 가져다 두고 차양으로 쓰고 싶어.
-아냐. 이런 건 부채로 만들어야 해. 난 전부터 부채로 만든 깃털이 가지고 싶었어.
-깃털로 만든 부채겠지. 바보 멍청이.
-아니거든! 나 바보는 맞지만 멍청이는 아니거든!
-그게 그거지. 너희들 어디 가서 요정이라고 그러지 마. 아유, 창피해.
-크윽. 차가운 진실이 칼날처럼 가슴을 후벼파는구나.
그렇지 않아도 정신이 없는 판에 요정들이 그렇게 떠들어대는 것까지 듣고 있자니 그나마 있는 정신도 가출해 버릴 판이다. 결국 뭘 어떻게 해볼 사이도 없이 전신을 깨끗하게 씻고 뽀송뽀송하게 잘 말리기까지 한 상태로 네아는 다시 형진에게 배달되었다.
“마침 잘 왔어. 그렇지 않아도 막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하려던 참이거든.”
다시 바닷가로 나오자, 어느 틈엔가 조리대를 설치하고 화덕에 장작으로 불을 붙이고 있던 형진이 그녀를 맞이한다.
신이라길래 요리도 뭔가 권능 같은 걸 써서 뚝딱 만들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내심 가지고 있던 그녀는 잘 마른 장작에 불을 붙이기 위해 부채질을 하고 있는 형진의 모습에 뭔가 묘한 기분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너희들도 수고했다. 거기 앉아서 기다려. 림은 날 좀 도와주고.”
-넵! 스승님!
요정들은 형진이 요리를 시작하자 시끄럽게 떠들어 대며 얼른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래서야 정말 뭐가 뭔지. 밤의 신과 대면하면 물어보고 싶었던 이런 저런 일 따위, 이제 더 이상 네아의 머리 속에서는 찾아볼 수조차 없게 되어 버리고 말았다.
림에게 남은 재료의 손질을 맡긴 형진은 크고 검은 빛의 웍 하나를 꺼내서 기름을 두르고는 파와 마늘을 넣어 볶기 시작했다. 기름에 볶아진 파와 마늘로부터 향긋한 냄새가 나기 시작하자, 요정들은 왁자지껄하게 떠들어대던 것을 멈추고는 킁킁거리며 이제부터 시작될 요리에 대한 기대감으로 눈을 반짝이기 시작한다.
-파기름. 알았다. 이건 중화요리다!
-오오, 불맛! 불맛! 불맛!
-아, 언제 봐도 예술적인 손목 놀림이야.
-후후, 이미 모든 건 파악되었다. 이 요리는!
-이 요리는? 뭔데? 어서 말해봐!
-60초 후에 계속됩니다. 채널 고정! 으하하하핫!
-뭐야 그게!
뭔가… 다르다.
네아는 그렇게 불을 다루고 있는 형진의 모습을 보며 어쩐지 이젠 아무래도 좋은 기분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어쩌면 밤의 신을 만나서 묻고자 했던 다른 모든 질문들에 대한 답을 이미 찾아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질문이 떠오르지 않는 이유는 그래서가 아닐까.
요정들의 번잡한 소란스러움도, 갑작스런 만남에 대한 당황스러움 때문도 아니다. 이미 그는 자신의 모습과 행동으로 그녀에게 답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신이라고. 지금의 이 모습이야 말로 밤의 신이라 불리는 존재의 진면목 가운데 하나라고.
그것은 말로 표현한 그 어떤 대답보다도 명확하게 그녀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네아는 가만히 형진의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해답을 스스로의 마음 속에 각인시키려는 것처럼. 그렇게 조용히.
========== 작품 후기 ==========
일단 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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